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영안으로 자세히 보면 잠언 32:1(?)에 “훈제 고구마를 먹어 보지 못하고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
훈제(燻製)란 말은 한자로 “연기 훈(燻)” 자를 넣어 음식의 재료를 연기와 열에 노출시켜 수분을 제거하고 향을 입히며 보존성을 높이는 조리 방법을 말한다.
훈제의 기원은 언제부터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옛날 시골에 불을 때는 아궁이나 모닥불 또는 동굴 속에서 고기나 생선을 훈제하면 맛이 있고 오래 보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자연히 유행된 조리법이다.
요즘에는 고급 요리법으로 오리 훈제, 연어 훈제 등 다양하게 훈제 음식들이 소개되고 있다. 훈제하면 대부분 육류 훈제, 아니면 생선 훈제를 떠올린다. 그러나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훈제 고구마를 직접 만들어 먹었다. 그것도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에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궁금해 할 것이다.
지금은 문화가 발달해서 어린이들이 노는 문화가 고급화되고 수준이 높지만 옛날 50~60년대(그 이전에도 그렇게 놀았겠지만) 시골 아이들은 노는 곳이 뻔했다. 논, 밭, 들, 산, 바다... 특히 가을 고구마밭에서 생고구마를 캐서 날것으로 씹어 먹었다. 그렇게 먹고 나면 입술은 새까맣게 물들어 있고 고구마에서 나오는 진(sap, resin)은 옷에 다 묻고 정말 장난 아니었다. 동네 아이들이 개구쟁이처럼 놀면서 단순히 생고구마를 먹을 것이 아니라 색다른 고구마를 만들어 보자는 발상을 했었다. 방법은 빈 밭 공터에 땅을 파고 나뭇가지를 갖다가 불을 피우고 열기가 올라갈 때 그 위에 생소나무 가지를 덮으면 연기가 피어오른다. 소나무 가지 위에 떡갈잎을 펼치고 고구마를 올려놓고 연기 나는 상태에서 흙으로 덮어버리면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속에서 연기와 열기 속에 고구마는 익게 된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훈제 고구마이다.
말도 안 되는 것이라 반박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필자의 어린 시절 경험이요 팩트(fact)다.
훈제 고구마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목회를 하면서 가끔 훈제 고구마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훈제 고구마는 자신을 희생하여 아이들에게 간식거리가 되었다. 불과 연기를 통과한 고구마가 진한 향기를 내어 유익한 존재가 되듯이 우리 인생도 불과 연기를 통한 인내의 연단이 있어야 정금 같이 나오게 된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흙 속에 묻혀있는 고구마처럼 답답하고 질식할 것 같은 삶이지만 그 과정이 연기의 아름다운 향이 고구마에 배이듯 나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향기가 몸에 배이는 시간이고 신앙 인격이 다듬어지는 시간인 것이다.
훈제 고구마를 만들면서 또 깨달은 것이 있다. 불에 너무 오래 두면 타버린다는 것과 덮은 흙을 너무 일찍 제거하면 고구마가 익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빨리 먹고 싶은 욕심에 아이들이 너무 일찍 흙을 파헤치고 먹으려다 실패한 적이 많다.
인생에게 기다림의 시간이 꼭 필요한 이유는, 기다림은 낭비가 아니라 성숙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너무 조급해도 안 되며 너무 지체해도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늘 빠름에 익숙해 있다. 그래서 기다림은 손해처럼 느껴지고, 빠른 속도는 능력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빠름’이 답이 아니라 ‘바름’이 답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잘 익은 훈제 고구마의 삶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