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저 주일에 예배에 참석하는 종교인 말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또한 십자가를 지고 좁을 길을 걷는다는 것은 엄청난 자기부인과 희생이 따른다. (마태복음6:24)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라고 말씀한다. 한 발은 교회에, 또 다른 한 발은 세상에 양다리를 걸쳐놓고 기회를 보면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성도가 있다. 모세의 뒤를 이은 지도자 여호수아는 신앙의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결단을 촉구한 적이 있다. (여호수아24:15)에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당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라고 말씀한다.
이렇듯 신앙에 있어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옛날 표현으로 하면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이군불사(二君不仕)’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한국선비의 근본사상을 풀이하는데 충(忠)이란 말뜻의 풀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글자를 뜯어보면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의 합성어임을 알게 된다. 중(中)이란 한복판을 뜻하지만 아울러 가운데가 가득찬 상태, 가슴 속이 꽉 차 빈틈이 없는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허위가 없는 충실한 참 마음이 중심이요, 충이다. 이 빈틈없는 참마음은 단지 나라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투사체가 달라짐에 따라 가치 또한 달라진다. 이를테면 의로운 일에 투사되었을 때는 절(節)이라 부르고, 부모에게 투사되었을 때는 효(孝)가 되며, 다른 사람에게 투사되었을 때는 인(仁)이 되고, 도덕적 규범에 투사되었을 때는 예(禮)가 된다.
옛 선비 중에 이군불사(二君不仕)의 귀감이 되는 한 선비가 있는데 바로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이다. 많은 무고한 선비가 죽어갔던 갑자사화 때 그 화에 말려든 대제학 홍언충이란 선비가 있었다. 그는 혹독한 고문을 받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옥문 밖에 버려져 있었다. 그 옥문 앞을 때마침 김안로(金安老)가 지나갔다. 이 두 사람은 어릴 적 글 공부를 같이 한 막역한 사이다. 이 처참한 꼴을 본 김안로가 ‘참혹하다. 이게 웬일인가’, 이에 피범벅이 된 홍언충은 ‘홍문관의 물이 묻어 그렇네’ 라고 대답했다. 홍문관은 글 읽는 학교다. 곧 홍문관의 물이라면 학문에서 익힌 의리를 홍문관의 물로 비긴 것이다. 바꿔 말하면 홍문관에서 익힌 의리를 굽힐 수 없어 이 처절한 꼴을 당했으며 고문을 당하고 범벅이 된 피고 곧 홍문관의 물이란 뜻이다.
결국 홍언충은 진보 땅으로 귀양하게 되었다. 당시 연산군은 사람을 죽일 때 귀양을 보내 놓고 귀양가는 도중에 사약을 내려 죽이는 것이 상투적인 수법이다. 그러기에 홍언충은 금부도사가 오늘 내려오려나 내일 내려오려나 하면서 귀양길을 가고 있었다.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품속에 미리 묘비 문까지 지니고 있었다. ‘한평생 우활하고 옹졸함은 학문의 공이라. 서른 두 살에 세상을 마치니 명이 어찌 그다지 짧으며 뜻은 어지 그다지 긴고. 천추만세 뒤에 누기 이 들판을 지날는지 이곳을 가리키고 배회하며 슬퍼하는 사람이 있을지어다’ 라는 내용의 비문이다.
이 같은 비문을 지니고 문경새재를 넘어 대탄원에서 쉬고 있는데 기다리고 있던 사신행렬이 뒤따라 달려왔다. 사약을 들고 오는 금부도사인줄 알았더니 의외로 연산군이 폐위되고 중종이 반정했다는 소식과 새 조정에서 급히 돌아오라는 매우 기쁜 전갈이었다. 죽음의 길이 영광의 길로 돌변한 것이다. 한데 홍언충은 이 기쁜 소식을 듣고 마냥 구슬피 울었다. 새 임금을 위해서 우는 기쁜 울음이 아니라 옛 임금을 위해 우는 슬픈 울음이었다. 홍언충은 영광의 길을 등지고 귀양길을 택한다. 그리고 고향에 가서 지내며 거듭된 조정의 부르심을 거절하였다. 이 선비의 행동은 현대인에게는 쉽게 납득은커녕 이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의를 위해 가혹한 고난을 당해가며 불의와 싸워 이겨놓고는 승자의 개선길을 등지고 패자의 길을 택하는 이 선비의 소행을 무엇으로 풀이할 수 있겠는가? 홍문관의 물을 피보다 진하다고 했다. 홍언충에게는 또 다른 대의, 바로 이군불사(二君不仕) 정신이 있었다. 홍언충은 낙향한 이후에도 연산군이 유배되어 있는 강화도를 향해 매일 절을 올렸다고 한다. 거듭되는 조정의 입사를 끝내 거절하고, 그를 죽이려 했던 연산군을 향해 절개를 지키다 죽어갔다. 오늘날 한국의 목회자에게 꼭 필요한 한 가지를 들라면 나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홍언충과 같은 이군불사(二君不仕) 정신이라고 말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