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일을 많이 해서 더 빛에 거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법 안에 들어오면 빛이다. 불을 켜면 그 밝기 안에 있게 되듯이 우리는 그 생명의 빛 안에 그냥 살게 되었다. 그냥 그 밝기 속에 사는 것이다. 아무리 어두움을 빛 안으로 밀어 넣어도 빛의 밝기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빛 안에 있다는 말은 무엇을 했기 때문에 점점 더 맑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냥 빛 안에 우리는 있다. 우리는 빛 자체다. 물론 우리 자신이 빛이 아니었다. 예수님이 빛이신데 그 분이 우리 안에, 우리가 그 분 안에 있게 되어 하나가 되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한복음 14장20절)
우리가 빛 안에 있음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어두움은 빛 안으로 절대 들어 올 수 없다. 이것은 어둠을 이기는 놀라운 능력이다. 어둠을 이기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빛 안에 있을 알고 눈만 뜨면 모든 것이 보인다. 아무리 큰 어두움이 빛 안으로 들어온다 해도 빛의 밝기는 변하지 않는다. 빛이 없어질 때 어두워지는 것이지 어두움이 빛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어두움은 빛 안에서는 존재 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 우리는 빛이고, 빛 안에 있다.
우리는 본래 빛이 아니었다. 그런데 빛이 우리에게 임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머리 위에 임했다. 자고 일어나서 기도를 열심히 하고 나야 빛이 임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것이 아니다. 자고 일어나마말자 빛은 당신 머리 위에 항상 있었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 당신 머리 위에 머물러 있다. 그러기에 일어나 빛을 발하기만 하면 된다. 빛이 있으면 저절로 빛나는 것이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이사야 60장1절)
우리의 빛은 완벽하게 밝은 빛이다. 꺼질 수 없는 영원한 빛이다. 빛 안에 있으면 빛의 영향력 안에 있는 것이다. 어두움은 빛에 영향을 줄 수 없다. 당신은 어둠의 영향을 받을 수 없는 당신은 빛임을 확신하라.
빛 안에 있는 자는 보려고 하면 보인다. 가려고 하면 자유롭게 갈 수가 있다. 예수님의 빛 안에 있는 자는 빛을 더 받을 필요가 없다. 다른 빛을 더 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 안에 있다는 말은 내가 무엇을 더 받거나 무엇을 해아서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것이다. 바울신학의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생명의 힘을 더 받아야 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생명의 힘 안에 있다. 전에는 우리도 어두움이었다. 어두움 안에 있을 때는 그냥 어두움 그 자체였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칠흑같이 깜깜한 어두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빛 안에 있는 빛이다.
세상에 빛이 없다는 말, 정말 어둡다는 말은 영적으로 빛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보려고 노력한다고 보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 갈 수도 없다. 우리가 이런 어두움 가운데 살았는데, 빛의 사람으로 바뀌었다.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졌다. 우리는 생명이 있다. 우리는 생명이다. 생명이 있고 없음의 차이를 아는가? 병원에서 생명이 있을 때와 없을 때는 완전히 다르다. 생명이 딱 떨어지면 모든 것을 멈춘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빛 안에선 자유가 있다. 빛 안에선 하나님 나라를 본다. 빛 안에선 하나님나라 안에 있다. 이제 빛 안에 있는 우리를 개발해야 한다. 빛 안에 있는 우리를 인정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워가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육체로 보지 말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고린도후서 5장16절)
당신이 빛임을 확신하라. 스스로 빛이 되려고 하는 산소마스크를 벗어라. 우리는 빛이다. 우리의 빛을 적극적으로 개발한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빛 안에서는 보려고 하면 보인다. 눈을 떠라. 지금을 보고 미래를 보아라. 우리는 빛이기 때문에 갈 곳을 미리 보는 자다. 이제 답답하고 제한하던 마스크를 벗어버려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