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은 눈에 보이는 사람도 의식해야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늘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소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신전의식이라고 부르는 삶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살아가라고 명령하신다. (신명기6:25)에 “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신명기18:13)에서도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라고 요구한다.
성경의 여러 인물들 중에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신다는 두려움으로 하루하루 살았던 인물이 있다. 바로 요셉이다. 요셉은 17세의 나이로 애굽으로 팔려갔다. 다른 사람의 손에 팔려간 것이 아니라 형들의 의해서 인신매매를 당한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17살의 나이로 유배를 간 왕이 있다. 소위 ‘단종애사’ 라는 사건이다. 세종의 손자요, 문종의 아들로 태어난 ‘단종’은 ‘문종’이 왕이 된 지 2년 만에 죽는 바람에 겨우 12세 나이로 조선의 6대 왕이 되었다. 그러나 단종은 15세 때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쫓겨났고, 17세에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다가 그 해 가을에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했다.
보통 10대에 잘못된 과거나 마음의 상처가 있으면 그것이 그의 평생 정신과 인격에 영향을 주어서 나중에 잘못된 방향으로 뻗어갈 수 있는데 요셉은 애굽의 총리의 자리에 올라서도 형들에게 잘못을 되갚지 않았다. 애굽에 팔려온 요셉은 한 마디로 앞이 보이지 않고, 미래가 없는 막막한 환경이었다. 보통의 청소년 같으면 그냥 되는대로 살아갔을 것이지만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보디발 장군의 아내는 요셉을 유혹한다. (창세기39:12)에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을 나가매” 라고 말씀한다. 요셉이 버려두고 간 그 옷이 나중에 증거물이 되어서 강제추행의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게 된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기재잡기(寄齋雜記)에 수록되어 있다. 성리학자인 박 영(朴英, 1471-1540)의 후손들은 대대로 옷자락이 잘린 두루마리 한 벌을 유물로 물려받는 가풍이 있었다. 여기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하루는 박 영선생이 말을 타고 남소문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골목 어귀에 미색이 남다른 여인이 손짓을 하였다. 그는 혹하여 말에서 내려 여인을 따라갔다. 집에 이르니 이 여인은 박 영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는 말이 ‘풍채를 보니 여느 사람이 아는데 나 때문에 죽게 되었으니...’ 하고는 말끝을 흐린다. 박 영은 무슨 연유인지 따져 물었다. 그 여인은 강도가 보낸 미끼였던 것이다. 밤중이 되자 다락에서 여인을 부르는 신호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박 영은 눈치를 채고 강도떼가 들어오는 순간 다락 벽을 발로 차 무너뜨려 짓눌러 놓고 급히 여인을 업고 나왔다. 이 여인을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자 이젠 여인이 진정으로 두루마리 자락을 붙들고 늘러졌다. 박 영은 칼을 빼서 그 잡힌 옷자락을 자르고 담을 넘어 멀리 달아났다. 그 후 옷자락이 잘린 두루마리는 집안의 가보가 되어 자자손손 박 영의 정신을 기리게 된 것이다.
요셉은 언제나 자기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맞추었다. 그러면서 늘 다짐하는 결단이 있는데 (창세기39:9)에서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라고 말씀한다. 요셉은 17세에 애굽에 팔려와서 30세에 애굽의 총리까지 올라갔다. 그렇다면 요셉이 총리가 되기까지 13년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을 한다면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살아갔던 사람이 바로 요셉이다. 아무도 자기를 지켜보거나 감시하는 사람이 없는 타향살이 가운데서도 요셉은 불꽃같은 눈으로 자기를 보시는 하나님을 늘 생각하며 살았다. 요셉과 박 영, 두 사람은 정말 멋있게 겉옷을 던진 사람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