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2-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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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철 장로(서머나교회 은퇴)

1994년 개봉되었던 베트남 전쟁사 이야기 하얀전쟁은 한국 사회에 큰 화두를 던졌다. 우리의 아픈 역사 속에 남은 베트남전쟁에 우리의 젊은이들이 많이 참전했다. 전쟁이 전쟁으로 끝나지 않고 그 속에 응어리로 남는 비극이 바로 전쟁의 트라우마다. 적을 죽여야 하는 전쟁의 사명 뒤에 인간의 순수 심성이 양심을 괴롭힐 때가 많다. 그 큰 응어리는 전쟁을 치르고 나면 남는다. 그렇다고 우리의 역사 속에 전쟁 없이 살아온 인류사는 없다.

  영화 하얀전쟁의 이야기는 적을 죽이는 전장에서 겪는 사람의 양심과 선한 심성에서 겪는 괴로움이 쉬 가시지 않음을 보여준다. 국민배우 고 안성기가 주연으로 이야기를 그려냈다. 사람은 누구나 착한 심성이 있지만 배우 안성기는 아역 배우에서부터 70평생 수많은 작품을 쏟아내면서 착한 심성의 캐릭터를 잃지 않았다. 국민들의 애도 속에 세상을 떠나고 나니 안성기의 심성을 남기는 어록(語錄)이 회자되고 있다.

  아들이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받은 편지 속에 아들 다빈아, 이 세상은 착한 사람이 필요하단다라는 말이 담겨 있다. 아들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의 말이지만, 세상을 떠난 후 안성기가 남긴 말이 큰 울림이 되면서 특히 오늘의 세상을 가르치고 있다.

  세상이 날로 악해지고 범죄 문화가 선함을 덮어가는 세상이 되고 있다. 급속한 발전의 뒷면에서 겪는 영악(獰惡)의 극치가 슬픈 현실로 자리 잡는 암울한 사회문화의 트렌드를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사회 각계 지도층들이 보여주고 있는 선함을 가장하고 부패의 심성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문화 속에 우리가 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밀려오는 때가 많다. 어떠한 범죄 윤리적 갈등 속에서도 뚜렷한 죄 앞에서 반성이 없다. 온갖 생떼를 쓰고 위기를 넘기면 사회적 예우로 회복되어 위선적 위치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파렴치한 일들을 너무 많이 보고 있다.

  옛 유교문화 시대에도 사회 윤리적 작은 범죄에 처벌이 가혹했다. 그리고 신분을 다시 회복하는 데에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됐다. 성경으로 돌아가 보자. 하나님의 세상 통치의 신본문화 속에 있는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우상의 범죄는 차치하자. 일상에서 겪는 소위 세상에 넘치는 자범죄(自犯罪) 앞에서 우리는 신앙의 양심에서 회심의 단계를 겪는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가장 큰 울림이 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갚으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이러한 양심의 작동은 어디에서 나올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왔다. 바로 십자가의 도에서 출발하여 땅끝까지 이어지는 복음의 사명에 있다. 성도는 처음에도 선이요, 마지막에도 선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길이 진리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교회는 선과 양심의 생산공장이라고 해야 할까. 바울 선생은 디모데전서에서 아들 디모데에게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져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사회를 탓하기 전에 곳곳의 교회 현장에서 선함과 착함의 능력이 사라지고 세속적 다툼으로 승부를 내려는 교회 문화를 많이 볼 수 있다.

  한국 사회를 일으킨 원동력은 고귀한 복음의 능력이었다. 140년 전 기라성 같은 선교사들이 캄캄한 한국 땅을 깨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실현함으로써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누렸다. 지금 세상이 필요한 것은 성경이 가르친 선한 양심의 작동 그리고 회복이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날로 약해져 가는 세태를 방관하지 말고 한국 교회가 교회로 밀려오는 세속문화를 밀어내고 양심과 착함으로 불의와 부당함을 이기는 본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한 사람 국민배우가 남긴 어록에 감동되는 동기도 중요하다. 더더욱 중요한 일은 교회가 더욱 세상을 리드하는 양심과 착한 문화의 생산공장이 되도록 확장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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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철 장로] 배우 안성기가 남긴 ‘세상에 필요한건 착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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