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연월일 2026-04-2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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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헌 목사(부산 고신교회)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이 말씀은 인간 존재의 목적을 단정적으로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지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도의 존재 이유는 자기 실현이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찬송에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 본문에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목적을 이루시겠다는 열심의 선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인간의 의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으로 붙들리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열심’은 단순한 부지런함이나 성실함이 아닙니다. 끓어오르는 열정, 자신을 소진해 버릴 만큼 강렬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삼킨다’는 표현은 완전히 사로잡혀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 상태를 뜻합니다. 성경은 먼저 하나님의 열심을 강조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9:7)라는 말씀처럼, 구원의 역사도 하나님의 열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인간의 가능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질투와 사랑이 죄와 사망을 집어삼켰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사건은 이 열심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요한은 이를 두고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시69:9)라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왜곡되는 것을 그대로 두지 않으시는 거룩한 열정, 그 열심이 예수님을 십자가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언제나 자기희생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열심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흔히 열심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을 행합니다. 그러나 그 출발점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일 때, 그 열심은 쉽게 변질됩니다. 내 감정, 내 정의감, 내 분노, 내 의욕이 앞설 때 열심은 오히려 교만이 됩니다. 열왕기상 18장에서 바알 선지자들은 밤낮으로 외치며 제단 주위를 뛰었습니다. 피가 흐르기까지 몸을 상하게 하며 격렬한 열정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무 응답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무관한 열심은 아무리 뜨거워도 공허할 뿐입니다.

 

“너는 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창12:1)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창12:4)

 

믿음의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에 고향을 떠났습니다. 계산과 안전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에 사로잡힌 순종이었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고, 예수님은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단순히 행위를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요구하셨습니다.

 

특히 물질은 인간이 가장 쉽게 붙드는 영역입니다. 그래서 물질을 향한 태도는 신앙의 실제를 드러내는 거울과 같습니다.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다면, 물질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열심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물질은 언제든지 우상이 됩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히11:4)

 

성경은 혈통상 장자인 가인이 아니라, 믿음으로 제사를 드린 아벨을 의로운 자로 증언합니다. 기준은 ‘하나님의 열심에 사로잡혔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외형이 아니라 중심을 보십니다. 그 중심이 하나님께 향해 있을 때, 비로소 열심은 거룩해집니다.

 

오늘 우리의 가장 큰 위기는 모든 판단의 기준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된 데 있습니다. 설교가 내 마음에 맞으면 은혜롭고, 맞지 않으면 은혜가 없다고 합니다. 교회가 내 기대를 충족시키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실망합니다. 신앙의 기준이 말씀과 교회가 아니라, 나의 기분과 취향이 되어 버렸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그러나 주님은 지금도 예배와 말씀을 통해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시선을 받아들이고 통곡했지만, 가롯 유다는 외면했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동일하게 임하지만, 반응은 다릅니다. 그 시선을 받아들이는 자는 깨어지고, 외면하는 자는 굳어집니다.

 

참된 열심은 나를 드러내는 열정이 아니라, 나를 무너뜨리는 열정입니다. 자존심과 계산, 체면과 고집이 허물어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를 삼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신 그 약속은, 우리를 억지로 끌고 가시겠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변화시키시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게 하소서. 내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에 사로잡히게 하소서. 나를 높이는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열정에 소진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열심에 사로잡힌 삶, 그것이 성도의 길입니다. 그 열심 안에서 자신을 부인하고, 교회를 사랑하며, 복음을 위하여 기꺼이 소진되는 삶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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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헌 목사] 반드시 내가(사43: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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