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연월일 2026-04-20(월)
 
  • 김요한 목사의 를 통한 신학적 정밀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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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길 목사(고신애국지도자연합 전문위원장)

필자가 최근 손봉호 교수의 윤리적·정치적 좌경화에 관한 비판 글을 기고하자, 침례교 김요한 목사가 소논문 <손봉호 이단 정체>라는 글을 보내왔다. 이 논문은 손 교수를 이단으로 단호하게 규정하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을 손봉호 교수를 이단으로까지 성급하게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의 주장 속에 숨어있는 이단적 요소들이 우리 성도들의 신앙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지 경계하고자 이 글을 쓴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손 교수의 편향된 정치 행보나 선택적 윤리에 대해서만 비판했을 뿐, 그의 신학적 뿌리까지는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러나 열매는 그 뿌리에서 결정되듯, 손봉호의 위험한 행보 역시 결국 그의 신학적 토양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다. 필자는 손 교수가 전면에 내세운 윤리가 어떻게 성경적 복음을 훼손하고 있는지, 김 목사의 분석을 빌려 그 실체를 손 교수의 워딩을 따라 밝히고자 한다.

 

1. 계시론: 성경의 권위를 윤리라는 잣대 아래 굴복시키다

 

정통 개혁주의 신학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자기계시이며 모든 판단의 최종 규범이다. 그러나 손봉호는 성경의 권위를 인간의 윤리적 판단 아래 종속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결코 신의 영역(본체계)을 깨달을 수 없다는 칸트적 합리주의의 전형이다.

 

손봉호 :성경에 기록된 문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지향하는 윤리적 정신이다. 문자적인 순종보다는 그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참된 신앙이다.” (출처: 손봉호 저, 현대 사회와 기독교 윤리, CUUP, 2010년판)

 

손봉호 :성경 말씀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현대 사회의 보편적 상식과 윤리에 부합할 때 비로소 현대인들에게 그 권위가 살아나고 설득력을 얻게 된다.” (출처: 2012년 기윤실 주최 강연 기독교 윤리 실천의 시대적 과제중 발췌)

 

[비평]:이는 성경의 무오성과 절대 권위를 흔드는 행위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상식을 심판하는 기준이지, 세상 상식에 의해 검증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만약 성경이 인간의 상식에 맞을 때만 권위를 갖는다면, 죽은 자가 살아나고 동정녀가 출산하는 성경의 신비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결국 손 교수는 성경을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만족을 위해 적당히 골라 읽는 도덕 지침서로 격하시키고 있다. 이는 계시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한낱 수양 종교로 변질시키는 위험한 시도이며, 성경을 인간의 이성이라는 작은 상자 안에 가두려는 인본주의적 발상이다.

 

2. 구원론: 복음의 유일성을 윤리적 행위로 대체하는 위험

 

기독교 구원의 핵심은 오직 은혜, 오직 믿음(Sola Fide)이다. 그러나 손봉호의 신학 체계 안에서는 믿음보다 윤리적 실천이 구원의 징표나 조건처럼 강조된다. 이는 기독교 윤리의 본질인 '말씀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을 인간의 '도덕적 윤리'로 치환함으로써, 오직 은혜로 얻는 구원의 도리를 인본주의적 행위론으로 변질시키는 신학적 오류가 되고 만다.

 

손봉호 :예수 믿는다는 입술의 고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직하게 세금을 내고 교통법규를 지키는 것과 같은 아주 기초적인 윤리적 삶이다. 이것이 없는 신앙은 허구다.” (출처: 2014CBS 강연 및 기윤실 정기 포럼 메시지 요약)

 

손봉호 :윤리적으로 실패한 기독교는 그 자체로 가짜이며, 도덕적 열매가 없는 신앙은 구원의 증거가 될 수 없다. 삶이 뒷받침되지 않는 구원 확신은 자기기만이다.” (출처: 손봉호 저, 기독교 윤리및 관련 논문 한국 교회의 윤리적 부패와 대안)

 

[비평]:윤리적 삶은 구원받은 성도의 마땅한 결과이지, 구원의 본질을 규정하는 열쇠가 아니다. 성경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말씀한다. "도덕적 삶이 신앙고백보다 중요하다"는 논리는 은혜의 복음을 인간의 의지로 대체하려는 현대판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 만약 도덕적 완벽함이 구원의 증거라면, 십자가 옆의 한 편 강도는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다. 손 교수는 성도들에게 복음의 감격보다는 윤리적 채찍을 가함으로써, 기독교를 세상이 박수 치는 도덕적 넓은 길로 변질시키고 있다. 이는 복음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행위라는 가시나무를 심는 것과 다름없다.

 

3. 교회론: 교회를 사회 변혁의 도구로 전락시키다

 

손봉호가 이끄는 기윤실적 교회론은 교회의 영적 사명보다 사회적 공공성을 절대화한다. 그는 교회의 영적 통치권을 세상의 시민 윤리아래 종속시키려 한다.

 

손봉호 :교회는 세상의 신뢰를 얻기 위해 세상이 요구하는 윤리적 기준을 뛰어넘어야 한다. 도덕적 권위를 잃은 교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출처: 손봉호 저, 기독교 윤리 실천의 과제, 홍성사)

 

손봉호 :교회의 공공성이 상실되고 사회에 해를 끼칠 때 교회는 그 존재 가치를 상실한다. 교회는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만 교회다울 수 있다.” (출처: 2015년 기윤실 사회적 책임 포럼 기조 강연 중)

 

[비평]:교회의 본질은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있다.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만 맞추는 교회는 더 이상 세상의 빛이 아니라 세상의 하녀일 뿐이다. 교회가 사회적 유익을 줄 때만 가치가 있다는 논리는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주권을 부정하고 대중의 인기를 주권으로 삼는 인본주의다. 교회는 세상에 아부하는 곳이 아니라,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하늘의 소리를 내는 곳이어야 한다. 손 교수는 교회의 거룩함을 세상의 도덕적 평가 아래 둠으로써, 영적 구원의 방주를 한낱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시민단체로 전락시키고 있다.

 

결론: 윤리라는 이름의 이단적 미혹을 경계하라

 

필자는 손 교수를 이단으로 단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외치는 윤리가 성경의 권위를 누르고, 복음의 핵심인 은혜행위로 대체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를 단호히 경계해야 한다.

김요한 목사가 그를 이단이라 부르며 경종을 울린 것은, 그가 주장하는 윤리가 성경적 진리를 교묘하게 비트는 트로이 목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를 여전히 도덕적 사부로 여기는 40-50대 장년층과 젊은 목회자들은 환상에서 깨어나길 바란다. 윤리가 복음보다 앞설 때, 그것은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다. 우리는 윤리 선생손봉호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최종 권위가 되는 개혁주의 신앙의 기품과 본질을 잃지 말아야 한다.

 

※ 독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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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고4] 손봉호는 ‘윤리 선생’인가, 복음을 해체하는 ‘이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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