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친구가 세 명만 있어도 그 사람의 삶은 성공한 것이라고 한다. 친구 사이의 우정은 나눔과 공유를 통해서 자기의 성공을 더욱 빛나게 하고 어려움을 덜어 주는 것이다. 우정은 길과 같아서 자주 다니지 않으면 잡초가 우거지고, 책과 같아서 끝까지 읽어야만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독일 속담에 친구를 칭찬할 때는 널리 알도록 하고, 친구를 책망할 때는 남이 모르게 해야 한다고 했다. 정말 상대방에게 기대하기보다 오히려 주어야만 제대로 친구 사이의 관계가 잘 유지되고 우정이 돈독해지는 것이다.
성경에서도 참된 친구는 변치 않는 것이라 했는데 많은 친구를 원하는 자는 오히려 해를 당하게 되는 위험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친구의 종류에는 오래전부터 사귀어 온 옛 친구가 있고,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처럼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는 격려의 친구가 있다. 우리에게는 나를 유익하게 해 주는 친구가 절대 필요한 때이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을 보면서 시대가 악함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친구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어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진실한 우정을 나눈 다윗과 요나단은 정말 전무후무한 친구의 정을 나눈 것이다. 다윗이 어려움을 당하여 죽게 되었을 때도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다고 했다. 반대로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과 함께 망하였을 때에도 다윗은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라고 슬퍼하는 것을 보아도 두 사람의 우정은 천하에서 제일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끊임없는 우정을 나눈 사람도 성경에는 많이 나온다. 시모 나오미와 룻의 사랑과 우정이 오래오래 전하여 역사적 사실로 남은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오미가 아무런 희망이 없는 곳에 있지 말고 돌아가라 했을 때 ‘어머니 가시는 곳에 내가 가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라고 한 것을 보아도 두 사람은 고부관계라기 보다 오히려 친구 사이의 틈새가 없는 우정 관계로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머물러 있도록 했으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않겠나이다.’ 하여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간 사제간의 우정은 과히 스승이 없는 현세에 귀감이 되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잘 알고 의심 많은 도마도 마지막에는 다른 제자들에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한 것은 주님을 자기의 최고의 친구로 믿고 목숨까지도 마다한 것은 큰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매우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도 자기의 이익과 생각이 차이가 나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모두 변하는 것이 친구 모습이다.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셨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기만 하면 예수님은 자기가 스스로 변치 않는 친구가 되겠다고 약속하셨다. 진리이신 예수님이 명하신 대로 살아가자. 우리의 변치 않는 영원한 친구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분만 바라보고 목말라 하자. 그리하면 정말 멋진 인생이 전개되는 것임을 확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