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기독신문 창간 20주년 기념] 말씀의 거울을 들고 시대의 파수대에 서라!
경남기독신문 창간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한 언론이 스무 해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켜 왔다는 것은 단순한 시간의 축적이 아니다. 수많은 사건과 사람을 기록하며 한 시대의 기억을 보존하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침묵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선택해 온 역사이다. 더욱이 교회를 섬기는 기독 언론이 스무 해의 길을 걸어 왔다는 것은 사람의 수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경남기독신문이 지역교회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교계의 크고 작은 소식을 전하며, 이름 없이 복음의 자리를 지켜 온 목회자와 성도들의 수고를 기록한 일에 깊이 감사드린다. 어려운 언론 환경 속에서도 사명을 감당해 온 모든 임직원과 관계자들의 노고에도 존경을 표한다.
그러나 창간 20주년은 지나온 역사를 자축하는 데 머무는 시간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신문으로 서야 할지를 다시 묻는 성찰의 시간이어야 한다. 스무 해의 역사는 자랑의 면류관인 동시에 더욱 무거운 책임을 요구하는 부르심이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성경은 교회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부른다. 교회는 세상의 흐름을 좇는 공동체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시대의 방향을 바로잡아야 하는 공동체이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세상을 염려하기에 앞서 오히려 세상의 염려를 받는 처지가 되었다.
공의를 외치면서도 가까운 사람의 불의에는 침묵하고, 타인의 허물에는 엄격하면서 자신의 허물에는 관대하며, 상대의 잘못은 확대하면서 자신이 속한 진영의 잘못은 축소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여 왔다. 이른바 ‘내로남불’은 세속 정치만의 병폐가 아니라, 말씀 앞에서 자신을 살피지 않을 때 교회 안에서도 드러나는 오래된 죄의 얼굴이다.
세상이 교회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복음의 진리가 낡았기 때문이 아니다. 복음을 맡은 우리가 그 진리의 무게에 합당한 삶을 충분히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회가 진리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은 권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을 말씀에 복종시키는 것이다. 교회가 진리로 자신을 다스릴 때 비로소 세상을 향한 외침도 권위를 얻게 된다.
바로 이러한 시대에 기독 언론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기독 언론은 교계의 행사와 인물 동정을 전달하는 게시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교회의 아름다운 사역을 알리고 이름 없이 헌신하는 이들을 격려하는 동시에, 교회가 길을 잃을 때는 말씀의 빛으로 방향을 비추고, 교회의 양심이 무디어질 때는 경종을 울려야 한다.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교회의 모든 일을 무조건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상처를 덮어 곪게 하는 것이 아니라, 빛 가운데 드러내어 치료받게 하는 것이 참된 사랑이다. 그러므로 기독 언론은 교회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따뜻한 동역자인 동시에, 모두가 잠든 밤에도 깨어 나팔을 부는 신실한 파수꾼이어야 한다.
그러나 기독 언론이 경종을 울린다는 것은 스스로 재판장의 자리에 앉아 교회를 심판한다는 뜻이 아니다. 신문은 교회의 주인이 아니며, 언론의 펜이 성령의 검을 대신할 수도 없다. 언론의 사명은 없는 죄를 만들어 사람을 정죄하는 데 있지 않고, 이미 드러난 사실과 말과 행동이 무엇을 증언하는지를 정직하게 보여 주는 데 있다.
욥기 15장 5-6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좋아하는구나. 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네게 불리하게 증언하느니라.”
이 말씀은 사람의 말과 행동이 결국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을 드러내며, 때로는 자신의 입술이 자신의 불법과 거짓을 증언하게 된다는 엄중한 사실을 보여 준다. 지도자의 공적 발언과 교회의 결정, 교단이 채택한 문서와 결의는 그 공동체가 무엇을 믿고 어떤 가치를 따르는지를 증언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 언론은 판결문을 작성하는 법관이라기보다 말씀의 거울을 들어 주는 봉사자에 가깝다. 거울은 얼굴의 흠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다만 이미 있는 모습을 감추지 않고 비추어 줄 뿐이다. 개인과 교회와 교단이 그 거울을 통해 자신의 죄와 실수를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서 돌이키도록 돕는 것이 기독 언론의 사명이다.
따라서 경남기독신문의 펜은 사람을 찌르는 창이 아니라 병든 곳을 치료하는 의사의 수술 도구가 되어야 한다. 비판에는 진실의 날카로움이 있어야 하지만, 그 목적은 반드시 회개와 회복이어야 한다. 진리를 말하되 사랑 안에서 말하고, 잘못을 밝히되 회개의 문을 닫지 않아야 한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12문은 제9계명의 뜻을 설명하면서 진리를 사랑하고 정직하게 말할 뿐 아니라, 이웃의 명예와 평판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가르친다.
문: 제9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내가 누구에게도 거짓 증언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왜곡하지 않으며, 험담하거나 비방하지 않고, 또한 직접 듣지 않고서 성급하게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피하기 위하여, 마귀의 고유한 일인 모든 거짓과 속임수를 멀리해야 합니다. 재판이나 그 밖의 모든 경우에도 진리를 사랑하고 정직하게 말하며 고백해야 하고, 할 수 있는 대로 이웃의 명예와 평판을 보호하고 높여 주어야 합니다.
이는 기독 언론이 붙들어야 할 중요한 균형이다. 사랑을 명분으로 진실을 덮어서도 안 되며, 진실을 명분으로 사람을 함부로 파괴해서도 안 된다. 경남기독신문은 교회와 협력하고 교회를 섬겨야 한다. 교회의 선교와 교육과 구제와 연합을 널리 알리고, 지역교회들이 함께 복음의 길을 걸어가도록 연결해야 한다. 동시에 진리와 거짓 사이에서 중립일 수 없고, 공의와 불의 사이에서 침묵할 수 없다. 사람과 진영에 따라 판단의 기준을 달리하지 않고, 동일한 말씀의 잣대를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적용해야 한다.
창간 20주년을 맞은 경남기독신문이 이제 더욱 높은 파수대에 서기를 바란다. 그 자리는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연단이 아니라, 밤바람과 비를 견디며 깨어 있어야 하는 자리이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때 시대의 징후를 살피고, 위험이 다가올 때 분명히 나팔을 불며, 새벽이 올 때 누구보다 먼저 빛을 알리는 자리이다.
교회의 선한 소식에는 따뜻한 전령이 되고, 교회의 아픔에는 함께 우는 동역자가 되며, 교회의 잘못 앞에서는 침묵하지 않는 충성된 파수꾼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크고 화려한 사역뿐 아니라 농어촌과 도시의 작은 교회에서 이름 없이 충성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의 이야기를 소중히 기록하기를 바란다.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오늘의 시대가 교회와 기독 언론을 향하여 묻고 있다. 밤이 깊을수록 파수꾼은 더욱 깨어 있어야 하며, 어둠이 짙을수록 등불은 더욱 밝게 타올라야 한다.
경남기독신문이 사람의 박수보다 하나님의 판단을 두려워하고, 시대의 유행보다 영원한 말씀을 신뢰하며, 교회와 함께 걷되 교계의 바른 소식을 전하는 정직한 기록자요, 교회의 양심을 깨우는 맑은 종소리요, 말씀의 거울을 들고 시대의 성벽을 지키는 충성된 파수꾼으로 쓰임 받기를 기도한다.
경남기독신문 창간 20주년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그 모든 걸음 위에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