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연월일 2026-04-20(월)
 
  • 성경의 초월성을 이성의 한계 안에 가두는 철학적 인본주의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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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길 목사(고신애국지도자연합 전문위원장)

서론: 뿌리가 다르면 열매도 다르다

 

지난 호에서 필자는 손봉호 교수의 신학적 정체성이 정통 개혁주의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왜 그는 그토록 윤리를 신앙의 본질보다 앞세우며 복음을 도덕적 차원으로 격하시키는가? 그 해답은 그의 학문적 모태인 칸트(Immanuel Kant) 철학에 있다. 손 교수는 화란 자유대학교에서 칸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철학자이며, 그의 사고 체계 전반은 칸트의 윤리학과 의무론적 사고방식, 합리주의적 도덕 철학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문제는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는 칸트의 철학이 하나님의 절대 계시를 다루는 기독교 신학과 만날 때, 신앙의 초월성이 파괴되는 비극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1. 칸트의 이성의 한계가 성경의 초월성을 가로막다

 

칸트는 인간의 인식 영역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세계인 '현상계', 신이나 영혼처럼 인간의 감각을 초월한 영역인 본체계(Noumena)’. 칸트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결코 이 본체계를 들여다보거나 깨달을 수 없다는 인식의 장벽을 높이 세웠다. , "하나님은 인간이 온전히 알 수 없는 분이니, 골치 아픈 신앙의 신비나 절대 진리는 제쳐두고 오직 인간의 머리로 이해 가능한 도덕적 실천에만 집중하자"는 논리다.

손봉호 교수는 이러한 칸트적 사고에 갇혀, 하나님의 초월적인 계시인 성경 말씀보다 우리 눈에 보이고 이성으로 납득되는 시대적 대세사회적 합리성을 신앙의 주인으로 모시는 위험한 우를 범하고 있다.

 

손봉호 :동성애 반대 운동이 성경적이라 할지라도, 이미 세계적인 대세가 되어버린 흐름을 거스르기는 어렵다. 교회가 시대적 조류를 읽지 못하면 고립될 뿐이다.” (출처: 손봉호 교수 강연 및 언론 인터뷰 취지 요약)

 

손봉호 :기독교가 아무리 신비한 체험을 강조해도, 그것이 보편적인 도덕적 합리성을 갖추지 못하면 세상을 설득할 수 없다.” (출처: 손봉호, 기독교 윤리강연 중)

 

[비평]:이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성경의 초월성을 시대적 대세라는 세속적 잣대 아래 굴복시키는 신앙적 변절이다. 성경은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손봉호는 대세를 운운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시대적 유행과 타협시키려 한다. 진리는 다수결이나 대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러한 손 교수의 사고방식은 시대정신을 계시보다 앞세우는 자유주의(Liberalism)’의 전형이며, 성경의 절대적 가치를 상대화시키는 세속적 합리주의의 발로다. 그는 칸트의 안경으로 세상을 보느라 하나님의 불붙는 진노와 거룩한 법도를 보지 못하고 있다.

 

2. ‘정언명령복음의 은혜를 대체하는 율법주의적 독소

 

칸트의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란 어떤 조건이나 보상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이 세운 도덕 법칙이기에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무조건적 의무'를 뜻한다. 문제는 이 명령의 주체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이라는 점이다. 손봉호 교수는 이 칸트적 의무론을 기독교에 이식하여, 성도의 삶을 기쁨의 열매가 아닌 엄격한 도덕적 의무 수행으로 변질시켰다.

 

손봉호 :그리스도인이라면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해야 한다. 그것이 기독교의 존재 이유다.” (출처: 손봉호 교수 다수 칼럼)

 

손봉호 :윤리적 실천이 없는 신앙은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세상의 지탄을 받는 교회는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 (출처: 방송 인터뷰 및 대담)

 

[비평]:그리스도인의 정직과 윤리는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즐거이 맺는 성령의 열매이지, 이성적 법칙에 따른 의무적 고행이 아니다. 손 교수는 칸트의 정언명령을 성경의 은혜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복음을 무거운 도덕적 멍에로 바꾸어버렸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은혜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치게 하는 잘못된 가르침이다. 따라서 손봉호의 윤리지상주의는 5세기 교회가 배격했던 펠라기우스(Pelagianism)의 행위 구원론적 망령을 소환하는 것이며, 윤리를 구원의 판단 기준으로 제시함으로써 고신이 수호해 온 이신칭의 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신율법주의(Neonomianism)’와 맥을 같이 한다.

 

3. 도덕적 주체자가 된 인간, 하나님을 조연으로 만들다

 

칸트 철학에서 인간은 스스로 도덕 법칙을 세우는 자율적 주체다. 손봉호 교수의 기독교 윤리 역시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구원의 역동성보다, ‘윤리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의 노력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손봉호 :한국 교회의 문제는 신학의 부재가 아니라 윤리의 부재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바로 서야 교회가 산다.” (출처: 현대 사회와 기독교 윤리)

 

손봉호 :하나님은 우리가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 때 비로소 우리와 함께하신다.” (출처: 기윤실 행사 강연)

 

[비평]:교회의 문제는 윤리의 부재가 아니라 복음의 실종이다. 복음이 사라졌기에 윤리적 열매가 없는 것인데, 손봉호는 선후 관계를 뒤바꿔 인간의 도덕적 개혁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 이는 하나님을 인간의 도덕적 행위에 따라 움직이는 조연으로 격하시키는 오만방자한 발상이다. 인간의 자율성을 극대화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자연주의적 인본주의이며, 기독교를 단지 사회적 유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세속주의 교회론의 결과물이다.

 

결론: 철학의 하녀가 된 인본주의 신학을 거부하라

 

손봉호 교수의 윤리 운동 이면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칸트의 이성을, 그리스도의 은혜보다 인간의 도덕적 의무를 앞세우는 위험한 철학적 기반이 자리 잡고 있다. 신학이 철학의 하녀가 될 때, 복음은 생명력을 잃고 도덕 교과서로 전락한다.

손 교수가 말하는 하나님은 칸트의 이성의 한계속에 박제된 무력한 신에 불과하다. 고신 총회와 한국 교회는 이제 손 교수의 율법 선생질 하는 철학적 미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의 이성이나 상식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 앞에 무릎 꿇고, 행위가 아닌 오직 은혜로 얻는 구원의 감격을 회복해야 한다. 사람이 구원 받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고 성화되어 가는 것은 손봉호식 윤리적 실천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과 부활의 능력, 거듭나게 하시고 충만케 하시는 성령님과 말씀의 능력 때문임을 다시 한번 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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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고5] 손봉호의 신학적 이탈, 그 뿌리는 ‘칸트적 합리주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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