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연월일 2026-04-2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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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헌 목사(부산 고신교회)

1. 종려나무 가지를 든 손, 일주일 뒤에는 무엇을 들었는가?

 

종려주일은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을 여는 문이다. 환호로 시작되지만, 곧 침묵과 배신, 그리고 십자가로 이어지는 주간이다. 교회는 이날을 맞아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편이 무거워진다. 왜냐하면 이 환호가 오래가지 않았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던 날,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외쳤다.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그러나 불과 며칠 뒤, 같은 성 안에서 다른 외침이 울려 퍼진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무엇이 이토록 급격한 변화를 만들었을까.

 

 

2. 환호의 이유는 믿음이었을까, 표적이었을까?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설명하면서 한 사건을 반복해서 언급한다. 바로 나사로의 부활이다.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이미 썩고 있던 나사로를 예수님께서 살리셨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퍼졌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 표적 때문에 많은 이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이전까지 예수님은 유대 땅에서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일이 두 번이나 있었고, 제자들조차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런데 나사로 사건 이후, 돌을 들던 손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게 된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한 이유가 그분이 누구신지에 대한 깊은 고백이었는지, 아니면 죽음까지도 뒤집는 능력에 대한 기대였는지다.

 

3. 사람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각자의 메시아를 기다렸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부한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자기들이 상상한 메시아가 아닌 예수님을 거부했다.

그들이 기다리던 왕은 분명했다. 로마를 무너뜨릴 힘 있는 지도자, 억눌린 현실을 단숨에 바꿔 줄 정치적 구원자, 전쟁의 말을 타고 입성하는 승리의 왕.

그러나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오셨다.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처럼, 그 왕은 병거를 끊고 전쟁의 활을 꺾으며 평화를 선포하는 분이었다.

사냥꾼처럼 정복하러 오신 왕이 아니라, 사냥을 끝내기 위해 오신 왕이었다. 예수님은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길을 거부하셨다. 오히려 심판의 활을 자신에게로 돌리시며,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셨다.

 

4. 참된 왕은 사냥하지 않고, 사냥당하신다.

 

성경은 니므롯을 용감한 사냥꾼이라 부른다. 그는 힘으로 나라를 세웠고, 빼앗고 정복하며 다스렸다. 이것이 인간이 반복해서 꿈꿔 온 왕의 모습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반대의 길을 가신다. 그분은 빼앗지 않고 내어주셨고, 죽이지 않고 대신 죽으셨으며, 군중 위에 서지 않고 군중에 의해 버림받으셨다.

종려주일의 왕은 결국 가시관을 쓰신 왕이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십자가가 있었다.

 

5. 종려주일은 질문이다.

 

종려주일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다. 이 날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어떤 예수님을 원하고 있는가? 내가 원하는 왕이 예수님인가, 아니면 예수님이 진정 내 왕인가?

우리는 예배의 자리에서는 쉽게 호산나를 외친다. 그러나 삶의 자리에서도 그 고백이 유지되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주일에는 예수를 왕으로 모시지만, 월요일이 되면 다시 내가 왕이 되어 살고 있지는 않은가.

문제는 우리가 예수를 몰라서가 아니다. 예루살렘의 사람들처럼, 우리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너무나 잘 안다. 문제는 그분이 우리의 기대와 다른 방식으로 왕이 되실 때 드러난다.

 

6. 고난주간의 문 앞에서

 

종려주일은 고난주간의 문턱이다. 이제 교회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침묵과 기다림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끝에서 부활을 맞이한다. 그러나 부활은 십자가를 통과한 이들에게만 의미가 있다. 나귀를 타신 왕을 끝까지 따라간 이들에게만, 사냥당하신 어린 양을 왕으로 고백한 이들에게만.

종려주일, 우리는 다시 종려나무 가지를 든다. 그러나 그 손이 고난주간의 침묵 속에서도 주님을 놓지 않기를, 환호가 사라지고 십자가만 남는 자리에서도 여전히 순종이 남아 있기를 조용히 우리 자신에게 묻게 된다.

그리고 부활절 아침,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단지 무덤이 비어 있다는 소식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따랐는지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나귀를 타신 왕을 끝까지 왕으로 고백한 자만이 부활의 기쁨 앞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나귀 새끼를 타고 시작해 십자가를 지나 부활에 이르는 이 거룩한 여정 속에서, 우리는 다시 선택의 자리에 선다.

예수님을 이용하는 신앙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 순종하는 제자의 삶으로 나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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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헌 목사] 나귀 새끼를 타고 십자가를 향해 (요2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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