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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하 원장] ‘조력존엄사 법률안’ 폐기를 앞두고 안락사와 조력존엄사를 돌아보기
I. 21대 국회와 ‘조력 존엄사’ 법률안 21대 국회 회기 중인 2022년 6월에 안규백 의원이 일명 '조력 존엄사 법안' 을 대표 발의했다. 국회의원 12명이 함께 서명한 이 법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 차 례 토론이 되었지만 그 이후 진전이 없이 법사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다. 이 법안은 21 대 국회가 폐회하는 5월 말에 자동으로 폐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20세기 후반기에 지구촌에서는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불치의 병으로 시달리는 자들이 원할 경우 존엄사 혹은 안락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여론과 운동이 강하게 일어났다. 2000년에 마침내 네덜란드가 이것을 허용하는 소위 안락사 법을 제정했고 2002년 4월부터 시행하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북미의 캐나다와 미국의 여러 주들이 시차를 두고 법 제정과 시행에 동참했다. 이 법은 지난 20여 년 간 지구촌에서 시행되어 오고 있지만 지금도 안락사는 여전히 국제적 뉴스로 등장하곤 한다. 한 달 전인 2월 11일에도 네덜란드의 전직 총리 판 아흐트(Dries von Agt)가 동갑내기 부인과 함께 동반 존엄사를 택해 9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타전되었다. 한국에서도 제법 큰 뉴스거리가 되었는데, 최근 우리 사회에서 는 존엄사에 관련된 이런 저런 사건, 존엄사 관련 시사 프로그램 방영, 존엄사 문제를 짚어보는 영화가 개봉되면서 다시금 사회적 조명을 받은 바 있다. 현재 고령사회이고 내년이면 초고령사회가 되는 대한민국은 앞으로 안락사에 관련된 논의와 법제화 요구는 더욱 증가할 것임은 능히 예측되는 상황이다. 통계청은 2023년 12월 2022년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남자가 79.9세, 여자가 85.6세라고 발표했다. 불의의 사고나 불치의 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한국인은 평균 83세 정도는 사는 셈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80에 가까우면 대개 쇠약하고 병들고 고생하기 일쑤고 그러다가 죽음을 맞게 되는 점에서는 이젠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30년 통계를 보면, 한국인들은 4명 가운데 3명이 병원에서 죽는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본인이 원한다면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갈수록 강해질 것이 능히 예측된다. 그리 고 이런 여론을 힘입어 22대 국회에서도 적극적인 안락사나 조력존엄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서 교회는 안락사에 대한 바른 신학적 이해를 확립하여 성도들에게도 가르치고 또 사회적 대응을 적절하게 할 필요가 있다. II. 안락사/존엄사 그리고 조력존엄사 A. 안락사/존엄사 안락사(安樂死, euthanasia)는 좋은(eu) + 죽음(thanatos), 즉 편안한 죽음을 의미한다.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고 또 사회가 허용한다는 것은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태의 환자가 편안히 죽을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안락사를 법으로 보장한다는 것은 회복이 불가역적 상태에서 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연장 하지 않고 편안히 일찍 죽음을 맞게 해 줄 주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안락사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는 환자 본인 의지 여부에 따라 자원적 안락사와 비자발적 안락사로 둘째는 의사의 의료 행위 내용과 정도에 따라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로 나눈다. 현재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에서도 대부분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고 소수의 국가만 적극적인 안락사를 허용한다. 서구의 국가들이 먼저 이 법을 시행했고 아시아에서는 호주가 처음으로 이 법을 만들어 시행해 오고 있다. 그리고 작년 2023년 1월에 호주는 ‘자원적 안락사’도 허용하는 법을 발효시켰다. 그 동안 남호주 주가 이 법을 거부하다가 뒤 늦게 허용 했는데, 남호주 주가 자원적 안락사 법을 발효시킨지 2개월 만에 30여 명의 주민이 이것을 신청했고 이것이 일제히 지구촌에 큰 화제로 보도되기도 했다. B. 조력존엄사/조력자살 우리 언론에서는 “자원적 안락사”라고 보도했지만 호주에서 사용한 정확한 명칭은 ‘voluntary assisted dying’이다. 직역하면 ‘자원적 조력 사망’이다. 도움을 받아 사망하는 것으로 유럽에서 시행되어 오고 있는 이 제도는 일반적으로 “의사 조력 자살”(phlysician-assisted suicide) 제도이다. 호주는 이것을 ‘자원적 조력 사망’이라는 표현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만 내용은 서구의 ‘의사조력 자살법’과 동일하다. 그런데 2022년 한국에서도 국회의원 안규백 의원은 이와 유사한 내용을 지닌 법안을 발의했다. 발의된 법률안의 명칭은 ‘호스피스·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인데, 안 의원은 이것을 줄여서 ‘조력 존엄사’라는 명칭을 사용한 바 있다. 그것은 그 내용이 서구의 ‘의사 조력 자살’이나 호주의 ‘자원적 조력 사망’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C. 존엄사와 조력존엄사의 차이 그럼 안락사/존엄사와 의사조력자살 혹은 자원적 조력 사망 혹은 조력 존엄사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간략하게 설명한다면, 전자는 의사나 의료인이 환자의 생명을 끊는 행위를 직접적으로 하거나 간접적인 방법으로 하는 것이고, 후자는 의사가 아닌 환자 자신이 여 자신의 생명을 끊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의사나 의료인은 약물을 몸에 주입시키는 수단과 장치를 제공하지만 밸브를 내림으로 약물이 본인의 몸에 주입되게 하는 행동은 환자 본인이 하고 이어 곧 사망하는 것이다. III. 한국의 연명의료 결정법(2016) 그리고 일부 개정안(2022년 6월)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에 안락사 법과 유사한 소위 ‘연명의료 결정법’이 제정 되어 2018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리고 2022년에는 이 법이 허용하는 것을 조금 더 넘어 의사의 도움을 받지만 본인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게 하는 행위를 허용하는 조력 존업사법이 연명의료결정법의 개정안의 형식으로 발의되었다. A.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과 연령의료결정법 연명의료 결정법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2009년에 의료 사고로 식물인간 상태 된 할머니의 가족들이 세브란스 병원에게 할머니에게서 산소 호흡기를 제거해 달라고 요청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신촌 세브란스 병원이 가족의 요청을 거부하자 가족들은 세브란스 병원을 대상으로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고 마침내 법원은 병원이 환자로부터 산소 호흡기를 제거하라고 판결했다. 소위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으로 불려지는 이 사건 이후, 우리 사회에서 는 정부가 주도하여 사회의 각계의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4-5년 동안 지속적으로 소 위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마침내 합의를 도출하여 안을 만들었고 그것이 2016년에 마침내 ‘호스피스·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 긴 이름의 법은 흔히 줄인 말 인 ‘연명의료결정법’이라 불리우는데 2018년부터 효력이 발생하여 현재까지 시행되어 오고 있다. 이 연명의료결정법 내용의 핵심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자기 뜻을 밝힌 경우, 혹은 대리인이 환자의 의사를 추정하여 밝힌 경우, 그에 따라 연명의료행위 즉 심폐소생술, 항암제 투약 등 생명을 연장시키려는 적극적 의료행위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B. '조력존엄사법' 그런데 언급한 바 있듯이 현재 이 법의 일부를 개정하려는 법안인 ‘호스피스·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이 2022년 6월에 안규백 의원에 의해 일명 ‘조력존엄사법’으로 발의되어 있는데, 이 법 이 이전 법과 다른 점은 첫째 대상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서부터 ‘말기환자’에 게로 확대되어 소위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게 하고, 둘째 의사의 도움으로 환자가 스스로 자기 생명을 끊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법안은 “말기 환자(末期患者)”를 이렇게 정의했다: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회복의 가능성이 없고 점차 증상이 악화되어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진단을 받은 환자.” 그런데 이 법안의 특징과 핵심은 바로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는 것이다. 의사가 약물이 들어 있는 주사기를 환자의 몸에 꽂아 두면 환자 본인이 밸브를 돌리거나 버튼을 눌러 약물이 자신의 몸에 주입되게 하여 자신이 죽는 것이다. 언급한대로 서구의 네덜란드와 스위스 등의 일부 국가들은 이를 허용 하고 있고, 그 가운데서 스위스는 외국인들에게도 이것을 허용한다. 안규백 의원은 이 법안을 발의한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사회적 여론이다. 그는 한국 성인의 약 80%가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을 찬성한다는 통계를 근거로 하여 국민의 정서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국민의 기본권인 자기 결정권을 생명과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까지도 확대하여 증진시켜야 한다고 것이다. 그는 참기 힘든 고통가운데 있는 말기환자가 고통을 피하고 일찍 죽기를 원하는 의사를 지속적으로 밝히면 사회는 그 뜻을 존중하고 자기절정권을 존중해 주어야 한 다는 것이다. IV. 신학적 검토 자신의 생명과 삶의 종결에 관한 자기 결정권을 증진시키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에 법률안에 대해 신학적으로 몇 가지 생각해 보자 첫째. 성경은 하나님 이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즉 사람의 생명의 주인은 본인이 아니라 조물주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뜻에 따라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피조물이고 생명의 위임자이지 주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구약의 욥기 서에 나오는 욥은 졸지에 자녀들이 죽고 엄청난 재난을 당했을 때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욥1:21)라고 고백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과 자녀의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인임을 인정하고 고백한 것이다. 또 욥은 12장 10절에서는 “모든 생물의 생명과 모든 사람의 육신의 목숨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욥12:10)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리고 14장 4절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사람의 수명조차도 하나님이 정하셨다고 고백했다. “(주께서) 그 (사람)의 날을 정하셨고 그의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욥14:5). 하나님이 사람에게 정하신 날 수가 차면 즉 그의 수명이 다하면 그의 생명을 거두어 가신다고 욥은 말한 것 이다. 전도서 3장 1-2절에서도 솔로몬 왕은 이와 유사한 진술을 합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전3:1-2). 솔로몬 왕이 이 말은 표현만 약간 다를 뿐 내용은 욥의 고백과 동일하다. 이처럼 성경의 가르침은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이 모두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 정하신 바에 따르는 것이지 사람 개인이 자의적으로 결정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분명이 말한다. 이런 성경적 인식을 갖는다면 사람이 자기 생명의 주인이기에 마땅히 생명 과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가져야 하고 그에 따라 원하지 않는 고통스런 생명을 연 장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죽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과 조력존업사 법안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한국성인의 80% 이상이 이 법안을 지지한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적 시각에 벗어나는 이 법안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둘째, 고통 가운데 있는 말기과정에 있는 환자가 원한다면 그 뜻을 존중하여 빨리 죽게 해 주어야 한다는 이 조력존엄사 법이 통과되면 앞으로 생명을 존중하는 의식이 약화되는 결과를 넣게 된다. 물론 이 법안은 비록 “육체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말기 환자들에 한해서”라는 적용한다는, 단서를 달아 놓았지만, 일단 이것을 인정하게 되면 시간이 지나가면서 육체적 고통에서 정신적 고통으로 범위가 확대되어 가게 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네덜란드에서는 2002년 이 법이 시행되고 난 뒤 2017년도 한 해 동안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로 6,585명이 사망 했는데, 그 중에서 정신적 고통을 이유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83명이나 포함되었다. 본래 안락사 제도는 존엄한 죽음을 위해 만든 것인데, 이렇게 되면 이 제도는 좀 더 쉽 게 죽게 만드는 법이 되어 도리어 인명경시의 풍조를 낳게 되는 악효과를 낳게 될 것 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어떻게 대응하고 행동해야 할 것인가, V.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대응 A. 고통의 최소화와 아닌 돌봄의 최대화 병상에 누워 고통스러워하는 말기 상태에 있는 부모나 가족의 보면, 자녀들과 가족들은 저렇게 고통 받으며 연명하는 것보다 고통 없이 일찍 죽는 것이 낫겠다.'라 고 생각하게 될 수 있다. 그런데 성도들은 가족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고, 해 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아울러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있고 또 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고통에 신음하는 부모님을 보고 고통을 덜어주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환자를 일찍 죽게 함으로 그 고통을 종식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고 우리 소관 영역에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일은 오로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주인이신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우리 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은 환자의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최대한으로 돌보는 일이다. 다르게 말하면 ‘고통의 최소화가 아니라 돌봄의 최대화’라는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환자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은 인생이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임을 아프지만 인정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인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또는 부모님이 병상에서 고통을 겪을 때에 그가 하나님의 더 의지하고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셔서 부모님이 그 기간을 주와 함께 보내게 되기를 더 간절히 기도하고 돌보는 일에 더 힘써야 한다. 이 고통의 문제는 비록 나의 지식으로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섭리에 속한 것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이가 병상에서 힘들더라도 주의 손을 붙잡고 고통 없는 영원한 곳을 소망하면서 그 기간을 끝까지 소망으로 인내하며 나가도록 보살피고 기도해야 한다. B. 호스피스를 통한 고통완화와 편안한 임종 맞기 그러면 이런 돌봄과 기도 외에 실제적으로 환자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물론 있다. 그것은 환자를 완화 의료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호스피스 병원에 이전하여 그곳에서 전인적인 돌봄을 받으면서 남은 기간을 보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호스피스 병원은 통증완화를 위한 최적화된 의료 시설과 전문 지식을 의술을 갖춘 훈련된 의사와 간호사들이 말기 환자들에게 전문적인 의료와 아울러 전인적인 돌봄을 제공하는 병원이다. 성도들은 우리 사회가 조력존엄사를 제공하는 방법이 아니라, 호스피스 병원을 더 많이 설립하는 것을 통해 고통을 줄여주고 말기를 보낼 수 있도록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 실제로 우리 나라도 지난 정부 때인 2019년에 호스피스 서비스를 확대하는 내용의 1차 호스피스·연명 의료 종합계획(2019~2023년)을 만들어 발표한 바 있다. 2019년에는 호스피스를 원하는 환자 10명 가운데 2명 정도만이 호스피스에 입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일반적으로 적잖은 병원과 의료기관들은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호스피스 시설을 짓고 병원을 운영하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호스피스 병원이 매우 부족한 형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은 호스피스 병원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다가 사망하는 환자가 많다. 노인복지 차원에서도 나라는 호스피스 병원을 더 많이 세워 운영하도록 여론을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호스피스 팀이 환자의 집을 방문하는 가 정형 호스피스 제도가 2020년부터 시행되고 있는데 이 제도도 점점 확대해 가도록 그리스도인 법조인들과 위정자들 그리고 시민들은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VI. 나가면서: 이제 곧 폐기될 소위 조력존엄사법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의사 조력 자살’ 법으로 이 법이 폐기되는 것은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22대 23대 국회에서 이런 법은 계속 발의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우리 사회가 반기독교적 가치와 반생명적 제도가 인권의 이름으로 만들어져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준비하고 필요하면 함께 힘을 모아 효과적으로 대응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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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베스트 관계 목회(6)
관계공동체 (1) 가정과 교회 직장은 관계공동체입니다. 공동체가 주는 유익이 많습니다. 관계가 잘 되면 공동체가 성장하고 관계가 깨지면 공동체가 무너지기도 합니다. 공동체는 인간관계입니다. 공동체가 하나 되는 데는 좋은 관계에 있습니다. 공동체에서 관계를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천국은 행복한 관계공동체입니다. 공동체는 외로움을 이기게 합니다. 관계공동체는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관계공동체는 축복의 공동체입니다. 좋은 관계공동체가 되려면 서로 겸손히 섬겨야 합니다. 섬김의 공동체가 건강한 관계공동체입니다. 섬김의 리더십은 예수님의 리더십입니다. 관계공동체에 죄가 끼지 않아야 합니다. 죄가 끼면 갈등이 생기고 관계공동체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거짓과 위선이 끼면 관계공동체에서 신뢰 관계가 깨집니다. 관계공동체에서 의와 성결, 정직이 있어야 합니다. 성결과 정직은 신뢰 얻게 되어 관계공동체가 건강하게 됩니다. 관계공동체에서 언어가 중요합니다. 말 한마디 때문에 관계공동체가 세워지기도 하고 깨지기도 합니다. 서로서로 선한 말, 덕을 세우는 말을 해야 합니다. 정죄하고, 비난하고, 거짓말을 하면 관계공동체가 깨질 수도 있습니다. 관계공동체적인 삶에 적응해야 합니다. 관계공동체 (2) 여러 종류의 공동체가 있습니다. 구역과 기관, 소그룹과 교회가 공동체입니다. 공동체에서 관계가 잘되어야 합니다. 관계가 깨지면 공동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관계가 잘 되는 공동체는 성장합니다. 공동체에서 서로 좋은 관계를 맺도록 노력하고, 기도하고,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공동체의 리더는 관계의 중요성을 알고, 관계가 깨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공동체 훈련은 관계 훈련입니다. 좋은 관계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공동체에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융통성의 리더십이 있어야 합니다. 관계공동체에서는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면 안 되고 지나친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누구와도 함께 어울릴 수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에서 관계가 소중합니다. 독불장군이 없습니다. 서로 하나 되는데 자신을 낮추고 양보해야 합니다. 공동체에서 서로 부딪치면 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관계공동체의 힘은 좋은 관계에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관계공동체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의리를 지키고 서로 섬겨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서로의 관계가 좋으면 교회에 가고 싶어지고 교회가 성장합니다. 지혜는 공동체에 소속되어 적응하고 관계를 잘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관계 속에 살고 목회는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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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베스트 관계 목회(4)
감정관리 관리가 중요합니다. 감정관리, 생각관리, 분노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감정관리 못 하면 다투게 되고 다투면 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생각도 관리해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생각을 붙잡고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생각을 관리해야 관계가 잘 됩니다. 분노관리 잘해야 합니다. 누구나 분노가 있습니다. 마음에 분이 가득할 때 기도해야 합니다. 분노와 혈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마음을 다스리고 지켜야 분노를 관리하게 됩니다.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감정을 만져 주어야 합니다. 감정은 기분입니다. 기분에 죽고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의 상한 감정을 치유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감정이 상한 자들이 많습니다. 남의 상한 감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상한 마음과 감정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상한 감정이 있을 때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와 기도해야 합니다. 말조심해야 합니다. 나쁜 말로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 조심해야 합니다. 감정을 다스리고 관리해야 인간관계가 잘됩니다. 목회는 감정을 다루는 지혜입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자는 상처가 많은 자입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고 사는 자임을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순간마다 감정을 다스려야 합니다. 순간의 감정을 다스려야 합니다. 건강한 관계 ‘건강한 관계’가 있고 ‘병든 관계’가 있습니다. 관계가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한 관계’는 진실한 관계, 변함없는 관계입니다. 관계가 건강하면 사탄이 틈탈 수 없습니다. 관계가 건강하면 행복합니다. 건강한 관계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관계가 건강하면 교회가 성장합니다. 관계가 건강하면 관계가 무너지지 않습니다. 건강한 관계의 기초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관계 중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면 병든 관계가 됩니다. 관계가 건강하면 관계의 위기를 이겨냅니다. 성령 충만하면 관계가 건강해집니다. ‘샬롬’ 평안은 건강한 관계의 표지입니다. 관계가 건강한 자는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가 적게 됩니다. 관계가 건강하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관계가 건강하면 시기 질투가 적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누구나 만나고 싶어합니다. 사람을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인간관계를 맺게 됩니다. 관계가 건강하면 교회가 성장하고 가정이 행복해집니다. 관계 훈련, 관계 연습을 하면서 관계가 건강해집니다. 건강한 관계는 고독을 이깁니다. 은혜받으면 관계 맺기를 기뻐합니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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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베스트 관계 목회(3)
감사 제목 감사가 식어지는 말세입니다. 감사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죄성은 감사보다 불평을 잘합니다. 감사는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관계의 열쇠입니다. 천국은 감사가 넘치는 곳이고 지옥은 불평이 넘치는 곳입니다. 날마다 감사하면 세상에서도 천국을 경험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가 많습니다.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사탄은 악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탄은 미움입니다. 선한 목자이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 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되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 나를 무조건 사랑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감사하지 아니하고 불평하는 자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은혜를 모르고 감사하지 못하고 배은망덕한 자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감사냐 불평이냐 감사를 선택해야 합니다. 감사 제목만 찾아 감사하고 감사로 기도해야 합니다. 사건 사고가 많은 위험한 세상인데 하나님이 지켜주어 안전하다면 감사 제목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불평 제목만 찾아 불평합니다. 감사는 건강과 행복의 열쇠입니다. 감사는 긍정적인 언어이고 적극적인 삶입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자가 행복하고 감사가 넘칩니다. 감사는 영육의 건강에 유익합니다. 감사합니다. thank you라는 인사를 잘하는 자는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게 됩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세 가지로 고백해야 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감사는 인격이고 인격의 성숙이고 건강한 믿음입니다. 시험에 넘어진 자 병든 자가 불평합니다. 불평은 삶을 불행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교회에서 여러 가지로 섬길 수 있다는 것이 감사 제목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을 충성되이 여겨 사도의 직분을 주어 감당하게 하시니 감사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자의 마지막을 해피앤딩입니다. 요셉이 하나님을 경외했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는 고난이 있었지만 감옥에서 꿈을 해몽하게 되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믿을 때 감사하게 됩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나님의 감사 명령입니다. 순종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의미는 모든 상황 가운데 감사하라는 의미입니다. 힘들고 스트레스받고 고난의 때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고난이 유익이고 고난을 통해 배우게 되고 겸손해질 수 있기에 고난 중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고난당할 때는 왜 내가 고난당하는지 알 수 없는데 지나고 보면 고난이 유익이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삶의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를 방해하고 불평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욕심과 비교의식 시기 질투 열등의식 때문에 감사하지 못합니다. 욕심 버리고 마음 비우면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골로새서 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해야 합니다. 감사는 믿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믿음 만큼 감사합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불평합니다. 사도바울과 예수님은 범사에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은 작은 것 가지고 감사했습니다. 감사기도 후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했습니다. 냉수 한잔 마시며 감사해야 합니다. 가정이 있고 직장이 있고 사업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죽은 나사로 앞에서 감사했습니다. 절망의 환경에서 감사한 후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감사하는 곳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시편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빌립보서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감사로 예배드리고 감사로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드리는 헌금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십니다. 감사로 찬송부르고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혜와 영감을 주십니다. 저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들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을 얻고 감사했습니다. 수많은 글을 썼는데 때마다 하나님이 영감을 주어 기록했는데 다시 그 글을 쓰라고 하면 똑같은 글을 쓰는 것이 힘들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습니다. 글을 써서 책으로 남긴다는 것이 감사 제목입니다. 하나님께 감사 교회에 감사 교회에 나아와 마음껏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이 감사 제목입니다. 무조건 감사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할 때 사탄이 떠나게 됩니다. 불평은 사탄의 친구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주의 종과의 만남 성도들과의 만남 만남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건강해서 하나님의 교회에 나아와 예배드리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건강한 것, 병고침 받는 것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병을 고치고 우울증을 치유하는 최고의 약입니다. 날마다 감사해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욥은 망하고 나서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차 감사의 말을 해야 합니다. 모든 것 하나님께 맡기고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힘이고 영성입니다. 감사하는 자가 믿음이 성장합니다. 감사가 성공의 비결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복 받고 쓰임 받은 비결은 다윗의 감사입니다. 역대상 29:13-14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고 즐겁게 헌금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역대상 29:27-28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은 사십 년이라 헤브론에서 칠 년간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을 다스렸더라 그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으매 그의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다윗은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었습니다. 감사가 넘치는 가정이 행복하고 감사가 넘치는 교회가 성장합니다.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한 것 회개해야 합니다. 감사가 주는 유익이 많습니다. 감사는 절망과 스트레스를 이깁니다. 감사는 인간관계의 열쇠입니다. 감사하는 자는 인정 받고 사랑받습니다. 감사는 삶의 지혜요 처세술입니다. 감사하면서 일해야 삶이 행복합니다. 감사 제목도 많고 불평해야 할 제목도 많습니다. 감사 제목만 찾아 감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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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베스트 관계 목회(2)
갈등 누구에게나 갈등이 있습니다. 갈등을 해결해야 관계가 잘 됩니다. 교회 안에서 갈등이 있습니다. 사소한 것 가지고 갈등이 생깁니다. 갈등을 키우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죄성 욕심 이기심 때문에 갈등이 생깁니다. 날마다 욕심을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조카 롯 사이에 소유 문제 때문에 갈등이 생겼지만 아브라함이 양보함으로 갈등을 처리했습니다. 양보한 아브라함이 복을 받았습니다. 갈등이 심해지면 관계가 깨집니다. 천국에는 갈등이 없습니다. 갈등과 관계는 연결됩니다. 잘못된 언어와 행동 때문에 갈등이 생깁니다. 가까운 부부관계 친구 관계에서도 갈등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갈등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지혜는 관계의 열쇠입니다. 지혜의 하나님께 날마다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갈등을 일으키고 갈등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대화 부족 오해 때문에 갈등이 생깁니다. 대화는 소통의 능력 관계의 힘입니다. 평소에 대화해야 합니다. 갈등이 생기면 피하지 말고 빨리빨리 해결해야 합니다. 두려움과 소심함 소극적인 태도가 갈등을 키우게 됩니다. 사탄은 사소한 것 가지고 갈등이 생기게 합니다. 날마다 성령 충만을 구하고 성령 받아야 은혜가 넘치고 마음이 넓어 사람에 대한 이해심이 깊어지고 사랑의 마음이 있기에 갈등을 일으키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감사와 관계 감사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하면서 목회해야 관계가 잘됩니다. 감사는 긍정의 삶입니다. 골로새서 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감사는 관계의 비결입니다. 감사하는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관계가 잘됩니다. 받은 은혜 감사하고 배은망덕하지 않아야 합니다. 적은 것에도 감사해야 하며 감사가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하며 은혜를 아는 자가 관계를 잘하게 됩니다. 감사는 인격의 성숙함입니다. 배은망덕하고, 불평하는 자는 관계를 깨뜨립니다. 목회자는 감사의 중요성을 알고, 감사에 대해 가르치고, 설교해야 합니다. 감사는 인간관계의 비결입니다. 감사 제목만 찾아, 감사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는 관계의 능력이요, 지혜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감사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불평합니다. 사탄은 불평하는 자의 친구입니다. 사탄은 관계를 깨는 자입니다. 감사하면 관계가 좋아집니다. 감사는 경건의 연습입니다. 감사는 긍정의 언어요. 긍정의 삶입니다. 인간은 부정적인 자보다 긍정적인 자를 좋아합니다. 받은 은혜만 기억하면 감사가 넘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설교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해서 감사가 넘쳐 목회하고 설교해야 합니다. 감사는 인간관계의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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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베스트 관계 목회(1)
가인과 아벨의 관계 가인과 아벨은 나쁜 관계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형제 관계인데 가인의 시기 질투 분노 때문에 아벨을 죽이는 살인사건으로 관계의 비극을 볼 수 있습니다. 가까운 가족 형제 관계도 깨질 수 있습니다. 관계의 깨짐은 사탄의 역사입니다. 사탄은 관계 파괴자입니다. 성령은 하나가 되게 하고 하나님은 좋은 관계 맺기를 원하십니다. 가인과 아벨의 비극적인 관계는 가인의 시기 질투 때문입니다.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시고 가인의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았을 때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여 죽이게 되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시기 질투는 관계를 깨뜨립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관계를 세웁니다. 시기 질투를 버리고 넓은 마음으로 배려하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시기 질투는 인간의 죄성입니다. 인간의 죄성 때문에 관계가 깨집니다. 관계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관계가 잘 되면 행복하고 깨지면 불행해집니다. 사울은 다윗에 대해 시기 질투하고 죽이려 하다가 스스로 관계를 깨뜨리고 사울 자신이 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관계를 깨뜨립니다. 가룟유다도 사탄이 들어가니 스승인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가룟유다의 마지막은 자살로 그 인생이 끝납니다. 사탄은 관계를 깨뜨립니다. 가정과 인간관계 가정은 하나님이 만드신 축복의 센터입니다. 가정이 중요하며 가정생활에 성공해야 합니다. 사탄은 가정을 공격합니다. 가정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가정생활의 성공이 삶의 성공 목회의 성공입니다. 가정이 평안해야 목회가 안정적입니다. 가정이 흔들리면 목회가 흔들리고 가정의 위기는 목회의 위기입니다. 가까운 가정에서 신뢰 얻어야 합니다. 가족식구들과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사탄은 가정에서의 인간관계가 깨지게 합니다. 사탄은 관계를 깨뜨리는 자이고 파괴자입니다. 가까운 관계가 깨지기 쉽습니다. 가정에서 인간관계가 깨지면 상처가 크고 고통이 큽니다. 가정의 화목은 관계의 지혜입니다. 가정에서의 인간관계가 좋으면 삶이 행복하고 목회가 행복합니다. 사탄은 계속 관계를 공격합니다. 가정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되게 하십니다. 가정에서의 식구들이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충만은 인간관계의 열쇠입니다. 가정은 모든 것의 기초이고 뿌리입니다. 가정목회에 성공해야 합니다. 가정에서의 인간관계 승리는 목회의 승리입니다. 가정에서 예의 지키고 진실해야 합니다.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매력을 개발하여 싫증나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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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베스트 관계 목회(5)
- 격려와 관계 인간은 누구나 격려가 필요합니다. 격려해 주고 격려 받으면서 새 힘을 얻게 됩니다. 격려는 관계의 열쇠입니다. 관계 목회는 ‘격려’ 목회입니다. 격려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인생을 격려해 주십니다. 말씀으로 격려해 주십니다. ‘근심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격려의 말씀입니다. 격려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목회자는 격려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히10:24-25)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격려는 식어 냉한 가슴에 불을 붙여줍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낙심했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인간은 약하고 병들고 고난이 있고 낙심하는 자이기에 격려가 필요합니다. 힘들고 지친 인생들을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따뜻한 말로 격려하고 섬겨주면서 격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리더’는 격려자입니다. 교회는 격려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격려는 관계의 열쇠이고 서로 격려해 주는 교회가 성장합니다. ‘성령’은 ‘격려의 영’입니다. 편지로 이메일로 전화나 문자로 격려해야 합니다. 서로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격려의 씨를 심어야 합니다. 격려가 없고, 서로 비난하는 교회는 침체 됩니다. 격려를 연습해야 합니다. 목회하면서 격려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관계 목회는 격려 목회입니다. 겸손과 관계 그리스도인은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이 인격이고, 최고의 덕목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겸손은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관계의 열쇠입니다. 교만하면 관계가 깨집니다. 목회자는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겸손한 자는 누구나 좋아합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고 묵상해야 합니다. 겸손한 자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배우려 합니다. 모세는 수많은 연단을 받은 후에 겸손하고 온유해졌습니다. 사도바울도 모든 일에 겸손했고 겸손함으로 목회하고 선교했습니다. 겸손은 온유의 성품이고, 온유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다윗과 세례 요한은 겸손했습니다. 겸손이 인간관계, 관계 목회의 열쇠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베드로 사도도 겸손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벧전5:5-6)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겸손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겸손히 목회해야 목회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겸손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겸손해야 인내하고,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이깁니다. 겸손한 자는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존경합니다. 겸손한 자는 비난이나 정죄하는 것, 비판하지 않습니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을 선택해야 합니다. 겸손히 섬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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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논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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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베스트 관계 목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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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리더에 대하여(8)
-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 리더는 가정생활에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합니다. 성경은 일부다처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리더는 가정이 건전해야 합니다. 가정생활이 편하지 않거나 가정이 견고하지 않으면 리더로써 인정받기 힘듭니다. 가정이 깨어지면 좋은 리더가 될 수 없 습니다. 가정이 순결하고 하나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가정이 어떤가, 가정 생활에 충실한 가를 살펴보고 평가하게 됩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리더십이 무너집니다. 리더는 가정을 귀히 여기고 가정생활에 충실해야 합니다. 한 아내의 남편, 한 남편의 아내여야 합니다. 가정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입니다. 리더는 가정에서 인정받아야 하고 가정생활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가정사역을 귀히 여겨야 하고 자녀들을 신앙으로 잘 양육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성공해야 삶의 성공자가 됩니다. 가정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단은 가정을 깨뜨리나 성령님은 가정을 하나 되게 하십니다. 리더의 가정은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리더는 하나님이 주신 가정을 귀히 여기고 가정생활에 성실해야 합니다. 가정생활이 복잡하고 가정이 무너지면 좋은 리더가 되지 못하고 리더십이 무너집니다. 가정의 리더, 영적인 리더로써 성적인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성적인 순결이 무너지고 음란하여 음행하면 가정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리더로써 인정받지 못합니다. 가정을 지키는 자가 리더입니다.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담대하라 인간은 담대하지 못하고 두려움이 많습니다. 성경은 두려워하지 말라, 담대해야 한다고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은 부드러우시면서 어떤 때는 담대하셨습니다. 담대해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 리더십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담대하지 못하고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으면 관계가 잘 안되고 깨지기도 하여 관계 리더가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강하고 담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두려움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향해 담대히 죄를 회개하라고 외치셨습니다. 오늘날 담대해야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을 향해서 독사의 새끼라고 담대히 꾸짖고 책망하셨습니다.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합니다. 죄가 있고 약점이 잡히면 담대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이 담대함입니다. 담대하지 못하면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담대하게 가르치시고, 전도하시고, 설교하셨습니다. 리더는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담대히 사단마귀를 내어 쫓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사단마귀를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은 사단마귀 앞에서 담대히 꾸짖고 명령하셨습니다. 담대해야 사단마귀를 이깁니다. 사단마귀도 자기를 두려워 하는 소심한 자를 비웃고 우습게 여깁니다. 성령 충만하고 기도하는 자, 의롭게 말씀대로 사는 자가 담대할 수 있습니다. 담대해야 리더가 되고 관계가 잘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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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논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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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리더에 대하여(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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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16)
-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가르쳐 주십니다. 인간은 어리석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위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천국을 준비하시고, 재림하십니다. 우리의 편이 되시어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자신을 위하지 않으시고 나를 위하여 모든 것 행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죄성, 이기심은 나를 위하여 사는 이기주의적인 삶입니다.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아낌없이 주게 됩니다.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가장 좋은 것을 아끼지 않으시고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정죄하지 않으시고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심판하거나 정죄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를 사랑해서 다시 사신 예수님입니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동기가 사랑이십니다.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마무리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넉넉히 이기게 됩니다. 사랑으로 이깁니다. 사랑은 승리의 열쇠입니다. 어떤 것도, 어느 누구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해서 부르시고 선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님과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약하여 범죄 했을 때 사단 마귀가 하나님께 참소한다 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자녀의 사랑의 관계를 누구도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 변하지 않으시는 신실한 사랑입니다.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안전하고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의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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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논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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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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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6)
- 하나님을 아는 자는 사랑한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미움은 사단에게 속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아는 자는 사랑하면서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사랑하지 못하며 미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알고 거듭난 자, 은혜받은 자는 사랑의 중요성을 알고 사랑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것이 미워하는 것보다 더 쉽고 즐겁습니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고 하나님 자녀의 삶은 사랑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거짓말하는 것이고 거짓 된 신앙인격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의 사랑은 지식적으로만 아는 사랑이 아니고, 마음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행동하는 사랑, 실천하는 사랑, 행함과 진실함으로 실천합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한다고 하고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거짓 사랑이요 위선입니다. 잘 가르치고 설교를 잘한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위선이요 가짜입니다. 참된 사랑은 행동으로 보여주고 실천에 옮기는 사랑입니다. 리더는 사랑의 불을 붙여주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눈에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미움은 살인입니다. 사랑하며 사는 자는 하나님을 아는 자요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미움은 사망이요 사랑은 생명입니다. 사랑은 자신도 살고 남고 살리는 생명 사역입니다.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는 자요 미워하 는 자는 어둠에 있는 자입니다. 말세는 사랑이 식어진다 예수님은 말세의 여러 가지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말세는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예언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은 이루어집니다. 미움으로 가득차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말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이 없습니다. 냉정하고 마음이 따뜻하지 못합니다. 말세는 자 기를 사랑합니다. 사랑이 없는 삶은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말세는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이 식어지고, 세상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합니다. 이기주의 자신만 사랑할 때 삶이 삭막해지고 관계가 깨어집니다. 사랑이 식어지고 사람들이 사납고 악합니다. 정죄하고, 고소하고, 죽이는 일까지 행합니다. 사랑이 식어진 가정과 교회는 행복하지 못 합니다. 사랑이 부흥과 화목, 행복의 열쇠가 됩니다. 말세의 징조, 사랑이 식어진 시대에 첫 사랑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성령 받아 사랑의 열매 맺고 사랑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삶, 미움이 가득 찬 삶은 잘못된 영, 악령의 지배를 받는 삶입니다. 이단의 특징 중의 하나가 악하고, 사납고, 거짓되고, 미움이 가득하고, 사랑이 없습니다. 이단의 잘못된 점을 알고 빠져 나올려고 할 때 협박합니다. 만물의 마지막때, 말세에 정신 차리고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말세에 적극적으로 더욱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사랑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 열쇠입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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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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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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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콘서트[정연철 목사] 복된 사람의 비결(6)
- 하나님의 사람이 모인 곳에 복이 있다. 은혜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우리는 말합니다. 왜냐하면 가시적으로 은혜가 있는 사람이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의 삶을 가만히 살펴보면 모든 생활이 한결같이 복됩니다. 하나님께도 잘하지만 사람들에게도 잘합니다. 우리가 긴 신앙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한 일을 한 가지라도 한 것이 있다면 인생의 역경을 만났을 때 “하나님, 옛날에 제가 행한 그 일을 기억하셔서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원합니다. 이 역경 또한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라는 담대한 기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복된 이유는 이들에게는 이전에 신실하게 은혜로 다가오신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있어서 무슨 일을 만나든 신실하심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은혜 받은 사람들은 한결 같이 주님이 주신 비전을 품고 있기 때문에 역경이 닥쳐와도 세상 사람처럼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다시금 은혜의 자리로 돌아와 주님께 매달립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꿈을 가진 자는 아무리 어려움이 오더라도 넘어지거나 포기하지 않으며, 주님이 주신 꿈 때문에 때로는 밟히고 눌림을 당해도 절대 소중한 인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참으로 건강하고 그 교회는 부흥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복을 몰고 오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에 경북 의성에 있는 어떤 교회에 집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해는 너무 가물어서 마늘밭, 고추밭, 사과밭이 모두 타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의 많은 교인들이 과수원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가물어서 열매가 전부 시들시들해져 상품이 될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교회에 기도를 선포하셨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비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도 들으시고 비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번 한 주간을 비를 달라고 기도하는 기도주간으로 선포합니다.” 그리고 온 교인들이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도를 마치는 날 하나님께서 소낙비를 내려주셨는데 그 교회 교인들이 사는 그곳에만 내려 주신 것입니다. 교인들이 다른 곳을 가보니 땅에 먼지만 나고 어디에도 비가 내린 곳이 없더랍니다. 여기저기를 다 돌아보아도 자기 교인들의 과일 밭에만 비를 주셨지 다른 곳에는 한군데도 비를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교회 교인들의 기도소리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사 믿겨지지 않는 기적적인 복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엘리야가 비 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면 비가 오지 않았고, 비를 달라고 기도하면 비가 내렸습니다. 이것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는 사람이란 이처럼 복이 보장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은혜’란 절대적인 것입니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새 차라 할지라도 기름이 떨어지면 그 차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고철덩어리가 되는 것처럼 믿는 사람에게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게 부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능력 있는 사람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하나님의 은혜에 푹 젖어들어 있습니다. 약 100명의 자원하는 성도들과 함께 철야기도회를 40일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은혜로 인하여 육신이 피곤한 줄도 모릅니다. 어떤 때에는 두세 시간 밖에 자지 못해도 피곤한 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 친구 목사님이 저에게 이름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연철’이 아니라 ‘강철’이라고 말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이렇게 유신을 뛰어넘게 할 정도로 강력한 힘으로 작용합니다. 우리 장로님들은 저에게 “목사님 체력은 대관절 어떤 체력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우리 부목사님들이 저를 못 따라옵니다. 저는 심방을 하루에 많게는 25가정을 심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침 9시부터 저역 10시까지 심방을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를 인도합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남다르게 건강의 복을 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서 지게에 짐을 지고 다녔고 보릿단과 볏단을 날랐으며 산 속 깊이 들어가서 장작을 해왔습니다. 또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직접 노를 저어가며 투망으로 고기를 잡기도 했습니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이런 일들을 하면서 체력을 쌓아왔던 것 같습니다. 청년기에는 7년간 산에서 살면서 좋은 공기를 마시고 그 곳에서 밤이나 낮이나 찬송을 부르고 다녔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을 위해서 그런 시간들을 통해 건강한 체력을 만들어주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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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콘서트[정연철 목사] 복된 사람의 비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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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콘서트[정연철 목사]복된 사람의 비결(5)
- 하나님을 만나야 하늘 문이 열린다. 웃시야 왕은 16세에 왕이 되어 52년 동안이나 왕위를 지킨 행운아입니다. 역대하 26장을 보면 웃시야 왕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겸손과 순종으로 하나님을 섬김으로 국력을 든든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라도 상당히 부강해졌습니다. 그러나 웃시야 왕은 말년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채 온갖 교만과 불순종으로 가득 찬 인생으로 전락했습니다. 제사장만이 분향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다 나병에 걸려 비참하게 말년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부름받은 이사야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깨닫게 됐습니다. 첫 번째로 깨달은 것은 우선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부정부패로 썩어져 가는 사회를 돌아보면 살 소망이 없어집니다. 진실 되고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어려움에 처하고, 힘 있고 돈 많은 부정한 자들이 큰 소리를 치는 시대가 돼 가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바라보며 “하나님, 어찌하여 이런 불의 한 자들을 이대로 두십니까?”라는 한탄의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깨닫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을 보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웃시야의 죽음을 통하여 이사야는 교만한 자의 말로가 어떠한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십니다. 한때 존귀한 위치에서 크게 쓰임 받았어도 교만해지면 하나님이 버리신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요 섭리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인생들은 시편 49편 20절의 말씀대로 “존귀하나 멸망하는 짐승”과도 같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의 죽음으로 인하여 이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52년 장기 집권하던 왕이지만 하나님께 버림받자 일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목도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가 분명히 살아 있음을 믿고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공의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정직하고 신실하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이 땅을 공의로 다스리시며 치료하실 것을 깊이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두 번째로 깨달은 것은 인생의 허무함입니다. 52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리며 굳건한 왕위를 지켰던 웃시야 왕이지만 하나님이 버리시자 순식간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이사야는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 삶을 돌아보면서 이러한 ‘인생의 허무’를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을 한 발짝 귀에서 잠시 돌아보면, 인간의 삶이란 것이 사실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길어야 80년 남짓 살다 가는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런 허무한 인생의 참된 가치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정립돼야만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정립됐을 때에는 존경받는 인생으로 평가받게 되지만,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없이 살다 간 인생은 허무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이 중요한 인생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초대 왕 사울이 자만과 죄악 속에서 무너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윗이 침상을 눈물로 적시며 기도한 내용은 하나님의 성령을 거두어가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기도한 이유는 그가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도 제법 나이를 먹어가면서 인생이 참으로 보잘것없다는 것을 더 깊이 절간하고 있습니다. 이 긴 목회의 여정 속에서 참으로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았다면 여러 어려운 고비 때마다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느 날 저는 제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20년 동안 한 교회에서만 목회를 하다 보니 그야말로 저는 탈진 상태에 빠진 적도 있습니다. 부산의 모 교회에서 교사 부흥회를 인도한 적이 있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부흥회를 마치고 집에 갈 때는 엉금엉금 기어갈 정도로 영육이 메마른 상태를 지나온 적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하나님께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메마른 풀과 같은 저의 영혼과 육신에 힘을 주시옵소서. 저의 영혼과 육신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셔서 회복시켜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새 힘을 달라고 주님께 매달리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그 어는 누구라도 우리 인생을 쓸데없이 버려진 메마른 풀과도 같은 존재로 전락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쓸데없다 하시고 버리시면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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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콘서트[정연철 목사]복된 사람의 비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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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철 목사의 행복 콘서트>목회자의 리더십
- 지도자는 사각지대를 본다 교회가 부흥하려고 한다면 지도자는 사각지대를 보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지도자는 무언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항상 느낍니다. 지도자들을 보면서 “역시 저분은 지도자답구나. 그러니 그 위치에서 그렇게 존경을 받고 복을 받고 사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도자는 보통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보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적인 표현을 빌자면 지도자는 그물을 잘 깁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5장에 보면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는데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베드로는 고기 잡는 데 전문가였습니다. 고기가 어디서 놀고, 어디서 새끼를 낳고, 가을이 도면 어디로 가는지 잘 아는 그가 그물을 던졌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실망하지 않고 그물을 육지에다 쫙 펴놓고 점검을 했습니다. 분명히 고기가 들어갔을 텐데, 그 고기들이 어디로 빠져나갔는지를 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그물을 하나하나 손질하고 있을 때 주님이 오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쓰십니다. 아무리 실수가 많고 허물이 많아도 우리 주님이 쓰시는 사람은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며 단순한 사람들입니다. 논리적이고, 지적이고,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님이 잘 사용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 설득시켜서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겠습니까? 저 역시 논리적이고 따지길 좋아하는 사람과는 관계가 멀어집니다. 내가 그 사람과 시간을 가지면 나한테는 그만큼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계획을 세워 놓고, 자기 눈으로만 보고 자기 색깔로만 보는 사람은 아무리 설득을 시켜 보려고 해도 그것이 쇠귀에 경 읽기처럼 힘이 듭니다. 꼭 무슨 이데올로기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 같습니다. 그런 사람의 특징은 철저히 자기 생각에 꿰어 맞추어 모든 사안을 해석하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오늘날의 교회는 울타리를 좀 낮출 필요가 있습니다. 울타리를 낮추고 누구든지 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퇼 때 교회가 부흥합니다. 울타리가 낮은 교회의 한 가지 특징은 바로 소그룹이 활성화 되어있는 교회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교회들을 분석해보면, 대부분 소그룹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서울의 사랑의 교회나 온누리교회, 여의도 순복음교회, 안산 동산교회, 부산 호산나교회 같은 교회들을 탐방해 본 결과, 이 교회들의 한결같은 특징이 바로 소그룹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소그룹들이 튼튼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소그룹은 구역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귀한 예배입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합심으로 기도할 뿐만 아니라 성도들 간의 교제와 나눔이 이루어지며, 나아가 그들의 삶의 형편을 매주 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정보망의 역할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그룹 모임이 활성화 될 때, 자연적으로 성도들이 신뢰와 사랑으로 성국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구역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눠 놓았습니다. 밤에 모이는 구역과 낮에 모이는 구역입니다. 낮에는 직장에 나가서 모일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을 위해 밤에 모일 수 있도록 몇 구역을 따로 조직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소그룹을 통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의 중요성을 가르칩니다. 소그룹은 단순히 친교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다 역동적으로 섬기도록 하는 살아 있는 세포와 같은 역할을 해야만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 소그룹을 통하여 어떻게 하든지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는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야 신앙이 자라고 세상과 차별화가 이루어짐으로써 신앙생활에 활력이 생기게 됩니다. 교인들을 자꾸 교회로 끌어들이고, 복음으로 끌어들여야만 성도들이 세상과 구별된 삶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을 자유분방하게 놔두면 저들은 세상에 한없이 휩쓸려 가버리고 만다는 것을 저는 목회를 하면서 수없이 경험하였습니다. 이것을 막는 것이 바로 소그룹 모임을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의 주일학교 부장이나 구역장들, 소그룹을 맡고 있는 순장들은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책임을 감당하고 있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물 한 코가 뚫리면 그 뚫린 곳으로 자꾸 고기들이 빠져나갑니다. 교인들이 한둘 빠져나가는 것을 구역장들이 방관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운동을 하다 보면 실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구멍이라고 놀리고 그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공격을 퍼붓습니다. 그 구멍 난 사람을 빨리 교체하지 않으면 그곳이 공격의 타깃이 됩니다. 그러면 경기에 지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소그룹 모임의 구멍이 무엇인지 사각지대가 무엇인지를 잘 간파하고 빨리 그 약점을 메워 나가는 것이 바로 지도자의 역할이요 목회자의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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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철 목사의 행복 콘서트>목회자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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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철 목사의 행복콘서트>비전의 사람(8)
- 꿈을 가진 사람은 최선을 다한다(2) <계속> 3년간 신학교에서 공부 할 때 다른 사람들은 함게 여러 곳을 다니기도 했지만 저는 제일 뒤에 앉았다가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회로 돌아오느라 바빴습니다. 동기 목사님들이 요즘은 나에게 “정 목사, 그때 알아봤어. 그때 그렇게 기도하더니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게 당연하지.”라고 합니다. 대가를 지불해야 정당한 열매가 따라온다는 원리를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이상을 꿈꿔도 현실로 열매 맺을 수 없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님이 내게 맡겨주신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 역시 필요합니다. 주의 일을 할 때 억지로 하지 말고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심방도 기쁨으로 하고, 봉사도 기쁨으로 하고, 찬송을 기쁜 마음으로 부르면 그것이 복이 되지만 불평하면서 하는 사람들은 죽도록 일해도 복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을 통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불평하는 동안 하나님의 복을 쏟아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왕 할 것이면 기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즐거워야 어떤 일도 힘들지 않고 피곤한 줄도 모르는 법입니다. 교회 일도 반드시 기쁨으로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가대도 준비하는 것만큼 주일예배 때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영적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성가대 때문에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을 정도로 멋있는 성가대가 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운전하는 것도 기쁨으로 하고, 교회를 관리하는 분도 기쁨으로 하고, 부엌에서 일하는 것도 기쁨으로 하면 자신이 복을 받습니다. 경산 진양에 어느 교회가 있습니다. 한 15년 전에 그곳에 집회를 갔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이 어느 여 집사님을 소개해 주셨는데 “이 집사님이 우리 교회에서 십일조를 한 달에 80만원합니다.”라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흥회를 할 때마다 강사의 수발은 그분이 다 맡아서 하신다고 합니다. 속옷, 양말, 와이셔츠를 두 벌씩 사 가지고 와서 세탁기에 넣고 새로 빤 후 다리미로 다려서 강사의 숙소에 가져다 놓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그 분이 어떻게 복을 받게 되었는지 들려주셨습니다. 목사님이 그 교회에 부임해 갔는데 그때는 화장실이 재래식 화장실이었답니다. 그런데 토요일만 되면 화장실이 깨끗이 청소가 되어 있더랍니다. 알고보니 한 12시쯤 되니 그 여집사님이 물을 지고 와서 청소를 하시더랍니다. 찬송을 불러가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교회를 기쁨으로 섬기니까 하나님이 그분에게 그렇게 복을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주의 일은 기쁘게 해야 하고 그래야 힘이 들지 않는다는 원리를 배웠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분명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 다 하면 꿈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시간을 쪼개야 하고 하나님께 시간의 십일조도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존 에프 케네디는 1961년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연설을 했습니다. “먼 훗날 역사의 심판대 앞에서 당신은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당신은 용감했습니까? 당신은 성실했습니까? 당신은 헌신했습니까?” 이 연설문을 기억하며 저는 과연 어떻게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늘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은 해야겠다는 다짐을 항상 되새기곤 합니다. 카네기가 자신의 후계자를 지명할 때 사람들은 매우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예상했던 인물과 너무나 동떨어진 뜻밖의 인물을 후계자로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 후계자는 바로 ‘쉬브’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쉬브는 그 회사에 입사할 때 실력이 모자라서 정식 직원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청소를 하는 급사로 들어온 사람이었습니다. 청소부로 들어와서 아침에는 남보다 일찍 출근하고, 저녁에는 모든 사람이 다 퇴근 한 후에 퇴근을 하면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열심히 헌신적으로 충성했습니다. 카네기가 일 년간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된 사람이다 생각되어 정식으로 자기의 비서로 채용했습니다. 비서로 채용된 그는 어디에 갈 때마다 손에 메모지와 연필을 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회의를 할 때마다 일일이 메모해서 회장에게 적어주었습니다. 어느 날 밤 늦게까지 카네기 회장이 여러 가지 회사 경영을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되었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그때까지 그 비서가 퇴근하지 않고 앉아 있더랍니다. 그래서 카네기가 쉬브에게 왜 아직도 가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카네기의 퇴근을 기다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카네기는 후계자를 세울 때 실력이 부족해서 정식 직원으로 입사하지 못했던 이 사람을 후계자로 세운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것과 성공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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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철 목사의 행복콘서트>비전의 사람(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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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철 목사의 행복콘서트>비전의 사람(7)
- 꿈을 가진 사람은 마음을 새롭게 한다. 꿈꾸는 사람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롬12:2)하는 자입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과 교회는 분명한 구분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보고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역시 교인이 다르구나. 역시 교회가 다르구나.”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바라보면서 충격을 느끼도록 교회가 교회다운 분명한 정체성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함부로 교회를 향하여 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교회를 두려워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존경했습니다. “그분이 교회 나간단다.” 또는 “나 아무개 장로요.” 그러면 그 사람을 믿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믿어주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는 성전 건축을 네 번 했습니다. 교회를 세 개 짓고, 교육관을 하나 지어서 건물을 네 개 지었습니다. 교회를 건축하는데 모 건설회사 부회장이 조건을 제시하기를 , 교회를 다 짓고 나서 돈을 받겠다고 하기에 교회 건축을 시작했다가 아주 혼이 났습니다. 제일 처음 교회를 지을 때 부산의 모 교회 집사님이 지으면서 모르는 사람이 공사를 해야 목사님이 마음대로 얘기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공사를 하면 이것도 고치고 저것도 하고, 이것은 왜 이렇게 했는지 물어볼 수 있을 텐데 아는 사람이 하다 보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안다는 것 때문에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지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교회를 네 개나 지으며 깨달은 것입니다. 교회는 사랑의 대상이지 믿을 대상은 못됩니다. 교인들이 그렇습니다. 교인들은 전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믿을 이는 오직 예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한국 교회의 현황을 보면 교회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모릅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 ‘신부’에게는 고개를 숙이고, ‘목사’에게도 잘 대접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심할 경우에는 “너도 목사냐?” 그런답니다. 저는 그 소리를 듣고 너무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가슴을 치고 통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는 사람은 이 세상을 본받으면 안 됩니다. 세상과 교회는 뭔가 구분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하여 충격을 줄 수 있는 교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될 때 하나님 나라가 왕성해 진다고 믿습니다. 세상과 다르게 살려면 때론 외톨이처럼 살아야 하기에 외롭습니다. 목회를 하다 보니 외롭습니다. 노회에서도 외롭고 연합회에서도 외롭습니다. 친구가 없습니다. 목회를 하나 보니 친구들과 만남을 거절해야 합니다. 오라고 하면 안 나갑니다. 그러면 하나 같이 “저 혼자 목회하냐, 저 혼자 거룩하냐?”고 공격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믿음 생활을 바로 하려고 하면 외롭고 핍박을 받습니다. 시련이 있습니다. 때로는 왕따를 당하니 고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궁극에는 유익인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가려면 눈물 없이는 갈 수 없습니다. 피 흘리지 않고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중에는 다 은혜가 되고 복이 됩니다. 하나님께 제물이 되고, 우리의 꿈을 이루려면 외로움을 감내하며 굳은 결심으로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저는 항상 다짐합니다. 변화를 받아야 하며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을 구분해야 합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최선을 다한다. 꿈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분량에 맞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12:3)라고 사도 바울은 말하였습니다. 저는 시골 교회에서 한 가정을 데리고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총신신대원을 다니면서 차를 다섯 번 갈아타고, 20리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도 5년 동안 새벽기도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사례비는 3만 5천원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저의 분량에 맞게 맡겨주신 목양지라고 믿고 감사하며 죽도록 충성하니 양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칼럼의 완본은 gncnews.co.kr 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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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철 목사의 행복콘서트>비전의 사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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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철 목사의 행복 콘서트>비전의 사람 (6)
- 사람들은 거룩한 예배에 대해 많이 가르칩니다. 그런데 예배 중에 손뼉을 치지 않고 조용히 소곤소곤 기도하는 것이 거룩한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사람은 외모를 보나 나는 그의 중심을 보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고 할 때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아들들을 불러 놓고 그 앞을 지나가게 했습니다. 다윗만 빼고 모든 아들을 다 보여주었지만 사무엘은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 선지자가 아버지 이새에게 “너의 아들 가운데 또 다른 아들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막내가 있는데 저 목장에서 양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빨리 올라오라 하라.” 다윗이 갑자기 부르심을 받고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머리에는 먼지가 뿌옇게 앉았습니다. 목동으로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옷에서는 짐승들의 배설물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외모를 보지 말아라. 나는 중심을 본다. 다윗에게 기르믈 부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외적으로 옷 잘 입는 것을 보지 않고 마음의 태도와 중심을 보는 분이심을 성경은 증언합니다. 중심으로 하나님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의 제물이 될 때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으시며 그런 예배자가 성공적인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 예배를 열납하십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 초청되어 말씀을 전하는데 성령이 이방 사람인 고넬료의 집에 임했습니다.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는 첫 사건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때 복음전파에도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에 서울의 모 교회에서 대형 버스를 타고 소록도를 갔습니다. 소록도 교회당에서는 나병 환자들만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주먹도 없고, 귀도 없고, 코도 없는 사람들이 “인애하신 구세주여..., 기쁘다 구주오셨네...”를 부르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갑자기 신사들이 들어오자 나병 환자들이 “병신들 왔다!”라고 소리쳤습니다. 서울에서 오신 장로님, 권사님 등 쟁쟁한 분들이 들어가니 병신들이 왔다고 한 것입니다. 얼마나 기분이 상했겠습니까?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못 들은 체하고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눈썹도 뭉개지고, 코도 뭉개졌는데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송을 기뻐서 즐겁게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장로님들이 코가 납작해졌습니다. “맞아. 저분들이 환자가 아니라 우리들이 환자야.”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무엇이 거룩인지 알아야 합니다. 어떤 예배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예배를 받으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제물은 산 것으로 드려야 하며 그 산 제물이 바로 우리의 몸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몸을 드린다는 것은 시간을 바친다는 뜻입니다. 목사님이 교회 일 좀 하라고 하면 “나는 못해요.”하고, 청소 좀 하라고 하면 “나는 바빠서 못해요. 교회 재정으로 청소부 쓰면 되잖아요.”라고 말하는 성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저는 토요일이 되면 모든 부교역자들에게 교회 청소를 시킵니다. 부교역자들에게 목회자로서 실천해야 하는 삶의 목표와 지침들을 확실하게 가르칩니다. 교인들은 일주일간 직장에서 수고하고 피곤한데 교역자들이 교회 청소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교회 청소를 한 후에 교역자 회의를 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 앞에 돈만 드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돈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함께 드려지는 것이 때문입니다. 성도 각자의 수고와 땀과 눈물이 교회의 구석구석에 배어 있어야 ‘이 교회가 우리 교회구나.’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을 드리는 것이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땀을 흐리고 수고하는 것이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돈으로 때우거나 남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먼저 솔선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이 많은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저는 장로님들에게 “장로님들이 먼저 솔선수범하세요. 종이를 주우시면서 같이 줍자고 하세요.”라고 권면합니다. 어느 날 선임 장로님이 그 무더운 여름에 땀을 흘려가면서 제 차를 세차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장로님, 체통이 있지요. 누가 보면 뭐라고 합니까? 빨리 치우고 들어가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장로님은 “체통이 뭐예요. 장로가 해야 될 일이 뭔데요. 목사님이 바빠서 세차할 시간도 없는데 제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하셨습니다. 선임 장로님이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니 그 다음 장로님들도 자연적으로 따라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몸을 드려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제물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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