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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희완 목사] 이것이 불효 (신21:18-21)
    우리나라는 옛날 조선시대부터 자주 사면령(赦免令)을 내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나라에 가뭄이나 홍수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나거나, 왕실의 주요 인물이 병에 걸릴 경우,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는 사람의 원한이 하늘에 사무쳐서 재앙이 발생한다는 생각 때문에 사면령을 내렸습니다. 특히 새로운 왕이 즉위를 할 때는 광범위하게 죄를 용서하는 대 사면령이 시행되었습니다. 단 살인, 강도, 강간 같은 인륜에 관련된 죄는 사면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살인이나 강도나 강간 같은 죄가 아니면서도 사면 대상에서 무조건 제외되는 죄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부모를 구타하거나 부모에게 폭언을 일삼는 죄였습니다. 특히 부모를 구타하거나 부모에게 욕을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참형(斬刑;목을 베는 형벌)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과거 조선시대 대왕 실록에 의하면 실제로 부모를 구타하거나 부모에게 욕을 하다가 참수형에 처한 사례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자기 부모를 구타하거나 욕하는 행위는 용서 받을 수가 없는 중대한 죄로 여긴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때 오늘 이 시대에 참수형에 처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 부모를 구타하는 자식들이 많이 있습니다. 서울시 중고등학생들 547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약 1/4에 해당하는 130여명이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가하면 자기 부모를 굶겨서 죽이는 자식들이 있고, 또 자기 부모를 제주도나 해외여행을 시켜 준다고 속여서 데리고 가서는 버리는 천벌을 받을 자식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모는 단지 우릴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위치에 있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부모에게 불효를 해서는 안 됩니다. 첫째로,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것이 불효입니다.(신21:18) 둘째로, 부모를 업신여기는 것이 불효입니다.(겔22:7) 셋째로, 부모를 근심케 하는 것이 불효입니다.(잠17:21,25) 모두 부모님께 효도해서 복을 받아 누리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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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2024-02-23
  • [황권철 목사] 유다 다대오(Jude Thaddaeus'Behind Stories)-동역의 사도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요14:22). 성경에 유다란 이름을 가진 자가 많으나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은 세 명이었다.  첫째, 예수의 동생 유다이다.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마13:55). 그는 초기에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았다. 예수님과 한 형제이지만, 같은 배에서 나왔으나 씨가 다른 형제였다. 그가 어린 시절에는 형 예수에 대해 잘 몰랐다. 그래서 예수님이 공생애를 위해 집을 나갔을 때 많은 박해를 했다. 그러다가 부활하신 후에 형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믿었고 비록 사도는 아니었지만 명분상 사도적 반열에 참여하여 예수가 메시야라는 언약의 복음 유다서를 기록했다.  둘째, 예수를 판 가룟 유다이다. 복음서 기자들은 유다의 이름 앞에 꼭 붙이는 한 단어가 있는데 예수를 판 자 라는 말이다.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마10:4),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막3:19),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눅6:16). 요한은 가룟인 아닌 유다가 라고 하였다(요14:22). 가룟 유다는 이 땅에서 가장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남긴 불행한 자였다.  마지막 셋째, 본문에 나오는 다대오 유다이다. 마태와 마가는 다대오라고 불렀다. 요한은 왜 유다를 가룟이 아닌 유다라고 불렀을까? 신약성경이 쓰여 질 때 예수를 판 가룟 유다 때문에 유다란 치욕스러운 이름이 되어 버렸다. 그 이전 구약에서 유다 이름의 뜻은 찬송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자들이 유다라는 이름으로 불러지기를 좋아했다. 예수님도 유다의 가문을 통해서 오셨다. 그러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판 이후로 유다란 이름은 치욕스러운 이름이 되어 버렸다. 그 이후로 아무도 유다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당시 그 이름을 가진 자들도 가룟 유다와 구별하여 불렀다. 다대오 유다는 시몬과 함께 열심당원이었다.   주님의 고민에 동참한 다대오    주님의 구원사역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제자들도 주님의 죽으심을 잘 모르고 있다. 그래서 주님은 그의 괴로운 심정의 비밀을 토로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요13:21). 이제 주님이 마지막 십자가 지실 사실을 말씀하셨다. 이것이 너무도 가슴 아픈 심령의 괴로움이었다. 물론 십자가 지는 육체적인 고통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이지만 그보다 더 큰 아픔과 괴로움은 이 사실을 곁에 있는 제자들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일은 외부에서 일어날 일이 아니고 조직 내에서 반역자가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개적으로 떠벌려 말하기도 곤란하여 지금까지 미루어 왔던 것이다.  이젠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이 사실을 말씀하셨다. 할 수 없이 조직 내에 반란자가 있음을 애기했다.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 이는 제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삼년 동안 훈련하여 준비해 왔는데 그것도 외부에서가 아닌 조직 내에서 반동분자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앞으로 조직의 붕괴마저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떠나가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신이 떠난 이후 제자들이 서로 분쟁하여 붕괴될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이 더욱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것은 제자들 상호간에 불신을 조장하는 공동체의 마비현상이 생길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요13:22). 당장에 이 같은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그때 성미 급한 베드로가 단호하게 말했다.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요13:24). 그는 분노하여 누가 감히 그런 일을 꾸미느냐 하고 분개했다. 그때 가룟 유다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 “내가 떡 한 조작을 적셔서 주는 자가 그니라”고 하시면서 가룟 유다에게 주셨다. 유다는 그때가 회개 할 절호의 기회였으나 오히려 괴심한 생각을 품어 주님을 팔 생각을 했다. 그때 사단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곳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요13:27). 유다는 그 조각을 받고 나간 그날이 영원한 밤이었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요13:30). 다대오 유다는 이 같은 주님의 아픈 마음을 다 헤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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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28
  • 바이블큐티[황권철 목사] 전도에 불을 붙이라
    교회는 전도함으로 존재한다 호주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소녀가 골수염으로 두 다리를 자르게 되었는데 병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손으로 옮겨져 두 손까지 자르게 되었다. 겨우 생명은 건졌으나 죽은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두 팔과 두 다리를 잃어 몸통만 남게 된 그는 남의 도움이 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죽고 싶으나 죽을 수도 없었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비참한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그 소녀가 복음을 받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후 새로운 생명력이 움트기 시작했다. 생명이 있는 동안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전도편지를 쓰기로 결심했다. 그 날부터 그녀는 팔뚝에 연필을 매어 글쓰기를 연습했다. 피나는 연습 끝에 누워서 편지 쓰는 법을 배웠다. 그때부터 그녀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시작으로 감사편지를 쓰게 되었다. 교회에 출석하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예배에 참석하도록 복음편지를 썼다. 온 몸을 다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쓴 편지에 감동받은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마가복음 6장을 함께 읽고 묵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본문은 주님이 하신 갈릴리갈릴리 전도사역을 통해서 사명자의 전도훈련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특별히 본문은 다양한 삶의 환경에서 전도자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고향에서 선지자의 사명 예수님이 자신의 고향인 나사렛에 갔다. 이전에 자신을 잡아가려 하던 자들이 이젠 많이 변한 것 같다. 아마 버린 자식으로 체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때 주님을 따랐던 열두 제자들도 동행했다. 어찌 보면 이들은 패거리 건달과 비슷했다. 이들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바로 그곳에는 그의 친동생들과 나사렛 주변 사람들이 와 있어 그의 가르침과 권능을 보고 심히 놀랐다. 그때 그 동네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바로 목수 집안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그 동생들이 지금 우리와 함께 있는데 어디서 저런 권능을 행하느냐고 했다. 그때 주님이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선지자가 고향과 친척과 자기 집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왜 선지자가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하는가? 첫째, 혈통적인 뿌리 때문이다. 고향이란 핏줄로 얽혀진 공동체이다. 나의 핏줄이고 집안이고 친척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선지자를 나와 동일시함으로 존경심이 사라진다. 그래서 주님은 구원이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둘째,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전통이 강하게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다. 변화를 통해서 그 동안 쌓아 놓은 기득권을 상실하기 때문에 수하에 어리고 젊은 자를 선지자로 모신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다. 셋째, 유대의 율법적인 전통 때문이다. 유대 사회에서 율법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일은 서기관이나 율법학자들의 몫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예수가 성전에서 율법을 가르치는데 그 권능이 서기관들과 비교할 수 없으니 주님을 더욱 시기했다. 그래서 주님은 그곳을 떠나 갈릴리 여러 촌으로 두루 다니면서 천국복음을 전파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기억할 사실이 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가정의 복음화가 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자에게 가장 큰 선물로 주신 것이 가정 구원의 사명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세상을 향한 전도의 사명 주님은 제자들을 불러서 둘씩 둘씩 전도하러 보냈다. 먼저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들린 자를 내어 쫓는 권세를 주셨다. 우리는 영혼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복음을 들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 시대에도 그러하지만 주님이 오셨던 그 시대에는 특별히 더러운 귀신 들린 자들이 너무 많았다. 메시야가 직접 이 땅에 오셨으니 사단 권세가 발악했다. 그래서 주님은 가는 곳마다 귀신 들린 자들을 온전케 하셨다. 그러면서 주님은 전도자가 금해야 할 몇 가지를 당부했다. 양식과 돈, 그리고 두벌 옷이다. 이것은 나그네에게 의식주의 대용품으로 여행자로서 반드시 지참해야 할 최소한의 생활필수품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것을 금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전도자는 이미 주님께 부름 받은 자로서 소속과 신분이 다른 자이다. 하나님은 구약에 레위 지파에게 땅의 기업을 주지 않았다. 군사로 부름을 받은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적절히 공급해 주신다. 바울은 전도 여행을 통해서 수 없이 많은 이 같은 사례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면 전도자가 명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여기에 대하여는 마태가 보다 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 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첫째, 성에서 복음의 합당한 자를 찾는 일이다. 다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지만 충성된 사명자가 있다. 전도자는 충성된 청지기를 먼저 찾아야 한다. 둘째, 어느 집이나 성으로 들어가면서 먼저 평안을 빌라. 그들이 그것을 받기에 합당하면 은혜를 입어서 다시 베풀 것이요 거절하면 그 평안이 자신에게로 돌아와 성령의 도우시는 위로를 받게 된다. 셋째, 거절할 때는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라. 그 성이나 집이 복음을 받지 않으면 그 곳을 떠날 때 발에 먼지를 떨어버려 심판 때에 증거를 삼으라고 했다. 주님은 전도자가 금해야 할 몇 가지를 당부했다. 양식과 돈, 그리고 두벌 옷이다. 이것은 나그네에게 의식주의 대용품으로 여행자로서 반드시 지참해야 할 최소한의 생활필수품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것을 금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전도자는 이미 주님께 부름 받은 자로서 소속과 신분이 다른 자이다. 하나님은 구약에 레위 지파에게 땅의 기업을 주지 않았다. 군사로 부름을 받은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적절히 공급해 주신다. 바울은 전도 여행을 통해서 수 없이 많은 이 같은 사례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면 전도자가 명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여기에 대하여는 마태가 보다 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마10:11-14) 첫째, 성에서 복음의 합당한 자를 찾는 일이다. 다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지만 충성된 사명자가 있다. 전도자는 충성된 청지기를 먼저 찾아야 한다. 둘째, 어느 집이나 성으로 들어가면서 먼저 평안을 빌라. 그들이 그것을 받기에 합당하면 은혜를 입어서 다시 베풀 것이요 거절하면 그 평안이 자신에게로 돌아와 성령의 도우시는 위로를 받게 된다. 셋째, 거절할 때는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라. 그 성이나 집이 복음을 받지 않으면 그 곳을 떠날 때 발에 먼지를 떨어버려 심판 때에 증거를 삼으라고 했다. 악한 세력 앞에서 순교의 사명 주님이 갈릴리 각 지역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며 능력을 행하시니 헤롯 왕가에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서 왔다고 했다. 이 사실이 헤롯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래서 헤롯은 필요 이상의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헤롯이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베인 요한 그가 살아났다”. 이것이 범죄한 죄인에게 고발하는 선한 양심의 소리이다. 세례 요한은 비록 짧게 살고 비참한 죽음을 죽었으나 가장 값지고 고귀한 삶을 살았다. 우리는 순교자 세례 요한을 통해서 전도자의 사명을 배우게 된다. 첫째, 그는 광야의 소리로 살았다. 그는 당시 세속적으로 누릴 수 있는 아주 좋은 가문에 태어나 출세할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을 타고났다. 그러나 그는 지명예루살렘예루살렘 성과 성전과 율법적인 권위를 버리고 광야의 소리로 복음을 위해 이슬로 사라졌다. 둘째,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이다. 광야는 도시와 같이 길이 있는 곳이 아니다. 누가 만들기 전에는 걸어갈 수 없는 너무도 불편한 곳이다. 그는 주님을 위하여 친히 이 길을 닦았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헤롯 왕들은 주님의 길을 막는 세력들이다. 이런 자들과 싸워서 주님의 길을 평탄케 하셨다. 셋째, 그는 주님만이 흥하기를 소원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 한 마디가 세례 요한의 신앙과 생활의 고백이다. 우리는 이 시대의 사명자로 세례 요한의 고백을 배워서 우리도 이런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양 무리를 위한 긍휼의 사명 먼저 제자들은 전도의 현장에서 돌아와 주님께 사역의 보고를 한다. 보고를 받고 주님은 얼마간 쉼을 얻기 위해서 한적한 곳으로 가게 했다. 그런데 무리들이 먼저 알고 모든 고을에서 걸어서 앞서 가셨다. 주님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오병이어로 장정만 오천 명을 먹였다. 이 사건은 너무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복음서 기자가 한 분도 빠트림이 없이 다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한 영적 비밀한 계시가 무엇인가? 이 사건이 구원사역에서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첫째, 무리를 불쌍히 여기는 목자의 마음이다. 주님은 이들의 영적 목마름을 보셨다.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들이라고 했다. 헤롯이나 가이사 황제나 당시 대제사장들은 그들의 진정한 목자가 아니다. 그들은 양 무리의 피를 빨아먹는 이리와 같은 자들이다. 주님은 그들의 목자로 오셔서 그들만이 먹을 수 있는 비유로 천국의 비밀을 말씀해 주셨다. 둘째, 오병이어의 헌신이다. 이를 주님에게로 가져온 자는 어른도 아닌 어린 아이였다.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질병에서 치유함을 받았으나 정작 주님이 요구하실 때 헌신하는 무리는 없었다. 이 소년이 바친 오병이어는 그가 받은 은혜일뿐 아니라 그의 신앙고백이었다. 자신의 손에서는 오병이어이지만 주님의 손에서는 200데나리온 보다 더 풍성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셋째, 온전한 순종이다. 때가 저물고 빈들이라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나가면 반드시 기적은 일어난다. 오병이어를 주님에게 가져간 제자는 계산에 능한 빌립이 아니라 어리석게 보이는 안드레였다. 사역자의 제일가는 사명은 온전한 순종이다. 마지막 넷째, 다 배불리 먹이심이다. 주님이 베푼 잔치에는 모자람이 없다. 연회장에 준비된 가나 혼인잔치에는 포도주가 떨어졌으나 주님이 계신 곳에는 넉넉함이 있다. 모든 무리가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작이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셨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바구니에 ‘차게’거두었으며 라고 하심은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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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24
  • 바이블 큐티[황권철 목사] 주님은 식사할 겨를도 없었다
    또 산에 오르사 주님은 구원역사를 위해서 어떤 구체적인 방법을 사용하셨는가? 주님은 지상교회를 세우시고 가장 본질적인 목양 사역으로서 제자훈련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막3:13-16) 그렇다면 제자훈련의 목적은 무엇인가? 첫째, 자신과 함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제자훈련은 지식을 전달하는 단순한 학습훈련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변화를 주는 인격적 사역훈련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과 같이 있으면서 24시간 주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대로 보고 생활 속에서 삶을 배우는 인격훈련이었다. 세인들처럼 삶을 베일에 가려 놓고 교안만 가져와서 세미나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생활하면서 앞장서서 본을 보이는 모범적인 삶이었다. 둘째, 세상을 향한 파송이다. 오늘날 교회는 부르는 초청에는 관심이 많으나 세상을 향해 내어 보내는 파송에는 너무도 인색하다. 이제 우리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처 땅 끝까지 가야 한다. 목숨을 요구하는 사역의 현장에라도 가야한다. 이것이 전도자의 사명이다. 주님은 하늘보좌를 버리고 이곳까지 오셨다. 셋째, 귀신들을 내어 좇는 권세이다. 주님은 우리를 보내실 때에 거저 보내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어서 보내셨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주님은 우리에게 사단의 권세를 제압하는 능력을 주어서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자로 나아가면 사단의 권세가 우리 앞에 굴복하게 된다. 집에 들어가시니 마지막으로 이제 주님은 하산하여 어느 집으로 들어가셨다. 주님이 어디를 가든지 가는 곳마다 무리들이 모여 들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들은 주님을 체포하러 온 무리들이 있었다. 이들은 다름 아닌 주님의 친족들이다. 이들은 주님을 알기로 가정을 버리고 방랑자처럼 떠돌아다니는 미친 자로 알았다. 사실 주님의 구원사역이 얼마나 외롭고 고달픈 길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사명자의 길은 이처럼 외로운 것이다. 주님이 전도현장에서 받은 몇 가지 아픔들은 어떠했는가? 첫째, 무리들에 의한 쉼 없는 사역이다.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식사할 틈이 없을 정도로 분주한 사역이니 한 순간도 쉴 틈이 없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제자로서 목양 사역에 수종을 들다보면 때로는 밤과 낮의 구분이 안 될 때가 많다. 둘째, 친족들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다.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막3:21)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 그리고 가까운 친척들이 주님을 데리려 왔다. 요셉이 일찍 세상을 떠난 때 집안의 장남인 주님이 공생애 사역으로 전도하려 나오니 이를 이해하지 못한 동생들과 친족들이 예수를 미쳤다고 오해했다. 그러나 주님은 거룩한 구원사역을 혈육의 정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다. 셋째, 성령을 훼방하는 사역이다. 주님이 이 본문에서 말씀하신 성령 훼방 죄가 무엇인가? 지금 더러운 귀신이 주님을 보는 순간에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됨을 고백하고 떠나간다. 그런데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도 잘 아는 서기관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단의 사역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거룩한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므로 이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라고 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서기관들의 잘못이 우리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을 때가 많다. 아무리 하나님의 아름답고 큰 역사라도 나와 좋은 관계에 있지 아니한 자가 행한 것이면 비판하고 정죄하여 사단의 역사로 몰아붙이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을 훼방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지체와 동역자들의 거룩한 사역을 칭찬하고 격려하고 협력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의 형제와 자매 본 문단은 앞 문단과 연결되어 있다. 20-21절에서 예수의 가족이 등장한다. 그들은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들 듣고 예수를 잡으러 가버나움으로 향했다. 예수를 오해한 혈통적인 가족들이 서기관과 바알세불 논쟁을 벌이고 있는 현장에 나타났다. 그때 무리들 중에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당신을 찾는다고 했다. 주님은 자신을 찾는 가족들을 향해 참 가족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어떤 분이 가족이란 영어 단어 이니셜을 따서 이렇게 풀이 했다. “아빠 엄마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성경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주님은 구약의 율법을 사랑이란 새 계명 하나로 다 이루셨다. 십자가는 사랑의 결정체이다. 주님은 십자가라는 고통의 쓴 잔을 앞에 높고 자신의 의지가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소원했다. 저자의 허락에 의해 일부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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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9
  • 바이블 큐티[황권철 목사] 예수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라
    미국 하버드대학교 폴 케네디교수는 “한국이 21세기의 세계 중심국가가 될 수밖에 없는 5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첫째, 한의 문화이다. 한 민족은 5천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외침으로 고통을 당해왔다. 그래서 민족의 저변에 한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한이 1919년 3월 1일 태극기로 독립만세운동을 하게 했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배후에 촛불혁명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둘째, 가족 문화이다. 가족 중심의 정문화가 감수성에 예민한 민족으로 만들었다. 특별히 어머니 품에서 모유를 먹고 자란 세대는 감성이 풍부하다. 21세기를 감성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런 때 한민족의 효 문화가 세계 열방을 선도할 강점이 되었다. 셋째, 엘리트 의식이다. 한 민족은 어떤 민족보다 자부심이 강한 민족이다. 이런 자부심이 하나의 긍정적인 목적으로 작용할 때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된다. 넷째, 모험정신이다. 적극적인 모험정신은 어떤 일이든 신속하게 해 낼 수 있는 최고의 경쟁력이다. 마지막 다섯째, 단일민족의 정체성이다. 단일민족 단일 언어로 뭉쳐진 공동체의 저력은 다이나믹한 폭발력을 발휘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폐쇄적일 수도 있으나 이를 긍정적인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므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결집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오늘은 마가복음 2장의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은혜를 받고자 한다. 예수님은 모든 인생의 주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고장 난 인생이 새롭게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에게도 이런 변화가 일어나길 바란다. 예수를 만나면 모든 문제에서 해결을 받는다. 인간은 사고뭉치이다. 중풍병자가 예수를 만남으로 참 자유를 얻었다. 마태는 세관에서 돈으로 얻을 수 없었던 참 평안을 예수를 만남으로 누렸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얽매여 억지 금식을 했으나 주님은 그들에게 금식을 통한 참된 기쁨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음을 보고 정죄한 바리새인들에게 참 안식이 무엇인지도 가르쳐 주셨다. 가버나움의 중풍병자 본문 1절에서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고 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서북 지역의 해변가에 있는 마을이다. “수 일 후에”라고 하심은 성구막 1:21막 1:21절에서 예수님이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가르치시고 동네에서 복음을 전한 후 갈릴리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전도했다. 그러다가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갔던 때가 다음 안식일이 이르기 전이었다. 주님이 가버나움에 온 이후로 온 동네에 대 소동이 일어났다. 열병으로 앓아 누었던 자가 일어나고, 귀신들린 자들이 온전해지고, 각색 병든 자가 와서 많은 사람이 고침을 받았다. 소문을 들은 온 동네 사람들이 주님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때 주님이 다시 오시자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그때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데리고 왔다. 이런 상황에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어 중풍병자를 달아 내렸다. 그때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다. 우리는 중풍병자를 데리고 주님에게로 나온 그들의 믿음을 배워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어떤 믿음을 가졌는가? 첫째,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그들은 주님이 일차 가버나움을 다녀간 이후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주님이 오셨고 그들은 병자를 침상에 메고 주님을 만나러 왔다. 오늘날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이와 같이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둘째, 불가능한 환경 앞에서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이 중풍병자를 매고 가는 사이에 벌써 사람들이 먼저 와서 꽉 들어 차 있어 문 앞까지 들어 설 틈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이런 불가능한 환경 앞에 뒤로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셋째, 적극적으로 길을 찾는 것이다. 동서사방으로 다 막혀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서 구멍을 내어 환자를 달아 내리기로 했다. 매사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길이 열린다. 넷째, 지붕에 구멍을 뚫는 일이다. 사실 이 일은 아주 심각한 사건이다. 우선 남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가옥을 파괴하는 범죄행위가 될 수 있는 일이다. 만일 위험한 사태가 발생하면 구속도 될 수 있는 엄청난 위험부담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중풍환자를 주님에게로 지명인도인도하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고자 하는 온전히 헌신된 마음이 있었다. 우리가 영혼구원을 위해서 이런 헌신과 희생을 한다면 어떤 중풍병자라도 주님에게로 지명인도인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혼연일체 된 마음이다. 그들이 지붕으로 올라갈 때도 그러했지만 최후의 순간 환자를 주님 앞으로 달아 내릴 때는 한 순간의 방심도 용납할 수 없는 초긴장 된 순간이었다. 이렇게 해서 중풍환자가 주님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주님은 바로 그들이 가진 이런 믿음의 행위를 보셨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이런 중풍병자가 많이 있다. 제 발로 걸어서 주님 앞으로 나아올 수 없는 자들은 다 영적 중풍병자이다. 이들을 위해 공동체가 합동작전을 해야 한다. 땀 흘리는 수고와 함께 물질적인 헌신도 감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중풍병자를 말씀 앞으로 지명인도인도할 수 있다. 중풍병자는 주님을 만나는 순간 죄에서 자유 함을 얻고, 질병에서 고침을 받아 예수를 그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변화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세리 마태 집에서 주님은 다시 갈릴리 바닷가로 나갔다. 가버나움에서 세관을 지나가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니 그는 즉시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 나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가정과 직장을 한 순간에 버리고 온전히 주님을 따를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런 사건의 배후에 숨겨진 사실들을 알아야 한다. 본문 14절에 “알패오의 아들 레위”란 말씀에 주목해 보라 알패오란 분이 그의 아들의 이름을 「레위」라고 지었다. 레위는 자라서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은 세관에 앉아 사역하면서 그 마음에 수많은 영적 고민과 갈등을 겪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레위란 “하나님과 연합”이란 뜻이다. 알패오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레위라 지었을 때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쓰임받기를 원해서 그런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레위는 세관에 앉은 세리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은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으므로 세리는 로마 권력의 하수인 노릇하는 매국 행위를 행하므로 창기보다 더 추한 직업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알패오와 그 아들 레위의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그래서 레위는 언제든지 때가 되면 이 직업에서 떠날 것을 생각하고 있던 차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래서 레위는 미련 없이 세관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 그와 그 아버지 알패오는 너무도 감사하여 주님을 청하여 식사를 대접했다. 이를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증오하여 주님이 죄인과 같이 식사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이때 주님은 복음의 놀라운 비밀을 가르쳐 주셨다. 첫째, 나는 죄인의 구주로 이 땅에 왔다고 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주님은 세관에서 하나님과 연합하기를 소원하는 자를 부르기 위해서 오셨다. 세리와 창기와 같은 죄인들의 구주로 오셨다. 둘째, 기쁨과 감격을 주기 위한 혼인집 신랑으로 오셨다.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주님과 함께 하는 동안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는 금식이 필요 없다. 주님은 율법적 제약에 얽매여 있는 부자유한 신부들에게 참 자유를 주기 위해 오신 복음의 신랑이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서 신랑을 빼앗기는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이 공중 권세 잡은 자가 득세하는 이 세상의 모습이다. 이때는 금식하지 않을 수 없다. 금식의 능력으로 흉악한 결박을 풀어서 승리해야 한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주중에 2일 이상 규칙적으로 금식했다. 그러나 신랑과 함께 하는 혼인집에 가면 이런 금식의 법에서 자유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축제의 자유를 준 영적 신랑이다. 셋째, 새 가죽부대에 담긴 새 포도주로 오셨다.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당시 바리새인들이 붙들고 있는 장로들의 유전이나 랍비적인 전통은 생명력이 없으므로 변화에 신축성이 없는 묵은 포도주와 낡은 가죽부대와 같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지명그리스의 복음은 생명력을 가진 운동하는 신축성이 있는 새 가죽부대와 새 포도주였다. 주님은 죄인의 구주로 오셨다. 죄로 인하여 병든 인생은 영적 대 의사 되신 주님 앞에 나와서 고침을 받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신랑 되신 주님을 만난 감격의 기쁨으로 축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생베 조각의 복음적인 가치를 낡은 구습과 전통에 붙여서는 안 된다. 새 술은 새 가죽부대에 넣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지명그리스의 생명의 복음은 어떤 언어와 문화적인 삶도 극복해 갈 수 있다. 안식일에 밀밭 가에서 안식일에 주님과 제자들이 길을 갔다. 분주하게 서두르다 보니 식사 할 때를 놓친 것 같다. 시장한 그들은 밀밭 사이로 지나가다가 밀 이삭을 손으로 잘라먹었다. 이것이 용케도 바리새인의 렌즈에 잡혔다. 요즘 같으면 그들이 신문지상에 대서특필해서 보도 했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안식을 범했다는 주장이다. 그들은 이렇게 비약해서 말씀하고 있다. 밀 이삭을 손으로 자르는 것은 추수하는 행위이며, 그 이삭을 손바닥으로 비비는 것은 정미소에서 방아 찢는 것이며, 껍질을 날리기 위해서 입으로 분 것은 타작마당에서 가라지를 날리는 키질행위라고 했다. 이 같은 일은 당시 안식일에는 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주님은 다윗이 대제사장 아비아달의 집에서 행했던 것을 말씀하셨다. 아비아달은 사울 왕에게 쫓겨 온 다윗에게 베풀 항용 떡이 없음을 보고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는 진설 떡을 주어 먹게 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주님은 안식을 어떻게 지켰는가를 알아야 한다. 첫째,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일을 하셨다. 구약의 율법에서는 안식일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소극적인 금지법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안식일에 적극적으로 회당과 동네를 다니면서 천국 복음을 전파했다. 둘째, 안식의 근본정신은 사람을 위함이다.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하나님이 창조질서에서 안식일을 주신 것은 인간에게 참된 쉼을 주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안식은 철저히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사람이 없다고 하면 안식일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셋째, 그런데 그 안식일에 주인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 지명그리스이다.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날을 어떻게 지키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행위인가?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해야 한다. 주님은 은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죄와 사망권세에서 구원하기 위해 전도하러 오셨다. 그래서 주님은 복음전도를 위해 행하신 제자들의 행위를 정죄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농부가 추수할 때 밭이랑에 이삭 얼마를 남겨 두어 길가는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의 양식이 되게 하셨다. 주님은 친히 금식하여 주려 죽는 아픔을 체휼해 보았으므로 배고픈 자들의 아픔을 다 헤아리고 계신다. 우리는 안식일을 유대 지명유대인 전통을 계승하는 소극적인 금지법을 따를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 주인 되신 주님이 기뻐하시는 전도자의 삶을 사는 복음전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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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25
  • 바이블 큐티[황권철 목사]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신약성경 처음 4권은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 복음이다. 마태복음은 세리 마태가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한 것으로 구약에 대한 인용도 99회 정도 된다. 또한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므로 신약의 가장 서두에 편집했다. 특히 왕, 왕국이라는 말이 75회 이상 나온다. 그래서 마태복음을 왕의 복음이라고 부른다. 마가복음은 요한의 성을 가진 마가가 바울을 수종들다가 로마에서 로마인들을 위하여 종의 관점에서 기록하였기에 섬김의 관점에서 기록된 복음이다. 그의 어머니는 예루살렘 출신으로써 믿음과 덕을 갖춘 신실한 여성도로서 그 집과 다락방을 사도들의 휴식처로 제공하여 지상교회를 탄생시킨 복음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마가의 외숙부는 바울과 함께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 받아 초대 선교사로 명성을 떨친 바나바이다. 누가복음은 아수리아 안디옥 사람인 의사 누가가 당시 지성을 자랑하는 헬라문화를 지배하는 자들을 위해 오신 도성인신 한 예수님에 관해 기록한 인자의 복음이다. 마지막 요한복음은 세베대와 살로매의 아들인 야고보의 동생 요한이 쓴 책으로써 요한은 주님의 제일 어린 제자로 밧모섬에 귀향까지 간 가장 오래 살았던 제자이다. 요한은 영적으로 전 세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를 위해 공관복음에 없는 부분을 보충해서 기록한 우주적인 복음이다. 마가복음은 주후 65년 전후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바울의 전도여행에 동참했다가 중도에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나중에는 옥중에 갇힌 사도 바울의 복음전파에 끝까지 수종들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리멘트는 마가복음을 “로마인의 복음”이라고 했다. 마태복음은 혈통을 중시하는 족보로부터 시작하지만 마가복음은 로마인에게 준 것이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로 시작된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에게까지 전파된 복음은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에 착념하지 않게 했다. 복음이란 ‘좋은’이란 말과 ‘철자’란 단어의 합성어로 “좋은 소식”이란 말이다. 마가복음은 총 16장으로 되어 있는데 사복음서 중에서 가장 짧은 책이다. 책의 총 제목은 종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서 핵심 성구는 마가복음 10장 45절의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이다. 광야의 사람 세례 요한 그는 선지자의 예언대로 오신 분이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사40:3절)을 보면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고 했다. 사실 이 말씀은 이사야가 유대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있다가 해방되어 올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이 그보다 더 큰 의미의 뜻을 함축하고 있는 것은 죄악의 사슬에 묶여 있는 백성을 풀어서 참된 자유를 주기 위해 메시야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올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바로 그 사역의 수종자가 세례 요한이라는 사실이다. 당시 유대인들의 삶은 당대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가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당신에게 오늘날 주어진 삶은 또 다른 한 시대에 하나님 나라를 위한 복음의 도구가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너무도 거시적인 동시에 구체적이고 확실한 사건이다. 그는 주의 길을 예비하러 왔다.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그는 이 땅에 인자의 몸으로 섬기려 오신 분이지만 실제는 하나님의 독생자인 왕이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분을 함부로 맞이할 수 없다.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는 하늘의 어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주님보다 먼저 오셨다. 당시 유대 사회는 왕이신 주님이 사역하기가 너무도 불편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파 놓은 함정이 많았고, 사두개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박아 놓은 돌부리들이 많아 그 첩경을 평탄하게 하지 않고는 주님이 걸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원해서 광야의 사람이 되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라고 했다. 그는 당시 덕망이 있는 제사장 스가랴와 엘리사벳의 가문에 태어나서 세속적으로 출세를 할 수 있는 신분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 자리를 포기하고 빈들에서 민초들과 함께 생활하는 광야의 사람이 되었다. 그곳에서 약대털옷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광야의 소리로 살았다. 소리란 모양도, 빛도, 냄새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듣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그러나 삶을 변화시키는 소리는 복음의 소리이다. 그는 가장 천한 자리에서 가장 귀하게 살았으며,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권세 있게 살았으며, 가장 어두웠던 시대에 가장 밝게 살았다. 그는 젊은 삼십대에 부름을 받아 짧은 세월을 살았으나 가장 값지고 굵게 살았다. 그 입은 헤롯 대왕도 막지 못했다. 예수님의 공생애 준비 때가 차매 주님이 오셨다. 세례 요한은 철저하게 주의 길을 준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신 후에 소리와 같이 사라졌다.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의 인생철학을 너무도 멋있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그렇다면 주님은 세례 요한의 뒤를 이어 오셔서 공생애 구원사역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가? 먼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세례란 죄사함의 표로써 공교회 앞에서 베풀어지는 예식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죄가 있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 베푸는 것을 사양했다.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그러나 주님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했다. 주님은 죄가 없지만 세상 죄를 대신 짊어지신 대속의 제물 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었다. 주님이 세례 받고 죄가 청산됨으로 하늘 문이 열리면서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하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다음으로 광야에서 사단으로부터 시험을 받았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주님은 공생애에 불어 닥칠 시험을 이기기 위해 먼저 성령의 인도를 받아 금식하며 기도로 준비했다. 사단권세가 주님을 넘어지게 하려고 했으나 주님은 그때마다 철저하게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쳤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선택하셨다. 주님은 구원사역을 이루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셨는가? 소그룹 제자훈련을 시작하셨다. 제자훈련은 주님이 가르쳐 준 성경적인 전도방법이었다. 그러면 주님은 제자선택을 어떻게 하셨는가? 먼저 현장으로 가서 직접 확인했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주님은 책상에 앉아서 이력서만 보고 채용한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 사역하는 것을 보시고 부지런 하고 충성된 자를 선택하셨다. 그리고 이들은 그물과 배 뿐 아니라 심지어 부모와 종들까지 버려두고 쫓았다. 이것이 제자의 도이다. 주님의 하루 일과 주님의 하루 일과는 너무도 분주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래서 머리 둘 곳이 없을 정도로 성과 촌을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파했다. 본문은 가버나움에서 안식일을 보낸 하루를 통해 주님의 하루 일과가 어떠한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오전에는 회당에서 성경을 읽고 가르쳤다.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주님은 회당에 들어가서 율법을 가르쳐서 천국복음을 증거 하셨다. 그의 말씀은 서기관들과 달리 권세가 있어 뭇 사람들이 놀라고 귀신들이 항복하며 떠나가는 역사가 일어났다. 오후에는 심방을 했다.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 인명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주님은 회당에서 교육과 설교사역을 마치시고, 권찰들을 데리고 주의 종들의 집을 심방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확인했다. 주님의 말씀이 증거 된 복음이 가는 곳마다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래서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다가 주님이 손잡고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님께 수종 들었다. 저녁에 대성회가 열렸다. “저물어 해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소문을 들은 온 동네 사람들이 그 밤에 다 몰려 왔다. 주님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각색 병든 많은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 이튿날 새벽에는 기도하러 갔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주님의 하루 사역은 한 순간도 쉴 틈이 없는 분주한 사역이다. 그러나 이튿날 새벽 미명에 기도할 곳을 찾으셨다. 새벽 기도를 놓치지 않았다. 낮 동안에 이런 사역이 가능했던 것은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과 만난 큐티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을 놓쳐서는 안 된다.
    • 오피니언
    • 성경
    202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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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권철 목사] 가룟 유다의 최후(Judas' Death)-예수를 판자(2)
    이때 그는 선생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되었다. 이에 분노하고 괘심한 생각을 한 그는 곧 바로 유대교의 대제사장들에게 달려가서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마26:15)하고 예수를 그들에게 팔아넘길 것을 제의했다. 제사장들은 너무나 좋은 기회가 왔기에 즉석에서 은 30으로 흥정을 시작했다. 당시 노예가 황소에 받혀 죽었을 때 보상금으로 주인에게 지불하던 금액이 은 30이었다. 이 같은 것을 보면 유다가 돈의 액수는 고사하고 스승이 한 충고에 대한 적개심으로 예수를 팔아넘긴 것이 분명했다. 예수를 판 가룟 유다 주님은 무교절 첫날 성 목요일인 최후 만찬의 때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마26:21) 이때 사도들이 모두 근심하며 저마다 자기가 아니라고 부정했다. 그때 예수는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마26:23)라고 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서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곳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요13:26-27). 유다는 선생이 자신의 악한 마음을 드러낸 이후에도 그는 회개하지 않자 사탄이 그 마음속에서 역사하니 너무도 자연스럽게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마26:25)라고 능청스럽게 말하니 주님은 “네가 하려는 일을 속히 하라”고 했다. 다른 사도들은 예수가 그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요13:29-30). 유다는 그 떡을 받고 회개하지 않고 영원히 주님 곁을 떠나고 말았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요13:30). 유다가 나간 때가 시간적으로 밤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는 영적으로 영원한 어두운 밤인 사단의 자식이 되고 말았다. 유다는 밖으로 나가 즉시 대제사장들에게 달려갔다. 최후의 만찬이 끝나자 예수는 남은 11명의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서 열심히 기도했다. 기도가 다 끝났을 때 마침 유다가 군인들을 이끌고 왔다. 로마 군병들은 밤이 깊어서 어두웠기 때문에 누가 예수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다는 누가 예수인지 알리는 신호로 예수에게 다가가 입맞춤을 하였다. 그리하여 군병들은 예수를 체포하여 빌라도 법정으로 끌고 갔다. 제 길로 간 가룟 유다 그는 존귀한 사도직을 버리고 제 길로 갔다.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행1:24-25). 그는 스스로 복된 자리를 박차고 나가 멸망의 길로 간 자이다. 누가는 그가 묻힌 곳을 아켈다마라고 했다. 유다가 자살한 후에 묻힌 밭을 아켈다마라고 하는데 피밭이라는 뜻이다. 마태에 의하면 가룟 유다는 그 은을 성전 안에다 내던지고 나와서 목을 매달아 자살하였고 대제사장들은 이를 주워 다가 나그네들을 위한 묘지용 토지를 샀다고 했다. 그러나 시편의 예언대로 그곳은 황폐한 곳이 되어 아무도 머문 자가 없었다. 사실 이곳은 유다가 3년간 횡령한 돈으로 산 대농장이었다(행1:18). 유다가 거꾸러져 죽은 피밭은 대제사장들이 토기장이들에게 산 나그네 묘지용 토지로서 작은 밭(헬라어로 아그로스)(마27:6~7)이 아닌 대농장(헬라어로 코리온)이었다. 그는 주님을 따르던 수많은 여인들이 자신의 재산을 들여 예수님과 사도들이 사용하도록 준 생활비를 가로 채 불의한 삯으로 마련해 두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가난한 예수 공동체 일원이었던 유다가 대농장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행1:18). 유다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으나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청함은 받았으나, 택함을 입지 못한 효과 있는 유효한 부르심을 받지 못한 자였다. 이는 곧 성령의 도우심으로 만이 가능하다. 성령은 성도를 통하여 참고 인내하여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하신다. 비록 우리가 연약하여 인자를 거역할 수 있으나, 성령은 후일에 뉘우치고 회개하여 베드로와 같이 돌아오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케 하는 성령을 훼방하고 거역하면 돌이킬 수가 없다. 그래서 주님은 성령을 훼방하면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12:31-32). 유다는 좋은 이름을 천하게 만들어 버렸다. 성경에 가룟 유다 아닌 유다가 몇 명 있다.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창29:35), 주님의 사도 중에도 다대오란 이름을 가진 유다(요14:22), 그리고 예수님 동생 유다(마13:55)이다. 유다는 본래 찬송이란 뜻을 가진 이름이다. 그러나 가룟 유다 이후로 그 누구도 유다란 이름을 짓는 자가 없었다. 찰스 스펄젼은 “사탄은 거룩함을 상실한 천사다. 사도 중 하나가 아니었다면 유다가 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마리아가 깬 옥합을 허비하는 것으로 보았다. 주님은 그녀가 섬긴 헌신과 봉사는 복음이 증거 되는 곳마다 그 행한 일이 전파될 가장 아름다운 사역이라고 말씀하셨으나 그는 이를 허비하는 것이라 말함으로 주님의 장례를 욕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는 입맞춤으로 주님을 로마 군병들에게 팔아 넘겼다. 애정과 충성의 표시인 거룩한 입맞춤을, 속임과 배신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주님은 부활함으로 빈 무덤을 남겼지만 그는 불의의 삯으로 황폐한 무덤을 남기고 말았다. 우리 모두 아름다운 유산을 남기는 거룩한 씨 그루터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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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2023-05-10
  • [황권철 목사] 가룟 유다의 최후(Judas' Death)-예수를 판자
    가룟 출신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에 판자이다. 그의 이름 앞에 불명예스러운 오명(汚名)이 붙는다. 주를 팔았던 배신자라는 말이다(마 10:4; 막 3:19; 눅 6:16; 요 18:2). 성경은 통일왕국 유다가 이스라엘로 분리 될 때 여로보암Ⅰ세의 범죄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그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하였음이니라 하니라”(왕상 14:16). 그는 자신만 범죄 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로 범죄하게”한 자라고 했다. 주님은 인자를 판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마 26:24). 그는 예수를 배신한 후 양심의 가책을 받아 목매어 자살하고 말았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 밭이라 일컫느니라”(마 27:5-8). 유다는 예루살렘 근처 힌놈의 골짜기 남쪽에 위치한 아겔다마(피 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죽었다.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그의 최후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행 1:18-20). 그의 사도직은 후일에 맛디아가 계승했다.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행 1:26).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비게 된 자리는 맛디아(Matthias)를 택하여 그를 가입시킴으로써 채워졌다. 그리하여 이 제자단의 수는 완결되었고 이후 결코 그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유다를 제외한 열두 제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셨을 때 처음 본 자들 속에 있었고(고전 15:5; 막 16:7) 이는 공관복음서 기자들에게서 확인 된 사실이다.   돈궤를 맡은 가룟 유다    요한은 유다를 돈궤를 맡은 도둑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 12:6). 가룟 유다는 셈이 빨라서 주님은 그에게 돈궤를 맡겼다. 그는 사도 공동체의 회계를 맡으면서 공금을 횡령하는 일을 자주 했던 것 같다.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 밭이라는 뜻이라”(행 1:18-19). 그래서 누가는 그의 사후에 이 사실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는 다른 제자들 몰래 불의한 삯으로 부동산을 많이 매입해 두었던 것 같다. 결국 그의 비참한 말로를 보고 누가가 이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이 같은 일은 베다니의 마리아의 집에서 잘 보여 준다. 그는 마리아가 값 비싼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붓는 것을 보고 이 여인을 책망하면서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요 12:5)라고 투덜거렸다. 마태는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마 26:8)고 하면서 분개했다고 한다. 요한은 그가 도둑의 심보로 그런 말을 한 것이라고 했다. 진짜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서 말 한 게 아니라 저 향유를 팔아서 그 돈의 일부를 횡령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 아까워서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향유는 금전과 달리 고정된 수입이 아니므로 가격 측정이 얼마든지 유동적이기 때문에 속여 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이다. 그때 예수께서 그를 책망하면서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막 14:6-7)라며 꾸짖었다.  이때 그는 선생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되었다. 이에 분노하고 괘심한 생각을 한 그는 곧 바로 유대교의 대제사장들에게 달려가서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마 26:15) 하고 예수를 그들에게 팔아넘길 것을 제의했다. 제사장들은 너무나 좋은 기회가 왔기에 즉석에서 은 30으로 흥정을 시작했다. 당시 노예가 황소에 받혀 죽었을 때 보상금으로 주인에게 지불하던 금액이 은 30이었다. 이 같은 것을 보면 유다가 돈의 액수는 고사하고 스승이 한 충고에 대한 적개심으로 예수를 팔아넘긴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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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9
  • [황권철 목사] 세롯인 시몬(Simon's Behind Stories)-침묵의 사도
    하나님 나라는 언약 공동체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사상이나 이념 공동체가 아닌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성향이나 지리적인 감정, 세속적인 신분에 따라 언약을 배반하면 안 된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았을 때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갔고, 후일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번제를 드리러 간 것도 언약에 기초한 삶이었다. 언약의 율법을 받은 모세는 말씀에 순종하여 지팡이를 내어 밀 때, 홍해가 갈라졌고 반석이 쪼개지며 구름기둥 불기둥의 역사가 일어났다. 바벨론 포로 시절 다니엘은 이방 왕궁에서도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여 언약 중심으로 살았던 신실한 사람이었다. 침묵의 사도 시몬 그는 사도로 부름을 받았으나 한 마디의 말도 남기지 않았다. 본래 세롯이라는 열심당원은 말을 많이 하는 자들이 아니라 몸과 행동으로 자신들의 삶을 통해 보여 주는 실천자가들 이었다. 당시 로마 제국주의 식민지하에 살았던 애국운동을 하는 자들은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어떤 공동체에 몸을 담아 일할 수 없는 신분이었다. 이들은 제국이 지배하는 세속적인 세상 가치관에서는 버림받은 자들이었지만 예수 공동체는 그를 불러 주었다. 그는 말없이 섬기는 순종형 성도의 모델이었다. 우리는 복음서 구석구석에서 말 많은 무리들 가운데 말없이 침묵 속에서 외치는 무언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시몬 같은 자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 1:27-28). 그는 말없이 주를 섬긴 침묵의 사도였다. 말 만 앞세우고 행함이 없는 자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삶을 살았던 자였다. 세인들은 아무도 세롯 같은 자를 주목하지 않는 심지어 목회자라도 그에 관한 설교를 하는 자들이 거의없다. 그러나 그는 12제자 중 가장 열성적으로 목숨을 걸고 주를 섬기고 따랐던 제자이다. 사실 예수님이 택한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면모를 보면, 정말 보잘 것 없고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다 예수님을 그 중심에 모시고 각자 주어진 사명을 다하여 이 땅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웠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지극히 작은 밀알과 겨자씨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우리 모두 이 땅에 거룩한 씨 그루터기 같은 가나안인 시몬 같은 자가 되기를 바란다. 순교의 제물 된 시몬 그는 주님이 승천한 후 선교하다가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갈릴리 가나 사람으로 열심당원인 셀롯 시몬은 주님의 승천하신 후 바로 배낭을 메고 선교지로 전도여행을 떠났다. 소아시아, 이집트, 영국 런던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후에 페르시아의 아스날에 도착한지 3일 만에 톱으로 허리가 잘려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주님이 승천 하신 후 가장 열성적으로 복음을 전한 사도 중의 한 사람이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난 후 3년간 고향 다소에 가서 침거 중에 있었다. 그때 셀롯 시몬은 전 세계를 돌며 복음의 터를 닦아 놓아 놓았다. 그가 닦아 둔 토양 위에 바울이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어쩌면 바울 사역의 터전을 셀롯 시몬 같은 자가 미리 닦아 놓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에서 줄 곧 침묵하고 있다. 그는 이름도 빛도 없이 아무런 영광도 없는 음지에서 묵묵히 주를 전하다 순교했다. 그 후 복음 전도에 관한 기록은 온통 베드로와 바울과 요한, 이 세 사람에게 집중되어 마치 기독교는 그들의 종교인 것처럼 보이고 있다. 사복음서나 서신서 어디에도 세롯 시몬의 기록은 없다. 그는 이같이 음지에서 진리와 빛을 전하다가 하나님이 부르신 선교의 현장에서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AD 61년경 잉글랜드의 카이스터 지역에서 로마인들에 의해 십자가형을 당하여 시신이 그 지역에 묻혔다고 한다. 그는 살았을 때도 말없이 주를 섬겼던 것처럼 그의 죽음에 대하여도 아무런 증거를 남겨 놓지 않았다. 우리가 후일에 천국에 갔을 때 그의 침묵을 깨고 주안에서 아름다운 교제를 나눌 수 있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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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05
  • [황권철 목사] 세롯인 시몬(Simon's Behind Stories)-침묵의 사도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유대의 최고 권력 기관은 산헤드린 공회였다. 이 법정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탁월한 서기관들과 율법의 석학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당시 성전에서 상당히 실력행사를 했던 랍비 곧 교사들이었다. 유대는 로마의 식민지 국가이지만 사형 집행권을 제외하고는 산헤드린 공회에서 다 집행한다. 그들이 비록 사형이 없었으나 예수를 사형에 처하도록 주도적인 역할을 행했다. 그 당시 종교적으로는 여러 분파가 있었다.  첫째, 바리새파이다. 이는 헬라시대에 생겼으며 마카비를 지지했으나 요한 힐카누스 때에 그들과 분리하게 되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거룩한 무리(Holy one)로 알려졌으나 후에는 바리새파(분리주의자)로 불려졌다. 왜냐하면 힐카누스가 지지하는 로마 정부에 대항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시 자유주의(사두개파)와 다른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고 율법의 가르침을 준수했으나 율법 속에 잠재되어 있는 율법의 정신을 바로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 율법의 외형적 가르침에만 치중한 바리새인들의 유형을 탈무드에서는 7가지로 지적했다. 어깨 형(shoulder), 잠깐 기다리게 하는 형(wait a little), 피 흘리기 형(bleeding), 채색 형(painted),계산 형(reckoning) 공포 형(fearing), 그리고 사랑 형(love) 바리새인이 있다고 했는데 이중에 사랑 형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위선과 외식적인 종교행위에 불과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의 외식을 책망했다.  둘째, 사두개파이다. 이들은 바리새파의 대적자로 수적으로는 적었으나 영향력은 대단했다. 재산이나 지명도나 정치적인 세력을 가진 세속적인 면에서 위대한 분들이 많았다. 이들의 출현은 고레스 왕 때에 유대인의 귀환이 있은 후 로마황제와 관계를 친숙히 한 유대인이 대제사장이 되었다는데서 생긴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이들의 지위는 대제사장들과 같았으며 이들은 성민의 율법을 세속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헬라문화가 지배했을 때는 헬라문화 보급을 위해 앞장섰으며, 로마가 지배할 때는 로마와 친숙하게 지냈다. 그들의 신앙은 현실적이며 세속적이었으므로 경건생활이나 부활신앙을 인정하지 않았다.  셋째, 엣센 파이다. 이들은 일종의 금욕주의자들이라고 부른다. 세속적인 삶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그들은 재산을 공동으로 관리했으며 농경생활로 금소하게 생활하면서 전쟁과 노예제도 및 상업을 거부하고 일정한 목적을 세워 놓고 엄격한 규율 속에 자신들을 묶어 두었다.  넷째, 헤롯파이다. 이들은 헤롯 왕가를 지지하는 자들이다. 당시 로마 정부에 소속한 헤롯 군대를 지지하여 현실적 이권에 얽매여 있는 자들이다. 세리들이 주로 여기에 속해 있었다. 이들은 로마인들의 하수 노릇을 하면서 유대인들의 피를 빨아 먹는 매국노와 같이 취급을 받은 친로마파 권력형들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세롯 파인 열심당이다. 일명 이들은 유대 민족주의자들이며 애국주의자들로 극소의 무리들이다. 이들은 지나친 애국운동으로 반민족주의자들을 대적하고 저격하므로 일명 테러분자로까지 낙인이 찍혀 있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다대오 유다와 가나안인 시몬이 여기에 속한 자들이었다.   열심당원 시몬    세롯 시몬은 가나안 사람이었다(마 10:4; 막 3:18; 눅 6:15).5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12제자가 되었다. 오순절과 감람산에서 주님의 승천하는 현장에도 직접 참여했다(행1:13). 세롯(헬라어 제로테스)이란 ‘열심당’, ‘열광자’란 뜻이다. 이는 아람어에서 유래된 말로 셀롯당 즉 열심 당원으로 이스라엘 독립을 위한 비밀 결사대인 일종의 테러리스트이다. 이들은 유대의 반대 세력들을 살해와 테러로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저지르는 극열한 민족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품속에 언제나 반달 같은 검을 품고 다니다가 매국노 로마인들을 만나면 죽이기를 망설이지 않는 극렬 테러리스트였다. 그랬던 그들이 갈릴리 가버나움에 본거지를 두고 활동하다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시몬은 전에 스스로 자신을 일컬어 로마의 팔레스타인 통치에 대한 광적인 반대파로 즉, 열심당원이라고 했기에 이와 같은 이름이 불리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예수께 부름을 받아 사도가 되었으나 사도의 반열에 올린 이름 외에는 성경 어디에도 그의 관한 기사를 찾아 볼 수 없다. 당시 이런 신분을 가진 자들은 공직은 물론 사회활동을 할 수 없는 신분의 많은 제약을 받고 살았다. 헤게십푸스(Euseb., Hist., Ⅲ. 11, 32)에 의하면 시몬은 야고보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 나라는 언약 공동체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사상이나 이념 공동체가 아닌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성향이나 지리적인 감정, 세속적인 신분에따라 언약을 배반하면 안 된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았을 때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갔고, 후일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번제를 드리러 간 것도 언약에 기초한 삶이었다. 언약의 율법을 받은 모세는 말씀에 순종하여 지팡이를 내어 밀 때, 홍해가 갈라졌고 반석이 쪼개지며 구름기둥 불기둥의 역사가 일어났다. 바벨론 포로 시절 다니엘은 이방 왕궁에서도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여 언약 중심으로 살았던 신실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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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2
  • [황권철 목사] 유다 다대오(Jude Thaddaeus'Behind Stories)-동역의 사도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요14:22). 성경에 유다란 이름을 가진 자가 많으나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은 세 명이었다.  첫째, 예수의 동생 유다이다.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마13:55). 그는 초기에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았다. 예수님과 한 형제이지만, 같은 배에서 나왔으나 씨가 다른 형제였다. 그가 어린 시절에는 형 예수에 대해 잘 몰랐다. 그래서 예수님이 공생애를 위해 집을 나갔을 때 많은 박해를 했다. 그러다가 부활하신 후에 형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믿었고 비록 사도는 아니었지만 명분상 사도적 반열에 참여하여 예수가 메시야라는 언약의 복음 유다서를 기록했다.  둘째, 예수를 판 가룟 유다이다. 복음서 기자들은 유다의 이름 앞에 꼭 붙이는 한 단어가 있는데 예수를 판 자 라는 말이다.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마10:4),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막3:19),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눅6:16). 요한은 가룟인 아닌 유다가 라고 하였다(요14:22). 가룟 유다는 이 땅에서 가장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남긴 불행한 자였다.  마지막 셋째, 본문에 나오는 다대오 유다이다. 마태와 마가는 다대오라고 불렀다. 요한은 왜 유다를 가룟이 아닌 유다라고 불렀을까? 신약성경이 쓰여 질 때 예수를 판 가룟 유다 때문에 유다란 치욕스러운 이름이 되어 버렸다. 그 이전 구약에서 유다 이름의 뜻은 찬송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자들이 유다라는 이름으로 불러지기를 좋아했다. 예수님도 유다의 가문을 통해서 오셨다. 그러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판 이후로 유다란 이름은 치욕스러운 이름이 되어 버렸다. 그 이후로 아무도 유다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당시 그 이름을 가진 자들도 가룟 유다와 구별하여 불렀다. 다대오 유다는 시몬과 함께 열심당원이었다.   주님의 고민에 동참한 다대오    주님의 구원사역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제자들도 주님의 죽으심을 잘 모르고 있다. 그래서 주님은 그의 괴로운 심정의 비밀을 토로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요13:21). 이제 주님이 마지막 십자가 지실 사실을 말씀하셨다. 이것이 너무도 가슴 아픈 심령의 괴로움이었다. 물론 십자가 지는 육체적인 고통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이지만 그보다 더 큰 아픔과 괴로움은 이 사실을 곁에 있는 제자들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일은 외부에서 일어날 일이 아니고 조직 내에서 반역자가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개적으로 떠벌려 말하기도 곤란하여 지금까지 미루어 왔던 것이다.  이젠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이 사실을 말씀하셨다. 할 수 없이 조직 내에 반란자가 있음을 애기했다.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 이는 제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삼년 동안 훈련하여 준비해 왔는데 그것도 외부에서가 아닌 조직 내에서 반동분자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앞으로 조직의 붕괴마저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떠나가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신이 떠난 이후 제자들이 서로 분쟁하여 붕괴될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이 더욱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것은 제자들 상호간에 불신을 조장하는 공동체의 마비현상이 생길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요13:22). 당장에 이 같은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그때 성미 급한 베드로가 단호하게 말했다.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요13:24). 그는 분노하여 누가 감히 그런 일을 꾸미느냐 하고 분개했다. 그때 가룟 유다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 “내가 떡 한 조작을 적셔서 주는 자가 그니라”고 하시면서 가룟 유다에게 주셨다. 유다는 그때가 회개 할 절호의 기회였으나 오히려 괴심한 생각을 품어 주님을 팔 생각을 했다. 그때 사단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곳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요13:27). 유다는 그 조각을 받고 나간 그날이 영원한 밤이었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요13:30). 다대오 유다는 이 같은 주님의 아픈 마음을 다 헤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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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28
  • [황권철 목사] 작은 야고보 - 겸손의 사도
    숨은 봉사자 작은 야고보    작은 야고보는 제자 서열 순위 중에 하위 그룹으로 아홉번째에 나온다(마10:3; 눅6:15; 행 1:13). 성경에 작은 야고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아무런 기록이 없이 단지 그의 이름만 등장할 뿐이다. 성경에는 이같은 인물들이 많다. 항상 바울 곁에 있었던 아리스다고도 그런 사람이다. 옥중에 있을 때도 무인도 섬에 귀양 갈 때도 같이 있었다. 아마 바울이 천국 가서 이런 고백을 했을 것이다. ‘내가 선교지 갈 때마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 아리스다고가 곁에 있어 주었다. 그의 따뜻한 보살핌이 없었으면 이 같은 사역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작은 야고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작은 야고보는 말없이 항상 예수님 곁에 있어 준 자이다.  그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장 아름다운 섬기는 영성을 배웠다. 주님은 이 땅에 섬기는 자로 오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왔다”고 했다. 주님은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고 가장 작은 자로 오셨고 섬기다가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드렸다. 그래서 세리와 친구가 되셨고 헐벗고 병든 자를 돌보고 세롯 같이 따돌림 받는 자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 작은 야고보는 주님의 이런 섬김의 삶을 무언으로 실천한 자이다.  그리고 함께 하기 위함이었다. 주님이 제자를 부르신 목적도 바로 함께 하기 위함이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막3:14).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려 가실 때도 이같이 말씀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마26:36).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기도하실 때도, 제자들을 데리고 가셔서 고난의 현장에 함께 앉아있게만 했다. 외롭고 힘들 때 함께 있어 주기만 해도 위로가 된다. 마지막으로 주님이 부활 승천하여 하늘로 올리어 가실 때 다시 오실 보혜사 성령이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 성령 보혜사는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 곁에 항상 함께 하신다. 기도의 사람 작은 야고보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한 때 휼륭한 애국자였다. 후에 휼륭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금욕적인 자기 수양에 힘썼던 자이다. 열두 제자 중 기도를 많이 했던 자이다. 그는 말없이 기도하는 실천자였다. 예수님의 제자 중 가장 예수님을 닮은 자라고 했다. 그는 예루살렘과 시리아에서 전도할때 돌에 맞아도 죽지 않자 톱으로 켜임을 받고 죽었다고 한다. 지금 그의 시신은 로마에 옮겨져 잠들어 있다고 한다.  그는 말없이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무릎을 꿇는 것은 항복의 자세이다. 그는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 앞에 항복했다. 겸손하게 낮아졌다. 하나님의 손이 아니고는 살아남을 수 없음을 알았다. 그의 간절한 기도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다. 하나님이 주시는 담력은 왕의 권세도 두렵지 않고 굶주린 사자도 두렵지 않았다. 이것이 진정한 겸손이다. 겸손한 자는 보이는 사람 앞에서는 담대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그는 이제 거룩한 열심당원이 되었다. 믿음의 사람들은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세상을 정복한 자들은 다 무릎으로 살았다. 엘리야는 기도의 사람이다. 그는 무릎으로 아합과 그 무리를 정복했다. 갈멜산 기도는 무릎의 기도이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 번까지 다시가라”(열상18: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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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17
  • [황권철 목사] 마태(Matthew's Behind Stories)-언약의 사도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아 마가복음에 이어 마태복음을 쓴 사람이다. 학자들이 말하고 있듯이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을 바탕으로 기록되었다.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그의 본명은 레위였다(막 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마태는 본래 레위 지파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레위 지파가 아닌 사람이 레위라는 이름을 쓰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마태가 이 사실을 깨달았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 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마 9:9). 그는 세관에서 일하는 세리이다. 당시 유대민족이 로마의 식민지 생활을 하던 때라 얼마나 살기가 어려운지 도시락 하나가 귀한 시대였다(마 14:13-21). 그렇지만 세리들은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을 모르고 살았다. 그런 그가 세관에서 앉아서 일하는 좋은 자리에서 사직서를 내고 방랑자와 같은 주님의 제자가 되기로 작정하고 따른 것은 그가 인간이 배를 불리는 빵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통치권자가 되어 천하를 호령하는 자리에 앉았어도 복음과 상관없는 시간과 물질과 권력은 세월을 허송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엡 5:16)고 했다. 세속 풍속과 유행을 따라 고귀한 시간을 허송하지 말고 영혼을 구하고 생명을 건지는 일에 우리의 모든 것을 투자해야 한다.   복음서를 기록한 세리 마태    마태복음의 저자는 세리 마태이다. 그런 레위가 마가의 복음서를 손에 넣게 되었다. 아마도 같은 레위 지파 출신의 마가가 그에게 사본을 전했을 수도 있다. 레위는 그의 율법 지식과 세리 특유의 치밀함으로 구약 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야를 예수 그리스도에 연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태는 자신의 이름 레위를 헬라식 이름 마태로 고쳐서 구약의 이스라엘 시대에서 신약의 이방 시대로 들어섰음을 선언했다. 특히 그의 복음서에는 마가복음에 없는 예수 탄생의 경위와 동방 박사의 이야기가 기록되었다. 세원을 추적하는 세리 특유의 솜씨로 마리아를 인터뷰하여 그 사실을 캐냈을 것이다. 마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태는 유대인으로서 같은 동족 유대인을 위해 이 복음서를 기록했다. 이런 마태복음은 결코 구약의 참된 계시를 인본주의적이요, 패쇄적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곡해한 유대교적 오류에 물들지 않고 예수의 복음과 구약의 계시가 상호 연속성을 가진 진리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복음서에 비하여 구약의 인용이 많다. 또한 그는 당시 세리직으로 상당한 교육을 받은 자로 헬라어도 잘 구사할 줄 알았다. 그는 상당한 재산가였던 것으로 추정되며(눅 5:29), 화폐에 대한 빈번한 언급과 회계에 능한 그의 관심을 통계 수치에 밝은 직업적 기질을 그의 복음서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과 신약을 잇는 교량 역할을 하게 했다. 신약성경 27권이 정경으로 채택된 때는 주후 397년경 칼타고 회에서 이루어졌다. 그 기준은 이러하다. 첫째는 사도들의 후원을 받은 책들이다(엡 3:1-5). 둘째, 그 내용이 진실한 책이다(고후 2:17). 셋째, 성령의 영감을 받은 책이다(벧후 1;21). 그러나 이 성경을 편집할 때 연대순을 기준으로 하지 않았다. 구속계시의 성취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신약의 여러 복음서들 중에 가장 우선적으로 편집한 것이 마태복음이다. 마태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교량 역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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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2023-01-11
  • [황권철 목사] 마태(Matthew's Behind Stories)-언약의 사도
    마태는 사복음서에 의하면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다(막3:18; 마10:3; 눅6:15; 행1:13). 그는 예수를 따르기 전에 세리였다(마9:9, 10:3). 마태는 레위와 마태가 동일인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마가와 누가는 레위와 마태를 동일인으로 간주되고 있지 않은 것 같으나 유대인들은 흔히 2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마태란 이름은 예수의 제자가 된 후에 주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태가 레위였다면 그는 가버나움이나 그 근처에서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를 섬겼을 것이다. 다메섹(Damascus)과 아크레(Acre)를 잇는 도로를 통하여 수송되던 상품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들이던 것이 그의 임무였을 것이다. 또한 이 지역은 어업이나 공산품에 대한 세금 부과도 그의 임무였던 것 같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설교를 하셨으므로 그가 부름받기 전에 이미 많은 접촉이 있었을 것이다(막2:14).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으며 많은 동료들이 그의 집에 많았음을 누가는 말한다(눅5:29; 막 2:15). 이는 자신이 이제 변화 받아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가버나움 출신 세리 마태 본명은 레위이다. 레위 지파가 갈릴리 지방에 거주하게 된 배경에 대하여 갈릴리 땅은 본래 스불론 지파와 납달리 지파의 지역이었다. 그런데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이 갈릴리로 대거 옮겨간 것은 BC 169년 안티오쿠스 4세의 대 박해 때였다. 마카비상 1:57 “율법서를 가지고 있다가 들키거나 율법을 지키거나 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왕명에 의해 사형을 당했다” 성전을 지키던 레위 지파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 줄도 몰랐고 고기를 잡는 방법도 몰랐다. 그들은 관청에 들어가 일자리를 얻기도 하고 세관에 앉아서 세금을 걷는 일에도 동원되었다. 신약시대 로마 제국을 도와서 세금을 걷어 들이는 재무기관에 속한 관리들을 세리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제도가 너무 부패했기 때문에 세리들은 모든 사람들의 미움을 샀다. 유대인 중에 세리로 로마 정부를 섬긴 사람들을 매국노, 혹은 동족에 대한 착취자로 낙인 찍혀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더욱이 이들에게 부정이 많이 따랐기 때문에 복음서에서도 세리들은 일반적으로 창기와 같이 죄인 취급했다(마21:32). 주님은 마태와 동일한 세리를 만나 주셨다. 그가 바로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Zacchaeus)이다(눅19:1-10). 삭개오란 이름의 뜻은 “순전하다, 정의롭다”는 말이다. 그는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유대인에게 죄인 취급을 받으며 살았다. 당시 유대인들은 세리를 가장 추한 창기와 같이 여겼다. 그는 평사원도 아닌 세리들을 거느린 세리장이었으니 얼마나 미움을 받았겠는가? 그러나 그 직위로 물질적으로는 부요함을 누리는 부자였다. 이런 추악한 죄인이 거하는 여리고 도성에 가장 거룩한 메시야 되신 주님이 오셨다. 주님은 당시 도덕적으로 반듯하게 사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을 찾지 않고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는 삭개오를 찾았다는 것이 그 당시 여리고 사람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을 놀라게 한다. 그래서 주님은 죄인인 우리를 초청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네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고 했다. 삭개오는 자신의 모든 것을 토설해 내고 주님을 마음속에 구주로 영접했다. 세리 마태는 세관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 제자로 부름 받은 세리 마태 마태는 결단력과 진취성을 겸비한 자이다. 그래서 알패오는 아들에게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레위의 부친도 레위지파 자손이라는 것을 감추고 살았다. 알패오라는 그는 헬라식 이름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들에게 레위란 이름을 붙여 무거운 짐을 지어 주었다. 아들의 때에는 레위 지파의 자존심을 되찾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을 것이다. 그 레위가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복음서에서도 열두 제자 중 언제나 최하위에 기록되었다. 그 자신이 예수의 이름에 누가 될까 한 염려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모습은 언제나 제자들의 뒷전에 있었다.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아 마가복음에 이어 마태복음을 쓴 사람이다. 학자들이 말하고 있듯이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을 바탕으로 기록되었다.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그의 본명은 레위였다(막 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마태는 본래 레위 지파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레위 지파가 아닌 사람이 레위라는 이름을 쓰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마태가 이 사실을 깨달았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 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마9:9). 그는 세관에서 일하는 세리이다. 당시 유대민족이 로마의 식민지 생활을 하던 때라 얼마나 살기가 어려운지 도시락 하나가 귀한 시대였다(마14:13-21). 그렇지만 세리들은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을 모르고 살았다. 그런 그가 세관에서 앉아서 일하는 좋은 자리에서 사직서를 내고 방랑자와 같은 주님의 제자가 되기로 작정하고 따른 것은 그가 인간이 배를 불리는 빵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통치권자가 되어 천하를 호령하는 자리에 앉았어도 복음과 상관없는 시간과 물질과 권력은 세월을 허송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엡 5:16)고 했다. 세속 풍속과 유행을 따라 고귀한 시간을 허송하지 말고 영혼을 구하고 생명을 건지는 일에 우리의 모든 것을 투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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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7
  • [황권철 목사] 선교지에서 순교한 도마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도마는 바벨론으로 갔다. 아마 바벨론에 최초의 기독교회를 세운 이가 도마였던 것으로 보인다. 도마는 또한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까지 가서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다.1 도마가 인도 남부의 케랄라에서 최초로 기독교를 전했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인도 남부 지역의 7개 초대교회는 도마가 세운 것으로 기독교 사역의 집중력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인도에서 고난을 당하고 창에 찔려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시신은 현재 마드라스 교회 지역의 마알라토르에 묻혔다고 한다.2 도마는 두려움이 없는 전도자였으며 위대한 교회 개척자로 알려졌다. 도마가 기도하던 지하의 작은 굴 안에는 작은 바위 하나가 있었다. 그 바위에는 두 개의 작은 홈이 파져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도마가 양팔을 대고 기도하다가 생긴 홈이라고 한다.  도마는 인도 오토 릭샤로 첸나이 시가지로 20분쯤 달리면 성 토마스 마운틴(St. Tomas Mountian) 입구에 도착한다. 사도 도마가 원래 순교한 곳은 첸나이 시내와 공항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이다. 계단을 따라 한참 올라가면 모사의 순교지에 세웠다는 “도마순교기념교회”가 있다. 교회 내부는 아치형 천장으로 성당처럼 꾸며져 있는데 생각보다는 초라하다. 교회 양쪽 벽면에는 주님과 열두 제자들의 순교 장면이 그림으로 그려진 액자가 걸려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순교 했는지 기록도 있다. 교회 내부 앞 쪽에는 도마가 암석에 직접 새겼다는 돌 십자가상이 있다. 성 도마교회 안에 모셔져 있는 도마의 유해, 돌 십자가 옆에는 도마의 뼈 조각이 액자 안에 있었다. 사도 도마는 창에 찔려 순교했다. 산 정상에서 교회를 바라보면 마리나 해변의 해안선이 보이고 첸나이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1.5Km 정도 거리에 첸나이 국제공항이 있다. 무덤 교회는 순교지로부터 15분 정도 떨어져 있다. 도마의 순교지와 무덤은 다른 곳에 있었다. 무덤교회는 마리나 해변 근처로 5분 정도 거리에마리나 해변이 있었다. 순교 기념교회에 비하면 웅장한 건물이다. 흰색 고딕으로 건축된 성당 양식이다. 성전 내부에는 오래 되어서 칠한 곳이 벗겨져 있었고 군데군데 빗물이 흘러내린 흔적이 있었다. 성전에서 나와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면 단층 조그마한 건물에 유물을 전시 한 박물관이 있었다. 이곳에는 사도 도마와 함께 했던 자들의 생활도구들의 유물이 있다.  1949년 6월 10일 카이로의 프랑스 판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이 정부는 이 귀중한 문서를 찾고자 애쓰고 있다.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지금까지 이집트 땅에서 보존되어 오다가 발견된 가장 귀한 것 중 하나며, 그 학문적 중요성은 투탄카멘 왕의 무덤을 발견한 것과 같은 극적인 발견보다 더한 것이라고 한다. 위 기사가 언급한 귀중한 문서란 나그함마디 문서(Nag Hammadi Library)3를 가리킨다. 최근 신약 학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도마복음(Gospel of Thomas)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도마복음은 나그함마디 문서가 전한 작품이다. 또한 고대 그리스어원문을 콥트어(Coptic)로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 완전한 콥트어 판본이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되었다.4 비록 정경과 같이 믿을 수는 없으나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이삭줍기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표적을 보고 믿었다(요 2:23). 그래서 그들은 표적 보여주기를 원했고 주님은 요나의 표적 외에 보여 줄 것이 없다고 하셨다. 표적 중에 표적이 사실 십자가의 표적인데 주님이 그것을 보여 주었을 때 그들은 정작 다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십자가는 당대 사람들로 하여금 실족하여 넘어지게 하는 스칸달론(헬, 올무, 추문)이었다. 그러나 도마는 정면승부를 걸고 주님 앞으로 다가가서 그 현장을 확인하고자 했다. 오늘날 우리가 표적만을 구하는 신앙에 머문다면 그 표적이 눈앞에서 사라질 때 신앙 또한 처참히 무너지고 말 것이다. 신앙은 지성을 희생하고서 얻은 것이 아니라 지성이 없는 믿음, 회의가 용납되지 않는 믿음이 오히려 위기를 자초하는 법이다.5 도마는 주님 앞으로 나아가 십자가 현장을 확인하려고 했으나 그는 표적에 머물지 않고 표적을 행하신 주님에게 나아가 완전한 신앙을 고백했다. 그는 의심을 통해 더욱 확실한 고백의 자리로 나아가는 정직한 고백자였다. 우리에게 도마 같은 정직한 고백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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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2022-12-07
  • [황권철 목사] 도마(Thomas Behind Stories)-의심의 사도
    도마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중의 한 사람이다. 신약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네 번 언급이 되는데 그 중에 도마는 항상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마10:2-4; 막3:16-19; 눅6:14-16; 행1:13). 요한복음에서 도마는 세 번 언급 되었다(요11:16, 20:24, 21:2). 그 뒤에 디두모(Didymus)라는 헬라 이름이 따라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헬라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디두모인 줄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도마란 아람어로 ‘트오마’이고, 히브리어로는 ‘트옴’인데 이것은 쌍둥이라는 뜻의 별명이다. 이 사도의 성격은 요한복음서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주님이 요단강에서 유대로 돌아오시기를 결심하셨을 때 나사로 죽음의 비유를 통해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셨다. 그때 도마는 예수께 모든 것을 바치고 따르려고 동료 제자들에게 함께 죽음에 동참하자고 강렬한 충성과 용기 있는 결단으로 말했다(요11:7, 8, 16). 그는 주님이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요14:5). 그러나 주님이 부활하신 후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보고서야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요20:24-28). 우둔하나 충실한 도마 그는 주후 27-90년경에 활동했다. 아우그스투스가 죽은 후 로마제국은 티베리우스(AD 14-37), 칼리쿨라(AD 37-41), 글라디우스 그리고 네로(AD 54-68)같은 황제들이 다스렸다. 아우쿠스투스 황제 이후 최고의 황제는 글라우디우스(Claudius)였다. 도마는 갈릴리 출신의 제자였으며 주님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우둔한 제자로 나타나 있다(요14:1-5).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여 의심 많은 제자로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요14:1-5). 복음전파 사역을 위해 모든것을 헌신했다. 주님은 나사로의 죽음의 현장에서 그가 다시 살아 날 것을 통해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한 것이었으나 도마는 그 의미도 모른체 주님의 죽음에 동참하는 제자로서의 희생과 용기를 드러내 보이는 우둔한 부분을 보여 주고 있다. 도마는 예수님의 수난 때도 자신의 우둔함을 드러내 보였다(요14:1-5). 주님은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고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고 하였다(요14:4).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이고 그 길은 십자가에 못 박힘의 수치와 부활의 영광을 통해 열려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길을 주님은 제자들에게 친히 고백하며 알려 주셨다. 그러나 도마는 그 길을 알지 못했다. “우리가 어떻게 그 길을 알겠삽나이까?” 라고 묻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도 도마의 몰이해를 보게 된다. 그러나 이 사실은 도마 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제자들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몰라도 아는 척 하며 말없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도마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솔직하게 물어보는 순수함이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 볼 때 지각이 없는 우둔한 사람같이 보이기는 하나 그의 질문은 솔직하고 정직한 고백이었다. 이로 인해 의심 많은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기는 했으나 이것이 도마의 약점이자 강점이었다. 그는 솔직하게 자신의 심정을 표출했던 정직한 심성을 소유한 자였다. 의심자로 낙인찍힌 도마 동료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부활하신 주님은 무덤을 찾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시고 먼저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셨다. 마침 그때 도마가 그 자리에 없었다. 후일 동료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했을 때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20:25). 도마는 주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는 구약의 예언을 유의하지 않았다. 자신의 손으로 만져 확인 해 보고서야 부활하신 주님을 믿을 수 있었다. 팔일 후 주님은 도마가 제자들과 집안에 있을 때 다시 나타나셨다(요20:26). 그때 주님은 도마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시며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도마는 자신의 믿음 없음을 부끄럽게 여기며 바른 신앙고백을 했다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0:28). 이 공개적인 고백을 그가 불신하고 의심했던 자들이 다 듣게 되었다. 이 같은 부활신앙을 경험한 것이 도마로 하여금 이방 선교로 나아갈 동기 부여가 되었다. 도마 하면 의심 많은 자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의심은 의심을 위한 의심이 아니라 더 잘 믿고 더 확실히 믿으려고 가진 의심이었다. 그 결과 그는 예수님의 참된 사도로 거듭나게 되었다. 우리 가운데도 도마와 같은 자가 적지 않게 존재한다. 도마처럼 꼭 손으로 그 못자국과 발자국과 허리에 창 자국을 만져 보아야 믿겠다는 것과 같이,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보아야 믿겠다고 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가운데 불신하는 자들과 도마와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정직한 고백의 차이다. 도마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몰라도 모른다고 말하지 않는다. 모르면서도 아는 것처럼 자신을 속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정직한 고백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같이 우리도 도마처럼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정직하게 고백할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확실한 고백을 통해 약속한 말씀위에 굳게 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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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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