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9-27(화)
 

   지금은 폐업했지만 부산시 동구 좌천동 가구 1번지 거리에 있었던 ‘영진칠기가구점’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그곳에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지만 나전칠기(螺鈿漆器) 전문 가구점인 영진칠기가구점은 양질의 제품을 공급했던 신뢰받는 업체였고, 영진칠기 가구점은 부산은 물론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날 정도로 유명했고, 1970년대 아파트 붐이 일면서 크게 성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진칠기사의 창업주 안세제(安世濟, 1927-2021) 대표가 기독교 신자였고 그가 얻은 상당한 재물을 교회에 기부하거나 장학재단을 설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경남 진주 봉래동에서 7남매 중 차남으로 출생한 안세제 집사는 1970년대 초 영진칠기 가구점을 열었는데, 그는 특별한 경영원칙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직과 신뢰, 그리고 고객에게 감동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점은 사실 특별한 것이 아니라 기본에 충실한 것이었고 따지고 보면 기독교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가 사업을 시작했던 당시만 하더라도 아침에 첫 손님이 왔다가 그냥 가면 오늘 재수가 없다며 뒤에서 욕을 하거나 소금을 뿌리던 그런 시대였다. 그러나 안세제 집사는 첫 손님이 와서 가구점을 둘러보고 그냥 나가도 타올을 곱게 싸서 선물했다고 한다. 물건도 사지 않고 그냥 가게 되어 미안해하는 손님에게 “우리 가게를 찾아주신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인사한 것이다. 다른 가게는 재수 없는 첫 손님이라 하였으나 안세제 사장은 잠재적 고객으로 예우하고 대우해 준 것이다. 그는 가구를 판매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구매자가 원할 때는 언제든 가구를 수선해 주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대기업도 판매 후 관리, 곧 AS 개념이 없을 때였다. 그러나 그는 AS담당 직원을 채용해 부산 전역을 순회하면서 무료로 훼손된 가구를 수리해 주었다고 한다. 물론 제품을 판매하기 전에도 가구 상태를 사전에 철저히 점검하고 말끔히 청소하여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최상의 칠기 가구를 전시했다고 한다. 이런 정신으로 사업을 했으니 신뢰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사업이 번창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런 정신은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것이었다.

 

  안세제 사장은 본래 부산진교회 출석하던 청년이었다. 그러나 해방이후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고려신학교 신앙정신을 따라 70여명의 성도들이 부산진교회를 나와 성산교회를 설립할 때 설립 교인으로 참여한 이래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성산교회 집사로 여러 분야에서 활동했고, 물질적으로도 교회를 위해 헌신하였다. 특히 2011년 10월에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해운대의 110여 평의 상가와 덕천동의 400여 평의 부동산을 성산교회에 헌납하고 장학사업을 시작하게 했다. 기증받은 부동산(현재 약100억원 상당)의 임대료만 연 1억 원이 넘는데 매년 100여명의 교인 자녀 및 지역 사회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불하고 있다. 이 때 안세제 집사는 “지금까지 사업을 하면서 여러 성도들과 지역사회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돌려드리는 것이 당연하다”며 도리어 성도들에게 감사했고, 자녀들도 이버지의 결정을 존중하고 순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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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안세제 집사가 2011년 10월 장학기금을 부산의 성산교회에 기증할 때 최우성담임목사(앞줄 우 2번째)와 당회원들. 중앙의 꽃을 든 이가 안세제 집사. 앞줄 우측은 차남 안길상 장로

 

  안세제 집사는 부동산의 교회 기증과는 별도로 2013년 12월에는 영진장학재단을 설립하여 매년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안세제 집사는 이처럼 자신이 땀 흘려 모은 사재를 털어 교회와 지역 사회를 위해 장학사업을 전개했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인색했고, 일생동안 절약하며 검소하게 살았다. 부인 임성애 권사에게는 명품 가방 한번 사준 적이 없었고 자식들에게는 꼭 필요한 용돈만 주고 그것도 일일이 사용처를 기록하게 했다고 한다. 자신은 소박하게 살면서 남에게 한없이 관대한 삶을 사신 것이다. 신앙인으로 선한 모범을 보인 안세제 집사는 2021년 12월 28일 95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정관의 백운공원 묘지에 묻혔다. 그의 3남 2녀, 곧 5남매는 다 믿음으로 성장하여 각기 교회에서 장로로 집사로 혹은 권사로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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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믿음으로 산 사람들 - 영진칠기사와 안세제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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