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연월일 2026-04-20(월)
 
오성한 목사 사진_인터넷_021011 배경.jpg
오성한 목사(흔들깃발교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가장 자주 듣는 표현 중 하나가 “주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고백을 머리로만 알고, 실제 삶에서는 여전히 ‘내가 알아서 열심히 살아야 하는 신앙’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복음의 핵심 한가운데를 비켜가고 있는 셈이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단순히 죄 사함을 받았다는 법적 선언이나, 이전보다 조금 나아진 도덕적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이 증언하는 참된 구원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곧 union with Christ이다. 예수님과의 연합은 복음 신학의 중심 주제이며, 우리의 신앙생활 전체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다시 해석하게 만드는 토대다.

 

 

찬물 속 보리와 끓는 보리차의 차이

  ‘연합’이라는 개념은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다. 이를 일상의 예로 설명해 보자. 보리를 찬물에 넣어두면 시간이 지나도 물의 색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보리는 물속에 있지만, 물과 하나가 되지는 않는다. 함께 존재할 뿐, 본질적으로는 분리된 상태다.

그러나 물이 끓기 시작하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보리가 완전히 우러나 물과 구별할 수 없는 새로운 음료, 보리차가 된다. 이제는 물과 보리를 나눌 수 없다. 이것이 연합이다.

  오늘날 신자들은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찬물 속의 보리처럼 지식으로만 간직한다. 교리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삶의 실제에서는 여전히 ‘내가 주님을 붙잡아야 한다’고 애쓴다. 그 결과는 반복되는 실패와 낙심이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라는 자책이 신앙의 일상이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가지가 열매를 맺는 이유는 가지가 애를 써서가 아니다. 포도나무의 생명이 가지 안으로 흘러들기 때문이다. 열매는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연결의 결과다. 복음은 우리에게 더 힘을 내라고 말하기 전에, 이미 주어진 자리 안에 거하라고 초대한다.

예수님도 연합으로 사셨다.

  더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 자신도 이 땅에서 하나님과의 연합 가운데 사셨다는 점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반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능력을 행하신 것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으로서 성부 하나님과의 완전한 연합 속에서 사셨다. 그분의 사역은 독립적인 인간의 열심이 아니라, 연합된 관계에서 흘러나온 생명의 역사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쉽게 말한다. “예수님이니까 가능했지, 나는 다르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로 말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7장에서 이렇게 기도하신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누리신 연합은 그분만의 특권이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열려 있는 은혜의 현실이다.

 

약함은 연합을 막지 않는다 

  많은 성도들이 연합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로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든다. 그러나 바울의 고백은 다르다.

“우리는 질그릇이요, 그 안에 보배를 가졌다.”

“내가 약할 그때 오히려 강하다.”

연약함은 연합의 장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이 드러날 통로다. 연합은 잘난 사람에게 주어지는 영적 보상이 아니라,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모든 신자에게 이미 주어진 신분이다.

연합은 의무를 사랑으로 바꾼다.

  신앙이 피곤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해야 한다’는 말이 너무 많아질 때다. 기도해야 하고, 말씀을 읽어야 하고, 봉사해야 하고, 전도해야 한다. 그러나 연합의 관점에서 보면 신앙은 전혀 다르게 보인다.

  연합은 의무를 낳지 않는다. 사랑을 낳는다.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헌신은 억지로 하지 않아도 지속된다. 아내가 남편에게 밥을 해주는 이유가 의무라면 오래 가지 못하지만, 사랑이라면 자연스럽고 기쁜 것과 같다.

  복음의 눈물겹도록 놀라운 진리는 이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위해 큰일을 해내기를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라, 그분과 친밀해지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연합은 신앙의 기초이자 능력의 비밀이다. 메마른 광야 같던 신앙이 어느 순간부터 따뜻하게 끓어오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실제로 우리의 말과 선택과 관계 속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찬물 속 보리가 아니라, 끓어오르는 보리차처럼 말이다. 이것은 말씀대로 믿고 십자가의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일 때 일어난다.

 

 

태그

전체댓글 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오성한 목사] 복음알기3 - ‘보리차의 비밀’로 풀어보는 복음의 핵심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