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최근 고신교단의 행보에 관한 단상
최근 고신교단의 움직임을 보면 이래도 괜찮은지 매우 우려스럽다. 갈등과 분열이라는 시대적 아픔 속에서 살아간다지만, 갈등과 분열이라는 불로 뛰어드는 불나방 같다. 한 사람, 한 기관만의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총회, 직분자인 목사와 장로, 성도들까지 이 일에 뛰어든 모양새다. 나름 긍정적인 요소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과 신앙고백에 근거하여 살아야 하는 우리가 염려하지 않을 일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편협한 비판이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모든 평가와 판단은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토론이 필요하다면 마다하지 않겠다. 이를 통해 교단이 건전하고 바른 방향으로 전환될 수만 있다면 말이다.
1. 총회
고신 총회 임원회는 지난 2월 17일 한국기독교장로회(이하 기장) 총회 본부에서 기장 임원회와 간담회를 가졌다. 양 총회 임원회 간의 간담회 한 번이다.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신문 기사가 자극적이다. 이 간담회가 2025년 2월 17일 자와 18일 자 국민일보 기사로 실렸다. 기사에 실린 사진을 보면 정말 ‘간담회’일 뿐이다. 하지만, 기사의 제목과 내용은 여기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교회 분열의 아픔 딛고 일치의 길 걷는다.”, “갈등으로 얼룩진 장로교회의 화합을 위해 양극단에 있는 기장과 예장고신이 화합을 도모했다.”, “함께 연합의 길로...기장, 예장 고신 손잡았다.”, “...기장과 예장고신 총회의 화합을 통해 한국교회 전체 연대의 길을 모색하기로 뜻을 모았다.” 등의 자극적인 의미다.
기사만 더 많은 의미를 부여했을까? 이 두 총회 임원회는 함께 예배를 드렸고, 말씀을 나누었으며, ‘협력’, ‘연합’, ‘화해’라는 의미 역시 부여했다. 물론 ‘협력’보다 더 자극적인 단어로 볼 수 있는 ‘연합’, ‘화해’라는 단어는 우리 총회장이 아니라 기장 총회장이 했다. 이후 잡혀 있는 일정도 우려스럽다. 4월에는 한국선교 140주년 기념토론회를 합동 개최하기로 예정되어 있고, 9월 6일에는 두 교단이 연합예배를 드린다.
기장측의 신학, 특별히 성경관과 교회관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잘 알 것이다. 특히 양교회는 신앙고백이 다르다. 하나 될 수도 없고, 하나 되어서도 안 된다. 기독교의 공동선을 위해 대사회적인 측면에서 협력과 공조를 할 수는 있다. 세계의 건전한 장로교회, 개혁교회도 이 정도의 협력은 하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함께 연합예배를 드리고, ‘연합’, ‘화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생산하는 일체의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
총회와 총회 임원회는 성경과 신앙고백 위에 있는가? 이 하나의 질문이면 모든 답은 되리라고 본다. 심지어, 우리 교회 정치도 이것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잠시 설명하면, 2011년 판은 교회간 교류에 관해 더 엄격했다. 개정된 2023년 판은 ‘선교적 관계(선교 교류)’를 삽입하여 더 넓은 교회와 선교적 협력의 길을 열었다. 선교 운동으로 시작하여 무분별한 에큐메니컬 운동으로 번져 지금의 WCC나 WCRC와 같은 기독교 정신을 상실한 아들을 출산한 길을 열까 심히 염려된다. 그런데, 이 2023년 판에도 기장은 없다. 총회와 총회 임원회는 교회 정치 위에 있는가?
2. 광고
우리 교단 소속 목회자와 성도 38명이 지난 2월 14일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하단에 “교회의 정치 세력화를 우려한다.”라는 입장문을 광고로 게재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소추 이후 극심한 혼란과 갈등에 휩싸인 교회를 염려하면 낸 광고로 보인다. 분명, 이 광고에 나온 5가지의 입장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각 사안에 관한 신학적 입장은 서로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누가 옳은가”를 따지기 시작하면 논의는 산으로 갈 것이다. 구원에 관한 문제는 아니니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는 것이 좋겠다. 문제는 과연 이 일간 신문 광고라는 방법이 성경과 신앙고백, 그리고 교회 정치에 근거해 옳은가라는 것이다.
특별히 이 38명의 리스트를 보면,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표방하는 우리 교단의 곳곳의 리더들이 포함되어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성경과 신앙고백, 교회 정치의 전문가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 광고의 정당성이 성경과 신앙고백, 교회 정치적 지지를 받을 수 있나? 물론, 이 입장문에 표현된 대로, 복음과 교회를 오해하게 만드는 일에 관한 우려는 이해할만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세상을 향한 신문 광고’라는 방식이 장로교회 교회론과 정치의 입장에서 목회자가 취할 최선의 행보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는 오히려 교회가 처리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세계 어느 개혁주의 교단이 이런 방식으로 일하는가? 이것이 여러분이 말하는 개혁주의적인 신앙과 삶인가?
원래 목표는 38명이 아니라 33명이었다. 고신 일부 목회자가 사적으로 운영하는 언론인 개혁정론이 33명을 모집한다고 광고를 했고, 38명이나 모집된 것 같다. 왜 하필 33명이었나? 3.1운동의 민족 대표 33인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해도 될 것이다. 지금 이 문제가 과거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처리할 문제라고 인식해서일까? 그렇다면, 과연 이것이 성경과 신앙고백, 그리고 교회 정치에 비추었을 때 가능한 이야기인가?
안타까운 것은 ‘정교분리’를 말하고 있으면서 광고 스스로가 정교분리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이 광고를 준비하면서부터 저변에 두고 있는 정신이 그렇다. 33명의 민족 지도자의 이미지를 빌려온 것이 그렇다. 또한, 교회의 이름으로 광고라는 방식을 통해 세상에 교회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 역시 그렇다. 광고 내용이 우려하고 있는 것을 광고 스스로가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 마디 더 조심스럽게 보태자면, 과거 촛불집회(2016년)가 전국을 휩쓸었을 때도 많은 교회와 목사와 성도들이 촛불을 들고 나가 시위와 집회에 참석했다. 그때 개혁정론(2014년 발족)은 무엇을 했는가? 혹시 그때는 신학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준비가 덜 되었을까?
모든 것은 품위 있게 해야 한다. 한쪽으로 치우친 입장과 방식은 오히려 교회를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이 광고는 어쩌면 더 큰 갈등과 분열을 초래할지도 모르겠다. 아래에서 살피겠지만, 우리에게는 그래도 공교회적인 절차와 과정이 있다. 이것을 거친 후 행동해도 늦지 않다. 설령, 이 방식이 늦다 하더라도 이것이 주께서 교회에 주신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 아니겠는가? 단 한 번도 이 과정을 사용하지 않고 광고를 내는 것은 교회의 정치화보다 더 크고 심각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물타기가 아니다!) 이 광고를 처리해 달라는 청원을 해야 할 판이다.
3. 연판장
교회와 직분자, 그리고 성도들 사이에 연판장이 돌았다. 어느 한 목사 징계를 촉구하는 연판장이다. 이 목사가 교회 강단에서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비난하고, 교인들을 선동했다는 이유이다. 핵심 주제는 다르지만, 위에 언급한 사안과 비슷하며, 어쩌면 같은 사람 혹은 사람들을 향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역시 성경과 신앙고백, 교회 정치적으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이 연판장을 위해 제안자를 모집한 방식이다. SNS를 통해 이루어졌다.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은 것 같다. 처음에는 109명이, 현재는 103명이 제안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후에 사람들이 제안에서 빠져나갔다는 것인데, 처음에는 이 정도일지 몰랐다는 의미다. 바로 이런 것을 전문 용어로 ‘선동’이라고 한다. 빠져나간 숫자가 6명뿐이라 선동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제안자 이름을 쓰고, 교회 이름과 직분을 언급하지만, 이들 모두가 제대로 알고 동참했을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두 번째는 과연 이것이 좋은 방법인가에 관한 우려이다. 앞에 언급한 광고와 그 맥을 같이 한다. 목사에 관한 징계를 세계 어느 개혁주의 교회가 일종의 선동을 포함한 연판장을 돌려 청원하는가? 청원하는 대상도 불분명하다. 성명서 제목은 고신 총회에 요청한다. 성명서 끝부분 내용은 세계로교회 당회와 노회, 총회가 함께 언급되어 있다. 누가 목사를 징계할 수 있는가? 당회인가? 노회인가? 총회인가? 어떤 과정으로 목사를 징계할 수 있는가? 이렇게 광고하고, 이렇게 연판장을 돌려 여론을 형성하면 목사를 징계할 수 있는가? 절차와 과정이 잘못된 이 요청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고신교단은 썩은 교단인가? 이것이 주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인가?
성명서가 밝히는 경위도 문제다. “정부의 방역 지침을 거부하고 대면 예배를 강행할 때도”, “10.27 집회를 주도할 때도”라는 표현에 책임질 수 있는가? 이것이 우리 교단의 입장이었는가? 신학 교수들의 입장이었는가? 신학적 견해가 다를 수 있고, 또 견해차가 있다 하더라도 총회가 이미 밝히고 드러낸 입장을 고려한다면 저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공교회적이라 할 수 있을까? 지금 하나 됨을 깨트리는 자들은 누구인가? 선동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이 연판장이 오히려 편향된 정치색으로 도배된 것이 아닌가? 자기가 하면 로맨스,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인가? 이것이 교회를 깨뜨릴 정도의 일인가? 이 연판장에 이름을 올린 모든 분이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작성했는가?
또한, 이 연판장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을 보니 우려를 금할 길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은퇴한 신학 교수들이 네 사람이나 포함되어 있다. 과거 현역에 있을 때는 자리를 지켜야 해서 말하지 못하다가 인제 와서 말하기 시작한 것인가? 은퇴한 사람들은 교단과 교회, 그리고 후배를 위해 잠잠히 기도하는 것이 덕스럽지 않은가? 그 외에도 다수의 목사와 장로, 그중에서도 목소리가 높은 분들도 포함되어 있다. 여러분은 항상 이런 방식으로 그간 신학생을 가르쳤고, 교회 일을 처리해 왔는가?
이 연판장이 돌고 있는 페이스북을 살펴본 적이 있다. 어떤 분의 페이스북을 보니 과거 징계를 받았던 신학대학원의 교수를 이에 비견한 예로 들었다. 그리스도인은 사실관계가 정확해야 한다. 당시 이 교수에 관한 여론이 좋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여론 때문에 총회가 그 교수를 징계했는가? 교수가 몸담은 신학대학원 교수회가 징계했다. 그것도 그 교수가 속한 기관이 이 권면을 받아들여 목사직이 아닌, 교수직에 관해 무기 정직을 내렸다가, 그마저도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해제한 것으로 안다. 무기 정직의 시간 동안 그 교수는 비록 교단에 서지는 못했지만, 설교와 집회와 강연 등 바깥 활동은 아무 문제 없이 했었다. 그러니 Self 징계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문제가 될 만한 일이 발생했을 때, 다소 거칠었던 부분이 있었다 하더라도 많은 동역자가 확인하고, 권면했으며, 소속 기관에 의뢰하여 교회 정치적인 절차를 제대로 밟았다.
만약, 연판장의 말대로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이것이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성경과 신앙고백, 그리고 교회 정치의 원리대로 먼저 직접 찾아가 대화하며 권면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주변의 여러 동역자와 함께 다시 권면하길 바란다. 그래도 이것이 통하지 않으면 그때 정확한 교회 정치적 절차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밟길 바란다. 비겁하게 SNS로 선동하고, 여론을 조성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러분이 교단의 자정 노력을 언급한다면, 여러분의 이런 비성경적이고 비겁한 모습을 자정할 노력도 언급하길 바란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고 해도 내 눈에는 이 연판장 또한, 정치적 편향성에 사로잡혔고, 형제 사랑은 눈곱만큼도 없다. 한 번이라도 그 목사와 직접 대화하는 가운데 주 안에서 권면한 적이 있는가? 뒤에서 욕하고, 여론을 조성하며 선동하기 전에 말이다. 성경과 신앙고백, 그리고 교회 정치에 비추어 생각했을 때, 만약 그 권면을 받아들였다면 주님께서 그 목사를 징계하실까? 아니면 권면도 하지 않고 형제 사랑의 원리는 하나도 없이 이런 일을 벌이는 자들을 징계하실까? 앞 내용과 마찬가지로 이 연판장을 처리해 달라고 해야 할 판이다.
물타기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대의 아픔이 교회와 세상에 충만한 시간을 살고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모두 표류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다시 평범하고 은혜로운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김동수 장로(학교법인고려학원이사, 영남대특임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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