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부르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아니하리라”(호2:16)
이 말씀은 단순히 부르는 호칭을 바꾸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예배가 얼마나 깊이 타락했는지를 폭로하는 말씀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끝까지 가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1. 이스라엘 역사에 반복된 한 가지 패턴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한 가지 반복되는 패턴이 있습니다.
출애굽 직후, 시내산 아래에서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그들은 금송아지를 다른 신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여호와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의 가장 무서운 형태입니다.
□ 여호와를 버린 것이 아니라,
□ 여호와를 왜곡한 것입니다.
그 이후 이스라엘 역사 속에는 수많은 이방 신들이 등장합니다.
바알, 아세라, 몰렉…
그러나 호세아 시대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더 심각해집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는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을 ‘내 바알’이라 부르기 시작합니다.
2. “내 바알” 이라는 말의 충격입니다.
‘바알’은 단순히 ‘주인’이라는 일반 명사가 아닙니다.
바알은 가나안의 대표적인 우상신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 바알”
이 말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과 바알이 혼합되었다는 말입니다.
□ 참 하나님과 거짓 신의 경계가 무너졌다는 말입니다.
□ 예배는 있는데, 대상이 틀린 예배입니다.
금송아지를 여호와라 부르던 그 착각이,
이제는 하나님을 바알이라 부르는 지경까지 온 것입니다.
이것은 무지한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왜곡된 예배, 섞여버린 신앙, 타락의 최종 단계입니다.
3. 이것은 옛 이스라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과연 옛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성도들은 교회에 나옵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그 예배의 중심에 계신 분이 참 하나님이 아니라,
각자가 만들어 낸 ‘자기만의 바알’일 수 있습니다.
성공을 주는 하나님,
안전만 보장해 주는 하나님,
내 계획을 도와주는 하나님,
내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하나님.
이것은 여호와가 아닙니다.
이것은 바알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것입니다.
□ 이 우상숭배는
□ 교회 밖에서가 아니라,
□ 예배당 안에서,
□ 하나님의 집에서,
□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안방에 와서 참된 남편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외간 남편, 바알을 섬기는 예배.
이것이야말로 가장 더럽고, 가장 추하고, 가장 심각한 우상숭배입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호세아 2장 16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다시는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아니하고 ‘내 남편’이라 부르리라”
이 말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깨닫고 돌아온다는 말이 아닙니다.
□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겠다는 선언입니다.
혼합된 예배를 정리하시고,
왜곡된 관계를 끊어내시고,
다시 언약의 관계로 회복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로 데려가시고,
말로 위로하시고,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바꾸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2:19–20)
5.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이 약속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신을 신랑이라 부르셨고,
교회를 신부라 부르셨습니다.
십자가는
혼합된 예배를 끝내는 자리이며,
바알의 관계를 끊는 자리이며,
언약의 혼인을 다시 여는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더 이상
‘내 바알’을 섬기는 자들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내 남편’이라 고백하는 신부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여호와를 예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낸 바알을 여호와라 착각하며 예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약속하십니다.
“다시는 나를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않게 하겠다.”
“내가 너를 다시 내 아내로 회복시키겠다.”
혼합된 예배를 내려놓고,
참된 남편이신 하나님 앞에
정결한 신부로 다시 서는
고신의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말씀 앞에 우리의 예배와 신앙을 다시 비추어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는 입술로는 주님의 이름을 불렀지만
마음으로는 주님을 바알처럼 대하며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을 사랑의 남편이 아니라 필요를 채워주는 대상으로,
내 뜻을 돕는 존재로 왜곡하여 불러왔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참 하나님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 낸 바알을 섬겼던 이 더럽고 추한 우상숭배를 회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끊어내지 않으시고, 광야로 데려가 다시 말씀하시며,
“다시는 나를 바알이라 부르지 않게 하겠다” 약속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찬양합니다.
주님, 교회를 맡아 사역하시는 말씀 사역자, 목사님들을 주님의 강한 손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혼합된 예배의 시대 속에서도 타협하지 않게 하시고,
바알의 언어가 아니라
언약의 말씀만을 담대히 전하는 신실한 말씀 사역자, 목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 사역자, 목사님들의 영과 육을 지켜 주시고,
가정과 사역 위에 주님의 위로와 분별력을 날마다 더하여 주옵소서.
주님, 고신의 모든 성도들의 마음을 다시 주님께로 돌이켜 주옵소서.
익숙해진 신앙, 형식만 남은 예배, 섞여버린 가치관을
말씀의 빛으로 정결하게 씻어 주옵소서.
주님을 내 바알이 아니라 내 남편이라 부르며,
관계로 주님을 아는 신앙으로 회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육신과 마음의 질병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주님의 긍휼로 찾아가 주옵소서.
병상에서, 고통의 자리에서 주님이 여전히 언약의 남편이심을 붙들게 하시고,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그들의 몸과 마음 위에 부어 주옵소서.
주님, 오늘도 우리를 버리기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니라
다시 아내로 삼기 위해 부르신 줄 믿습니다.
혼합된 예배를 끊어내고,
참된 남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정결한 신부로 서게 하시며,
끝까지 신실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고신의 모든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참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