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연월일 2026-04-2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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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승 목사(부산 은파교회)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산층으로 살기를 원한다. 그런데 각 나라마다 중산층의 정의가 조금씩 다르다. 각 나라별 중산층의 정의가 이렇습니다. 한국에서 중산층이 되기 위해서는 아파트 30평 이상에 살아야 하며, 월급 500만원 이상, 2000 CC 급 자동차를 타야 하며, 예금 잔액이 1억원 이상 보유해야 한다고 정의한다. 이에 반해 미국의 중산층은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야 하며, 부정과 불법에 저항해야 하며, 집에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놓여 있어야 한다고 정의한다. 영국은 어떠한가? 영국의 중산층은 페어플레이를 해야 하며,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져야 하며,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아야 하며, 약자를 도와주고, 강자를 대응해야 하며, 불의와 불법에 대처해야 하는 계층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프랑스의 중산층은 어떠한가? 불어 외에 외국어를 하나 해야 하며,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고,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며, 남들과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가 있어야 하며, 정의를 지키며, 약자를 도우며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고 정의를 한다. 한국은 중산층과 관련해서 오로지 돈과 관련해서 정의를 내린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잠언22:1)에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라고 말씀한다. 하지만 한국의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커서 명예와 재물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직업군으로 보내기를 원한다. 과거 우리의 청렴한 선비들은 재물과 명예 중에서 명예를 택했다. 더 나아가 자신이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 애써 재물을 멀리하는 경향과 돈을 기피하는 습속을 가졌다.

동대문 밖을 나와서 신설동과 보문동의 경계 즈음해서 ‘우산각(雨傘閣)’ 이라는 옛 지명의 마을이 있었다. 같은 마을인데도 선비들과 식자들은 비를 피한다는 뜻으로 ‘비우당(庇雨堂)’이라고 불렀다. 그 마을에 비를 가린다는 초라한 집 하나가 있었으며 그에 유래된 지명이었다. 구한말이나 일제 초기만 해도 이 비우당의 주춧돌과 비우당을 뒤덮는 노송 한 그루가 남아 있었는데 일제 때 도시계획에 의한 신설동의 조성으로 그 흔적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비우당 터로 추정되는 그 곳 주변의 기둥에 아래의 글이 새겨져 있다. ‘현이다재 (賢而多財) 즉손기지(則損其志) 우이다재(愚而多財) 즉익기과(則益其過)’ <현명한 이가 큰 재물을 가지면 곧 그 뜻을 해치며, 어리석은 이가 큰 재물을 가지면 곧 그 과실을 더한다> 는 의미이다. 비우당 기둥에 새겨진 이 글은 <소학> 외편에 나오는 명언으로 우리 옛 선비들의 행동을 구제해 온 가장 영향력 있는 가르침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우산각 마을에서는 고려말 20년 간, 그리고 조선에 들어서 태조, 정종, 태종, 세종 4대에 걸쳐 35년간 나라 일을 돌봤던 정승 유관(柳寬)이 살았던 마을이다. 그는 바른 선비의 조건인 청빈을 생활화하고 살았던 많은 선비 가운데 전형적인 분이었다. 재상을 거쳐 정승이 됐을 때까지도 우산각 마을에서 담장이나 대문마저도 없는 허술한 초가에서 살았다. 그의 청빈한 성품을 잘 알고 있는 태종이 선공감으로 하여금 밤에 몰래 울타리를 둘러놓게 했던 고사는 유명하다. 집이 허술하여 장마철이면 지붕이 새어 방안에 빗물이 떨어지곤 했다. 정승 유관은 그가 과거에 급제했을 때 받은 일산을 방 안에서 펴들고 비를 피했다. 후세에 조선시대 실학자 이수광 선생이 물려받으면서 ‘비를 가리는 집’으라는 뜻으로 ‘비우당(庇雨堂)’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옛 정승이면 지금의 장관보다 높은 벼슬이다. 높은 관직의 봉록으로 겨우 그렇게 밖에 살지 못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유관은 자기의 봉록으로 집안 자체의 지묵값, 다리는 놓는 공공사업에의 시주, 무료숙박소인 원(院)에의 기부 등으로 다 썼다고 한다.

오늘날 성도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바르게 살아야 함이 옳다. 하지만 ‘바르게’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다. 성도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세상에서 구별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구별됨을 구원받은 이후에도 구별되게, 다르게 살아가야 함이 옳다. 더 엄밀히 말하면 살아내는 것이다. 살아낸다는 것은 그 목표를 향해서 꾸준히 노력을 한다는 의미이다. 그냥을 되지 않을 것이다. 누가 알아주는 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아실 것이고, 그렇게 외로운 길을 걷는 자신이 잘 알 것이다. 그저 비만 피하면 족함으로 살았던 선비들의 비우당 정신을 되살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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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승 목사] 그저 비만 피하면 족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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