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은 주일이 되면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예배의 자리로 나아온다. 이 복된 자리로 나아오는 우리의 발걸음은 분명 가볍고 즐거운 걸음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예배당으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이 언제나 경쾌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복잡한 내면을 안고 있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때도 많이 있다.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는 자들이 완전한 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이 흔들리고, 사랑이 미약하며,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영적 감각이 둔해진 상태로 예배당의 문턱에 들어선다. 마음속에는 여전히 죄의 흔적이 요동치며, 영적 실패의 기억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영적으로 깊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부패와 결함을 더 예민하게 감지하며 스스로를 정죄하는 고통 속에 빠져들기도 한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곧 ‘성도’라 불리지만 그 이름을 감당하기엔 자신이 너무도 부적합하다고 여길 때가 많이 있다. “성도”라고 불리지만, 본능적으로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이 ‘성도’에 포함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배의 자리에 모인 이 무리는 바로 “성도의 교제”라는 사실이다. 이 모순은 신학적으로 실로 깊은 신비를 품고 있다. 사도 바울은 각 지역 교회를 향하여 서신을 쓸 때마다, 그들이 비록 수많은 문제와 결함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 호칭한다. 고린도 교회처럼 분열과 음행, 영적 혼란이 만연한 교회조차도 여전히 하나님의 성도들로 불렸다. 에베소, 골로새, 그리고 데살로니가의 교인들이 만약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고 그들과 하나라면 사도는 어떻게 이들을 “거룩한 백성”이라고 부를 수 있었는가? 그 근거는 너무도 분명하다. 이는 곧 ‘성도됨’이 인간의 도덕적 완성이나 경건의 성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분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신학적 긴장을 목도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회중은 죄 많고 연약한 사람들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거룩한 무리요,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다. 이 긴장은 인간의 자기 인식과 하나님의 선언 사이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자기 안의 죄악과 결핍을 바라보며 “나는 성도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너는 내 거룩한 백성”이라고 선언하신다. 이러한 긴장은 단지 심리적 불편함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이 드러나는 자리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격이 아닌, 그리스도의 공로와 은혜가 회중을 성도로 세우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은혜요,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예배는 완전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행위가 아니라, 불완전한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신비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중심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대속의 죽음, 부활, 그리고 하늘 성소로의 승천은 회중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열어 주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며, 화목제물이시고, 교회의 머리이시다. 회중은 오직 이 한 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묶이며, 그분의 피로 정결케 되며, 그분을 통해 아버지께 인도함을 받는다.
이 신학적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예배의 본질을 다시 보게 만든다. 예배는 감정적 고양의 시간이 아니며, 단순한 종교 행위도 아니다. 예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거룩함을 받은 회중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나아가는 신비로운 은혜의 시간이다. 회중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와 예배가 이루어질 수 있는 근거는 단 하나, “그리스도 안에서”이다.
이 신비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으며,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우리 눈앞에 드러나지 않지만, 매 예배 속에서 그는 여전히 우리를 아버지께로 이끌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과 회중의 결함을 보며 낙심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중보를 바라보며 소망해야 한다. 진정한 회중은 도덕적 엘리트의 집합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모인 죄인들의 교제이며, 그 안에서 하나님은 오늘도 자신의 거룩한 백성을 세우시고 영광을 받으신다. 예배는 회중이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된 존재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행위다. 우리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성도로 부르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함께 모이게 하신다. 이 신비는 우리에게 참된 겸손과 동시에 무한한 은혜와 큰 용기를 준다. 그러기에 오늘도 우리는 우리의 모든 허물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이 은혜를 따라, 믿음의 눈을 들어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 안에서 진정한 ‘화해된 회중’으로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