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6(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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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희 목사] 기독교 용어 고찰 21
    I. 서언(序言) 세월이 유수같이 흐른다고 했던가? 벌써 한 해의 마지막 달력을 넘겨야 되는 날이 가까웠고,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선 이번 주간에 신년 달력을 배포했다. 이런 즈음에 문득 달력이란 용어는 어떤 역사적인 유래와 배경 하에서 시작되었고, B.C와 A.D같은 그리스도를 중심한 연호는 어떻게 제정되었는지, 또한 매달의 이름과 한 주간의 요일별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되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졌다. 필자로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에 대한 연구를 시도하면서 자료를 수집해 오기도 했다. 이에 이번 호부터는 몇 차례로 나누어 이에 대한 유래와 용어들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한 가지 밝혀둘 것은 이를 시도하는 이유는 이런 달과 연호와 요일의 명칭이 기독교식이란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세계적으로 거의 공통으로 사용하는 용어들이기에 고칠 수는 없으나 바로 알고 사용하는 것이 좋을 듯해서 이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다. II. 달력과 기독교적 연호 사용의 유래 1. 달력의 유래 : 달력(calendar)이라는 말은 라틴어로‘흥미있는 기록’ 또는 ‘회계장부’라는 뜻의 ‘칼렌다리움(calendarium)’과 고대 로마에서 매월 초하루의 날짜를 ‘calend’라고 한데서 출발했다고 한다. 이는 월 초를 매우 중요한 기점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연(年) 월(月) 일(日)은 각각 독립된 주기이지만, 이런 각 주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은 역서(曆書)를 만들었고, 이를 주로 일상생활이나 종교의식을 치를 때 사용하였다. 또한 이러한 역서(曆書)는 달의 규칙적인 변화를 중심으로 해서 만든 태음력(太陰曆)이었기 때문에 이를 달력(月曆)이라고 불렀다. 또 하나의 역서는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태양의 규칙적인 움직임을 토대로 한 태양력(太陽曆)이 사용되었다. 그 이후 이집트를 정복한 쥴리아스 시저(Caius Julius Caesar)가 BC 45년에 그곳에서 사용하는 간편한 양력역법을 보고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이를 율리우스력(Julius Calendar)이라 한다. 이는 태양의 공전주기에 맞춘 것이었는데, 16세기까지 천년 이상 사용되었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오차가 생겨졌고, 이를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새롭게 개정해 달력을 만들었고, 이를 그레고리우스력(Gregorius Calender)이라 했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 나라를 포함해서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단군고기(檀君古記)에 의하면 B.C 4000년 경 환웅이 달력을 만들었고, 단군 4년(B.C 2096년)에 60갑자를 활용하여 책력을 제작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지금은 앞서 밝힌 대로 거의 모든 세계와 함께 그레고리우스력을 사용하고 있다. 2. 기독교적 연호(A.D) 사용의 유래 : ‘A.D’란 연호의 처음 사용은 주후 6세기경의 동로마 황제인‘저스틴 1세’때부터 였다. 그는 당시의 수도사였던 ‘디오니시우스’로 하여금 세계에서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연호를 연구하게 했다. 이에 그는 깊은 명상 중에 예수님 탄생의 해를 기점으로, 그 이전은 before Christ의 약자인 ‘B.C’로, 이후는 Anno Domine의 약자인 ‘A.D’로 정했다. 또한 이를 황제에게 보고했고, 황제는 이를 선포하여 오늘까지 거의 세계 모든 나라들이 사용하는 연호로 확정되었다. 우리나라의 연호의 사용은 옛날부터 단기(檀紀)와 60갑자(六十甲子)인 육갑연호를 사용해 왔다. 또한 일본 통치하에서는 명치(明治)라는 연호를 사용했고, 해방 후에는 서양의 영향을 받아 서력기원(西曆紀元)이란 뜻의 서기(西紀)의 연호를 사용함으로서 자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인 B.C와 A.D를 인정하는 겪이 되고 있다. III. 결 어 이상에서 논한 대로 위의 용어들과 유래는 주전(B.C)와 주후(A.D)를 제외하고는 반 기독교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독교적인 용어도 아니다. 다음호부터 논할 12개월의 월별 이름과 한 주간 7일의 요일 별 용어들은 더욱 더 그러하다. 하지만 서론에서 논한 대로 이런 용어들은 세계적으로 거의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고칠 수도 없고, 또한 심각한 반기독교적인 용어는 아니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로 알고 사용하는 것이 좋을 듯해서 이를 계속 논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B.C와 A.D같은 신앙적인 연호가 세계 공용어로 된 것은 대단히 자랑스러운 일이다. 부디 이런 연호를 널리 사용함으로서 기독교적 언어문화를 창출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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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3
  • [김성수 총장] 당신의 마음을 감사로 채우십시오
    몇 주 전에 플로리다(Florida)주에서 열린 미국 학위인증기구인 TRACS(Transnational Association of Christian Colleges and Schools) 연례 모임에 참석했을 때 칼빈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인 쿠엔틴 슐츠(Quentin Schultz) 박사의 “섬김의 가르침”(Servant Teaching)이라는 책을 소개받고 읽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교사와 목회자는 물론 우리 모두가 이 내용들을 깊이 묵상하고 실천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섬기는 사역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하기에 우리의 일상의 사역을 성찰해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앞으로 몇 회에 걸쳐서 슐츠 박사의 글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우리의 마음을 감사로 채워보기를 바라며 제1장의 내용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만나서 반갑다고 말하면서 매 수업을 시작한다. 나는 그들에게 수업에 와줘서 고맙다는 말로 모든 수업을 마친다. 한 학생이 나에게 그렇게 하는 이유를 물었다. 나는 “여러분들이 수업에 올 때마다 나는 영광스럽고 축복받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그 학생은 자신은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 역시 섬기는 교사로서의 소명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섬기는 교육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감사다. 우리의 마음이 감사로 가득 차 있을 때, 우리는 학생들과 우리의 일을 멋진 선물로 보게 된다. 우리는 학문의 세계를 감염시킬 수 있는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태도에 대한 면역성을 구축하고 있다. 감사는 기독교 교육학의 책에서 놓치고 있는 첫 번째 장이라고 생각한다. 가르치는 기술을 연마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을 하나님의 선물로 보는 대신 우리에게 부과된 부담으로 여길 수도 있다. 우리의 일이 선물이라기보다는 의무에 가깝고, 모험이 되기보다는 매너리즘에 빠지는 일상에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로 하여금 섬길 수 있는 문을 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또한 우리 학생들, 우리를 고용한 기관,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 우리의 능력, 우리를 도와주는 교직원들, 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와준 교사와 저자, 멘토, 우리를 지원하고 격려하는 동료들로 인해서 주님께 감사하자. 심지어는 실수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해서도 감사하자.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다 더 큰 그림을 그려 보자. 다시 말하면, 우리를 구원하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고 있는 자들이다. 우리는 동일한 언약적 사랑에 접 붙여진 사람들을 가르치도록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알면 알수록 우리는 우리 학생들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 요한은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심이라”(요일4:19)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구원의 기쁨을 잃으면 우리 자신이 기쁨이 없는 스승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은 이것을 감지한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말과 비언어적으로 우리 자신을 제시하는 방식은 그들이 배우는 동작을 하는 것처럼 우리가 단순히 가르치는 동작을 하고 있음을 의미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선한 은사에 비추어 우리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새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생활 실천이 필요하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또 다른 삶의 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그날이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생각은 다가오는 시간의 집안일과 스트레스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내 기도는 송영 없는 단순한 간구가 되어 버린다. 나는 캠퍼스 입구 표지판을 하나님의 선하심과 연관시킨다. 매일 매일 하루를 시작하면서 나는 모든 건물과 가르침과 배움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되새긴다. 나는 나의 일터 그곳에 하나님으로부터 초청 받은 사람으로 부름을 받고 준비되어 있다. 캠퍼스 간판을 보면 나의 마음은 설레어지고 봉사를 위한 준비로 고양된다. 나는 집 서재에 ‘감사 게시판’을 하나 만들었다. 코르크 판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격려의 글, 성경 말씀, 사진, 아이디어, 찬송가, 티켓, 그리고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상기 시켜 주는 다른 여러 기념 조각들을 붙여 놓는다. 그 중 한 장의 사진은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의 무덤에서 아버지의 학대를 용서하는 나를 보여주는 사진도 있다. 아버지에 대한 원한을 극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이다. 나는 ‘감사 게시판’ 아래 소파에서 낮잠을 자며 게시판에 있는 것들을 음미하며 잠이 든다. 나는 서재를 나설 때마다 잘 볼 수 있는 벽에 감사 게시판을 걸어 두었다. 연구실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 퇴근할 때는 하나님께서 나를 책임지고 계시며 내 삶을 축복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다. 결국, 감사 게시판은 내가연구실을 나설 때,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 내 방을 나선다는 사실을 상기 시켜 주는 이른바 나를 향한일종의 축복 기도의 역할을 한다. 여러분과 나는 많은 선물을 받은 사랑받은 사람들이다. 우리가 이것을 더 많이 인식하면 인식할수록 우리는 학생들을 위해 봉사하는 데 더 감사하면서 우리의 삶을 바칠 수 있을 것이다. Clairvaux의 Bernard(1090-1153)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수록 사랑에 대한 보답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다.”라고 말하였다. 감사는 쇠렌 키에르케고르(Soren Kierkegaard)가 배은망덕의 "질병"이라고 부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예”라고 말하는 우리의 방법이다. 감사는 섬김의 가르침을 키워준다. 비밀 공식은 없다. 우리의 감사는 온 마음을 다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다. (빌4:4). 구속주를 향한 우리의 태도에 감사가 부족하다면 학생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그러할 것이다. 시편 기자는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라고 묻고 있다(시116:12). 우리는 섬기는 교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포함하여, 모든 좋은 선물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함으로써 응답한다. 감사하는 섬김의 교사가 되는 데 도움이 되는 실천 사항은 무엇이며, 당신의 감사 게시판에는 어떤 항목을 붙여 놓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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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3
  • [박동철 장로] 예수의 경제학, 공자의 경제학 미국과 중국의 ‘화폐전쟁’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는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아담 스미스가 지은 국부론(國富論)은 오늘날 세계경제를 이끄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교과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담 스미스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영국 장로교 교회 집사로 기독교 교육을 받은 신앙인이었다. 영국 옥스포드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경제학자가 되었다. 아담 스미스가 지은 국부론의 기초는 재화와 노동을 통해 생산과 이윤을 냄으로써 국가의 경제가 튼튼해진다는 원리다. 노동이 철저하게 자본과 결합해야 최고의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경제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국부론의 이론은 성경적 근거가 있다고 학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성경은 끊임없이 일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마태복음 25장의 다섯 달란트 비유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이 땅을 가꾸고 번영해야 국가의 개념이 생긴다. 장사(상업)와 노동의 가치관를 말한다. 그래서 아담 스미스의 경제학을 일명 ‘예수의 경제학’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아담 스미스 이후 많은 경제학자들이 새로운 경제 이론을 내었지만 독일 출신 칼 마르크스가 자본보다 노동의 가치가 더욱 중심이 되는 사회주의 자본론을 주장했다. 자본이 노동의 이익을 착취하면 안 되는 원리의 이상론의 사회주의 경제학이 더욱 발전하며 세계 근대사회를 이끌어왔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학문적으로도 경쟁을 하면서 수정자본주의 수정사회주의 등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경제학의 두 산맥은 결국 이념화하여 미국을 비롯한 서구, 소련을 중심한 동구권으로 근대 세계냉전시대를 지내왔다. 소련이 공산 사회주의에서 실패하고 러시아로 잔존하게 되고 이제 중국이 중국식 사회주의로 맹주(孟主)가 되면서 새로운 세계 패권경쟁의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다. 중국의 사회주의는 변형된 면이 있다. 모택동(毛澤東)의 공산당 혁명 후 거장 등소평(鄧小平)의 시장중심의 중국경제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중국의 경제사상은 의(義) 에 바탕을 두고 이(利)를 추구하는 이념이다. 이를 두고 중국 춘추시대 공자(孔子)의 “인자는 밥을 먹을 때도 인(仁)이 있어야 한다.”는 이념의 바탕에서 중국식 사회주의가 발전해왔다. ‘공자의 경제학’을 강조한다. 그래서 중국 경제는 공산당이 모든 국가 경제를 통제한다. 지난 1978년 등소평의 개방 중심으로 중국이 세계 경제에 눈을 뜨면서 미국과 우호적 관계를 가지는데 노력해 왔다. 2001년 중국은 WTO에 가입함으로써 세계화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세계화의 호혜적 무역 관계에 힘입어 14억 인구의 내공으로 개도국이면서 세계 경제를 주도했다. 미국은 그동안 소련의 공산주의가 붕괴된 후 중국을 민주주의 시장경제국가로 변화할 것을 유도해왔다. 그리고 무역 환경에서 많은 배려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의 성장이 미국의 강력한 라이벌이 되었다. 중국식 사회주의를 지키면서 미국과의 사실상 화폐전쟁에 돌입했다. 세계 무역에서 경제권을 주도하는 기축통화에도 중국이 위안화를 내세우려 한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의 지도자들 간 요즘 오가는 말들이 거칠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 미국을 따를 수 없다. 반도체 등 원천기술에는 중국이 먼 거리에 있다. 중국은 희토류등 원자재 공급에 주도권이 있다. 미국은 중국의 화폐도전에 요즘 ‘킹달러’(King dollar)게임으로 중국의 도전에 거리를 멀리하려고 한다. 바로 화폐 전쟁의 치열함이다. 중국은 더욱 중국식 사회주의를 위해 시진핑의 영구 집권을 굳히고 있다. 미국·중국의 경제 전쟁의 화폐 게임이 본격화되었다. 복음의 사명자 교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시진핑의 중국은 공산 사회주의의 영구 집권 전체주의로 흘러갈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입김을 받은 자유시장 원리의 경제구조가 힘을 잃어갈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탄압에 더욱 가속페달을 밟을 것이다. ‘공자의 경제학’은 커녕 ‘시진핑의 경제학’은 쇠락의 길을 걷지 않을까. 기우가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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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교회와 세상
    2022-11-23
  • 삼남연회, 제29회 삼남찬양제 개최
    기독교대한감리회 삼남연회(정동준 감독)가 주최하는 ‘다음세대회복 제29회 삼남찬양제’(이하 찬양제)가 지난 11월 5일(토), 창원시 의창구 북면 기쁨의교회(노완우 목사)에서 있었다. 청장년선교회 삼남연회연합회와 청장년선교회 창원동비장연합회가 주관하는 이번 찬양제는 삼남연회 산하 7개 교회가 참여하고 또 창원지역 감리교 연합찬양단과 창원서지방 청년연합찬양대 등 많은 성도들이 참여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찬양제에 앞서 드린 예배는 창원동지방연합회장 최준오 집사의 사회로 운영부회장 성봉균 집사가 대표로 기도하고 부산남지방연합회장 오영석 권사가 성경봉독(대상25:1-7)한 후 삼남연회 정동준 감독(동래온천교회)이 ‘신령한 노래’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말씀 후 스포츠부회장 김영복 집사가 헌금기도하고 장소를 제공한 기쁨의교회 노완우 목사가 인사를 전했다. 이어, 회장 윤상규 권사가 인사와 함께 내빈 소개를 하고 청원동지방 정기용 감리사가 축도함으로 예배를 마쳤다. 예배 후 이어진 찬양제는 조난영 집사의 사회로 창원지역 감리교 연합합창단인 천사합창단의 첫 연주를 시작으로 대구제일교회, 동래온천교회, 마산중앙교회가 차례로 공연을 이어가고 위드클래식앙상블이 특별출연으로 함께해 ‘참 아름다워라’와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를 프로의 실력으로 연주하며 찬양제를 더욱 빛냈다. 그 뒤 순서에서도 진주제읽회, 기쁨의교회, 진해제일교회, 대구중앙교회, 창원서지방 청년연합찬양대가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렸다. 한편, 삼남연회 정동준 감독은 격려사를 통해 찬양제를 준비한 청장년선교회 삼남연회연합회를 축복하고 “연회 안의 모든 교회에는 부흥의 역사가, 모든 성도들의 가정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과 복이 넘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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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단 및 연합회
    2022-11-22
  • [진해서부교회 김현직 목사] 인터뷰
    본지는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으로부터 위임 받은 교회를 이끌고 경남 지역의 교계 부흥에 새 바람을 일으켜줄 목회자들을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눴다. 이번 호에서는 무더웠던 지난 8월 6일, 예장(합동) 진해서부교회 위임 목사 된 김현직 목사의 이야기를 전한다. Q. 경남기독신문 독자들에게 목사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진해서부교회 담임으로 부임한 김현직 목사입니다. 진해에 오기전까지 분당우리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며 예배와 목양, 그리고 훈련을 담당하였습니다. Q. 지난 1월 경상노회 2022년 감사예배에서 특송 하시는 걸 봤습니다. 목사님 노래도 너무 잘하시고, 또 위임식 때 분당우리교회 성도님들이 축가로 불렀던 곡이 목사님께서 만드신 곡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음악에 관심이 많으신데 앞으로 교회 사역방향 등에 많은 영향이 있을까요? 또 다른 새로운 창작 활동도 이어 가실 예정이신가요? A. 제 사역의 출발점이 찬양사역이었습니다. 찬미워십과 소망의바다 미니스트리에서 팀 사역으로 훈련을 받은 후, 솔로 사역으로 전향하여 개인 음반을 출반하고 방송과 교회집회, 대학 및 기관 등에서 다양하게 음악 사역을 했습니다. 지금도 음악작업은 개인적으로도 꾸준히 하고 있으며, 동료 사역자나 필요한 곳에 음반참여나 방송 사역 등으로 활동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서부교회는 찬양과 말씀 그리고 기도가 균형을 이루어 예배하는 교회로 세워질 것입니다. 특히 젊은 성도님들이 마음껏 예배할 수 있는 곳으로 변화될 것이며, 40-50대의 장년층과 청년들이 생동감 있게 예배하며 신앙의 유익함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사랑과 축복의 터전으로 세워져 나가기 위해 열심히 터를 닦고 있습니다. 동시에 어르신들에게는 안식과 평안함을 누릴 수 있는 평강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애를 쓰고 있습니다. Q. 연고가 전혀 없는 지역까지 오셔서 사역하게 되셨는데, 몇 개월 계시면서 창원시, 그 중에 진해에 대해 많이 알게 되셨나요? A. 창원이라는 도시에 처음 와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함이 많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계속 적응해 가며 지역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지만 참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4월에 만개했던 벚꽃으로 뒤덮인 동화 속 같은 마을들이 잊혀 지지가 않습니다. 또 그만큼 지역 주민들, 특별히 우리교회 성도님들의 따뜻한 마음이 너무 귀하고 복되다는 생각에 감사함이 가득합니다. Q. 지금 진해서부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또 앞으로의 사역 방향과 계획, 목사님의 목회철학 등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제가 부임하면서 선포한 목회비전은 바로 ‘선택과 집중’입니다. 지금 서부교회는 ‘예배의 회복과 전 성도 양육’이라는 뚜렷한 방향을 ‘선택’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에 모든 마음과 에너지를 ‘집중’하여, ‘한 사람을 살리고, 한 사람을 세우는’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서부교회는 이러한 목회비전을 중심으로 하여, ‘예배의 감격이 있는 교회, 가정을 회복시키는 교회, 다음세대에게 길을 보여줄 수 있는 교회’로 굳건히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Q. 경남지역과 창원 교계는 독소조항이 담긴 학생인권조례를 저지했던 저력이 있는 곳입니다. 지금은 독소조항이 담긴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에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운동들에 진해서부교회 담임 목사로서 함께 동참하실 수 있으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A. 성경의 진리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옳은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각자가 처한 자리에서 지혜롭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해 나가는 성숙함의 열매가 필요한 시절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Q. 진해서부교회 교인들과 지역 교계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사랑하는 진해서부교회 성도님들, 함께 가족이 되어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어 참 기쁩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항상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속에서 길을 찾으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경험하는 신앙생활의 ‘맛’도 충만히 누리시기를 소원합니다. 이제 우리교회는 새롭게 시작되는 그 첫 걸음을 힘차게 내딛었습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부르심의 소망을 향하여 달려 나갈 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큰 일’을 분명히 이루시리라 확신합니다. 늘 함께 기도하고 예배하며,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축복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들을 세우시고 주의 일을 감당하게 하신 데에는 각 교회에게 주신 분명하신 뜻이 있다고 믿습니다. 특별히 지역사회를 섬기며 그리스도의 선한 영향력이 이 땅 가운데 흘러가게 하는 데에 교회가 전심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저와 서부교회가 지역의 목사님들과 교회들에게 그러한 귀한 동역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선하신 주님께서 우리 모든 교회 공동체의 머리가 되어주셔서, 하나가 되어 서로 도우며 연합함의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 기획
    • 인터뷰
    2022-11-22
  • 두억교회 김재형 장로 50주기 기념 예배
    예장(통합) 진주남노회(김기범 목사)가 주관하는 ‘두억교회 김재형 장로 50주기 기념 추모예배 및 추모연주회’가 지난 11월 21일(월), 진주시 진주대광교회(장지현 목사)에서 있었다. 진주남노회 노회장 김기범 목사의 인도로 시작한 예배는 전 노회장 장지현 목사가 대표로기도하고 서기 최봉철 목사가 성경봉독(창32:9-12)한 후 통합 총회 전임총회장 김태영 목사(백양로교회)가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말씀 후 전 노회장 우상식 목사가 김재형 장로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한산도 바울사도 김재형 장로’라는 제목의 장신대 목연학과 졸업 소고 논문을 발표하고 전 노회장이자 전국장로회연합회 류재돈 장로가 추모사를 전했다. 이어, 사단법인 JRP유엔평화재단 찬양그룹이 악기와 코러스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추모 연주회를 하고 전 노회장 박영출 목사가 축도함으로 예배를 마친 후 김재형 장로의 후손 대표로 삼남 JRP문화재단 이사장 김형대 목사가 인사를 전했다.
    • 뉴스
    • 교계
    2022-11-22
  • 마산동광교회, 장로·집사·권사 임직식
    예장(고신) 마산동광교회(강영구 목사)가 지난 11월 20일(주일) 오후 2시, 장로·장립집사·권사 임직식을 가졌다. 당회장 강영구 목사(마산동광교회)의 집례로 드려진 1부 예배는 경남마산노회 부노회장 배광석 장로(서부교회)가 대표로 기도하고 서기 정상률 목사(마산삼일교회)가 성경봉독(왕상7:21-22)한 후 총회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장 김종철 목사(고성제일교회)가 ‘교회의 기둥’이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김종철 목사는 말씀에서 교회에 헌신해도 자기의 공을 드러낸다면 오히려 교회에 해가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며 “이 성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이 교회를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주인이신분도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명심해야 교회에 복이 된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교회는 하나님께서 능력을 부어주실 때 부흥을 허락 하신다.”라며 “아무리 사람이 노력해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으시면 교회가 교회다워 질 수 없다.”고 당부했다. 말씀 후 강영구 목사의 인도로 통성으로 기도하고 임직식을 시작했다. 임직식에서는 강영구 목사가 임직하는 장로·장립집사·권사와 성도들에게 서약을 받고 장로·장립집사에게 안수 후 마산동광교회 직분자 된 것을 공포하고, 권사로 임직하는 자들도 강영구 목사가 기도하고 공포함으로 마산동광교회 직분자가 되었다. 이어진 축하와 감사의 순서에서는 이영진 목사(유로교회)가 임직자들에게 “교회의 직분자는 헌신해야 할 때 가장 먼저 나서는 사람”이라며 “죽도록 충성하라는 사실을 마음에 꼭 새기시길 바란다.”라고 권면하고 오승균 목사(마산성산교회)가 교우들에게 ‘해야될 일’과 ‘하지 말아야 될 일’을 구분해 설명하며 권면의 말을 전했다.또 경남마산노회 부서기 전성진 목사(산호교회)가 축사를 통해 진심으로 축하의 말과 인사를 전했다. 이어, 임직자 대표로 천갑성 장로가 답사를 통해 인사와 함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노회장 최경진 목사(칠원교회)가 축도함으로 예배를 마쳤다. 다음은 임직자 명단이다. ▲장로 장립 : 천갑성, 서영태, 김삼복, 박성수 ▲집사 장립 : 김종민, 이병하, 송영은, 박광희, 송성곤, 김민석, 김민수, 성호철 ▲권사 임직 : 김영희, 김기난, 강정이, 김금호, 안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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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2
  • 함안군기연, 2022년도 정기총회
    함안군기독교연합회(회장 장건수 목사, 이하 함안기연)가 지난 11월 17일(목) 오전 11시, 함안군 칠원읍 큰빛교회(강석규 목사)에서 ‘2022년 정기총회’를 개회했다. 회무에 앞서 드린 예배는 회장 장건수 목사(구혜교회)의 인도로 시작해 전임회장 김효성 목사(꿈이있는교회)가 대표로 기도하고 장건수 목사가 ‘예배가 살아야 신앙이 삽니다’(요 4:19-24)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장건수 목사는 말씀에서 루즈벨트 미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며 ‘온전한 예배’에 대해 나눴다. 장 목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기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라며 “우리의 삶 전부를 하나님 앞에 내려 놓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교 후 사무총장 이태환 목사(한마음교회)가 광고를 전하고 직전회장 최건호 목사(주님의교회)가 축도함으로 예배를 마쳤다. 이어진 2부 회무는 전임회장 최경진 목사(칠원교회)가 기도하고 서기 최한권 목사(칠원온누리교회)가 임원점명 후 장건수 목사가 개회를 선언함으로 시작해 각 보고와 회칙심의 후 임원개선에 들어갔다. 임원개선에서는 신임 회장에 강석규 목사(큰빛교회)를 선출하고 이후 순서 후 목사의 기도로 폐회했다. 한편, 함안군기독교연합회는 오는 11월 30일 가야읍에서 성탄트리 점등식을 계획 중에 있다고 전했다. 다음은 신임 임원 명단이다. ▲회장 : 강석규 목사(큰빛교회) ▲부회장 : 정진경 목사(함안제일교회), 채수용 장로(함안제일교회), 옥태수 장로(함성교회) ▲사무총장 : 이태환 목사(한마음교회) ▲서기 : 최한권 목사(칠원온누리교회) ▲회계 : 강명구 장로(함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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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2
  • 고신 전장연, 제53회 정기총회 개회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교단의 전국장로회연합회(회장 강상균 장로, 이하 전장연)가 지난 11월 17일(목), 천안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제53회 정기총회’를 개회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40:1)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총회의 개회예배는 전장연 수석부회장 허창범 장로의 인도로 시작해 직전회장 김정수 장로가 대표로 기도하고 고신 총회장 권오헌 목사가 ‘모르드개’(에4:1-17)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말씀 후 부총회장 김홍석 목사가 축도함으로 예배를 마치고 2부 개회식에 들어갔다. 개회식은 전장연 총무 이연호 장로의 사회로 전임회장을 소대하고 회장 강상균 장로가 개회사를 전한 후 고려신학대학원장 최승락 목사가 환영사를, 전임총회장 김철봉 목사와 신일교회 원로 윤광중 목사 전국원로(은퇴)장로회연합회 회장 정하율 장로가 축사를 전했다. 또 총회장 권오헌 목사가 전장연 회장 강상균 장로에게 공로패를 전달하고 강상균 장로는 함께 고생한 실무임원들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 회장 강상균 장로의 사회로 진행된 회무는 부총회장 전우수 장로의 기도와 강상균 장로의 개회선언으로 시작해 각 보고 후 신임 임원 선거에 들어갔다. 임원 선거에서는 수석부회장 허창범 장로를 신임 회장에 추대하고 신임 수석부회장은 단독후보로 출마한 장상환 장로가 선출됐다. 다음은 신임 임원 명단이다. ▲회장 : 허창범(신일) ▲수석부회장 : 장상환(잠실중앙) ▲총무 : 이연호 장로(가음정) ▲서기 : 이경환(영천) ▲부서기 : 오동환(제일진해) ▲회록서기 : 한진태(은혜로) ▲회록부서기 : 김용만(울산) ▲회계 : 김창희(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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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2
  • [이정은 사모] "악이여, 너는 나의 선이 될지어다''
    "악이여, 너는 나의 선이 될지어다'' 존 밀턴이 '실낙원'에서 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롬1:18) 제가 목사님을 통하여 가르침을 받은 바울 사도의 이 말씀은 그 순서가 매우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건하지 않음'이 첫 번째이고 '불의'가 두 번째입니다. 이 순서를 깨닫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한 지난 세월의 실수들이 낳은 소위 위대한 사상가들 - 다윈, 헉슬리, 스펜서...복음의 어그러진 사상가들, 그 추종자들 또한 신앙의 확신이 없어 그들을 마땅히 책망하지 못하고 심지어 그들의 가르침이 교회의 메세지에까지 침투해 들어오도록 내버려둔 소심한 교회의 지도자들 - 우리는 그들을 숭배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은 그냥 자연 그대로일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여기에 사람의 의지가 들어갈 때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라는 말이 나옵니다. 성소수자들의 퀴어 축제, 동성애 차별금지법, 인간복제, 트랜스젠더, 그들의 인공 자궁이식, 할로윈파티, 여성목사안수...등등 문제는 “왜 이런 것이 시대마다 계속 되어져 나오고 목소리가 커져갈까? 왜 그리스로인들 마저 어정쩡한 모습일까?”입니다. 가만 살펴보면 어떤 이들이, 성경에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그 중에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인 요소들을 다 몰아내고 하나님을 실제 살아계신 분으로 믿지 않아도, 성경속에 너무나 훌륭한 도덕적, 윤리적 가르침은 얼마든지 지킬 수 있다는 겁니다. 경건과 도덕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것을 꼭 알아야합니다. 경건을 버리는 즉시 불의가 들어옵니다. 이것은 말씀이 우리를 깨우치게 해주는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세상은 법을 내세우지만 성경은 죄를 다룹니다. 세상이 죄의 개념에 반발하는 것입니다. 죄의 개념을 지워나가며 병적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점점 절대적 기준이란 없다고 못을 박습니다, 그럼 어디에서 기준을 찾습니까? 하나님도 몰아내고, 십계명도 몰아내면 대체 무엇으로 기준을 삼습니까? 이에 대한 사람들의 대답은 각자의 의견이 기준이라는 겁니다. 나와 다른 이들에게 최대의 행복을 주는 일이 곧 옳은 일임을 믿으라고 아주 진지하게 가르치며 반드시 행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쾌락주의자들(Epicurianism)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즉, 좋은가, 나쁜가,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는 대신 전반적으로 효과가 있는가를 묻자는 공리주의자들(Utilitarianism), 여기에 더나아가 신학적 공리주의 교리는 “인간의 행동이 순전히 행복 추구”에 있다는 것입니다. 공리주의를 낳은 영국의 빅토리아인들이 광적으로 숭배한 존 스튜어트 밀은 그리스도인도 아니었고, 사상적으로는 니체와 반대사상을 가진 자였지만 그렇다고 유신론자라고도 할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저 그것이 유익한가, 효과가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공리주의를 나름 수정한것이 편의주의(Opportunism)인데 절대적인 기준 같은 것은 없다는 주의이고, 무엇이 효과가 있는지 판단해야하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즉 목적이 바람직하면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대중적인 견해로 자리잡아 예수회(Society of Jesus)를 비롯한 여러 단체와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이론이기도 해서 '사회복지' 분야에서도 인기 있는 프레임입니다. 이 편의주의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면 “힘이 곧 정의다” “내 힘으로 원하는 목적을 이룰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된다”는 파시즘(Facism)의 철학이고 알다시피 여기서 아돌프 히틀러가 나왔습니다. 그는 편의주의의 창시자는 아니지만 그가 따른 철학은 편의주의였고 편의주의는 파시즘의 철학입니다. 히틀러를 비롯한 수많은 사례가 보여주듯이 고의적인 거짓말과 속임수를 국가의 합법적 수단으로 옹호하는 무서운 결과가 초래된 것입니다. 이러한 발상은 기준이 없기 때문에 훈육, 권징(discipline)에 대한 개념이 없어지고 그에 따른 벌(punishment)이라는 것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결국 상황이 훨씬 더 복잡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이 명하는 기본적이고 영원하고 절대적인 기준을 버린 탓에 '도덕 기준'이 시대에 따라 계속 바뀐다는 것입니다 정말 심각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폐하는 순간 각자 다른 기준을 갖게될 뿐만 아니라 공적인 기준 또한 바뀐다는 것입니다. 1957년 9월 영국의 '동성애 및 매춘 위원회'에서 제출한 울펜덴 보고서(Wolfenden Report)가 있습니다. 그것의 중대한 논지는 “항상 그 시대 사람들 다수의 견해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존 밀턴의 말이 생각나게 합니다. "악이여, 너는 나의 선이 될지어다!" 문제는 세상이 율법을 무시하도록 조장해온 복음주의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율법은 설교하지마라,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비난하지말고 그리스도께 나아오도록 초.청.만 하라” “하지 말라”라고 금하는 대신 "이렇게 하는 편이 훌륭하지 않겠는가? 옳지 않겠는가? 좋지 않겠는가?”라고 귄.하.라.는 겁니다. 비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한.테.나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라고 권하는 것은 성경의 진리를 부인하는 짓입니다. 정죄를 모르는 자들에게 은혜와 진리를 전하는 것은 치명적인 잘못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렘17:9) 결국 비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적인 호소를 하는 것만큼 잘못된 일은 없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이 땅의 많은 성도(장로, 권사, 집사, 일반 성도)가 이 땅의 많은 목사, 신학자가 '하나님에 대한' 말은 많이 하지만 허나 ‘하나님께 나아가지는 않음’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습니다. 나라가 안정되고 고요하고 평온하고 질서가 있고 국민이 행복하고, 정부가 원하고, 편하게 목회하고 등등...그래서 동성애도 차별금지법도 여성안수도 더한 것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이런 주장을 하는 목.사.님들도 분명 알 것이라 여깁니다. 궁극적으로 평화주의는 이단입니다. 평화주의는 비 그리스도인들에게, 어정쩡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적인 행동을 기대합니다. 중생치 못한 자들에게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원리들을 적용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이단적인 생각입니다. 물론 다툼과 분쟁, 전쟁은 악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시람들이 은혜아래 들어 올때까지 율법 아래 가두어야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롬13:4) 기독교로 가장하고 있으나 사실은 성경의 가르침을 부인하는 거짓 이상주의에 현혹되지 않도록 목사님들은 저희들을 가르치고 가르치고 또 가르쳐야합니다. 사도 요한은 아니 성경 어느 책을 대하든 던지는 질문은 “이 복음서는, 이 말씀을 쓴 이유가 무엇일까?”입니다. 수많은 박해와 시련과 어려움에 직면해있는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은 단순히 위로를 건네는 것이 아니라 물론 궁극적인 의미에서 교회는 위로를 줍니다. 그러나 교회는 심리치료를 받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교회는 깃발을 든 군대로써 말씀 기록자는 일반적인 위로를 건네지도, 호소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가.르.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20:31) 말씀을 말씀으로 풀어주는 이가 없으면 가시채를 뒷발질합니다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행9:5, 26:14) 하나님의 율법과 싸우지 말라는 것, 하나님은 반드시 법을 집행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 형벌을 정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그대로 실행하시는 분입을 가르쳐 주십시오. 복음의 위로는 직접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통해 간접적으로 오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말씀 사역자님들의 주된 임무는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위로를 원하는 상냥한 사람들에게 한 스푼의 설탕을 맛보게 하는것이 아니라 형제보다 친밀한 친구께 이끌어 가는데 있습니다.(잠18:24) 말씀만 말씀하여 주옵소서. 말씀만 가르쳐 주옵소서 제발. 저희들이 듣겠나이다. 피렌체에서 한달살이를 하면서 이들 속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느끼는 것들은 너무 많지만 그 중에 특히 르네상스의 꽃으로 불리는 피렌체의 중심지에서 눈만 뜨면 들려오는 성당의 종소리와 수많은 아이콘들과 골목길을 들어서면 세상끝날까지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자태를 드러내는 두오모 대성당을 바라보며 장엄하고 웅장하며 화려함의 극치를 드러내었던 그 옛날의 대로마제국을 상상해보며 과연 저들 속에 하나님은 계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헬라인들이 볼 때, 그의 죽음은 너무도 어리석은 것이요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구원은 나무에 달려 죽는 사건으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철학과 사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예수를 알지만 선생으로 존경하기는 하지만 영접하지는 않음을 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1:2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 깨닫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정은 사모 (고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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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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