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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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신 국내전도위원회 전문위원 박희재 목사 인터뷰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위축된 한국교회의 전도는 많이 위축 됐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고신 총회 산하 노회와 교회를 두루 다니며 전도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전도의 열정을 회복시키는 고신 총회 국내전도위원회 전문위원 박희재 목사(구미온누리교회)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Q. 목사님의 간단한 소개와 함께 구미온누리교회가 하고 있는 사역들 말씀 부탁드립니다. A. 경남기독신문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의 길을 익혔으며 고신 총회 국내전도위원회 자리와 개척교회 훈련원으로 교단을 섬기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시인이며 수필가로 활동도 하고 대한민국과 전 세계로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저희 구미온누리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경북서부노회 동시찰에 소속된 지교회로 천석 정도의 규모를 갖춘 가든 처치입니다. 저희 구미온누리교회는 예수님의 소원이요 성경의 결론인 ‘가서 제자 삼는 교회’(마28:19-20)를 평생 표어로 삼고 구미와 민족 나아가 세계 복음화(행1:8)를 사명으로 삼아 거룩한 생명사역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말씀운동(예수운동, 생명운동)과 일꾼운동(제자운동 후대운동)을 일심 전심 지속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 자랑거리는 말씀으로 답을 주고 말씀으로 치료하고 말씀으로 일꾼세우는 치유사역이고, 기도의 불꽃이 강하게 타오르고, 찬송의 바람이 뜨거우며, 순종의 풍토가 견고히 서 있습니다. Q. 국내 전도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전도 동력 세미나에서 주 강사로 섬기시는 중인데 전하신는 내용들을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A. 현재는 전도 동력 세미나에서 주제 강의를 맡아서 전했습니다. 이번 전도 동력 세미나의 주제가 ‘교회 다시 세상의 빛으로’입니다. 교회는 우리주님 주실 새 은혜를 사모하여 겸손히 하나님 의지하고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인데 우리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는 세상의 빛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므로 교회인 우리가 빛 되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갈 때 교회인 우리는 이 세상의 어두움의 세력 죽음의 세력 저주의 세력 고통의 세력을 능히 몰아내는 빛의 사명을 잘 감당하면서 하나님 영광을 크게 높이 드러내는 착하고 충성된 예수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들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Q. 코로나로 힘들었던 성도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말씀과 전도에 동기부여가 될 만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3년째 지구촌에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 역병 때문에 사람들의 영육이 피폐하여 힘들고 어려워서 피곤하여 지쳐있습니다. 회복의 길은 스스로 겸비하여 악한 길에서 떠나고 회개하며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 일입니다. 내가 살면 교회가 살고 우리 교회가 살면 한국교회가 살아납니다. 한국교회가 본질의 사명을 회복할 때 우리나라 민족이 살고 순교의 피가 뿌려져 있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살면 전 세계가 다시 사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일은 처음신앙 처음열심 처음사랑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예배가 회복되고 기도가 회복되고 전도폭발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김현주 국장, 설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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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2-05-17
  • 마산회원교회, 힐링콘서트 찬양예배
    예장(고신) 마산회원교회(윤문식 목사)가 지난 5월 7일(토) 오후 2시, 힐링콘서트 찬양예배를 가졌다. 이날 청소년 및 대학청년부를 비롯한 전교인을 초청한 힐링콘서트 찬양예배는 한국대학생선교회(CCC, 대표 박성민 목사) 음악선교부 찬양팀 No Other Name이 제안해 열린 찬양 예배로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성도들과 함께 찬양하며 다음세대들의 찬양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번 일으킬 수 있도록 했다. 찬양으로 시작한 집회는 어려운 영어 가사가 흘러 나오는 찬양에도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성도들이 모두 일어나 손을 들고 뛰며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했다. 찬양 후 요한복음 4장 23-24절 말씀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하며 “예수님을 만났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이 정말 누구신지 알았다면 그녀가 충족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달라고 했을지 모른다.”라며 “그녀가 알고는 예수님은 사람의 친절 정도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생각보다 뛰어난 위대한 감히 상상도 못할 예수님을 만난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 인생의 모든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그 하나님을 어떤 분인지 알지 못해서 내가 원하는 것 정도만 구하고 있지 않은가 살펴보길 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대단한 것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라고 전하고 결단과 찬양의 시간을 가졌다. 설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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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계
    2022-05-17
  • 미래목회포럼, 제18-4차 정기포럼’을 개최
    미래목회포럼(대표 이상대 목사)은 지난 5월 12일(목),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제18-4차 정기포럼’을 개최했다. ‘사립학교법 개정에 대한 대처 방법과 기독교학교의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은 조희완 목사(산창교회)가 좌장으로 나섰고 발제자로는 박상진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 교육학), 함승수 교수(숭실대학교 숭실평화통일연구원)가 참여했으며 박호근 교수(한국체육대학교 교육학)와 우수호 교목(대광고등학교)은 패널로 함께했다. 포럼 시작에 앞서 대표 이상대 목사는 사학법 개정안이 사립학교 운영과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문제를 지적하며 이번 포럼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시발점이 되길 기원했다. 이 목사는 “사학법 개정안은 기독교 학교의 인사권과 자주성을 제한해 건학이념에 동의하지 않는 비종교인들과 타종교인 및 이단들의 교원 임용을 막을 길을 없게 한다”면서 “이번 포럼이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 우리의 모임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이날 박상진 교수는 ‘교원 임용 관련 개정 사학법의 문제점과 한국교회의 대응방안’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2005년 당시 한국교회의 사학법 개정 반대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분석하며 현 시점에서 필요한 대응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패널로 참여한 박호근 교수는 “정부의 역할은 사학의 건학정신을 보호하고 신장하는 것이지 억압하는데 있지 않다”고 했다. 박호근 교수는 “21대 국회에 들어서 사학 관련 입법 태도는 공공성을 더욱 강화한다는 입장이고 자율성은 계속 위축시키고 있다. 아무리 공공성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기업의 주인은 창립자이고 대표이사인 것처럼 사학의 주인은 본질적으로 사학을 세운 창립자이고 그의 후손들”이라며 “기업을 세울 때는 창업가의 정신이 반영되는 것처럼 사학을 세울 때도 설립자의 정신이 유지되고 발현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설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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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합
    2022-05-17
  • 경남성시화, 경남지도자초청 조찬기도회
    사단법인 경남성시화운동본부가 주관하고 사단법인 경남기독교총연합회, 사단법인 CBMC경남연합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제25회 경남지도자 초청 조찬기도회’가 지난 5월 13일(금) 오전 7시, 창원시 그랜드머큐어앰배서더 창원에서 있었다. 경남성시화 대표본부장 김종준 목사(홍대교회)의 인도로 시작한 1부 예배는 CBMC경남 수석부회장 박성환 장로(남산교회)가 대표로 기도하고 경남성시화 서기 서민석 목사(새소망교회)가 성경봉독(빌2:50한 후 임마누엘교회 우리엘중창단이 ‘주의 크신 사랑의 힘으로’라는 곡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 이날 명예회장 구동태 감독(합성교회 원로)이 ‘이 마음’이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하고 사무총장 김우태 목사(동창원영은교회)의 인도로 △ 새 정부의 성공과 공정한 지방선거를 위햐여 △국민 통합, 경제 회복, 평화 통일을 위하여 △경남의 도정, 시정, 군정을 위하여 △경남 2600여 교회의 부흥과 성시화를 위하여 합심하여 기도하고 명예회장 윤희구 목사(한빛교회 원로)가 축도함으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이어진 2부에서는 상임회장 조우성 장로(마산제일교회)가 참석한 내빈 소개를 하고 회계 최동수 장로(생초교회)가 조찬기도 후 모든 순서를 마무리 했다. 한편, 경남기독교총연합회 주관의 ‘제26회 경남기도자 초청 기도회는’ 오는 7월 8일(금) 열릴 예정이며, CBMC경남연합회가 주최하는 CBMC경남포럼이 오는 6월 25일(토)에 열릴 예정이다. 김현주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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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단 및 연합회
    2022-05-17
  • 마산재건교회, 임직감사예배
    (예장)재건 마산재건교회(송영섭 목사)가 지난 5월 15일(주일) 오후 3시, 임직 감사예배를 드렸다. 임직식에 앞서 드린 1부 예배는 당회장 송영섭 목사의 예배 인도로 시작해 영남노회장로회장 안병진 장로(재건덕산교회)가 대표로 기도하고 영남노회장 이해준 목사(재건함안교회)가 ‘지도자(장로)의 자세와 역할’(민11:16-17, 행20:28-31)이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설교 후 2부 임직식은 송영섭 목사의 집례로 임직자와 마산재건교회 교우들에게 서약을 받고 안수 후 장로·집사 된 것을 공포하고 권사 취임기도 후 마산재건교회 권사된 것을 공포했다. 이어진 축하 순서에서는 영남노회 부노회장 김효산 목사(재건창원교회)가 임직자에게 권면의 말을 전하고 서기 강훈희 목사(재건김해교회)가 교우들에게 권면의 말을 전했다. 또 창신학교 이사장 강병도 장로와 증경총회장 김재열 목사(재건하늘바라기교회)가 축하의 말을 전했다. 이날 특별히 한국구게재학교 음악대학 김태모 교수가 축가로 임직을 축하하기도 했다. 축하 순서 후 장로로 임직한 서정환 장로가 임직자를 대표해 답사를 전하고 양영전 목사(마산재건교회 원로)가 축도함으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마산재건교회는 “평신도 지도자들을 세우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라며 “더욱 낮은 위치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잘 섬겨나가는 일꾼이 되도록 기도와 격려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마산재건교회는 오는 6월 5일(주일) 오전 11시, 개그우먼 이성미를 초청해 간증집회를 가진다. 다음은 임직자 명단이다. ▲장로임직 : 서정환 ▲집사 안수 : 우민호, 송성안, 강복수 ▲권사취임 : 이경숙, 안정민, 조향은 김현주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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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계
    2022-05-17
  • [신재철 목사] 교회를 끊다
    # 교회를 끊다. 앞집, 방 한 칸에 혼자 사는 아저씨. 나는 그 아저씨를 ‘농협 아저씨’라고 불렀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아저씨가 농협에 출근하고 있었기 때문. 시골 살이, 재미있는 게 별로 없었던 내게 자주 놀러오라는 아저씨 말에 민폐인줄도 모르고 거의 매일 문을 두드렸다. 거기에는 맛있는 빵도 있고 뭔가 분위기 있는 음악이 흐르는 라디오가 있었다. 우리 집과 다르게 연탄 따위는 아끼지 않는 훈훈함이 있었고 이불 위에서 뒹구는 여유는 어린 내게도 충분히 쉼이 되었다. 분위기 최고다. “재철아, 교회 가보지 않을래?” 함께 교회 다녀보지 않겠냐는 제안.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인데 두렵기 보다는 뭔가 모를 설렘에 냉큼 엄마에게 물어본 후 허락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주일학교 예배를 참석하게 되었다. 교회는 농협 아저씨 방보다 더 좋았다. 친절했던 농협 아저씨 같은 사람들이 무지하게 많았다. 화장품 향 짙었던 선생님. (알고 보니 그 선생님은 화장품 방문판매 일을 하시는 분이었다.) 뭔가 분위기 있는 양복 입은 부장 선생님. 앞에서 멋지게 노래 부르는 선생님까지. 커다란 종이에 그려진 악보를 보며 큰 소리로 따라 부르던 노래도 재미났다. 교회에서 보고 들은 것을 집에 와서 재잘거리자 엄마는 100원을 주시며 예배에는 헌금이 필요하다는 말씀과 함께 남들 다 하는데 가만히 있지 말고 꼭 헌금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교회에 다녔더니 100원이 생겼다. 그것도 매주. 매 주 100원 들고 향하는 교회. 중간에 잠시 오락실 들러 50원은 오락 한 판하고, 남은 50원은 헌금하고. (엄마 죄송해요. 사실 하나님보다 엄마에게 더 미안하다.) 마룻바닥에서 나는 것인지, 방석에서 나는 것인지 모를 그 냄새도 참 좋았다. “흰 구름 뭉게뭉게 피는 하늘에!” 힘차게 한 곡 부르고 나면 간식도 먹고 몇 명씩 모여 성경을 공부했다. 성경 말씀을 듣고 공부하는 시간이 내게는 제법 묵직하게 다가왔다. 부모님 따라 교회 나오는 친구들을 보면 설교든, 공부시간이든 늘 장난스러웠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린 것들... “아, 믿음이 이렇게 자라는 것인가?” 시간이 흘러... 교회 앞마당에 들어서는 내 발걸음은 당당했고 능숙하게 신발장에 신을 넣고 방석을 깔고 앉아 기도를 한다. 기도 내용은 별 거 없다. “하나님, 저 왔어요.” 선생님이 그렇게 하면 된다고 하셨다. 뭔가 대단한 아이들이나 하는 것으로 보였던 헌금 위원 순번에 들어가게 되었다. 성경공부 시간에 선생님과 나누는 이야기도 많아졌다. 그렇게 교회 생활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교회 다니며 맞는 첫 성탄절, 우리 주일학교는 분주하게 연극을 준비했다. “마구간에 오신 예수님” 이야기를 친구들과 함께 연극으로 꾸며야 했다. 각 자에게 배역이 주어지는 시간. 별 거 없는 아기 예수님 역할 (이 역은 진짜 그냥 누워만 있으면 된다.), 그냥 뒤에 탈을 쓰고 서 있으면 되는 동물들, 동방박사, 목자들,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 누가 봐도 주인공은 요셉과 마리아다. 최근 교회 인싸로 등극한 나는 배역에 욕심이 생겼다. 요셉까지는 아니라도 박사 역할 정도는 주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동물 3” 내게 주어진 역할이다. 얼굴도 나오지 않는다. 대사도 없다. 그냥 탈을 쓰고 잘 서 있으면 된단다. 쓰린 속과 다르게 최대한 웃으며 첫 연습에 참여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일정을 소화했다. 나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니깐. 그리고 성탄 행사가 잘 끝나고 나는 교회를 끊었다. 더 이상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많은 친구들과 선생님의 연락에도 더 이상 교회에 가지 않았다. “아, 믿음이 이렇게 별거 없구나.” epilogue 고향집 방문할 때면 조용히 그 교회를 찾습니다. 지금은 현대식으로 바뀐 예배당에 들어가 잠시 기도하고, 주변을 괜히 살피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추억 한 자락 있을까 싶은 마음일까요. 그러다가 고향교회 담임목사님을 만나 초등학교 시절 1년 출석했던 주일학교 학생이라고, 지금은 목회를 하고 있다며 어색한 인사를 합니다. 그 목사님은 제가 교회를 다닐 당시 첫 부임하신 아주 젊은 목사님이셨는데 지금은 은퇴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궁금해서 이름도 모르는 농협 아저씨를 아시는지 목사님께 여쭈었습니다. 어디 계신지는 모르지만 지금 어느 시골에서 목회를 하시고 계시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보고 싶습니다. 그 아저씨가. 꼭 감사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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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7
  • [이정희 목사] 기독교 용어들에 대한 고찰 9
    I. 서언(序言) 언젠가 모 교단의 노회장이 정기노회 개회예배 설교 시에‘명문노회가 되는 길’이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어떤 신문에서 이를 기사화 하면서‘명품노회 되기 위한 노력 다짐’이란 제목을 달았다. 같은 내용을 말하면서 왜 다른 용어로 표기했을까? 또 어떤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글에‘명품을 통해 명인으로 인정받고, 명품은 장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이에 답하는 그 대선후보는‘명품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함께하겠다.’는 말을 했다. 여기에서의 ‘명품 대한민국’이란 말은 옳은 용어인가? 또한 어떤 도시에서는 발전하자는 표어를 내걸면서 ‘명품 00 도시를 만들자’고 했고, 또 어떤 도시는‘명품 도시’가 아닌, ‘명문 00 도시’라고 했다. 창원시의 경우도 ‘명품 창원시’라고 했다. 이러한 표현들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이름 있는 목회자는 자신의 위임식 때 감사인사를 하는 자리에서‘본 교회와 교인은 명품이지만 저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겸손한 모습의 말로서 좋아 보이지만, 명품이란 말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진다. 이에 본 호에서는 이 두 용어의 차이점을 논하여 보고자 한다. II. 명품(名品)과 명문(名門)의 차이점 두 용어를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명품’이란 단어이다. 한자의 뜻으로는 이름 名(명)과 물건 혹은 품위 品(품)자 이다. 사전적인 뜻은‘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이나 작품’등을 말한다. 즉, 명품은 주로 사람을 대상으로 사용되는 말이 아니라 사물 등의 뛰어난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용어인 것이다. 두 번째는‘명문’이란 단어이다. 한자의 뜻을 보면, 이름 명(名), 집의 두 문을 의미하는 문 문(門)자 이다. 사전적인 뜻은 ‘이름 있는 문벌(門閥), 문벌이 있는 집안, 명가(名家)’를 의미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명문은 사물이 아닌, 사람의 모임으로 이루어진 가정이나 가문, 모임, 단체 등의 뛰어남을 말할 때 사용되어지는 말인 것이다. 이상으로 볼 때 평소 자주 사용하는 명문과 명품의 구별은 분명하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되어지는 경우들을 보면 이 두 용어의 차이를 큰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다. 앞에서 예를 든 경우가 다 그러하다. 심지어 대선후보 진영에서나 각 도시들에서도, 또 교계의 중진들까지도 이를 명확하게 잘 구분하지 못하고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뿐 아니라 이와 비슷한 의미의 용어들도 많이 있다. 명성이 있는 가문을 뜻하는 명가(名家), 명문에 속한 집안을 뜻하는 명문가(名文家), 정치를 잘하는 이름 있는 관원을 뜻하는 명관(名官), 문화를 높이고 정치를 잘하는 군주를 뜻하는 명군(名君), 이름난 선비를 말하는 명사(名士), 문벌이 좋은 집안을 뜻하는 명벌(名閥) 등 비슷하거나 뜻을 같이하는 여러 용어들이 있다. III . 결 어(結語)와 제언 이상의 내용으로 볼 때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것은 명품과 명문의 경우처럼 왜 사람들은 단어의 뜻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면서도 이런 용어들을 자주 사용하는 것일까? 란 의문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언어문화 사대주의 사상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한문을 선호하고 국어를 경시하는 풍조는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대왕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한글 창제에 있어서 당시 집현전 학자였든 ‘최만리’, ‘정창손’등은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물론 나름대로의 시대적인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문 선호 사상은 조선시대 5백 년 동안 뿐 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그 잔재는 계속 남아 있다. 그렇다고 한자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그 이유는 한자어를 알지 못하고는 우리의 일상용어를 바로 분석하고 알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의 두 용어처럼 애매모호한 말이나 뜻도 알지 못하면서 사용하는 용어들은 순수한 우리말이나 알기 쉬운 용어로 사용하면 좋지 않을까 라는 제언을 해본다. 예를 들면, 위의 두 용어 대신 ‘좋은 가문’, ‘좋은 노회’, ‘좋은 도시’, ‘좋은 대한민국’등이나 ‘이름 있는’, ‘아름다운’등의 표현을 쓰면 어떠할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 일컬어지는 현대에서는 알기 쉽게, 듣기 좋게, 보기 좋게 쓰는 말이 더 아름답고 좋은 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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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7
  • [최호숙 목사] 영적 피톤치드(Phytoncide)로 회복하라
    우리 인생은 육적으로 영적으로 연약한 존재이다. 그래서 육신이 병들고 나약해지면 어떤 통로를 통해서든지 치유 받고 건강하게 되어 행복한 삶을 누리려고 한다. 치유 방법 중에 “피톤치드(Phytoncide) 치유법”이 있다. 피톤치드는 합성어인데 식물을 뜻하는 ‘피톤(phyton), 과 살해, 죽이다를 뜻하는 ‘치드(cide)’를 합하여 만든 단어이다. 편백 나무를 비롯한 여러 나무가 자신을 위협하는 세균들과 해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 내는 천연물질 성분이 숲속의 향을 만들어 내는데 그 향이 피톤치드인 것이다. 사람들은 피톤치드 치료를 통해 건강한 삶을 회복하기 위해 우거진 숲을 찾아 휴양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육을 위한 피톤치드 요법이 있듯이 영적인 삶을 회복하기 위한 치료법도 있어야 한다. ‘회복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포카디스테미(ἀποκαθίστημι)’이다. ‘아포카디스테미’는 두 개의 단어가 결합 된 것인데, ‘아포(ἀπό)’는 ‘~ 로부터’ 떨어지게 하다. 분리를 나타내는 전치사이며, 카디스테미(καθίστημι)는 임명하다, 되게 하다, 원래 상태로 돌리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회복은 이전의 악한 상태를 떠나 원래 상태로 되돌아오는 것을 회복이라고 하는 것이다. 성경 역사를 볼 때 위대한 지도자들도 연약한 모습을 지닌 회복의 대상이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은 나이 많아 늙었고, 모세는 하나님의 명을 받았을 때 달변이 아닌 자신의 어눌함과 애굽과 바로에 대한 ‘트라우마(trauma)’로 하나님의 소명을 거듭 부정했던(출 4:10-17) 사람이었고, 다윗은 간음했을 뿐 아니라 온갖 가정 문제를 갖고 있었으며, 육체의 가시(고후 12:7)라는 질병을 포함한 신체적 연약함(갈 4:14), 그리고 능하지 못한 언변에 대한 타인의 지적(고후 10:10)을 스스로도 인정해야 했던(고후 11:6) 사도 바울, 즉흥적이고 성격이 급한 불같았던 베드로 등등... 이런 약점이 있으면 당연히 열등감으로 연결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대하게 이끈 능력자들이었다. 왜냐하면 약하고 부족한 이들 안에서 역사하시는(고전 고후 13:3) 하나님은 그 약함을 강함으로 선용(고후 12:9)하실 뿐 아니라 우리 안의 손상되고(broken) 손실된(lost) 부분까지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회복의 주체는 우리 주님이시다. 주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회복도 기대할 수 없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숲에서 주님의 향기를 맛보며 살아가면 회복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회복을 위한 기도를 하였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난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시 39:13) 이 기도를 응답해 주셨고 다윗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왕의 직분을 견고하게 감당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우리에게 회복을 주시는 이유는 먼저 회복된 우리가 주위 사람들의 회복 과정에 동참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예배 및 집회 금지 요청에 따라 한국 교회는 공적인 예배 중단의 위기까지 겪어야 했으며, 온라인 예배부터 인터넷 성찬식까지 다양한 신학적, 목회적 의견의 충돌로 목회자와 성도들에게는 더욱 어려운 시간이었다. 우리는 이제 “어두움을 저주하기보다는 한 줄기 빛을 비추라”라는 말처럼,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우려 섞인 비판이 아니라 다시 한 번 회복할 수 있는 소망의 빛을 붙드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치료하시는 여호와라파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의 역사가 가정과 섬기는 교회 위에 충만하게 넘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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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7
  • [조희완 목사] 대접의 기쁨 (히13:1-2)
    우리나라에서 최고급 호텔하면 롯데호텔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 호텔은 수준이 있는 만큼 전 세계에서 유명한 분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방송에서 그 롯데 호텔 총주방장으로 근무하시는 분 이병후 씨의 일상을 본적이 있습니다. 총주방장이 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지났고 많은 경력이 있는 분인 만큼 그 분이 만들어 내는 요리는 요리라기보다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취재진이 그에게 질문하기를, 최고급호텔 총주방장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을 한번 예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유명한 요리사이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예술작품 같은 요리를 손님들이 맛보고 감탄할 때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최고급호텔인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을 위해서 아주 특별한 음식을 만들 때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한 달에 한 번씩 양로원(養老院)을 방문해서 소박하게 만든 음식으로 어른들을 대접할 때 가장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화려한 호텔 요리에 비해서 양로원 음식은 너무 초라하지만 그래도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서 노인들을 대접할 때 너무 기쁘다고 했습니다. 남을 대접하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고 보람 있는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받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의 마음이 더 기쁜 것이 바로 대접(待接)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남을 대접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대접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일 뿐 아니라 피차에 기쁨이 되고 서로 대접하는 마음이 풍성할 때 관계가 좋아지고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서로 식사대접은 기쁨이 됩니다.(히13:1-2) 둘째는, 서로 인사대접은 기쁨이 됩니다.(잠15:23) 셋째는, 서로 기도대접은 기쁨이 됩니다.(엡6:18-19) 사회적으로 메말라 가는 시대에 서로 아름다운 대접으로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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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7
  • [오성한 목사] 당신 안에 기름부음이 있다.
    믿음의 출발이 중요하다. 믿는 자에게 기름부음이 있다는 것을 믿고 출발해야 한다. 당신에게 기름부음이 넘쳐난다. 기름부음을 이해하고 믿는 것은 능력의 출발이 된다. 기름부음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도록 도우시는 성령님의 인격적인 가르침이고, 동력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기름부음은 어떤 능력 그 이상이다. 기름부음은 믿는 자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활동하심이다. 영계는 보이 세계 속에 함께 존재하는 세계다. 영계를 모르는 사람은 예수 믿으면서도 두려움이 떤다. 엘리사의 사환은 눈이 열리기 전에는 천군 천사들이 그렇게 많이 와 있는데도 모르고 떨었다. 큰일이라고 야단이었다. 골리앗이 앞에 있다고 두려움이 우리의 것인가? 영계가 안 보이는 사람은 어두움 속에 총을 쏘는 것과 같다. 안 보이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과 똑같다. 영계가 열려 정확하게 보고, 정조준하면 한방이면 끝난다. 놀라운 사실이다.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 그런 축복이다. 성경은 같은 말씀을 계속 반복해서 하고 있다. 왜 이렇게 반복해서 보여주시는 것인가? 보고 듣고 믿으라는 것이다. 한 사건만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주시고 끝내면 될 텐데 여러 사건으로 반복하시는 것은 믿지 못할까봐 거듭거듭 우리에게 배려해 주시는 사랑이다. 생명 걸고 이루어 놓은 업적을 인정해 주면 상대를 인격적으로 인정해 주는 일이 된다. 상대방이 생명 걸고 이룬 일을 몰라준다면 그 사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인정 할 때도 마찬가지다. 다른 것보다 예수님을 통해 성취하신 것을 인정해 드리고, 믿어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까지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나? 우리의 죄 때문이라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대답이 아니다. 주님은 왜 우리의 죄를 없애셔야만 하셨나? 그것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다. 우리의 죄를 청산하신 이유는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함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 승천이 끝이 아니다. 다시 오셨다. “내가 너희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고 하셨다. 그 분이 다시 오셨다. 성령으로 다시 오신 그 분을 인정하는 것이 예수 믿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우리를 속량하셨다. 육신의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우리가 잊고 살면 안 된다. 늘 우리 마음속에 “영원토록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영원토록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고하셨다. 임마누엘 하나님에 대해서 모셔 들이고, 받아들이고, 환영하고 영접하고 늘 그분과 대화해야한다. 기름부음이 있다. 확신을 가져라. 당신 안에 기름부음이 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13:5)고 했다. 자신을 확증해야 한다.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한다.”고 했다(요일2:20,27). 기름부음이 없으면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다. 예수를 믿는 일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동정녀의 몸에서 예수님이 태어났음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이것은 성령의 기름부음의 결과다. 그러기에 성경은 기름부음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한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요일2:27)라고 말씀한다.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있다고 말씀하셨다. 능력의 출발은 믿음에서 출발 된다. 기름부음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믿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물을 마셔라.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는 그 배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되고, 마시기만하면 영원토록 생수의 강이 흐를 것이다.”고 하셨다. “마셔라”는 말과 “먹어라”는 말은 “믿어라”는 말이다. 예수님을 믿어라. 예수를 믿으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른다. 말씀대로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인정하는 것이 주님을 인격적으로 모셔 들이는 것이다. 지금도 당신 뱃속에 끊임없이 흐르는 한강보다 더 놀라운 성령의 강물이 흐르고 있다.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요7:39). 예수를 믿는다면 성령의 역사가 당신에게 있다. 기름부음이 당신 안에 있다. 당신에게 기름부음이 넘쳐난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의 기초다. 성령 충만이 신앙생활의 종점이 아니고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기름부음을 더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기름부음이 넘쳐나고 있음을 발견하고 믿는 것이 기름부음에 장악되게 된다.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온전히 계실 뿐 아니라 성령의 생수의 강이 철철 흘러넘침을 믿을 때 기름부음에 장악된다. 기름부음이 넘치고 있음을 말고 믿음의 확증을 가지고 사는 것이 당신 안에 잠자는 성령의 능력을 깨우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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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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