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관계가 소원했던 두 형제의 가정이 모친의 집에서 몇 년 만에 함께 만났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고 교제를 나누며 그동안 서로를 향해 가지고 있었던 앙금을 털어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교제를 하는 중에 동생 가정의 어린 아들이 할머니 무릎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형님 가정의 아들이 대뜸 “너, 왜 우리 할머니 무릎에 앉는 거니?”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동생 가정의 아들이 “우리 할머니인데.”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서로 자기 할머니라고 주장하면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런 다툼이 일어난 것일까요? 사촌지간인 두 아이는 아버지끼리의 불화로 인해서 자라오면서 서로를 보지를 못했고, 그래서 할머니가 사촌 형제의 할머니도 된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할머니는 웃으면서 두 아이에게 왜 자신이 모두에게 할머니가 되는지를 설명을 해 주었고, 그제야 두 아이는 이해를 하고 더 사이좋게 함께 놀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 가운데 이런 비슷한 일을 겪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가장 먼저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개인적인 신앙이 잘못하며 이기적인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라는 생각에만 빠져서 하나님은 다른 성도의 아버지도 된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말은 유달리 ‘우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우리나라, 우리 글, 우리 민족, 또 가정에서도 우리 집, 우리 아이 등 우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심지어는 내 남편이고 내 아내인데 우리 남편, 우리 아내라고 말을 합니다. 그것은 개인주의적인 서양의 성향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이 강한 민족이었음을 알게 해줍니다. 그런 나라가 점점 생활패턴이 서구화되면서 공동체 의식이 점점 희박해지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과 어울려서 함께 하며 신앙생활 하는 것을 싫어하고 간섭받지 않고 신앙생활하고 싶은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우리라는 공동체를 중요시합니다. 그것이 성경적인 교회관의 기초입니다. 성경을 보면 교회에 속한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들이라고 비유하면서 교회는 한 몸임을 말합니다. 또 주님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다른 성도를 나를 사랑하듯이 사랑하는 것이 참 교회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실은 그렇습니다. 모든 신앙은 우리라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제 모습을 나타낼 수 있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우리 개인 개인 속에는 사실은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랑의 가능성만 있습니다. 그 사랑의 가능성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발현될 때에 비로소 진짜 사랑이 됩니다. 겸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는 겸손이 있는 것이 아니고 겸손의 가능성만 있습니다. 그 겸손의 가능성이 교회 공동체에서 자신을 낮추고 다른 성도를 섬길 때에 비로소 진짜 겸손이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하나님을 부를 때에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가르쳐 주시지 않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실 뿐만이 아니라 다른 성도의 아버지도 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한 형제자매이며 한 가족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서만 신앙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신앙이 이기적인 신앙으로 변질되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성도도 하나님의 아들이고 딸이기에 내가 귀하게 여기고 섬기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신앙 생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만이 아니라 다른 성도를 위해서도 심지어는 내가 미워하는 성도를 위해서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그래서 그 사람 또한 내가 귀하게 여겨야 할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마산중부교회 박봉석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