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뉴스 검색결과
-
-
창원탁구선교회, 제4회 어울림 탁구대회 개최
- 창원특례시탁구선교회(회장 김기준 장로, 이하 창탁선)가 주관한 제4회 창원특례시 어울림 탁구대회가 지난 4월 18일(토), 창원시 마산회원구 자유무역지역 2공구 복지관에서 개최된 가운데, 대회 중간 개회예배가 드려지며 참가자들이 말씀과 기도로 하나 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개회예배는 창탁선 수석부회장 정천 장로(진해침례교회)의 인도로 시작됐으며, 참석자들은 찬송가 620장 ‘여기에 모인 우리’를 함께 부르며 하나님께 예배를 올렸다. 대표기도를 맡은 부회장 성기용 권사(중리감리교회)는 “참가하는 모든 선수들이 안전하게 경기를 치르고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며, “탁구대회를 통해 복음이 전해지고 선교회가 하나님의 통로로 쓰임 받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이어 승급위원장 우성숙 권사(창원교회)가 요한삼서 1장 2절 말씀을 봉독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말씀을 통해 이날 예배의 중심 메시지가 선포됐다. 말씀을 전한 창탁선 지도목사 최정규 목사(합성감리교회)는 ‘네 영혼이 잘됨 같이’를 제목으로 설교하며, 성도의 삶에 있어 영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 목사는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건강이지만, 우리의 기도는 대부분 육신에 머물러 있다”며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영혼이 잘되기를 원하신다”고 말했다. 이어 “영혼이 바로 설 때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지는 것이 성경의 원리”라며 “이번 탁구대회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움과 하나님의 향기가 드러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설교 후 김기준 장로가 인사말과 함께 3개 교회에 후원금을 전달하고, 사무국장 강정완 집사(가포교회)가 내빈소개 한 뒤, 실무부회장 강호균 장로(진해성운교회)가 광고를 전하고 지도위원 한재동 목사(가포교회)의 축도로 예배가 마무리됐다. 이번 개회예배는 단순한 체육행사를 넘어, 말씀과 기도를 통해 공동체의 연합과 선교적 사명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특히 참가자들은 탁구라는 일상의 활동 속에서도 복음의 가치를 드러내야 한다는 도전을 받았다.
-
- 뉴스
- 종합
-
창원탁구선교회, 제4회 어울림 탁구대회 개최
-
-
창원극동방송, 제7회 창원극동포럼 개최
- 북한 엘리트 출신 탈북민의 생생한 간증을 통해 극동방송이 북한 동포에게 전하는 복음의 힘을 확인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1996년 이래 경남 지역에 복음을 전해온 창원극동방송이 지난 4월 12일(주일), 김해중앙교회(강동명 목사)에서 ‘제7회 창원극동포럼’을 개최했다. ‘북한의 엘리트 노예, 극동방송으로 찾은 자유’를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은 창원극동방송 운영위원과 지역 교계 인사, 성도 등 8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 7시 30분부터 진행됐다. 이번 포럼의 강연자로 나선 (사)북방연구회 김형수 대표는 북한 혜산 출생으로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를 졸업한 북한의 엘리트 출신이다. 만청산연구원 연구사, 량강도 인민위원회 부원 등을 역임했으며, 2009년 탈북해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현재 통일부 통일교육위원과 북한인권국제 NGO 네트워크 ‘징검다리’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날 강연에서는 북한 체제 속 엘리트로서의 삶과 극동방송을 통해 자유를 찾게 된 생생한 이야기가 전해졌다. 행사는 창원극동방송 권영철 직전 운영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창원극동방송 어린이합창단의 식전 공연을 시작으로 창원극동포럼 회장 조우성 장로의 개회 선언, 김양하 창원극동방송 운영위원장의 개회 기도, 창원극동방송 이경 지사장의 인사에 이어 김형수 대표의 강연이 이어졌다. 이후 감사장 전달과 김해중앙교회 강동명 목사의 축도, 단체사진 촬영으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창원극동방송은 이번 제7회 창원극동포럼을 통해 북한 선교와 통일에 대한 경남 지역 교계의 관심을 높이고, 극동방송이 북한 동포들에게 전하는 복음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뜻 깊은 시간이 됐다. 창원극동방송 자료제공
-
- 뉴스
- 종합
-
창원극동방송, 제7회 창원극동포럼 개최
-
-
[최성은 목사] 양심을 따라 섬기는 사명자 (행 23:1-11)
- 사도행전 23장은 바울의 인생 가운데 가장 긴박한 순간 중 하나를 보여준다. 3차 전도여행을 마친 바울은 성령의 경고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결국 그는 체포되어 공회 앞에서 심문을 받게 된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바울이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오늘 본문의 핵심이다. 목사와 장로의 자리는 세상이 주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명의 자리이다. 연약한 사람이 그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의 선한 양심에 있다. 바울은 공회 앞에서 “나는 범사의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고백한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음을 의미한다. 양심이란 하나님이 아시는 것처럼 자신을 아는 것이다. 곧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인식이다. 바울은 평생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워 두고 살아왔다. 그러므로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선한 양심을 따라 사는 사역자는 사람의 평가나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과 판단을 기준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선한 양심은 곧 거짓 없는 믿음이며, 사역의 출발점이다. 영적 침체에 빠진 디모데에게 바울이 권면한 것도 바로 이 청결한 양심의 회복이었다. 세상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이 곧 회복이고 부흥이다. 그러나 양심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인간의 양심은 죄와 세상의 영향으로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대제사장을 향해 강하게 말한 후, 그가 대제사장인 것을 알고 즉시 태도를 바꾼 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 때문이었다. 출애굽기의 말씀처럼 지도자를 비방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태도를 바로잡은 것이다. 이 사건은 중요한 원리를 보여준다. 양심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위에 있다는 사실이다. 선한 양심은 말씀에 의해 점검되고 바로 세워져야 한다. 양심을 빌미로 자신의 확신이나 경험, 고집을 따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세상과 타협하여 무뎌진 양심도 문제이지만, 자기 확신으로 굳어진 양심 역시 위험하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개혁주의 신앙의 핵심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복음의 본질을 붙드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죽은 자의 부활로 인해 심문을 받고 있다고 증언한다. 그는 공회 앞에서뿐 아니라 총독과 왕 앞에서도 동일하게 부활을 증거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바울의 사명이었고 그의 존재의 본질이었다. 고린도전서 15장의 고백처럼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복음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다. 바울은 위기의 순간에도 이 복음에 더욱 충실했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지키시고 사명을 이어가게 하셨다. 오늘의 사역 현장 속에서도 동일한 질문이 던져진다. 우리는 복음의 본질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성공이라는 이름 아래 십자가와 부활을 뒤로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사역의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어야 한다. 바울의 삶에는 깊은 밤이 찾아왔다. 육체적 피로와 두려움, 사역의 결과에 대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염려가 겹친 시간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밤에 주님이 찾아오셨다. 주께서는 바울 곁에 서서 담대하라고 말씀하시며, 예루살렘에서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하게 될 것이라는 더 큰 사명을 주셨다. 인생의 가장 어두운 밤에 주님의 위로와 약속이 임했다. 바울이 품고 있던 로마 선교의 비전은 바로 그 밤에 다시 확증되었다. 하나님은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 위로와 격려, 그리고 새로운 비전을 주신다. 오늘 이 기도회 역시 그러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선한 양심을 회복하고, 말씀으로 자신을 점검하며,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를 세우시고,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힘을 주실 것이다. 세상의 인기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 경험이나 고집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가는 삶, 세상적 방법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붙드는 삶이야말로 사명자의 길이다.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인생의 깊은 밤에도 찾아오시는 주님의 위로를 경험하며,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게 될 것이다. ※ 위 설교문은 2026년 4월 2일 고신총회 특별기도회 설교를 정리한 것입니다.
-
- 오피니언
- 설교/강의
-
[최성은 목사] 양심을 따라 섬기는 사명자 (행 23:1-11)
-
-
고신총회, 특별기도회 … “주여,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
-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총회(총회장 최성은 목사)와 고신 전국장로회연합회(회장 윤창현 장로)가 공동으로 주최·주관한 ‘제23회 고신총회 특별기도회’가 4월 2일 오후 1시 천안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열렸다. ‘주여,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기도회는 전국에서 모인 목회자와 장로,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한국교회와 고신총회의 영적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예배,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1부 예배는 장상환 장로의 기도로 시작됐으며, 사도행전 23장 1-11절 말씀을 본문으로 최성은 목사가 설교를 전했다. 최성은 목사는 “목사와 장로의 자리는 세상이 주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신 사명의 자리”라며 “사명을 감당하는 힘은 하나님 앞에서의 선한 양심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양심이란 하나님이 나를 아시는 것처럼 나 자신을 아는 것”이라며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참된 사역자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의 양심조차도 왜곡될 수 있기에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점검되어야 한다”며 “오직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 개혁주의 신앙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윤리강령 선포… “교회의 거룩성 회복” 이날 예배 중에는 고신총회 임원회 명의로 ‘고신총회 목회자 및 교역자 윤리강령’이 선포됐다. 윤리강령은 교회의 세속화와 윤리적 위기 속에서 목회자의 거룩성과 책임을 회복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으며, 성경 중심의 신앙 원칙 위에서 개인 윤리와 성윤리, 교회 재정과 정치 질서, 사회적 책임 등을 포괄적으로 담았다. 총회는 이를 통해 교회의 신뢰 회복과 공교회적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특별기도회… 회개와 회복 위한 간구 이어져 이어진 특별기도회는 구빈건 목사의 인도로 진행됐으며, 참석자들은 한 마음으로 통성 기도에 나섰다. 이날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 △한국교회의 회개와 각성 △교회의 회복과 부흥 △다음세대 신앙 계승 △선교와 북한 복음화 △나라와 민족 △고신총회와 교회 △가정 회복 등을 주제로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교회의 첫사랑 회복과 말씀 중심의 신앙 회복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으며, 한국교회가 다시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동체로 서기를 간구했다. 이번 특별기도회는 단순한 행사에 그치지 않고, 회개와 갱신을 통한 교회의 본질 회복을 촉구하는 자리로서 고신총회의 영적 방향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됐다.
-
- 뉴스
- 교단 및 연합회
-
고신총회, 특별기도회 … “주여,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
-
-
[특별기획] 기독문화유산을 지키자(6)
- 창원특례시 합포구 진동 호주선교사 마산공원묘지에는 8분의 호주선교사 발자취가 있다. 이 중 경남지역에서 온몸으로 선교활동에 헌신하다 소천할 때 비석을 세우고 공덕을 기록한 세 분이 있다. 지난번에 다룬 맥피 선교사, 그리고 이번 호에 소개하고자 하는 선교사는 G. 네피아 선교사의 묘비이다. 그리고 한 분은 진주 성남교회를 설립한 목회자 아더 윌리엄 선교사의 묘비이다. 먼저 G. 네피아 선교사는 한국명 남성진(南性眞)으로, 1912년부터 1936년까지 주로 진주지역에서 기독교병원 배돈병원에서 헌신적으로 간호선교사로 활동했다. 네피아 선교사는 1872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출생했다. 잠시 교사로 활동하다 에든버러 간호학교에서 간호학을 공부하고, 호주장로회 선교사로 1912년 12월 12일 내한했다. 입국 후 처음 마산지역에서 복음전도활동을 하면서 모자 건강을 위한 진료소를 운영했다. 이후 진주지역으로 옮겨 호주장로교 선교사가 세운 배돈병원 간호부장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배돈병원은 환자 진료뿐 아니라 간호사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당시 간호는 남성들이 중심이었고 여성 간호사는 천박한 직업으로 멸시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점차 시간이 지나 간호사 양성소를 거친 여성 간호사가 생겨났다. 여기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남아 있다. 1820년 가을 통영에 콜레라가 유행했다. 긴급히 예방을 위해 남자 간호사를 양성하여 이들이 주사를 놓게 되었는데,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주사 맞기를 거절했다고 한다. 이에 여성 간호사 양성의 시급함이 대두되어 많은 여성 간호사들이 양육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여성 간호사를 양성하는 데 네피아 선교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간호정신을 강조하면서 교육했다. 그리고 네피아 선교사는 백인의 여성으로서 한국인들에게 헌신적인 간호의 섬김을 실천했다. 네피아 선교사는 진주 배돈병원에서 간호부장으로 25년간 봉직하면서 유아복지사업에도 힘을 쏟았다. 모유가 부족한 산모들에게 콩가루, 미숫가루 등으로 모유 대체물을 개발하여 체계적으로 산모와 아기에게 도움이 되도록 했다. 배돈병원에서의 이러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국으로 알려졌으며, 당시 조선일보에 ‘칭송 자자한 진주 培敦病院(배돈병원)’이라는 제목으로 돈이 없어 약을 못 먹는 환자를 무료로 입원시켜 치료하고, 의령군 가례면 대천리 백재관 씨가 중병에 걸려 생명이 위독했으나 개복수술로 소생했다는 미담이 기사로 실리기도 했다. 네피아 선교사는 마산과 주로 진주 등지에서 평생 독신으로 환자를 돌보다 1936년 8월 29일, 64세의 일기로 소천하여 진주시 평거동 묘지에 묻혔다. 그런데 이 묘지가 도시화로 멸실되면서 산청군 시천면 덕산교회 이호준 목사의 주도로 1992년 6월 9일 산청군 시천면으로 이장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2일 호주선교 대표 존 브라운 목사 집례로 이장 추모예배를 드렸다. 네피아 선교사의 묘비는 소천 후 진주에서 장례를 치를 때 세워졌다. 당시 묘비에 새긴 글은 지금까지도 큰 울림을 준다. "호주 장로교 선교사로서 진주 배돈병원에서 사랑의 봉사를 하다 1936년에 천국에 가시어 이곳에 안장되다." 이 묘비는 지금부터 90년 전에 세워져 귀한 헌신을 새겨 두고 있다. 묘비 글자는 퇴색되었지만 우리에게 큰 울림이 되고 있다. 국가적 유산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후 2005년 창신대학 강병도 장로(창신대학장) 주도로 네피아 선교사를 비롯한 8명의 호주선교사 순교기념사업이 진행되었다. 네피아 선교사의 묘비와 유해는 2009년 9월 산청에서 마산 호주선교사 묘원으로 이장되어 안장되었다. (네피아 선교사의 묘비 자료는 기독역사학자 박시영 목사의 연구자료에 근거함) 글. 박동철 장로(서머나교회 은퇴) 자문 이상규 백석대 석좌교수 박시영 부경기독교역사연구회회장
-
- 뉴스
- 종합
-
[특별기획] 기독문화유산을 지키자(6)
오피니언 검색결과
-
-
[정우승 목사]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 그렇게 실천은 하지 않으면서도 인용을 하려니 부끄러운 한자말이 있다. 백절불굴(百折不屈)인데 백번 꺾어도 굴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떠한 어려움에도 결코 뜻한 바를 굽히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한국이 낳은 순교자이신 주기철목사님께서는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죽음을 던지는 굳건한 의지를 남겼다. 동음이의어가 있는데 의사(義士)와 의사(醫師)의 차이가 크다. 앞의 의사(義士)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는 꿋꿋한 사람을 뜻하며, 뒤의 의사(醫師)는 자기가 가진 의술로 타인을 살리는 사람이다. 한 사람은 자기가 죽는 길이요, 또 한 사람은 남을 살리는 길이다.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의사(義士)와 의사(醫師) 중에 어떤 인물이 되기를 원하느냐고 물으면 자기 목숨을 내 놓는 의사(義士)가 되려는 청소년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도 뜻한 바를 굽히지 않는 결연한 인물들이 더러 나온다. 가나안 땅의 분배를 두고 갈렙은 팔십오 세의 나이로 헤브론 땅을 달라고 요구를 한다. (여호수아14:12)에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라고 마치 출정식과도 같은 연설을 쏟아내었다. 이처럼 자기가 믿는 바를 끝까지 지켜나가는 행동은 쉽지 않다. 군산지방에서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귀암(龜岩)노인이라는 한말의 병사가 있다. 아무도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그저 귀암에서 살다 자결했기로 귀암노인이라고 불렀다. 그는 1907년 8월 1일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당한 근위 제2연대 1대대 소속 하사졸(下士卒)로 당일 해산식장에 나가기를 거부하고 항일의거에 참여한 저항군졸이다. 해산식이 있기 이전에 이미 일본군은 어깨에 견장을 떼고 은사금 명목으로 80원씩 나누어 주었다. 그는 받은 은사금을 찢어버리고 다른 군졸들과 함께 무기고를 털어 당시 서소문 안에 있었던 군영을 뛰쳐나와 남대문 근처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였다. 그 길로 일본군에게 쫓겨 창의문을 거쳐 삼남지방으로 내려가 약 2년 동안 의병으로 항일운동을 했다. 1909년 전라북도 줄포싸움에서 마지막으로 패하고, 이 때의 부상으로 평생 절름발이가 된 채 숨어 살았다. 그 무렵 금강하류 군산연안에 귀암이란 마을에는 미국의 선교사들이 많이 와서 합숙을 하면서 호남지방에 선교를 하고 있었다. 쫓기던 그는 왜경들의 치외법권 지역인 이 선교사들의 숙소로 뛰어들어가 전후사정을 이야기하고 하인으로 고용해 줄 것을 애걸하였다. 이 절름발이 병사는 그날부터 여선교사들의 숙소 경호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는 군영에 있을 때 차고 다녔던 장도(長刀)를 보배처럼 항상 간직하고 있었다. 서소문 탈영이래 한시도 몸에서 뗀 적이 없는 그 장도를 뽑아 어깨에 둘러메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밤마다 숙사를 순찰했던 것이다. 귀암노인은 몸에 밴 군경 생활의 습성을 조금도 고치려 하지 않았다. 새벽 해 뜨기 전에 일어나 찬물을 끼얹고, 비록 절뚝거리지만 스스로의 구령에 따라 보조를 맞추었다. 또한 몸에 밴 군기 그대로 저녁에는 왕궁이 있는 북쪽을 향해 요배하는 것을 거르는 법이 없었다. 가까이 지내는 선교사들이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는 귀암노인이 급전이 필요하여 선교사에게 돈돔 빌려줄 것을 요청한다. 선교사는 이런 기회를 타서 몸에서 떼질 않는 장도를 저당으로 내놓기만 하면 돈을 빌려 주겠다고 하였다. 귀암노인은 한 사나흘 고민하다가 근 20여년 동안 잠시도 몸에서 뗀 적이 없는 장도를 선교사에게 맡겼다.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후에 귀암노인은 아무말 없이 행적을 감춘 것이었다. 그의 실종과 더불어 저당으로 잡아둔 장도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장도를 놓아두었던 자리에 한 통의 편지가 놓여있었는데 펴 보니 ‘무사로서 양인 밑에 천한 삶을 이어가는 것도 치욕인데 칼마저 몸에서 떼어놓게 되었으니 이제는 잠시도 살아갈 면목이 없어졌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그날 선교사들은 귀암강 강변에서 자기의 장도로 자기 목을 찌르고 죽은 노병의 시신을 발견한 것이다. 한국의 무사정신에 강동한 선교사들은 귀암강 둔덕에 노인을 묻어주고 십자기를 세워 이 강골병사의 영혼이 영생할 것을 빌어주었다고 한다. 한 평생 다리를 절은 이 노인은 브니엘에서 천사와 씨름을 한 이후 절었던 야곱이 떠오른다. (창세기32:31)에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라고 말씀한다. 야곱 역시 백절불굴의 기백이 있었다. (창세기32:26)에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라고 말씀한다. 백암노인이 만약 천국에 갔다면 함께 다리를 절었던 야곱과 함께 좋은 친구가 되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
- 오피니언
- 칼럼
- 목회 칼럼
-
[정우승 목사]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
-
[기고] 초고령사회 대한민국, 노인요양원 세례는 성경적일까?
- 대한민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25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1,084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21%를 차지하면서 이제 국민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노인인 시대가 되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령화 사회’라는 말이 낯설지 않았지만, 이제 한국 사회는 빠른 속도로 ‘초고령 요양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앞으로는 누구나 부모를 요양원에 모셔야 할 가능성이 높은 시대가 되었고, 동시에 우리 자신 역시 요양원의 돌봄을 받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복지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의 선교 구조 자체를 바꾸는 사건이다. 과거 교회의 선교가 주일학교와 학생들, 교회당 중심이었다면, 앞으로의 선교는 병원과 요양원이라는 삶의 마지막 현장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신앙을 갖지 못한 부모 세대를 둔 자녀들에게는 “어디에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가”가 곧 영혼 구원의 문제로 이어지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전환 속에서 요양원에서의 예배와 성례, 특히 인지 기능이 약해진 어르신들에게 베푸는 세례가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질문은 더 이상 주변적인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중요한 목회적·신학적 질문이 되었다. 이번 부활주일에도 우리 요양원에서는 어르신 10명을 대상으로 세례식을 거행했다. 노인요양원 사역을 하다 보면 가끔 치매나 노환으로 인지 능력이 저하된 어르신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세례의 자격은 ①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한 자 ② 일정 기간 학습교인으로 교회에 출석한 자 ③ 당회 문답으로 그 신앙을 확인받은 자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병원이나 요양원 현장에서 이러한 절차를 온전히 밟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사리 분별이 어려운 치매 노인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 자칫 형식적인 행위에 불과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요양원이라는 특수한 선교 현장에서 지난 27년 동안 수천 명의 어르신을 돌보고, 1,200명 이상의 임종을 지켜보며 줄곧 세례를 베풀어 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례는 주님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세례는 인간의 인지 능력을 시험하는 절차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언약 가운데 받아들이셨음을 외적으로 인치시는 표이기 때문이다(롬 4:11). 나는 일반적인 기준을 넘어선 요양원 세례식의 정당성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1.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여 온 룻과 보아스의 환대 요양원 세례의 강력한 성경적 모델로 나는 룻을 자주 인용한다. 이방 여인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들어왔을 때, 보아스는 그녀를 향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룻 2:12) 고 축복했다. 물론 룻은 베들레헴에 들어오기 전 이미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 1:16) 라는 신앙고백을 했다. 보아스가 이 고백의 전모를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베들레헴으로 들어온 룻을 향해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라고 축복한 환대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요양원에 입소하여 매일 예배의 자리에 머무는 어르신들이야말로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여 온” 분들이다. 비록 질병에 밀려 이곳에 오셨을지라도 복음의 공동체가 운영하는 성읍에 머물며 찬송을 부르고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그 자체가 이미 거룩한 입성이다. 세례는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영혼을 향해 하나님의 자녀임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거룩한 환대이며 언약 공동체 안으로의 인치심이다. 2. 은혜의 보편적 휩쓸림: 출애굽 ‘잡족’의 홍해 세례 출애굽 사건에서도 중요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올 때 ‘중다한 잡족’이 함께 섞여 있었다(출 12:38). 그들이 모두 투철한 유일신 신앙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으나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구름 기둥 아래로 모으셨고 홍해로 인도하셨다. 사도 바울은 이 역사적 사건을 이렇게 해석한다.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1–2) 바울은 홍해 통과 사건을 공동체적 ‘세례’라고 해석했다. 이렇게 세례를 받은 잡족들은 광야 교회 안에서 언약의 백성들과 함께 만나를 먹고 반석의 물을 마셨다. 물론 세례 자체가 곧 구원의 자동 보증은 아니다. 그러나 세례는 인간의 인지 능력의 완성도를 시험하는 절차이기보다 하나님께서 그를 언약 공동체 안으로 불러 들이시는 표지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의 파도는 신앙의 성숙도나 혈통을 따지지 않고 공동체 전체를 약속의 땅으로 이끄셨다. 복음의 대열에 합류한 어르신들이 비록 인지 기능이 낮을지라도 그들을 이 ‘홍해의 세례’에서 제외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3. 빌립과 에티오피아 내시: 즉각적인 은혜의 집례 사도행전 8장에서 빌립은 이사야서를 읽고 있으나 그 뜻을 알지 못하던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행 8:35) 말씀을 통해 복음을 깨달은 내시는 즉시 세례받기를 청했고 빌립은 지체 없이 세례를 베풀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차의 무용성이 아니라 말씀을 통한 믿음의 반응 앞에서 은혜의 표를 불필요하게 지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치매 어르신들도 말씀을 들을 때 영혼 깊은 곳에서 반응하신다. 예배 참석 자체가 곧 “아멘”의 신앙고백이다. 인지적 계산이 아닌 영혼의 피난처로서 천국을 사모하는 그들에게 목사가 즉각적인 은혜의 방편인 세례와 성찬을 베푸는 것은 마땅한 사명이다. 4. ‘영적 유아’가 된 이들을 위한 언약적 수용: 유아세례의 원리와 칼빈의 성례 이해 우리는 스스로 고백할 수 없는 영아에게도 유아세례를 베푼다. 이는 아이의 의지보다 “내 언약을 너와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 영원한 언약을 삼겠다”(창 17:7) 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8장 4항 역시 세례의 대상이 신앙을 고백하는 자뿐 아니라 믿는 부모의 자녀들에게도 해당됨을 분명히 한다. 이는 세례가 인간의 의식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함을 보여준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기독교 강요』 제4권 15장에서 세례를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 양심에 인치는 표”라고 설명하였다. 또한 그는 세례를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외적 표라고 말하며, 세례의 효력은 인간의 이해력이나 기억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성령의 역사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세례는 인간이 하나님을 얼마나 또렷하게 인식하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자기 언약 안에서 기억하시고 붙드신다는 사실을 교회 앞에서 선언하는 은혜의 표지이다.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을 섬기다 보면 어린아이와 같이 되시는 분들이 많다. 특히 치매 어르신들은 인지적으로 유아와 같은 상태에 놓인다. 스스로를 표현하고 고백할 힘이 약해진 어르신들을 향한 세례는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해 온 가족과 공동체의 믿음을 담보로 한다. 어르신은 하나님을 잊었을지라도 하나님은 어르신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는 언약의 신실함에 의지하여 나는 오늘도 세례를 베푼다. 5. 장로교 헌법이 보여 주는 특수한 상황에서의 목회적 배려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헌법 예배지침은 세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물로 씻는 성례로서,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음과 은혜 언약의 모든 유익에 참여함과 우리가 주님의 소유가 됨을 표하고 인치는 것이다.” 이 정의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세례는 인간의 지적 능력의 확인 절차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는 언약적 표이며 하나님의 소유 됨을 선언하는 성례이다. 또한 개혁주의 교회는 역사적으로 임종 직전 세례, 병상 세례, 위급한 상황에서의 세례와 같이 정상적인 문답 절차를 충분히 진행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목사의 신중한 판단과 당회의 목회적 배려 아래 세례를 시행해 왔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8장 5항은 말한다. “세례의 효력은 그것이 시행되는 그 순간에만 제한되지 아니한다.” 이 고백은 세례가 인간의 인지 능력이나 기억의 지속성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과 성령의 역사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 따라서 병상에 있거나 인지 능력이 약해진 어르신들에게 베풀어지는 요양원 세례 역시 장로교 헌법과 개혁주의 교회의 성례 이해 안에서 충분히 정당한 목회적 집례라고 할 수 있다. 결론: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신다 세례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노인들은 체계적인 성경공부보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천국을 소망한다. 나는 그 영적 신비를 현장에서 수도 없이 목격했다. 그래서 나는 지난 27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예배를 드렸다. 초창기 10년 동안은 하루 두 번씩 예배를 드렸다. 노인들은 밤사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수도 있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부활절에도 세례문답을 진행하며 어르신들의 신앙 고백을 들었다. “하모 하모, 믿고 말고!” 이 고백 앞에서 어떻게 세례를 주저할 수 있겠는가? 치매는 인간의 기억을 지우지만 생명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사랑까지 지우지는 못한다. “내가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 요양원에서의 세례식은 어르신이 하나님을 붙잡는 예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어르신을 끝까지 붙잡고 계심을 선포하는 예식이다. 육신의 장막이 무너져 가는 마지막 순간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하는 것은 그 영혼이 본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입혀 드리는 가장 존엄한 예복이다. 인지를 넘어선 은혜, 그것이 우리가 요양원 세례를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다.
-
- 오피니언
- 기고
-
[기고] 초고령사회 대한민국, 노인요양원 세례는 성경적일까?
-
-
[연속기고3] 손봉호 교수의 민낯, 최철호와의 ‘위험한 동행’
- 그동안 필자는 두 차례에 걸쳐 ① ‘손봉호 교수는 한국 교회를 극우로 모는 좌파 본산인가’ ② ‘로잔 이후 한국 복음주의의 변질, 존 스토트에서 손봉호·SFC·기윤실까지’라는 글을 기고했다. 이번에는 세 번째로 ③ ‘손봉호 교수의 민낯, 최철호와의 위험한 동행, 단순 연대를 넘어선 사상적 융합의 실체’를 다루고자 한다. 서론: ‘도덕적 스승’의 가면 뒤에 가려진 인적 연계의 실체 손봉호 교수는 오랫동안 한국 교회 내에서 '윤리와 도덕'의 상징으로 추앙받아 왔다. 그러나 그가 구축한 도덕적 권위가 과연 성경적 보수주의를 지키기 위함이었는지, 아니면 특정 이념을 교회 내부로 이식하기 위한 ‘트로이 목마’였는지 이제는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그 의문의 핵심에는 ‘종북 주사파’ 논란의 중심에 선 최철호 목사(아름다운마을공동체 대표)와의 끈끈한 인적·사상적 연계가 자리 잡고 있다. 필자는 이번 연재를 통해 손 교수가 어떻게 종북적 색채를 가진 활동가들에게 ‘도덕적 세탁기’ 역할을 했는지 폭로하고자 한다. 1. 성서한국, ‘종북 논란’ 최철호와 ‘교계 원로’ 손봉호의 위험한 공생 독자들이 먼저 주목해야 할 인물이 있다. 바로 ‘아름다운마을공동체’를 이끄는 최철호 목사다. 그는 2005년 8월, 성서한국 영역별 준비위원 자격으로 금강산을 방문했을 당시 ‘21세기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라는 현수막 아래서 기념사진을 찍어 교계 안팎에 큰 파문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또한, 그가 운영하는 공동체 내부에서 김일성 찬가를 부르거나 교시를 인용했다는 구체적인 증언이 잇따르며 종북 주사파 논란의 중심에 섰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인물이 한국 복음주의 사회 선교의 총본산이라 불리는 ‘성서한국’의 핵심 이사로 오랫동안 활동했다는 점이다. 성서한국은 2002년 창립 초기 복음주의적 사회 참여를 기치로 내걸었으나, 점차 좌편향적 활동가들이 장악하며 교계를 좌경화하는 전략적 교두보가 되었다. 바로 이 단체의 얼굴이자 정신적 지주인 공동대표와 자문위원장 자리에 손봉호 교수가 10년 가까이 군림해 왔다. 손 교수는 최 목사의 이러한 이념적 편향성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를 ‘시대의 양심’으로 포장하며 교회 내부로 침투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손봉호의 발언 ①: 손 교수는 2011년 성서한국 전국대회 축사 등을 통해 “성서한국은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가장 순수한 복음주의 운동이며, 여기에 참여하는 활동가들은 시대의 양심이다”라고 공언했다. 손봉호의 발언 ②: 더 나아가 그는 최철호 목사의 공동체 운동을 두고 “자본주의의 탐욕을 극복하는 성경적 대안이며, 우리 시대가 본받아야 할 모델”이라며 극찬했다(2013년 아름다운마을공동체 관련 대담 등). [비평]:결국 손봉호라는 거대한 ‘도덕적 브랜드’가 최철호의 종북적 색채를 탈색해 주는 ‘세탁기’ 역할을 한 셈이다. 복음주의라는 이름의 양의 옷을 입고 들어온 이리에게 손 교수가 직접 목자의 지팡이를 쥐여준 격이며, 이는 한국 교회를 향한 치명적인 영적 배신행위다. 2. S.F.C.의 좌경화와 폐지론 사태: 고신의 심장에 박힌 독화살 손봉호 교수가 '복음주의적 멘토'로 군림하는 동안, 그와 동행한 최철호의 독소는 고신의 미래인 S.F.C.(학생신앙운동)의 뿌리까지 침투했다. 최철호는 2010년대를 전후하여 S.F.C. 간사들을 자신의 '마을공동체'로 불러들여 공동체 훈련이라는 명목하에 사회주의적 해방 담론과 반미 의식을 주입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사태의 심각성은 2016년 5월 18일, 당시 총회 SFC지도위원장이었던 안병만 목사가 코람데오닷컴에 기고한 충격적인 폭로를 통해 백일하에 드러났다. 안 목사는 해당 기고문에서 “북한 노동당 청년 적위대들이 부르는 노래인 ‘청춘’을 아무런 제지나 여과 없이 기독 청년들이 부르고 있는 공동체가 있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했다”고 일갈했다. 문제의 노래 가사 끝부분은 “어머니 당(노동당)을 위해 조국을 위해”로 끝난다. 고신의 청년들이 ‘하나님 나라’가 아닌 ‘어머니 당’을 노래하게 만든 이 영적 오염의 배후에 바로 최철호가 있었고, 그 최철호를 ‘우리 시대의 모델’이라며 고신 교회에 소개한 장본인이 바로 손봉호 교수다. 이로 인해 개혁주의 신앙으로 무장되어야 할 간사들이 제주 강정 해군기지 반대 시위(2012년) 등 정치 투쟁의 선봉에 서게 되었고, 급기야 2022년 고신 총회에서 SFC 폐지론이 제기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고신의 심장에 독화살을 쏜 자는 최철호지만, 그 활을 쥐여주고 사로(射路)를 열어준 자는 바로 손봉호다. 3. ‘평화’라는 이름의 굴종, 안보 해체의 선봉에 서다 손 교수의 좌편향성은 국가 안보 문제에서 그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는 최철호가 이끄는 생명평화연대 등과 손잡고 2014년 ‘키리졸브 중단’ 요구나 대북 제재 해제를 촉구하는 성명에 이름을 올리며 북한 정권에 유리한 여론을 형성해 왔다. 북한의 핵 위협에는 침묵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려는 훈련을 비난하는 것이 과연 그가 주장하는 ‘기독교 윤리’인가? 손봉호의 발언 ①: “한미 합동 군사훈련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도발이며, 기독교인은 무조건적인 비폭력과 평화를 외쳐야 한다.” (대북 관련 시국 성명서 취지) 손봉호의 발언 ②: “한국 기독교가 북한 체제를 비판하기에 앞서 남한의 자본주의적 죄악과 안보 지상주의를 먼저 회개해야 한다.” (시국 강연 중) [비평]:적이 칼을 들고 위협하는데 방어 훈련을 하지 말라는 것이 어떻게 윤리가 될 수 있는가? 손 교수는 "남한의 죄악을 먼저 회개하라"는 논리로 북한의 악행에 대한 면죄부를 주었으며, 최 목사가 친북적 행보를 보일 때마다 그 곁에서 ‘기만적 평화주의(Pseudo-Pacifism)’라는 도덕적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결론: 이제는 ‘도덕적 방관’을 끝내고 고신 정신을 회복해야 할 때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고 성경적 진리를 사수하는 것이 고신의 정신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곁의 ‘원로’는 특정 이념에 경도된 인사들과 손잡고 한국 교회를 좌경화의 늪으로 몰아넣고 있다. 손봉호 교수는 본인의 행보가 ‘인도주의’라고 강변하지만, 최철호라는 인물이 가진 종북적 색채를 알고도 그와 함께 강단에 서서 ‘공의’를 논했다면 이는 무지를 넘어선 사상적 공모다. 손 교수는 더 이상 '기윤실'과 '복음주의'라는 이름 뒤에 숨지 마라. 이제 우리 고신인들은 도덕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그의 실체를 직시하고, SFC와 고신과 한국 교회를 건강하게 지키기 위한 교단적인 대책과 수습방안을 강력히 촉구 한다. ※ 독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 오피니언
- 기고
-
[연속기고3] 손봉호 교수의 민낯, 최철호와의 ‘위험한 동행’
-
-
[박동철 장로] 부활절에 전쟁 속 이란교회를 위한 기도
- 지난 3월 17일, 이란 중심부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연합하여 폭격을 감행함으로써 발발한 이란 중동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란 지도자 하메네이와 정치 수뇌부 일부 가족이 참수되는 처참한 전쟁의 현장은, 안타깝게도 끝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란의 핵개발과 관련하여 미국과의 관계가 첨예해지면서 전쟁은 극단적인 지경에 이르렀다. 온 세계는 이란이 주도권을 갖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의 유조선 통행 통제에 직면했고, 미사일 폭격과 곳곳의 유전 폭파로 인해 에너지 비상시대를 맞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2026년 부활절을 맞이하면서도 종전 또는 휴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먼저 이란의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하루빨리 전장이 평화로 변하기를 간구한다. 이란이라는 나라는 오랜 역사 속에서 성경과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이란의 옛 이름은 페르시아로, 고대 이스라엘 유대인들을 70년 동안 포로로 잡아갔던 바벨론을 정복하고 그들을 풀어주었다(BC 539년, 에스라 1장 1-3절). 성경 속 ‘고레스’로 알려진 키루스 대왕은 이스라엘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이후 페르시아는 중동 전 지역과 인도까지 확장되는 융성한 제국으로 발전했다. 또한 BC 483년 아하수에르 왕 때에는 왕의 총애를 받던 유대인 에스더 왕후가, 유대인을 몰살시키려는 하만의 음모로부터 민족을 구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페르시아의 후손인 이란은 오랜 기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7세기 후반 이란이 이슬람화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가 정치권력을 장악하며 직접 통치 체제로 접어들었고, 점차 과격하고 호전적인 국가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중동 여러 국가의 친서방화와는 반대로, 이슬람 독재국가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과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이어진 원인이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서, 페르시아 땅 이란은 한때 번창했던 기독교가 탄압받는 땅이 되어버렸다. 오늘날 이란은 북한과 함께 세계에서 교회를 가장 심하게 탄압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2026년 부활절을 맞아 우리는 이란을 깊이 묵상하게 된다. 처참한 전쟁 속에 있는 이란의 교회 형제들을 위해 한국교회는 기도한다. 여느 때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 고난주간 동안 대한민국의 교회들은 특별새벽기도로 주님의 고난을 묵상했다. 그리고 부활주일을 맞아 새벽기도와 연합예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나타난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신 지 삼일째 되는 날 새벽에 부활하셨다. 새벽은 우리 모두에게 시작과 꿈의 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의 역사를 새벽에 시작한다. 성경의 큰 역사 또한 새벽에 일어났다. 모세의 홍해가 새벽에 갈라졌고(출애굽기 14장), 여리고 성도 새벽에 무너졌다(여호수아 6장). 인류 구원을 위한 대역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새벽에 이루어졌다(마태복음 28장 1절). 어둠은 곧 새벽을 예견한다. 이란 전쟁이라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새벽을 기대할 수 있다. 선교사들이 쫓겨나고 기독교 탄압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란의 교회는 지하에서 성령의 역사 가운데 부흥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절박할 때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듯, 전쟁으로 절박한 이 땅에 복음의 새벽이 임할 것을 기대한다. 2026년 부활절, 대한민국 곳곳의 교회들은 부활의 기쁨 가운데 기도했다. 이 기도는 이란의 교회를 향한 간절한 중보로 이어지고 있다.
-
- 오피니언
- 칼럼
- 교회와 세상
-
[박동철 장로] 부활절에 전쟁 속 이란교회를 위한 기도
-
-
[부활절 메시지] 양산기연 손용락 목사
- 부활의 생명으로 피어난 양산 복음화 120년, 미래를 향한 소망이 되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한복음 11:25) 할렐루야!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와 평강이 경남 땅과 36만 양산 시민, 그리고 모든 교회 위에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꽃들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봄날, 우리는 다시금 생명의 승리를 선포하는 부활절을 맞이했습니다. 부활은 2천 년 전의 사건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 절망 속에 있는 이들에게 소망을, 갈등 속에 있는 이들에게 화해를 주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능력입니다. 특히 올해 부활절은 우리 양산에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137년 전 호주 선교사들의 뜨거운 사랑으로 시작된 경남 선교의 역사가 이 땅에 흐르고 있으며, 올해로 양산 복음화 120년을 맞이하는 영광스러운 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양산은 120년 전 복음의 씨앗이 심긴 이래 기도로 일궈온 '영적 생명의 땅'입니다. 호주에서 온 손안로(Andrew Adamson) 선교사가 복음의 초석을 놓았고,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기수였던 주기철 목사님께서 첫 사역의 열정을 불태우며 순교 신앙의 뿌리를 내린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이제 우리는 선교사들의 헌신과 순교자들의 절개가 흐르는 이 땅에서, 그 소중한 신앙을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계승해야 할 사명 앞에 서 있습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 자녀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선조들의 신앙을 이어받고, 이 시대를 이끌어갈 진정한 영적 리더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부활의 빛으로 양산의 가정을 회복시키고, 우리 아이들이 꿈꾸는 학교와 일터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가득하게 합시다. 양산 복음화 120년의 역사가 과거의 기록을 넘어 다음 세대의 가슴 속에 뜨거운 불꽃으로 타오를 때, 양산은 진정한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이번 부활절을 기점으로 양산의 모든 교회가 세대를 초월하여 복음 안에서 하나 되고, 시민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희망의 등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부활하셨습니다! 양산에 생명의 꽃이 피어납니다! 2026년 부활절에 양산시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손용락 목사
-
- 오피니언
- 기타
-
[부활절 메시지] 양산기연 손용락 목사
-
-
[최성은 목사] 양심을 따라 섬기는 사명자 (행 23:1-11)
- 사도행전 23장은 바울의 인생 가운데 가장 긴박한 순간 중 하나를 보여준다. 3차 전도여행을 마친 바울은 성령의 경고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결국 그는 체포되어 공회 앞에서 심문을 받게 된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바울이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오늘 본문의 핵심이다. 목사와 장로의 자리는 세상이 주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명의 자리이다. 연약한 사람이 그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의 선한 양심에 있다. 바울은 공회 앞에서 “나는 범사의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고백한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음을 의미한다. 양심이란 하나님이 아시는 것처럼 자신을 아는 것이다. 곧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인식이다. 바울은 평생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워 두고 살아왔다. 그러므로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선한 양심을 따라 사는 사역자는 사람의 평가나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과 판단을 기준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선한 양심은 곧 거짓 없는 믿음이며, 사역의 출발점이다. 영적 침체에 빠진 디모데에게 바울이 권면한 것도 바로 이 청결한 양심의 회복이었다. 세상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이 곧 회복이고 부흥이다. 그러나 양심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인간의 양심은 죄와 세상의 영향으로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대제사장을 향해 강하게 말한 후, 그가 대제사장인 것을 알고 즉시 태도를 바꾼 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 때문이었다. 출애굽기의 말씀처럼 지도자를 비방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태도를 바로잡은 것이다. 이 사건은 중요한 원리를 보여준다. 양심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위에 있다는 사실이다. 선한 양심은 말씀에 의해 점검되고 바로 세워져야 한다. 양심을 빌미로 자신의 확신이나 경험, 고집을 따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세상과 타협하여 무뎌진 양심도 문제이지만, 자기 확신으로 굳어진 양심 역시 위험하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개혁주의 신앙의 핵심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복음의 본질을 붙드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죽은 자의 부활로 인해 심문을 받고 있다고 증언한다. 그는 공회 앞에서뿐 아니라 총독과 왕 앞에서도 동일하게 부활을 증거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바울의 사명이었고 그의 존재의 본질이었다. 고린도전서 15장의 고백처럼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복음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다. 바울은 위기의 순간에도 이 복음에 더욱 충실했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지키시고 사명을 이어가게 하셨다. 오늘의 사역 현장 속에서도 동일한 질문이 던져진다. 우리는 복음의 본질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성공이라는 이름 아래 십자가와 부활을 뒤로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사역의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어야 한다. 바울의 삶에는 깊은 밤이 찾아왔다. 육체적 피로와 두려움, 사역의 결과에 대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염려가 겹친 시간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밤에 주님이 찾아오셨다. 주께서는 바울 곁에 서서 담대하라고 말씀하시며, 예루살렘에서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하게 될 것이라는 더 큰 사명을 주셨다. 인생의 가장 어두운 밤에 주님의 위로와 약속이 임했다. 바울이 품고 있던 로마 선교의 비전은 바로 그 밤에 다시 확증되었다. 하나님은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 위로와 격려, 그리고 새로운 비전을 주신다. 오늘 이 기도회 역시 그러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선한 양심을 회복하고, 말씀으로 자신을 점검하며,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를 세우시고,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힘을 주실 것이다. 세상의 인기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 경험이나 고집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가는 삶, 세상적 방법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붙드는 삶이야말로 사명자의 길이다.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인생의 깊은 밤에도 찾아오시는 주님의 위로를 경험하며,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게 될 것이다. ※ 위 설교문은 2026년 4월 2일 고신총회 특별기도회 설교를 정리한 것입니다.
-
- 오피니언
- 설교/강의
-
[최성은 목사] 양심을 따라 섬기는 사명자 (행 23:1-11)
기획 검색결과
-
-
[인터뷰] 기성 경남지방회 남전도연합회 회장 안태환 장로 인터뷰
-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경남지방회 남전도회연합회 제51차 정기총회에서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안태환 장로(김해제일교회)는 연합회 사역의 방향을 ‘말씀과 기도를 중심으로 한 영성 회복’에 두고, 교회와 지역을 섬기는 연합 사역에 힘쓸 뜻을 밝혔다. 안 장로는 “연합회 활동 이전에 지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겸손과 충성의 자세로 교회를 세우고 하나 되게 하는 일에 헌신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또한 전도와 선교, 그리고 연합과 섬김을 통해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는 남전도회가 되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안태환 장로와의 일문일답이다. 1. 소감과 각오 부족한 사람을 이 자리에 세워주신 것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여기며, 그에 따른 깊은 책임감을 느낍니다. 연합회 활동에 대해 다양한 시선이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교회에서의 예배와 섬김, 말씀과 기도의 삶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 갈라디아서 6장 10절의 말씀처럼 먼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본이 되는 삶을 살고, 그 위에 연합회를 섬기는 것이 바른 순서라고 믿습니다. 또한 골로새서 3장 23절의 말씀을 붙들고, 모든 일을 사람에게 하듯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듯 마음을 다해 감당하겠습니다. 앞으로 겸손과 충성으로 연합회를 섬기며 교회를 세우고 하나 되게 하는 일에 힘쓰겠습니다. 2. 남전도회 사역의 방향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역의 방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말씀과 기도를 중심으로 한 영성 회복에 힘써 회원 각자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고, 가정과 교회 안에서 모범적인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둘째, 지역 중심의 전도와 선교를 실천하여 경남 지역 복음화와 교회 부흥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지역 교회와 협력하여 전도 활동을 전개하고, 미자립교회와 국내외 선교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고자 합니다. 셋째, 남전도회 간의 연합과 협력을 강화하여 하나 된 공동체를 이루고, 여전도연합회와의 교류와 소통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섬김과 봉사를 통해 지역사회의 필요에 응답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함으로 교회가 지역사회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 지난 1월 25일 김해제일교회에서 열린 정기총회 3. 남전도회가 감당해야 할 역할은 남전도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와 성도를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먼저, 오는 6월 8일(월)부터 10일(수)까지 김해제일교회(담임목사 김신일)에서 개최되는 평신도 연합 부흥성회의 성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이 집회를 통해 성도들이 말씀과 기도로 새롭게 회복되고, 교회마다 영적 부흥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국외 선교와 국내 미자립교회를 돕는 사역에 힘쓰고자 합니다. 복음이 필요한 곳에 사랑과 섬김으로 나아가며,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는 교회들이 다시 힘을 얻고 세워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국외 선교를 위해 기도해 왔으나 구체적인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반드시 한 선교지를 정하여 실제적인 선교 사역이 이루어지도록 힘쓰겠습니다. 4. 남전도회에 강조하고 싶은 신앙적 사명은? 남전도회연합회가 강조하고자 하는 신앙적 사명은 분명합니다. 첫째, 모든 사역의 출발점은 지교회 중심의 신앙생활로서 예배와 말씀, 기도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따라 평신도 연합 부흥성회를 통해 교회의 영적 회복과 부흥을 이루는 것입니다. 셋째, 국내외 선교와 미자립교회를 섬김으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5. 당부의 말씀 지난달 문경에서 열린 기독교대한성결교회 평신도국 주최 평신도 지도자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매년 이어지는 행사이기에 회장으로서 의무적인 마음으로 참석했지만, 현장에 도착하니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함께하고 있었고, 집회 내내 열정과 은혜가 넘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프로그램이 화려하지 않더라도, 각 사람이 기쁨으로 참여하고 지지하는 마음이 모일 때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작은 순종과 참여가 모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큰 은혜로 이어진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남전도회연합회도 이러한 마음으로 작은 것에 순종하며 충성하고 협력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김현주 대표
-
- 기획
- 인터뷰
-
[인터뷰] 기성 경남지방회 남전도연합회 회장 안태환 장로 인터뷰
-
-
[황권철 목사] 교회순방: 산남교회(45)
- 산남교회(이명자 전도사)는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봉강가술로 211-15에 있다. 고신교회(교단) 설립 50주년 화보에 의하면 1965년 3월 27일에 경남 의창군 김정달씨 마당에서 김종인 전도사 부부와 부산 부평교회 고 강봉수 집사와 마산제일교회 성도들이 첫 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되었다. 현재 교회당은 1983년에 30평 규모로 건축하여 헌당했다. 교역자로는 1985년도에 권혁수 강도사가 부임하여 목사로 안수받아 사역하였고, 1988년 최종수 목사가, 1990년 이성호 강도사가 부임하여 목사 안수받고 섬겼고, 1992년 박재한 강도사가, 1998년 조인호 목사가 부임하여 시무했다. 2003년부터 윤태순 전도사 시무하다가 은퇴하고 2017년부터 이명자 전도사가 현재까지 시무하고 있다. 이 교회는 은퇴하신 윤태순 전도사가 은퇴하고 현재 사역하는 이명자 전도사는 윤 전도사의 따님이다. 이 전도사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이 교회를 잘 섬기고 있다. 이 전도사의 남편은 최봉식 목사인데 브니엘 신학을 하여 안수받아 경남(법통)노회 소속은 아니므로 당회와 시찰회의 허락으로 주일 강단과 말씀 사역을 아내를 대신하여 수종 들고 있다. 창원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지역이지만 성도들이 교회를 잘 섬기고 있었다. 윤 전도사님이 오랫동안 교회를 섬겨 왔고 양무리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있어 교회가 영적으로 훈훈한 생기의 영이 넘치고 있었다. 금주 주신 말씀은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수 14:6-15)이다. 사람이 칭찬을 들으면 자존감이 높아진다. 사람은 나이를 불문하고 칭찬하고 칭찬받으면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칭찬은 사람에게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도 칭찬한다. 동물들 가운데 가축으로 사랑받는 진돗개는 특별히 주인에게 충성을 다 한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인 캔 블랜차드가 2003년에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 책을 써 베스트 셀러에 오른 적이 있다. 사람이 칭찬하다 보면 장점이 크게 보이고 단점이 점점 작아져 사라지게 된다. 특별히 성도들은 주의 이름으로 칭찬하면 영이 강건해진다. 오늘 본문에 갈렙은 출애굽 당시 45세였는데 40년이 지나 85세가 되었는데도 그때와 여전한 건강을 가지고 여호수아에게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했다. 하나님은 갈렙의 어떤 점을 보고 칭찬하셨는가? 먼저, 그의 성실한 마음을 보고 칭찬했다. “내 나이 사십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7) 하나님은 갈렙의 성실한 마음을 보고 칭찬하였다. 하나님은 갈렙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언약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을 보고 칭찬하셨다. 신앙인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살아야 한다. 여기 성실한 마음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남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갈렙을 보고 칭찬하기를 내 종 갈렙은 다른 정탐군과 다르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온전히 따랐다. 그래서 결국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민 14:24). 바울은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원망하다가 죽임을 당했다(고전 10:10). 했다. 하나님은 성실하심으로 오래 참으시고 그의 언약을 지키는 성도를 칭찬하신다. 다음, 진실한 마음으로 따르는 충성된 자를 칭찬하신다. “그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세로되”(9-10) 하나님은 갈렙의 충성됨을 보시고 칭찬하였다. 그가 85세가 되었어도 이전과 전혀 다름없는 충성심이다. 다시 말해 충성에는 나이가 문제 되지 않는다. 충성의 정도는 작을 수 있으나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감당하면 된다. 하나님은 물량의 수치를 보지 않는다. 달란트 비유에서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의 칭찬이 같다. 시편 기자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야웨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다(시 150편).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고난의 풀무 불 속에서 단련하신다(사 48:10). 바울은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이 충성이라고 했다(고전 4:2) 요한은 죽도록 충성하라고 한다(계 2:10). 하나님의 사랑과 칭찬이 언약 백성들을 더욱 견고하게 하신다. 마지막,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따르는 자를 칭찬하신다. “헤브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14) 갈렙은 하나님을 온전히 따랐다. 그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믿었다. 지금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은 앞으로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었다. 끝까지 온전히 변함없이 섬겼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면 그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따라야 한다. 초기 한국교회 사역한 루비 켄드릭(1883~1908) 여자 선교사는 내한 9개월 만에 순직한 선교사이다. 그녀는 1907년 9월 24세의 나이로 텍사스 남 감리회에서 파송 받아 한국에 왔다. 그녀는 1908년 급성 맹장염에 걸려 수술 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때가 꽃다운 나이 25세였다. 그녀의 조선에 대한 사랑을 뒤로하고 시신은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모 교회인 텍사스 청년들에게 “열 명씩, 이십 명씩, 오십 명씩 함께 조선에 복음을 전하러 오라”는 편지를 보냈다. 또한 “만약 내게 줄 수 있는 천 개의 목숨이 있다면 모두 조선을 위해 바치겠다.” 그녀의 부모님께 보낸 편지에 기록되어 있다. 켄드릭은 끝까지 주님의 언약을 따른 선교사이다. 오늘은 경남(법통)노회 순방교회 45번째로 산남교회를 찾았다. 창원시에서 변두리 지역에 있기에 조금 일찍 서둘러 갔다. 예배 시간 15분 전에 도착하여 기도하고 있으니 팔순에 가까운 분이 찾아와서 인사를 한다. 아마 앞서 사역한 윤태순 전도사인 것으로 보여 “윤 전도사님이지요”하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제 이름을 밝혀 소개하니 이미 신문 지상으로 보아서 알고 있었다. 이제 은퇴하고 고려파교회연구소 사역으로 노회 산하 교회를 순회 방문차 왔다고 하니 너무도 반갑게 맞이했다. 이명자 전도사님은 따님이시고 말씀을 선포하는 최봉식 목사님은 사위 되신 분이라고 했다. 최 목사는 고신대학교 선교언어학과 졸업하고 브니엘에서 신학을 하여 브니엘 소속으로 있으면서 장모님과 아내를 도와 본 교회 말씀 사역에 수종 들고 있었다. 오늘 주신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으며 축도까지 부탁하였다. 예배를 마치고 예배실에 식판을 펴서 가족처럼 둘러앉아 식사의 교제를 나누었다. 마치 옛 고향 모 교회를 방문한 것처럼 너무도 따뜻하게 반겨 주시며 돌아오는 길에 감과 동초 나물까지 챙겨 주어 친정의 어머니같이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모습이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교회당에서 걸어 도로변까지 나와서 배웅하기에 아쉬움을 남기고 오후 병원 선교 사역을 위해 마산 메트로병원으로 향하였다. . 2024년 11월 24일 주일 오전 11시 예배 고려파교회연구소장 교육학박사 황권철 목사(밀알교회 원로)
-
- 기획
- 교회탐방
-
[황권철 목사] 교회순방: 산남교회(45)
-
-
[특별기획] 기독문화유산을 지키자(6)
- 창원특례시 합포구 진동 호주선교사 마산공원묘지에는 8분의 호주선교사 발자취가 있다. 이 중 경남지역에서 온몸으로 선교활동에 헌신하다 소천할 때 비석을 세우고 공덕을 기록한 세 분이 있다. 지난번에 다룬 맥피 선교사, 그리고 이번 호에 소개하고자 하는 선교사는 G. 네피아 선교사의 묘비이다. 그리고 한 분은 진주 성남교회를 설립한 목회자 아더 윌리엄 선교사의 묘비이다. 먼저 G. 네피아 선교사는 한국명 남성진(南性眞)으로, 1912년부터 1936년까지 주로 진주지역에서 기독교병원 배돈병원에서 헌신적으로 간호선교사로 활동했다. 네피아 선교사는 1872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출생했다. 잠시 교사로 활동하다 에든버러 간호학교에서 간호학을 공부하고, 호주장로회 선교사로 1912년 12월 12일 내한했다. 입국 후 처음 마산지역에서 복음전도활동을 하면서 모자 건강을 위한 진료소를 운영했다. 이후 진주지역으로 옮겨 호주장로교 선교사가 세운 배돈병원 간호부장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배돈병원은 환자 진료뿐 아니라 간호사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당시 간호는 남성들이 중심이었고 여성 간호사는 천박한 직업으로 멸시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점차 시간이 지나 간호사 양성소를 거친 여성 간호사가 생겨났다. 여기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남아 있다. 1820년 가을 통영에 콜레라가 유행했다. 긴급히 예방을 위해 남자 간호사를 양성하여 이들이 주사를 놓게 되었는데,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주사 맞기를 거절했다고 한다. 이에 여성 간호사 양성의 시급함이 대두되어 많은 여성 간호사들이 양육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여성 간호사를 양성하는 데 네피아 선교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간호정신을 강조하면서 교육했다. 그리고 네피아 선교사는 백인의 여성으로서 한국인들에게 헌신적인 간호의 섬김을 실천했다. 네피아 선교사는 진주 배돈병원에서 간호부장으로 25년간 봉직하면서 유아복지사업에도 힘을 쏟았다. 모유가 부족한 산모들에게 콩가루, 미숫가루 등으로 모유 대체물을 개발하여 체계적으로 산모와 아기에게 도움이 되도록 했다. 배돈병원에서의 이러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국으로 알려졌으며, 당시 조선일보에 ‘칭송 자자한 진주 培敦病院(배돈병원)’이라는 제목으로 돈이 없어 약을 못 먹는 환자를 무료로 입원시켜 치료하고, 의령군 가례면 대천리 백재관 씨가 중병에 걸려 생명이 위독했으나 개복수술로 소생했다는 미담이 기사로 실리기도 했다. 네피아 선교사는 마산과 주로 진주 등지에서 평생 독신으로 환자를 돌보다 1936년 8월 29일, 64세의 일기로 소천하여 진주시 평거동 묘지에 묻혔다. 그런데 이 묘지가 도시화로 멸실되면서 산청군 시천면 덕산교회 이호준 목사의 주도로 1992년 6월 9일 산청군 시천면으로 이장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2일 호주선교 대표 존 브라운 목사 집례로 이장 추모예배를 드렸다. 네피아 선교사의 묘비는 소천 후 진주에서 장례를 치를 때 세워졌다. 당시 묘비에 새긴 글은 지금까지도 큰 울림을 준다. "호주 장로교 선교사로서 진주 배돈병원에서 사랑의 봉사를 하다 1936년에 천국에 가시어 이곳에 안장되다." 이 묘비는 지금부터 90년 전에 세워져 귀한 헌신을 새겨 두고 있다. 묘비 글자는 퇴색되었지만 우리에게 큰 울림이 되고 있다. 국가적 유산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후 2005년 창신대학 강병도 장로(창신대학장) 주도로 네피아 선교사를 비롯한 8명의 호주선교사 순교기념사업이 진행되었다. 네피아 선교사의 묘비와 유해는 2009년 9월 산청에서 마산 호주선교사 묘원으로 이장되어 안장되었다. (네피아 선교사의 묘비 자료는 기독역사학자 박시영 목사의 연구자료에 근거함) 글. 박동철 장로(서머나교회 은퇴) 자문 이상규 백석대 석좌교수 박시영 부경기독교역사연구회회장
-
- 뉴스
- 종합
-
[특별기획] 기독문화유산을 지키자(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