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장 후반부는 교회의 탄생을 준비하는 놀라운 장면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가룟 유다의 배신과 죽음 이후, 사도단은 11명이 되었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제자들은 기도하며 맛디아를 제비 뽑아 사도의 수를 다시 열두 명으로 회복시킨다. 얼핏 보면 단순한 결원 보충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 사건은 구속사적으로 매우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12’라는 숫자는 단순한 수량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상징하는 완전수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처음 제자들을 부르실 때 열두 명을 택하신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구약의 열두 지파를 계승하여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즉 새 이스라엘을 세우시려는 의도였다. 따라서 사도들의 수가 11명인 상태는 구속사적으로 ‘기초가 결핍된’ 상태였고, 교회를 세우기 위한 완전한 구조가 준비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하나님은 결코 불완전한 기초 위에 교회를 세우지 않으신다. 그래서 베드로는 시편 말씀을 인용하여 유다의 직분을 누군가가 대신 맡아야 함을 말했고, 제자들은 기도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구하였다. 그렇게 해서 맛디아가 뽑힌다. 이로써 사도단은 다시 12명으로 완성되며, 오순절 성령 강림을 맞이할 준비가 갖추어진 것이다.
여기까지가 사도행전 1장의 역사적이고 구속사적인 의미라면, 이제 우리는 이 사건을 오늘날 교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오해가 자주 일어난다. 예컨대 어떤 이들은 말한다. “우리 교회에는 아직 한 사람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완전하지 않습니다. 이 하나를 채워야 성령이 역사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 본문에 대한 잘못된 적용이다.
왜냐하면 맛디아를 뽑아 ‘12’를 채우는 일은 단회적인 구속사적 사건이지, 반복 가능한 모델이 아니기 때문이다. 맛디아가 뽑힌 이유는 그가 예수님의 공생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증인이었기 때문이며, 부활하신 주님을 친히 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사도직의 유일한 자격 조건이었고,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질 교회의 기초석이었다. 계시록은 이 열두 사도의 이름이 새 예루살렘 성의 기초석에 새겨져 있다고 말한다(계 21:14). 그러므로 이 기초는 한 번 놓이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 중 그 누구도 다시 사도가 될 수는 없고, 그 자리에 들어갈 수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본문을 오늘 교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답은 분명하다. 우리는 기초석이 아니라, 그 위에 세워진 살아 있는 지체들이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다. 교회의 기초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통해 완성되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움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엡 2:20)
이처럼 우리는 완전한 기초 위에,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살아 있는 돌들이다(벧전 2:5).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은, 기초를 다시 놓는 것이 아니라, 이미 놓인 기초 위에서 자신의 자리를 충실히 감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역설이 성립한다. 바로 이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면서도, 이 땅에서 여전히 불완전하다는 역설이다. 교회는 존재론적으로는 이미 완성되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았고, 성령의 내주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었으며, 하늘에 속한 자로 불림받았다. 이 점에서 교회는 완전하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는 지상에서 여전히 연약하며, 죄와 싸우고, 분열과 갈등, 냉소와 나태, 무관심과 죄악이 공존하는 현실 안에 있다. 이 점에서 교회는 불완전하다. 교회는 지금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가야 하는”(엡 4:13)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교회를 바라볼 것인가? 그것은 비판과 이상화라는 두 극단을 넘어서는 시선이다. 교회를 향한 실망은 반드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신실한 눈으로 치유받아야 하며, 교회를 향한 맹목적 이상화도 회개와 진리 앞에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고, 우리는 그 몸 안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섬기는 지체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완전한 기초 위에 세워진 불완전한 교회 속에서, 여전히 완전함을 향해 부르심을 받은 지체된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교회에 누가 빠졌느냐보다, 나는 지금 나의 자리를 충실히 감당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성령은 인원수가 갖춰졌기 때문에 임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주권에 따라 임하셨다. 오늘도 성령은, 교회가 완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공동체이기에 역사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