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환 장로] 감사와 은혜를 잃어버린 세대
(삿 2:1-10)“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1. 들어가며
사사기의 무대가 되는 사사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께서 멸하라 하신 가나안 족속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간 시대를 말한다. 오늘 성경 말씀은 그 사사시대가 시작되는 배경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우리는 위 말씀을 통하여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주변 가나안 족속처럼 살아가게 되었는지 살펴보고 이 일을 통하여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받아야 하는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위 성경 말씀은 짧지만 세 세대에 대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먼저 1절을 살펴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더 설명할 것도 없이 출애굽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으며 이들을 편의상 ‘제1세대’ 또는 ‘출애굽 세대’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두 번째는 6절에서 나타난다.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이 말씀은 출애굽 세대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하여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승리하고 가나안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를 세울 터전으로 삼은 ‘제2세대’, 즉 ‘가나안 정복 세대’이다.
세 번째는 10절의 말씀으로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제3세대’로서 ‘감사와 은혜를 잃어버린 세대’를 말한다.
2. 본문의 역사적 탐방
가. 출애굽 세대
이제 우리는 위 성경 말씀의 시간적 범위에서 본문의 기록을 역사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출애굽 사건을 애굽의 제18왕조 기간의 파라오인 아멘호텝 2세(B.C. 1448-1424년) 때에 있었으며 B.C 1446으로 추정한다.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여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하기까지 약 2년 정도 걸렸다고 보고 있다. 채 2년이 걸리지 않은 기간을 통하여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을 정벌하기 위하여 12명의 정탐꾼을 선발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한다. 그 결과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믿음을 잃어버린 10명의 정탐꾼 말을 믿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데,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애굽땅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극언까지 하게 된다.(민 14:1-4)
출애굽 직전,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10가지 재앙, 특히 10번째 재앙으로 신분을 가리지 않은 애굽의 모든 장자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였고(출 11:4-10), 애굽을 떠난 후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으며,(출 13:17-22)홍해가 마른 땅으로 변하여 건넜고,(출 14:21-25)뒤따라온 애굽 군대가 멸하여 짐을 보았으며,(출 14:26-31)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굶주리지 않았고,(출 16:12-24)목마를 때 반석에서 물을 얻었으며,(출 17:1-7)길을 가로막은 아말렉을 물리치게 하심(출 17:8-13), 또 금송아지를 통한 배신과 징벌(출 32장)을 직접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이었다.
특히 하나님께서 신분을 가리지 않은 애굽의 모든 장자를 생명을 취하신 것은 그들 모두의 생명이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장자는 그 가정의 내일의 대표자이기 때문이다. 바로가 9개의 재앙까지 버텼으나 장자가 죽임을 당하자 하나님의 권능 앞에 무릎을 꿇고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 하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만났을 때 홍해는 마른 땅 같이 갈라졌다. 우리가 영화나 그림을 통해서는 홍해의 물결이 갈라선 물의 벽 사이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는 것으로 표현하지만 그 표현은 상징적인 표현이다.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라고 하였으니 실제 인구는 200만 명이 넘었을 것이다. 또 그들과 함께 가는 가축의 수는 얼마나 되었을까? 이 엄청난 수의 사람과 짐승이 지나는 홍해의 갈라짐은 영화와 그림과는 달리 완전히 다른 어마어마한 모습으로 아마 갈라진 홍해는 끝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난 후 끝없이 갈라진 홍해를 보고 애굽의 군대가 아무런 의심 없이 추격하였다가 모두 수장된 것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너무 엄청난 일이므로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가나안을 정탐한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은 가나안의 높은 성벽, 무장을 잘 갖춘 군사들, 스스로 자신을 메뚜기로 여길 만큼 본 거인들을 보았다. 그리고 이를 보고 기겁을 한 10명의 보고를 듣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난 2년 동안 하나님께서 직접 보여주신 은혜를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반면 그들에게 지금까지 권능과 은혜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믿고 가면 이길 수 있다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간절한 호소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말았다.
출애굽 세대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이치에 맞는 10명의 의견을 택하여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한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권능을 뒤로 하고 사람의 생각과 판단을 따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배은망덕한 출애굽 세대를 징벌하셔서 38년간 광야에서 헤매게 하셨으며, 그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성인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음을 맞게 되었으며 다음 세대인 가나안 정복 세대가 성장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애굽에서 힘든 노예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을 눈앞에 둔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려 가나안에 들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출애굽 세대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나. 가나안 정복 세대
모세가 호렙산에서 죽음을 맞고 모세의 지도력은 여호수아에게 계승되었다.(수 1:1-9)가나안 정복세대가 여호수아의 지도에 따라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 전쟁을 시작한 것이 B.C 1405년경이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지나 가나안에 들어갈 때 홍해가 갈라졌던 것처럼 요단강이 그들의 눈앞에서 갈라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하며 기념하는 돌을 세운다.(수 4:9)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거대한 여리고성이 가로막았다.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여리고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 무너졌다. 그다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지파별로 나누고 본격적으로 가나안땅을 정복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대부분을 정복하고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 B.C 1390년으로 가나안 정복전쟁은 약 15년이 걸렸다. 그렇다면 출애굽으로부터 시작하여 가나안 정복전쟁을 마치기까지 약 60년이 걸렸다.
비록 아이성의 실패가 있기는 하였지만, 높은 성벽을 보호막으로 정착문화를 이루고 강한 병사를 가진 가나안 족속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하나님과 함께 한 이스라엘 앞에서는 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가나안을 정복한 가나안 정복세대에 대하여 성경은 여호수아가 사는 동안 또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이 사는 동안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다(삿 2:7)고 기록하고 있다.
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오늘 본문 10절 후반부에는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란 가나안 정복전쟁을 마치고 정착한 후의 다음 세대라고 보아야 한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그들의 앞 세대인 가나안 정복세대가 경험했던 경험들, 어쩌면 그들의 어린 시절에 어렴풋이나마 보았던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로 앞 세대의 시대에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권능도 이스라엘의 죄악을 징벌하신 일을 잊어버리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그 후에 일어난 다음 세대’에 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삿 2:11-13)
출애굽의 연대가 기원전 1446년, 가나안 정복전쟁의 끝이 기원전 1390년 계산해보면 불과 60년 정도이다. 여기에 여호수아와 함께 한 그 세대의 사람이 다 떠나간 기간을 보태면 80년 정도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이 짦은 시간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가 시작되었으며 그 결과 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게 되었다. 참으로 무서운 결과가 일어났다.
3.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 그들은 왜 하나님을 잊었을까?
가. 가르치지 않고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앞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모세를 통하여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기억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신명기 32:7)말씀하셨지만 그 말씀은 외면되었다. 가나안을 정복했던 세대는 가나안을 정복하고 자신들은 하나님을 잘 섬겼으나 자신의 자녀 세대와 후에 일어날 세대에게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가르치지 않았다. 또 다음 세대는 앞선 세대로부터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무엇인지 배우거나 알려고 하지 않았다. 가르치지 않고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당연히 역사를 잃어버리고 깨닫지 못한다. ‘그 후에 일어난 다음세대’는 역사를 잃어버린 백성이 된 것이다.
나. 가치관이 바뀌었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지켜오던 귀중한 가치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 광야에서의 유랑생활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생활을 하였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재산은 천막, 개인 식기, 최소한의 의복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목생활은 겉옷을 이불로 사용했으니 침구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정복과정에서 가나안인들이 가지고 있던 물질의 부요함을 보고 노예 생활과 광야 생활 동안 가지고 있었던 말씀 중심의 가치관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즉, 눈에 보이는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등 뒤로 돌린 것이다.
가나안 정복전쟁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만든 우상을 다 파멸하며 산당을 다 훼파하고 그 땅을 취하라’.(민 33:51-53) 또 ‘너희가 만일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의 남겨 둔 자가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 옆구리를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 거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민 33:55) 하시며 경고하셨다. 가나인들만 쫓아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체계와 그 근원까지 다 일소하지 않으면, 즉 그들의 삶과 완전히 단절하지 않으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 대표적 사례가 아이성 전투이다. 여리고를 무너뜨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그만 아이성에서 패한 원인이 거기에 있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 정벌을 앞두고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하였다.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수 6:17-18)경고하셨다. 그런데 아간이 하나님께 바칠 물건을 탐하여 감추었다. 이로 인하여 아이성 전투는 패했고 여호수아는 이 일에 대한 책임을 아간에게서 찾아 처벌하였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이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간 뿐만이 아닌 것 같다.
수 7:1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바친 물건을 인하여’라고 기록하고 있고, 7:11을 보면 ‘그들이바친 물건을 취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이 ‘들’이란 접미사가 붙으면 복수를 의미한다. 이는 아간의 범죄를 이스라엘 전체의 책임으로 돌린 의미도 있지만 최소한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에라도 탐욕이 생겼거나 백성 중 일부가 규모의 차이가 있더라도 아간과 같은 범죄를 저질렀음을 의미한다. 백성 중 아간의 가족만 변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 생활과 방랑 생활의 어려움 가운데 있다가 가나안의 부요함을 보고 말씀을 중시하였던 지금까지 가졌던 가치관이 변하였으며 이에 따라 여호수아의 경고를 외면하거나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4. 우리의 현대사는 어떠한가?
가. 우리나라의 건국은 기도로 출발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일제의 강점에서 해방되었으며 지금이 그때로부터 80년이 된다.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은 1948년 8월 15일이다. 그때를 기준으로 하면 77년이 된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겪은 60여 년의 역사에 ‘그 후에 일어난 다음 세대’의 성장 기간을 더한다면, 1945년 해방된 우리의 80년 현대사와 비슷한 기간이 되면서 서로 닮은 역사의 흐름이 나타난다.
해방된 지 3년 후인 1948년 5월 10일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을 선출하였다. 그때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당시 많은 정치지도자가 바라보는 가운데 5월 31일 오전 10시 대한민국이 출발하는 제헌국회를 개회하였다. 국회가 개회하는 첫 시간, 임시의장으로 선출된 이승만은 의장석에 등단하여 이렇게 첫 발언을 한다.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먼저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에게 우리가 감사를 드릴 터인데 이윤영 의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당시 제헌국회의 의원 중에는 불교 승려도 있었고, 대종교, 천주교의 중심인물이 있었다. 그런데 국민의 첫 대표인 제헌국회의 임시의장 이승만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나라를 세우게 된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선포하고 고백한 것이다. 이 요청을 받아 단상에 오른 이윤영 의원은 기도의 첫 서두를 이렇게 시작하였다.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선림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오랜 시일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사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하나님은 이제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을 하나님의 선림이 세계만방에 정시하신 것으로 저희들은 믿나이다.”
1948년 7월 17일 헌법을 공포하였으며 8월 15일 대한민국이 국가의 요건을 갖추어 정식으로 출범한다. 새로이 국가가 출발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출발한 나라는 미국 외에는 대한민국이 처음일 것이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청교도에 의하여 독립하여 세운 기독교 국가였고 우리나라는 일제의 강점에서 해방되면서 새롭게 세운 나라이지만 신앙으로 세워진 나라가 아니었다. 그러함에도 우리 대한민국이 법적으로 출발하는 날, 이 나라를 대표하는 모든 정치인이 함께 모여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기도하며 시작하였는데 이를 역사의 한순간으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나. 지난 80년 동안 하나님은 우리나라에 어떤 은혜를 베푸셨을까?
큰 흐름으로 보면 먼저 1948년 비록 38선 이남에 한하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을 수립할 수 있었다. 그다음으로6.25 전쟁에서 지켜 주셨다.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당시 선조들이 나라 이름도 모르던 곳에서 군인이 파병되었다. 그 전쟁에서 한국군과 유엔군의 전사자만 175,801명이다. 민간인 사망, 학살, 행불자가 약 760,000여 명이다. 거의 100만이 생명을 잃은 전쟁이었다. 그 전쟁 기간 우리나라의 보잘 것 없던 기초산업시설은 물론 삶의 모든 터전이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종교 특히 기독교는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단적인 예를 들면 지금의 마산이 도시였지만 전기를 가져올 발전시설이 없어 미군의 발전선이 전쟁 후에도 남아 전기를 공급했으며 그 발전선을 기초로 마산화력발전소가 세워졌다. 매립을 하여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지금 경남대학교 앞 교차로 부근이 발전선이 머문 장소이고 발전소가 있던 곳이다.
또 하나 예를 든다면 6.25 전쟁 당시 북한 공산주의 정권을 피하여 수많은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가 남쪽으로 내려왔고 지금도 그분들은 북한 땅에 있었던 지명으로 노회를 만들어 유지하고 있다. 합동 측 총회 자료에 따르면 순교자 72명 중 61명이 공산당 박해로 순교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해방 후 북한 땅에서 있었던 기독교에 대한 탄압의 구체적인 여러 부분은 여러 자료에 다 나타나 있다.
1953년 휴전이 되었으나 일제 침략으로 인한 수탈, 6.25 전쟁으로 인한 파괴는 이 나라를 가난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척박한 광야를 다닌 것처럼 6.25 전쟁을 마친 후 우리는 오랜 기간 배고픔과 추위, 위생 상태의 부족으로 인한 콜레라 같은 전염병에 시달렸다. 이른바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여 각지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그 세대가 바로 우리의 윗세대이다.
우리나라의 자동차공업의 시초는 자동차의 외관을 고칠 때 드럼통을 잘라 두드려 평탄하게 한 다음 그것으로 차량의 외부 수리를 하고 비슷한 색의 페인트를 바르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필자가 어릴 때 본 모습이다. 1980년대 지금은 사용하지도 않는 녹음테이프의 재생을 위한 데크라는 부품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만들지 못해 일본의 전자회사에서 그것도 만들지 못하느냐는 비웃음을 받으며 울며 겨자 먹기로 필요 없는 부품까지 끼워서 수입해야 했다. 이를 수입하는 기업의 총수가 그 보고를 받으며 분함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지금 우리의 공업력, 기술력은 어떤가? 세계 최고의 조선기술, 반도체산업, 자동차, 정책에 의해 잠시 주춤했으나 최고의 원자로 기술,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몇 가지 군사 장비 등 남부러울 것 없이 발전해 가고 있다. 이미 순수 우리 기술에 의한 우주로켓이 발사되어 지구궤도를 돌고 있다. 특히 앞으로 우리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4차 산업혁명에서 핵심이 될 반도체는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 아까 이야기한 우리 기업인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일본의 기업, 지금은 수준이 떨어져 우리가 상대도 하지 않고 있다.
교회는 어떤가? 1876년 백홍준 등 네 사람의 청년이 만주에 가서 로스 선교사를 만나 복음을 받아들여 스스로 교회를 세운 지 140년이 지났다. 교회와 교인의 수는 현재 감소추세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전 세계 기독교 선교역사에 없는 기록이다.
가난하고 힘들 때 우리 앞선 세대는 땀 흘려 수고하였고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하시어서 앞 세대들이 흘린 땀과 눈물의 열매를 주셔서 그 은혜로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다. 이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그러나오늘날 이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이 나라의 백성들에게 제헌의회 때 고백한 감사의 정신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기독교인들도 이 나라의 현대사에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얼마나 기억하고 그 감사가 남아있는지 엄격히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안타깝게도 이 나라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80년이 채워지는 동안 감사의 정신을 잃었다. 교회도 성도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못했던 이스라엘의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를 닮아 가고 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었던 잘못이 지금 우리에게도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나안을 정복했던 세대가 가나안을 정복하여 물질의 부요함을 물려주었으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임을 가르치지 않았다. 자신들의 믿음은 지켰지만 다음 세대에게 바른 신앙관, 가치관을 물려주지 못한 것처럼 우리의 기성세대도 같은 실수를 하고 있다. 지금 많은 젊은 세대들은 우리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선조들의 피땀 흘린 노력의 대가임을 알지 못하고 본래부터 있은 양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의 기성세대는 가난하고 힘들었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릎 꿇고 기도하고 수고하고 땀을 흘렸다. 또 상당 부분 성공하고 자신들의 믿음을 잘 지켰다. 그러나 그 가운데 반드시 지켜야 할 귀중한 가치관과 신앙관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을 놓쳤다. 가르치지 않고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당연히 역사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지금 이 세대가 역사를 잃어가고 있다.
라.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
지금 우리 사회는 신앙 이전에 사회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하여 바탕이 되어야 할 이해와 배려, 포용, 섬김이라는 가치관은 형편없이 무너졌고, 대신 우리 사회는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곳곳에 분열과 갈등, 탐욕과 이기심이 만연하다. 특히 진영논리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상처를 더 깊게 만들고 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로부터 시작하여 최근 우리나라의 정치판을 흔든 탄핵까지 정치인들이 보인 모습을 따라 대부분 국민이 갈등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아마 이러한 분열과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고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어쩌면 이러한 분열과 갈등의 계속으로 어쩌면 이 나라의 내일을 가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이와 함께 모든 분야에서 도덕적 타락과 윤리의 무너짐도 심각하다. 이에 따라 지금 이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윤리 등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모습들이 점차 강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거대한 파도 앞에 교회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외면적으로는 반일과 반공의 이념이 대립하고, 경제적으로는 기회의 공정과 결과의 공평이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지역과 계층 간의 갈등이 함께 하고 있으며, 또 이 뒤편에서 정치지도자들은 통합보다 편 가름의 유리함을 취하여 왔다. 반일에 초점을 맞추는 이들은 반공을 경시하고 반공을 중시하는 측에서는 반일을 가벼이 여기고 있으며, 기회의 공정은 성장에, 결과의 공정은 분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모두는 우리가 합리적으로 다듬어야 할 과제임이 틀림없다. 일제의 국권 찬탈과 억압은 다시 반복되지 않아야 할 부정적인 역사이지만 일제의 통치는 과거의 것이고 우리가 극복해야 할 역사이다. 물론 가해자인 일본이 이에 대하여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국력과 군사력은 과거와 달리 일본이 우리를 좌지우지하던 시대가 지났으며 부분적으로 앞서나가고 있다.
오히려 우리가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는 전쟁을 일으키고 이 나라 전체를 파괴하고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킨 북한의 공산주의이다. 여기에 소련과 중국의 현대판 제국주의적 행태가 가세하고 있다. 지금도 북한은 무력을 통한 위협과 이 나라를 삼키려는 노력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있다. 특히 친북 이념을 가진 자들을 통한 이념의 공세도 늦추지 않고 있다. 지금도 이 땅에는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몰라도 해방군인지 점령군인지 딱 한 가지 결과만 보면 알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얼마만큼 법과 제도로 정착시켰는지 아닌지 살펴보면 된다. 앞서 순교자 통계를 제시했듯이 해방군이 박해하여 종교가 쫓겨나고 종교지도자를 순교자를 만드는 그런 해방군은 없다. 오히려 북한 공산주의의 위협 때문에 극복해야 할 일본과 군사적 협력을 하여야 하고 경제발전을 위해 일본과 교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불균형은 많은 사람, 특히 젊은이, 근로자들을 ‘공평’이란 주제로 내몰고 있다. 그러나 역사, 특히 맑스와 레닌 이후의 역사는 ‘공평’이란 주제를 목표로 삼아 사회주의를 택하여 몰락해간 여러 나라를 보면 답은 하나이다. 구소련, 현재의 중국, 남미의 여러 나라, 경제적 발전을 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남아의 여러 나라를 보면 ‘공평’이 정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이기적이고 탐욕을 가진 존재임을 무시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마. 이 시대 교회의 사명
복음화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우리의 주변 사회 모든 영역에서 보편적 진리로 받아들일 때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 교회의 선한 영향력이 주변 사회에 범위를 넓혀 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오히려 교회가 배척되고 말씀의 가르침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여기에는 교회의 잘못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불신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엄청난 교회의 분열, 이단들의 반사회적인 행태로 기성 교회까지 영향을 받는 것, 일부 교회 지도자들의 타락, 성도들의 가치관이 변하여 삶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 것 등 여러 이유가 있다.
여기에 교회마저 정치 앞에 분열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날 유신 치하에서, 전두환 군사정권 하에서 교회는 친정부와 반정부로 분열되었다. 최근의 탄핵 정국에서도 교파 간, 교회 간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이러한 분열 앞에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현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양 정당의 국회의원과 지도급 인사 가운데 분명 교회의 중직자들이 포진하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이 속한 정당의 하수인이 되고 말았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죄인인 사람 사이에 화평을 세우고자 하셨던 예수님의 결단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이 땅에서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분열과 갈등의 치유를 위해 부족하였음과 이 사회의 윤리적 타락에 책임이 있음을 통회하고 자복하는 길이다.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점차 교회의 위축은 물론 그로 인하여 지금까지 지켜온 진리가 세상과 타협하여 진리가 왜곡되어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삿 2:13)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5. 나가면서
우리의 앞선 세대가 힘든 과정을 헤쳐 나온 것에 대해서는 존경과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최고의 빈국을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시킴에는 그분들의 엄청난 땀과 수고가 필요로 했다. 그러나 최소한 기독교인이라도 이와 같은 발전이 사람의 뜻과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을 믿고 고백하고 감사해야 한다. 기독교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제헌의회 때 하나님께 함께 감사하며 기도드렸던 그 감사의 정신은 우리의 주변 사회 곳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범위가 교회 내부에서조차 줄어들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이 세대가, 바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한 세대가 되었기 때문이다.(삿 2:10)
지금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에 의한 초고도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80년 우리나라가 가난에서 벗어나 부요를 이룬 것과는 차원이 다른 변화가 눈앞에 와 있다. 지금보다도 더 물질문명이 주도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물질문명의 강화는 과학적 사고와 합리성이라는 전제 앞에 다원주의의 철학과 사고가 지배하고 급기야 정신문명의 자리를 약하게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관은 물론 신앙도 지켜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은혜와 감사를 지켜내지 못하고 이어가지 못하는 순간 다음 세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듯 주변 세상이 섬기는 우상을 함께 섬기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지도자, 기업인, 교회, 모든 국민과 기독교인 모두가 지난날 우리의 앞 세대가 겪었던 고난과 좌절, 희생과 눈물을 기억하고 지금 우리의 위치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우리의 자녀와 다음 세대에게도 이를 가르쳐야 한다. 지금 우리가 지난날을 버리고 바로 서지 않으면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는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을 가져야 한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여기에 앞장서야 한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를 지켜나간다면 우리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가 지켜지고 우리나라와 주변 사회가 변하고 회복되리라 믿는다. 특히 정치와 경제, 사회지도층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그곳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되고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결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대한민국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하는 그런 세대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며, 주변 사회를 이끌어 이 나라를 변화시키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를 이어가시는 귀한 세대, 또 이를 후대에 물려주는 세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