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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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수룡 장로] 기 쁨
    노년이 되면 크게 웃을 일이 없는 것이 정상이다. 그래도 부부가 같이 살아가면 그런대로 웃을 일을 만들고 웃게 되는 경우가 있으나 노후에 혼자되면 그렇게 기뻐할 일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즐거움은 쾌의 감정으로 낙이란 감각적 차원의 쾌감이지만 기쁨은 즐거움이 동반된 쾌감으로 다분히 영적인 요소가 짙다. 즐거움은 쉽게 사라지지만 기쁨은 오래 지속된다. 오래전에 필자는 영남사람으로 여수에 사는 호남인을 전도하여 현재 집사에 이르게 된 분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만큼 기쁨 속에서 친밀하게 잘 지내고 있다. 서로의 삶이 일그러진 오이지의 모습이 아니라 확 펴진 보름달처럼 늘 즐겁고 웃는 모습을 유지하며 살려고 노력한다. 오랜 교분 동안 통화가 되면 상대방의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좋고 몸이 아프다가도 저절로 회복될 정도로 서로가 쾌유의 은총을 누리기도 한다. 이것은 예수 안에서 찐 사랑의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기쁨이 최고조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좋은 날이거나 보고 싶으면 직접 상대방의 가정을 방문하여 며칠 쉬기도 하고 중간 위치의 만나기 쉬운 곳을 정하여 음식을 나누거나 차를 마시면서 기쁨을 나눈다. 만나기만 하면 누가 보든 상관 않고 부부가 교차로 안고 춤을 추며 뛰고 난리다. 처음 계획에는 2박 3일간 동해안 여행을 떠났다가 4박 5일로 연장하여 여행하기도 했다. 서해안과 남해안 여행도 2박 3일의 여행을 떠나 즐거움을 가득 안고 돌아와 기쁨이 넘치는 생활로 행복하게 산다. 이것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우리만이 누리는 최고의 기쁨이다. 게다가 마음을 담아 택배로 유기농 열매를 호남에서 보내기도 하고 철에 맞는 열매를 영남에서 사랑을 담아 보낼 때가 있다. 여수 땅을 방문할 계획이면 벌써 며칠 전에 낚시하여 맛있는 고기를 냉동고에 준비해 놓기도 한다. 그곳에 당도하면 낚시할 도구가 준비되어 오랜 시간 동안 낚시터에서 세월을 낚기도 한다. 좋은 자연환경 속에서 좋은 사람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는 그 기쁨은 그 누구도 맛보지 않고는 모른다. 오직 사랑의 끈으로 연결된 정 때문에 즐거움이 꽉 찬 쾌감이 서로에게 최고의 기쁨을 생산하게 만든다. 주님으로 인하여 만남이 성사되었고 그 사귐이 일회성이 아닌 10여 년간 지속 되어 상대방을 서로 신뢰하고 좋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챙겨주고 싶은 관계가 된 것은 최고의 기쁨이고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서로가 항상 좋은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나의 것을 아끼지 않고 마음을 다해 베푼다. 사진만 보여줘도 행복한 결과가 얻어진다는 데레사 효과(Theresa Effect)처럼 가정에서 일어나는 좋은 일이나 생활에서 생기는 아름다운 일들을 서로 소개하고 보여주어 진심으로 축하하며 기쁨에 찬 행복감을 맛보기도 한다. 믿음은 나 중심에서 주님 중심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주님 중심은 주님을 잘 섬긴다는 것이다. 주님 섬김은 결국 형제를 정성으로 잘 섬기는 것이다. 그 열매는 전도한 사람과 전도된 사람을 한 형제로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고 행복하게 해 주신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우리 주님의 훈기가 가득한 남향집에서 해마다 보내주는 맛있는 여수 갓김치의 냄새를 마음껏 누리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기쁨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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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7
  • [오성한 목사] 정체성(1)
    우리의 영은 점점 더 새로워져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거하실 만큼 완전하다. 믿는 자의 영은 살았다. 완전한 영으로 예수와 함께 부활하여 창조 되었다. 우리의 영은 점점 성장하여 온전한 곳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온전한 영으로 사랑하는 예수님을 모시고 있다. 우리의 영은 죄가 없이 온전하다. 능력의 삶은 출발이 중요하다. 바른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은 언제나 담대하게 해 준다. 거듭난 사람이 가장 먼저 가져야 할 일은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영이다. 영이 혼을 가지고 육체 가운데 산다. 팔 다리가 없어도 온전한 사람인 것은 육이 사람이 아님을 증명한다. 사람이 가진 혼은 훈련되는 대로 형성된다. 어릴 때 늑대 소년 이야기가 있었다. 늑대에게 양육 받은 두 아이는 늑대의 모습으로 산다. 기록에 보니 1년 반 정도 살다가 죽었단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죽었단다. 침대를 갖다 놓으면 침대 밑에 구석에 들어간다. 음식을 먹는 교육이 안 된다. 그래도 사람이다. 그런데 혼이 어떻게 훈련 되었나? 사람일지라도 무슨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혼이 형성된다. 한국말을 할 수 있는 것은 한국말을 어릴 때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미국 아이가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영어를 배웠기 때문이다. 혼은 훈련되는 대로형성 된다. 혼이 영적 훈련을 받으면 영적인 사람이 된다. 혼이 형성되면 형성 된 대로 행하며 산다. 그런데 진짜 나는 영이다. 영이 혼을 가지고 있고 영과 혼이 육을 입고 있다. 훈련되어 나타나는 혼이 내가 아니다. 진짜 나는 영이다. 진짜 나를 하나님은 온전하게 하셨다. 온전한 나의 영에 하나님이 계신다. 영은 육을 입고 있다. 그래서 육은 하나님의 성전이다. 혼에게 진짜 나를 인식 시켜야 한다. 혼이 영적인 생각으로 살게 되면 육은 따라 가게 되어 있다. "나는 영이다." 우리의 영은 온전하다. 거듭난 영은 흠이 없다. 할렐루야! 흠도 없고 점도 없다. 당신의 영은 성령님과 하나가 되었다. 능력이 넘쳐난다. 혼이 훈련이 안되어 있기 때문에 온전한 능력을 모를 뿐이다. 영적인 생각을 하라는 말은 혼을 훈련하라는 말이다. 마음을 훈련하라는 말이다. 혼적인 훈련을 하라는 것이다. 거듭난 나를 바르게 아는 것이 정체성이다. 나는 영이다. 영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할 때 영으로 대한다. 사실은 안 보이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는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같은 공간에 공존하는 세계다. 영혼육도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이다. 같다고 보아도 된다. 그러면서도 분리된다. 이것이 영적의 신비다. 영육으로 나누어 생각하면 혼은 육에 속하는 부분이다. 영이 진짜 우리이기 때문에 육에 진짜인 나를 인지시키고 말씀과 기도로 훈련 시켜야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우리의 육을 보시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을 보신다. 영이 진짜나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고후5:21). 육을 고치는 것은 영인 나를 인지시키는 것이다. 나의 진짜는 영이 나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다.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6-17). 내가 성령의 사람이라는 인식이 신앙생활의 첫 단추다. 당신 안에 잠자는 성령의 능력을 깨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당신이 성령의 사람이라는 100%의 믿음이 없다면 믿음으로 행할 수 없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육은 무익하다"는 말은 우리의 육체, 고깃덩어리가 무익하다는 말이 아니다. 육적인 생각이 무익하다는 말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다. 주님의 말이 생명이다. 주님의 말이 영이고 생명이다. 그러기에 주님의 말을 생각하는 것이 영적인 생각이다. 영인 주님의 말이 나를 살린다. 생명의 삶을 살게 한다. 영의 생각이 믿음이다.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만이 자신이 성령의 사람임을 확신하게 된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롬8:5). 주님의 말이 아닌 다른 생각은 육의 생각이다. 육은 무익하다. 이 말을 잘 못 이해하면 육신을 자학하게 된다. 중세시대에는 이러한 현상이 강했다. 잘 믿으려면 수도를 해야 하는 것인 줄 착각했다. 먹는 것 참고, 잠도 참고, 스스로의 정욕을 죽이기 위해 육신을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수도사들은 자신의 육체를 학대했다. 육신의 생각을 하면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다(롬8:7). 육신적인 사람과 자기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은 복음을 받을 때 거부반응이 온다.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며, 할 수 있게 된 것은 은혜다. 한없이 주신 은혜다. 감사 할 일이다.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고집 센 사람일지라도 주님 말씀하시면 "주님, 그렇습니까? 아멘입니다."라고 한다. 성경을 읽으면서 복음의 문이 열릴 때마다 감격하는 것은 정말 감사할 일이다.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가르침을 받고 있는 성령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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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7
  • [신재철 목사] 엄마 앞에서는 전도사 하지 마
    “미안해요. 우리 교회는 더 사역자 두기가 어려워서요.” 낮, 밤 가리지 않고 일하며 버틴 휴학 생활. 학업 중에도 간간이 이어오던 아르바이트.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것이 있다. 청소년부 교사로, 청년부 찬양인도자로, 모든 예배 참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았다. 과한 노동으로 때때로 병이 나 예배 참석을 못하면 이상한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신학생이 믿음이 없어서 일하다가 예배도 빠지네.” 교회에서 장학금을 받는다는 친구의 이야기가 왜 이리 속상하게 들리는지. 하지만 지금 있는 공동체가 너무 좋아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고 싶어서 그렇게 살아갔다. 조금 일렀지만, 일을 그만하고 사역자로 훈련받고 싶은 마음에 모든 아르바이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사역지가 필요했고 그곳이 지금 있는 교회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과 교회 형편이 일치하지 못했고 나는 사역지를 찾아 교회를 떠나게 된다. 그렇게 타 교단의 작은 교회. 경기도 외각에 위치한 사역자 두기가 어려운 교회를 섬기는 교육전도사가 된 것이다. 스물두 살의 전도사는 괴롭다. 매주 3시간 버스를 갈아타며 기타 들고, 가방 메고 교회 가는 길이 쉽지 않다. 들고 다닐 손이 없어 대충 구겨 넣은 셔츠도 참 볼품없다. 평일에는 학교, 주말에는 교회. 체력이 충전될 시간이 없다. 고생과 수고는 더 커졌지만, 주머니는 더 가벼워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들이 나를 전도사로 부르는 것이다. ‘척’ 삶이 고단하고 무거운데 괜찮은 ‘척’ 하기가 어렵다. 하나님의 뜻을 다 아는 ‘척’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어렵다. 주어진 과업을 잘 진행하는 ‘척’ 능력자 코스프레가 어렵다. 여유로운 공강 시간, 캠퍼스를 걷는다. 마음도 그런데 비까지 온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공중전화 부스에 몸을 밀어 넣는다. 엄마는 내게 여전히 밝으셨고 일상을 궁금해하셨다. 내 안부, 내 건강이 최고인 분이다. 갑자기 왜 그랬을까? 통화하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팔자타령’을 하고 싶었을까? “엄마, 나 사실 너무 힘들어. 몸도 아프고 돈도 없고 교회에서 괜찮은 ‘척’ 어른스러운 ‘척’ 하기도 너무 싫어. 근데 엄마가 신학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런 거 말하면 속상해할까 봐, 교회 안 다닐까 봐 말도 못 했어.” 브레이크 고장 난 자동차가 되었다. 폭풍처럼 눈물이 쏟아진다. 정리되지도, 뒤를 생각하지도 않는 말들이 쏟아지는데 어머니는 말씀이 없으시다. 아들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나에게 실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지금은 어머니 배려할 여력이 없다. 얼마간 내 감정은 필터링 없이 분출되었다. 시간이 지나 말은 없어지고 흐느낌만 남는다. “아들, 엄마 앞에서도 전도사 할 거야? 그냥 아들이잖아. 이렇게 말하고 울어. 그래도 괜찮아.” 울보 전도사는 그 뒤에도 얼마간 수화기를 붙잡고 눈물을 훔친다. 엄마가 있어서 참 좋다. 성도가 아닌 엄마라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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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7
  • [조희완 목사] 선교의 사명 (마28:18-20)
    여러분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기억하십니까?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경, 서울 강남의 고급 백화점으로 꼽히던 삼풍백화점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붕괴사고로 무려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하였고, 1,000여명의 중상자들이 발생하는 대참사였습니다. 그 사고는 우리나라가 해방된 이후에 단일 참사로는 최대 사망자수를 기록한 끔직한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사고의 책임을 물어서 그 백화점 회장(이준)과 사장(이현상)을 구속하였습니다. 회장과 사장은 아버지와 아들사이입니다. 그 사고가 있은 뒤 아버지와 아들은 감옥에서 복역 기간을 다 채우고 출소(出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고가 그 아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그는 교도소에서 복음을 들었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출소한 후 무엇으로 자신의 죄를 속죄할까 기도하다가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50세에 선교사 훈련을 받고 지금은 가난한 나라 몽골에서 열심히 선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복음의 일꾼(worker)으로 부르시는 과정을 살펴보면 참 다양하고 기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순탄하게 부르셔서 별 어려움 없이 선교의 일꾼으로 쓰시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온갖 역경과 시련과 연단의 과정을 거친 후에 부르셔서 선교의 일꾼으로 쓰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지금은 희어져 추수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복음 전할 일꾼을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방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선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직접 가는 선교사가 되든지 아니면 있는 곳에서 보내는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선교는 예수님의 절대명령입니다.(마28:18-20) 둘째로, 선교는 신앙생활의 필수과목입니다.(고전9:16-18) 셋째로, 선교는 하나님께 빚을 갚는 것입니다.(롬1:14-15)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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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7
  • [이정희 목사] 기독교 용어 고찰 23: 한 주간 요일 명칭의 유래
    I. 서언(序言) 연말연시의 때를 맞이하여 일 년 12달의 태양력과 월별 명칭에 대한 유래를 지난 호까지 논하여 보았다. 오늘의 본 호에서는 한 주간의 요일의 명칭은 어디에서 유래되었으며, 그 뜻은 무엇인지를 논하고자 한다. II. 7요일의 유래 1. 유래: 한 주간의 7요일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반영된 유대인의 전통에서 온 것이다. 이는 창세기 1장의 내용에서 하나님이 6일간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정한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모세에 의해 유대 민족의 월력이 확립될 때 7요일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이때는 요일별 명칭은 없었고, 성경에 있는 대로 첫째 날, 둘째 날 등으로 구분해왔으며,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통해서 전해져 왔다. 현대와 같이 각 요일의 이름이 태양계 안에 있는 별들의 이름으로 된 것은 A.D 321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였고, 정식 채택은 로마제국이 전 유럽을 통치하던 서기325년 니케아종교회의에서이다. 2. 7요일의 명칭의 유래: 7요일의 영어식 표기는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와 북유럽의 게르만 민족의 신화와 신앙에서 유래되었다. 주로 천체(天體)의 이름과 민족 신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그 의미는 항성인 태양과 행성인 달과 여러 별들의 이름을 중심으로 정해졌다. 1)일요일(Sunday): 태양의 날로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태양을 신으로 여겼고, 이를 Sol이라 했다. 또한 이를 섬기는 날을 라틴어로 dies solis라고 했고, 이를 영어로 day of son으로 했다가 지금은 로마인이 섬기는 태양의 신의 날인 Sunday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2)월요일(Monday): 달의 날로서 처음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달의 여신인 셀레나를 뜻하는 Luna로 했다가 게르만 족의 용어인 Mane로 변경됐다. 그 후에 현재의 Monday로 사용 되었다. 3)화요일(Tuesday): 화성의 날로서 그리스 신화의 Tiw’s day에서 온 말로서, 사람들이 화성의 붉은 색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전쟁의 신인 마르스(Mars)라고 했다. 이후에 게르만 민족들이 자신들의 전쟁의 신인 Tyr로 불렀다가 점차 변형되어 오늘날의 Tuesday가 되었다. 4)수요일(Wednesday): 수성의 날로서 폭풍의 신인 Wodin(북유럽 신화의 Odin)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리스 로마에서는 수성의 신인 Mercury로 바뀌었다가 게르만 족들이 자신들의 폭풍의 신인 Wodin로 불렀다. 이후 점차 변형되어 오늘날의 Wednesday가 되었다. 5)목요일(Thursday): 목성의 날로서 그리스 로마의 벼락의 신인 Jupiter라 했으나 게르만 족들이 자신들의 폭풍의 신인 Thor로 불렀다. 이후 점차 변형되어 오늘날의 Thursday가 되었다. 인기 영화의 주인공인 어벤져서, 토르 등의 내용에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기도 하다. 6)금요일(Friday): 금성의 날로서 금성은 가장 아름다운 빛을 낸다고 해서 그리스 로마신화에서는 사랑과 미의 여신인 Venus라 했고, 게르만 족들은 자신들의 사랑의 신인 Freya 로 불렀다가 점차 변형되어 오늘날의 Friday가 되었다. 7)토요일(Saturday): 토성의 날로서 그리스 로마신화나 게르만 족들의 농업의 신이 동일하게 Saturn이었던 관계로 변형 없이 Saturn으로 불렀다가 점차 변형되어 오늘날의 Saturday가 되었다. III. 우리나라의 7요일의 유래와 결어 7요일제의 달력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17세기경에 전래된 가톨릭의 영향으로 생각되며, 공식적으로 쓰인 것은 갑오경장 이후인 1895년부터였다. 원래 우리나라 전래의 한주는 목화토금수의 오행만을 채택한 5일이었는데, 전통시장이 5일장인 것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또한 요일의 한문표기는 음양오행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즉, 해는 양이고 달은 음이며, 수.화,목.금,토는 오행에서 온 것이다. 이는 다음호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논하고자 한다. 이상에서 본 대로 한 주간의 요일의 유래와 명칭도 그리스 로마제국과 게르만 민족의 전통적인 신화와 그들의 신앙에서 비롯되었으며, 또한 여기에 동양의 음양오행설이 포함되어 있다. 워낙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것이기 때문에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유래와 명칭의 뜻은 알고 사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며 계속해서 논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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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7
  • 경남성시화운동본부, 2022년 정기총회 개회
    경남성시화운동본부(대표본부장 김종준 목사, 이하 경남성시화)가 12월 23일, 정기총회를 개회하고 한 해 동안 공석이었던 대표회장에 박종희 목사(창원 반석교회)를 선출했다. 이날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감리교회(최정규 목사)에서 오전 7시 조찬기도회 후 오전 9시에 열린 경남성시화의 총회는 수석상임부회장에 최근 경남기독교총연합회에서 대표회장을 이임한 이경은 목사(순복음진주초대교회)를 선출하고 그간 대표본부장으로 수고한 김종준 목사(홍대교회) 자리에는 박경림 목사(마산임마누엘교회)가 그 수고를 이어간다. 다음은 경남성시화운동본부 임원 명단이다. ▲명예회장 : 구동태 감독(합성, 원로), 윤희구 목사(한빛, 원로) ▲이사장 : 이종승 목사(임마누엘)▲대표회장 : 박종희 목사(창원반석)▲수석상임회장 : 이경은 목사(순복음진주초대)▲대표본부장 : 박경림 목사(마산임마누엘) ▲수석본부장 : 김우태 목사(동창원영은)▲사무총장 : 서민석 목사(새소망) ▲총무 : 김동수 목사(새누리)▲수석부총무 : 최정규 목사(합성) ▲ 서기 :권영광 목사(진주열린) ▲부서기 : 박재송 목사(성민) ▲회계 :정 천 장로(진해침례) ▲부회계 : 진수진 장로(선장) ▲감사 :정성익 목사(한마음병원), 안승준 장로(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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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단 및 연합회
    2022-12-23
  • ‘한국기독교 임상목회교육협회(KCCPE)’ 창립총회 열려
    병원 원목들의 임상목회교육(CPE) 활성화를 위해 ‘한국기독교 임상목회교육협회(KCCPE)’(이하 협회)가 지난 12월 17일(토) 오전 10시, 부산 고신대 복음병원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설립됐다. ‘한국기독교 임상목회교육협회(KCCPE)’는 영남과 호남 지역에 속한 병원 원목들의 임상 목회교육을 활성화하고 병원 선교 사역 활성화를 위해 설립 됐으며 원목 뿐만 아니라 신앙훈련을 받은 평신도, 신학생, 간호사, 의사, 목사 등 다양한 계층의 기독인들을 대상으로 임상목회교육 진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날 협회의 창립 총회는 고신대 복음병원 원목실장 김영대 목사의 인도로 예배를 시작해 경북대 원목실장 김은호 목사가 대표로 기도하고 조정희 목사(신부산교회)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마15:32-39)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한 후 남정우 목사(대구 하늘담은교회)의 축도로 예배를 마치고 창원 경상대병원 원목실장 박영삼 목사가 광고를 전했다. 이어진 2부 총회는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원목실장 오정윤 목사의 사회로 박영삼 목사가 경과보고 하고 정관 통과와 협회장 인준 등을 거쳐 초대 협회장에 안화웅 목사를 선출했다. 이어, 참석한 내빈들이 축사와 격려사로 협회의 출발을 축하하고 모든 순서를 마무리 했다. 이날 협회는 부산 고신대학교 복음병원,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 창원 경상대 병원 등 10개 병원 원목실과 부산장신대 목회돌봄상담연구소, 영남신대 상담심리학과, 천안 고신대 대학원 목회상담학과를 비롯한 영호남의 교회들을 교육 기관으로 인준하고 앞으로 내외 15명의 임상목회교육 과정 감독과 6명의 지부장, 9명의 임원들이 협력하며, 특별히 임상목회 대화록을 통한 신학적 분석에 집중할 예정이다. 다음은 협회 신임 임원명단이다. ▲회장 : 안화웅 목사(부산 임상목회교육센터) ▲부회장 : 오정윤 목사(계명대 대구동산병원) 김영대 목사(고신대 복음병원) ▲사무총장 : 박영삼 목사(창원 경상국립대학교병원) ▲서기 : 김은호 목사(경북대병원) ▲부서기 : 이신국 목사(부산 부곡요양병원) ▲회계 : 이은아 전도사(고신대 복음병원) ▲부회계 : 이은석 목사(에스포항병원) ▲감사 : 이영근 목사(대구 보훈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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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3
  • 마산동부경찰서, 2022 성탄감사예배
    마산동부경찰서 경목위원회(이하 경목위)가 지난 12월 22일(목) 오전 11시, 마산동부경찰서(서장 윤상식 총경) 강당에서 ‘2022 성탄감사예배’를 드렸다. 1부 예배는 김동수 목사(새누리교회)의 인도로 시작해 송명안 목사(중리감리교회)가 대표로 기도하고 김동수 목사가 성경봉독(요8:12)한 후 마산성산교회 중창단이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렸다. 이어, 오승균 목사(마산성산교회)가 ‘세상의 빛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학고 최타권 감독(늘푸른교회)가 축도함으로 예배를 마친 후 이상택 목사(회원동부교회)가 광고를 전했다. 예배 후 이어진 2부 축하행사는 경목실장 오구식 목사(마산성은교회)의 사회로 마산동부경찰서장 윤상식 총경이 축사를 전하고 경목위원 및 경찰 서장등 관계자들이 축하 케잌 절단식을 갖고 홍근성 목사(한샘교회)가 축도함으로 모든 순서를 마무리 했다. 경목위원회 관계자는 “불철주야 지역의 안전을 위해 애쓰시는 경찰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라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이 즐겁고 복된 성탄과 새해를 맞이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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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2
  • 창기장총, 제4회 정기총회 및 송년기도회
    창원특례시기독교장로총연합회(대표회장 최주철 장로, 이하 창기장총)가 지난 12월 20일(화), 창원특례시 의창구 미래웨딩캐슬에서 ‘제4회 정기총회 및 송년기도회’를 가졌다. 1부 예배는 수석부회장 김기준 장로(회원동부교회)의 인도로 시작해 부회장 신기성 장로(진해중앙교회)가 대표로 기도하고 서기 정천 장로(진해침례교회)가 성경봉독(삼하 10:9-14)한 후 배성현 목사(서머나교회)가 ‘가정과 교회를 위한 거룩한 싸움’이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배성현 목사는 말씀을 통해 “창기장총이 성경 말씀 반하는 악법 제정에 대해 반대 운동을 하고 창원시의 기독 문화 발전에 힘써주셔서 감사하다”라며 “창기장총을 통해 창원에 영적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설교 후 이어진 순서에서 △국가경제 회복과 창원특례시 시정을 위해 △포괄적차별금지법 제정 반대를 위해 합심으로 기도하고 배성현 목사가 축도함으로 예배를 마치고, 사무총장 신이철 장로(동창원한빛교회)가 광고를 전했다. 예배 후 자문위원 창원영광교회 송선규 장로(창원영광교회 원로)가 만찬기도하고 식사와 친교의 시간을 가졌으며 친교 시간에는 전용익 장로(명곡교회)가 색소폰으로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기도했다. 3부 송년회 및 축하 순서에서는 부회장 남재우 장로(마산동부교회)의 사회로 신이철 장로가 내빈을 소개하고 경남기총 부회장 김성권 목사(새진해교회)가 축사를 전하고 예장(합동) 전국장로회 직전회장 김봉중 장로(새누리교회)가 격려사를 전한 후 창기장총 공동회장 오세란 장로(서머나교회)가 기타 연주와 함께 특별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 이어, 사무차장 최문욱 장로(양곡교회)의 사회로 경품행사를 가지며 참석자들에게 많은 선물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4부 정기총회 회무는 상임회장 박재우 장로(가음정교회 원로)가 기도하고 서기 정천 장로가 회원점명 후 대표회장 최주철 장로(서머나교회)가 개회선언 함으로 시작해 회순 채택과 전회의록 낭독 및 각 보고 후 회칙심의를 통해 창기장총의 명칭을 ‘창원시기독교장로총연합회’에서 ‘창원특례시기독교장로총연합회’로 변경하기로 결의하고 약칭은 ‘창기장총’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어진 임원개에서는 전형위원의 추천에 따라 최주철 장로가 대표회장을 연임하는 것으로 결의했다. 다음은 창기장총의 임원명단이다. ▲대표회장 : 최주철 장로(서머나교회) ▲부회장 : 김기준 장로(마산회원교회), 신기성 장로(진해중앙교회), 남재우 장로(마산동부교회), 천명철 장로(경화교회), 박두양 장로(창원세광교회), 강석관 장로(문창교회), 김종욱 장로(상남교회), 김진곤 장로(창원왕성교회), 하성암 장로(마산재건교회), 최문욱 장로(양곡교회), 진일곤 장로(마산합성감리교회), 권오환 장로(봉덕교회), 박명도 장로(진해재건교회), 황규종 장로(창원신촌교회), 노영환 장로(마산성막교회), 김재덕 장로(진해침례교회), 김용석 장로(가음정교회), 배재억 장로(진영교회), 차효덕 장로(산성교회), 김도근 장로(마산성산교회), 김봉수 장로(군북중앙교회), 김정수 장로(중앙교회) ▲사무총장 : 신이철 장로(동창원한빛교회) ▲사무차장 : 정천 장로(진해침례교회) ▲서기 : 김승호 장로(한빛교회) ▲부서기 : 배병호 장로(문창교회) ▲회계 : 송태엽 장로(새누리교회) ▲부회계 : 김종식 장로(한빛교회) ▲감사 : 박동철 장로(서머나교회), 김회식 장로(가음정교회), 이종병 장로(제일진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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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2
  • [기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다시 성탄절 주후 2022년의 크리스마스입니다. 사전적 의미의 성스러운 사람의 탄생을 축하하는 명절이 크리스마스라고 말하지만 정작 이 날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에 대하여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9:2) 이 빛은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나심으로 임하시고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창3:15)이라는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여자에게서 나셨으며 그리스도의 본질을 순전하고 흠 없이 보전하기 위하여 아담의 허리로부터가 아닌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음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날이며 “때가 차매, 아버지가 정하신 결정적인 시간,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갈4:4) 하신 날입니다.” 모든 구약의 율법이 우리를 붙들어 그리스도를 뵈옵게 하심으로 우리를 지으신 분이 우리를 다시 지으신 날(딛3;4~7)입니다. 그러나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합니다.”(요1;5) 이 어둠의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빛이 비쳐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9) 즉 세상은 자기 생활방식을 사랑합니다. 인간이 어둠 속에 있을 뿐 아니라 어둠이 인간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없는”(고전1:21) 우리에게 저녁 서늘한 무렵 하나님께서 동산에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즉 타락한 에덴동산에 빛이 비친 것입니다. 이 빛은 120년간 방주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호소한 노아의 빛으로 소돔과 고모라에서 탄식했던 롯의 빛으로 아브라함과 족장들, 이스라엘 민족과 선지자들,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그 빛이 계속 비친 것입니다. 모든 빛은 그에게서 나오고 빛의 본질이 그에게 있습니다. 그 분이 빛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시기까지 사백여년의 어떤 선지자도 메시지도 없는 암흑시대를 지나 마침내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사9:6) 곧 진정한 빛, 주님이 우리에게 임한 방식입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의 포문을 여는 첫 장 마태복음 1장의 1절의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펼쳐집니다.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열네 대,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 일곱 대가 여섯 번 있었고 그래서 예수님은 일곱 번째 일곱의 시작이 되십니다. 성경에서 7은 의미가 깊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의 일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고 모세의 율법에 따라 농부들은 일곱째 해마다 땅을 쉬게 하는 안식을 취했습니다. 레 25장의 일곱 번째 일곱 해 중에서 마지막 해인 49년째 되는 해는 희년으로 모든 노예가 해방되고 모든 빚이 탕감되는 해였습니다. 마태복음 1장은 낳고, 낳고, 낳고의 연속이지만 이 안식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온다는 것을 보여주며 문제는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만 그리스도 안에서 그 안식을 함께 누릴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크리스마스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강조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내려오심'(강림)의 의미가 더 크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주목해볼 것은 이 족보에 상상할 수 없는 다섯 여인이 이름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 '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 마리아' 그들은 성전에 들어가 예배조차 드릴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대부분 이방인들이었습니다. 다말과 라합은 가나안 여인들이었고, 룻은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근친상간을 거론하는 다말, 물론 수혼제로 해석이 됩니다. 매춘부인 라합, 이름을 밝히지 않고 우리야의 아내라고 명시함으로 다윗의 치부를 여실히 드러내게 되는 밧세바, 사회 계층상 밑바닥에 가까웠던 겨우 15살의 어린 소녀 마리아... 심지어 헤롯왕이 그리스도께 보인 반응조차도 실은 이 모두가 다 우리의 영적 모습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어둠의 자식들이었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주일 하루 예배자의 모습을 드러내지만 교회 문을 나서기 바쁘게 세상과 영적 간음의 배교의 자식들이고 항상 내 생각이 아버지의 말씀 위에 두는 자들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2:12) 이러한 우리에게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를 외면하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시고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찾아오시어 “우리가 누구였든지, 어떤 사람이었든지” 이전의 우리를 개의치 않으시고 주님의 자녀로 가족 삼아 주신다는 겁니다. 여기 다섯 명의 여인들 딱 중간에 룻이 자리하면서 에브라임지파와 유다지파를 하나로 모읍니다. 요셉은 유다지파 사람이고 고향이 베들레헴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나사렛에서 나셨을까 생각해 보게 합니다. 성경에서 유다에게는 하나님께서 왕의 축복을 해주셨고 에브라임에게는 장자의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한다면 이 두 축복을 다 가지고 있어야함을 봅니다. 신약시대의 시작을 예수님의 계보로 시작함은 복음은 삶의 도움이 되는 정도의 상담이나 충고 정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와 그의 모든 행하심에는 역사적 근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이야기가 그냥 영웅담이 아니듯이 예수님의 탄생, 그의 성육신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세계 방방곡곡의 크리스마스는 이제 연말 파티용으로 전락되어 우리끼리 먹고 마시는 금송아지 파티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크리스마스입니다.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는 우리에게 또 어김없이 빛이 비칩니다.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라”(눅 2:11)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성육신 하셨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가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 분이 우리 삶에 들어오시기 전까지는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는 스스로 알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 고백함으로 십자가를 알기도 전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성육신 하신 주님도 훗날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갑니다. 전쟁과 기근과 역병이 돌고 돌아도 하늘의 문은 닫히지 않습니다. 유한하고 제한적인 땅으로부터 고개를 들어 영원한 하늘을 바라보며 위의 것을 찾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하며 코로나를 함께 겪어 나가며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처방은 최신의 백신이나 해독제가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사9:6)된 이 은혜의 선물, 이 빛을, 나의 예수님을 우리 함께 온전히 받아 누리는 복된 크리스마스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글. 이정은 사모(부산 고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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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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