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텍사스 근교의 한 냉동 창고에서 직원이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동태처럼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병원에 옮겨져 부검한 결과 사인(死因)은 동사(凍死)로 판명되었습니다. 그 사고는 토요일 오후 늦게까지 냉동 창고 안에서 잔업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관리자가 밖에서 문을 잠가버리고 퇴근함으로써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토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오전까지 36시간을 냉동 창고에 갇혀 변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토요일 오후부터는 전기가 끊겨 그 냉동 창고의 냉동기가 가동되지 않았습니다. 즉 토요일 오후부터 냉동 창고는 냉방이 되지 않는 말뿐인 냉동 창고였다는 것입니다. 실제 그 직원이 시체로 발견되었던 당시 그 냉동 창고의 온도는 섭씨 13도였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죽은 것은 냉동 창고의 추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사인은 추위가 아니고 추워서 곧 죽게 될 것이라는 그의 얼어붙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생각이 그를 죽인 것입니다.
오래 전 미국의 어느 신문에 자기가 고양이로 변하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버린 한 부인의 이야기기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아멜라라고 하는 이 부인은 20년 동안 고양이 음식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 사연은 이랬습니다. 어느 날 이 부인이 애지중지하며 키우던 고양이가 죽어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몹시도 허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양이를 사랑해서 미리 사 둔 고양이 사료가 집에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인은 그 고양이를 생각하며 그 사료를 한 개씩 집어먹기 시작하다가 그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그렇게 고양이 사료를 먹다보니까 자신이 고양이로 변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기를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진짜 고양이 행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고양이가 그러하듯이 그렁그렁 소리를 내었습니다. 화가 날 때는 고양이가 하듯이 야옹야옹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심지어 그 부인의 생긴 모습도 점차 고양이처럼 변해갔습니다. 실제 신문에 그 부인의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진짜 고양이 같은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이 실화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생각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은 달라지고, 그래서 그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성경 로마서 8장 6절에서는 생각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생각의 차이가 얼마나 엄청난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어느 신문에 정치인이며 교회 장로인 한 분의 이야기기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예수님을 믿고 진리를 깨달은 후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에는 골프장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생각의 전환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일요일에 골프장을 안가면 정치에서 소외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장로님은 그렇게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자기 속에 계신 성령님이 주일에는 골프장에 가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주일을 온전히 성수해야 한다고 늘 감동을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육신의 생각이 아닌 영의 생각,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성령의 생각을 따르는 모습인 것이지요.
그렇지만 어느 때는 정치적인 욕심에 이끌려서 골프장을 갈 때가 있었는데, 그렇게 욕심에 이끌려서 골프장에 갔다가 오는 날이면 마음의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왠지 마음이 불안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모습이 추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끝까지 성령님의 생각을 따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주일에는 아예 골프장 출입을 금했습니다. 그로부터 당장 찾아온 것이 마음의 평안이었습니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의 평안이 물밀듯이 밀려 와서 교회도 기쁜 마음으로 오게 되고 삶에서도 이전과 다른 즐거움이 생겼다고 합니다. 바로 그것이 “영(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는 말씀의 중요한 의미입니다.
독자 여러분, 가끔씩 주일성수를 뒤로 하고 주일에 산이나 들로 소풍을 간 적은 없으십니까? 내 볼일 보러 간 적은 없으셨습니까? 그 때 마음이 평안하던가요? 평안하지 않은 것을 예수님을 믿는 성도라면 다 느낄 것입니다. 그것은 양심하고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내 속에 계신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므로 말미암아 내 속에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내주하는 하나님의 자녀의 참 평안은 자신 속에 계신 성령님의 생각과 내 행동이 일치할 때에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끝까지 육신의 생각에 무너지지 않고, 내 안에 내주하셔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려는 성령님의 생각을 따르는 진정한 성령의 사람이 되시기를 빕니다.
마산중부교회 박봉석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