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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완 목사] 천국의 실상 (계21:1-8)
- 삼성그룹을 창업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시킨 분이 고 이병철회장입니다. 그가 1987년(77세)에 타계하기 약 한 달 전에 A4용지 약 5장 분량으로 작성된 것인데 모두 24개 항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가 남긴 질문은 뜻밖에도 전부 다 종교에 관한 내용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것과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등등 이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결국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듣지 못하고 타계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은 구원 받고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 없다면 구지 하나님을 믿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지옥과 천국은 가상의 나라가 아니고 실재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세상나라 국적을 가진 것보다 천국 시민권을 갖게 된 것을 더 기쁘게 여겨야 하고 그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을 갖고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능력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보다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인하여 더욱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 어떤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하더라도 천국에 갈 수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교인들 중에는 의외로 천국을 확신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고 또는 천국을 믿지만 천국의 실상을 알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천국의 실상을 알아야 박진감 넘치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천국은 지금의 세상과 전혀 관련이 없는 신천 신지입니다.(계21:1-8) 둘째로, 천국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고 각종 보석으로 꾸며진 찬란한 곳입니다.(계21:9-27) 셋째로, 천국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하는 곳입니다.(계22:1-5) 오늘도 내일도 오직 천국 소망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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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완 목사] 천국의 실상 (계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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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숙 목사]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아닌 진리를 말하라
- 고사성어 중에 “지록위마(指鹿爲馬)” 라는 말이 있다. 이 의미는 “사슴(鹿)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한다”는 뜻으로 사실과 다른 것을 억지로 맞다고 주장하는 것을 뜻한다. 진나라의 황제인 진시황이 죽고 난 후, 그의 아들 호해가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실제 권력은 재상인 조고가 쥐고 있었는데 악당 조고는 태자인 부소를 죽이고 힘없고 어린 호해를 황제로 세우고 자신이 가진 권력을 더 높였다. 그리고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고자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이라고 우겼다. 황제와 신하들은 거짓임을 알고도 그의 사악함과 포학함에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의 형편을 보면 어떤 힘 있는 자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도 하고 때로는 다수의 의견이 진리인 것처럼 다수의 의견이라면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때도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갔을 때, 자신에 대해서 이곳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요한이라고 하였고,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하나라고 하였다. 다수의 의견이지만 진실이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당하실 때 산헤드린 공회, 유대인 다수가 예수를 죄인으로 낙인(烙印)하고 십자가에 처형하였다. 다수의 가결이지만 진실이 아니며 옳은 것이 아니었다. 다수가 죄인이라고 우긴다고 주님이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다(히4:15). 세상은 예수님이 하나님(θεός) 되심과, 주(κύριος)가 되시며 그리스도(Χριστός)가 되신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단지 나사렛 촌 동네 목수 요셉의 아들로만 알고 있으며, 인심 후하게 쳐서 능력을 행하는 선지자 정도로 인식한다. 몰라서 그렇다. 안다 할지라도 죽음이 두렵거나 삶에 손해가 날까 두려워 진실을 왜곡할 때가 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진실한 사건인데 돈을 받은 경비병 군인들은 진실을 은폐시켰다(마 28:12~15). 이것이 예수님 당시 “지록위마 현상”이다. 오순절 성령 충만을 받은 베드로의 말씀 선포를 보면 그는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기를 “너희가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2:36).”고 분명하게 선포하였다. 바울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 후에는 예수님에 대해서 분명하게 선포하기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가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하였다. 2024년 10월 27일은 한국 기독교 역사상 뜻깊고 의미 있는 날이었다.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고 진리를 왜곡하여 창조 질서를 파괴하며 지록위마를 고집하지만 성도들은 진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연합집회를 가졌다. 앞으로 우리는 종교개혁 정신을 따라서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진리를 선포하는 파수꾼으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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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숙 목사]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아닌 진리를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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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승 목사] 주일에는 달리지 않습니다
- 얼마 전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정확히 백년 전인 1924년에도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렸었다. 백년이 지난 지금도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는 신앙인 에릭 리들(1902.01.16-1945.02.21)을 소개한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중국에서 태어났으며 5살 때 부모님을 따라 영국으로 귀환한 뒤에 1924년까지 영국에서 자랐으며 이후 1925년에 중국선교사로 파송받게 된다. 그는 에든버러 대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인 육상선수를 하게 된다. 수년간 국내대회를 휩쓸다가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참가하게 된다. 하지만 100미터 경기가 주일에 열린다는 이유로 출전을 포기한다. 그 때 그가 한 유명한 말이 ‘나는 주일에는 달리지 않습니다’ 이다. 이를 두고 영국 국민들은 그를 향하여 엄청난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대신 그는 400미터에 처음으로 출전해서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땄다. 수상식 이후에 이런 인터뷰를 했다. ‘처음 200미터는 내가 최선을 다해서 달렸고, 마지막 200미터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달렸다’ 올림픽 이후 그는 중국선교사로 파송을 받아서 사역하던 가운데 중일전쟁이 일어난다. 그리고 1943년에 일본군에 의해 억류되었다. 한번은 영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교환협정을 통해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를 했다고 한다. 1945년 뇌종양으로 사망을 하게 되는데 그의 나이 43세이다. 그의 놀라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불의 전차’이다. 안일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성경 속의 여러 인물이나 한국교회사에도 답답하리만큼 말씀 그대로 실천하려고 애를 쓴 분들이 참으로 많다. 주위 사람들은 그들을 향하여 ‘외골수다, 답답하다, 유별나다, 미련하다’ 등등 많은 비난을 쏟아내었다. 하지만 과연 하나님께서도 같은 평가를 하실까? 예수님의 12제자 중에는 열심당원 출신이 4명 포함되어 있다. [작은 야고보, 유다, 시몬, 가룟 유다] 이렇게 네 사람이다. 열심당(셀롯)이란 말은 ‘칼을 가슴에 품고 다닌다’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진노의 대행자들로 보고 있다. 로마로부터 유대인을 해방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행동대원이라고 믿는 극렬 민족주의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 외에는 어떤 왕도 없고, 성전 세금 외에는 어떤 세금도 없으며, 열심당원 외에는 어떤 친구도 없다” 는 무시무시한 슬로건을 내걸고 로마 정권에 항쟁하였다. 열심당은 간헐적으로 항쟁을 계속하다가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완전히 함락되자 마지막 요새인 [마사다]에서 지도자인 [엘리자]의 지휘아래 끝까지 항쟁하였다. 주후 73년 [마사다]가 함락되기 전날 960명이 자살을 하므로 이들은 끝까지 로마에 무릎을 꿇지 않은 무리들이다. 이스라엘 청소년들은 걸어서 그곳까지 오르며 이스라엘 정신을 익히고, 군인들도 정신교육의 도장으로 삼고 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바르게’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믿는 사람들은 자기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고 인정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이 땅이고, 성도의 관심은 저 하늘이다. 바울은 (골로새서3:2)에서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힘주어 말했다. (열왕기상 18장)에는 나봇의 포도원 사건이 나온다. 당시 악랄한 왕 아합은 왕궁 근처에 좋은 포도원을 발견하고 주인 나봇에게 그 밭을 자기에게 팔라고 제안을 한다. 공짜로 달라는 것이 아니라 제 값을 주고 팔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봇은 팔기를 거절한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왕상18:3)에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나봇]은 포도원이 아까워서 팔지 못한 것이 아니다. 흥정이 맞지 않아서 팔지 못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레25:23)을 보면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 라고 말한다. 결국 나봇은 이 말씀을 지키다가 목숨을 던졌다. 과연 우리들은 에릭 리델처럼, 나봇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한 때 유행했던 복음송 중에 이런 가사가 떠오른다.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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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승 목사] 주일에는 달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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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목사] 기독교 용어 고찰 48 : 사탄, 마귀, 귀신 등의 용어 차이
- I. 서언(序言) 알지만 때로는 혼돈이 되는 용어들이 있다. 본 호에서 논하고자 하는 사탄과 마귀, 귀신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말인가 다른 말인가에 대한 구별이 힘들 때도 있다. 이에 본 호에서는 여기에 대한 각 말의 원문과 그 유래와 신학적 견해를 덧붙여서 논하고자 한다. 첨언 할 것은 본 내용들은 영국 버밍엄대 신학박사를 역임한 이상윤 목사가 기고한 국민일보(2019. 6. 13)의 내용과 이상근 주석 및 몇 가지 종류의 원어 해설 등을 참고했음을 밝혀둔다. II. 사탄, 마귀, 귀신의 용어분석과 그 차이점 1. 사탄(Satan) : ‘대적하는자’란 뜻의 사탄(욥1:6-7)은 히브리어이며, 구약에서는 민수기 22:22절의 ‘여호와의 사자’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70~80회 정도 나온다. 신약에서는 헬라어로 ‘사타나스’인데 마가복음 1:13절을 비롯해서 널리 사용되었다. 이로 볼 때 사탄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계속 사용된 용어이며, 초인간적 영적 존재로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의 영원한 대적자로서의 존재이다. 때로는 사단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사탄’과 ‘사단’은 같은 말이다. 단지 한국어로 번역할 때 다른 음역(音譯)을 적용했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일 뿐이다. 예를 들면, 1961년에 개정된 개역 한글 성경은‘사단’이라고 번역했지만, 1998년에 개정된 후 대부분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개정 성경과 공동 번역, 현대어 성경, 표준 새 번역 등에는 모두 ‘사탄’으로 번역했다. 하지만 둘 중에 좀 더 정확한 말은 ‘사탄’(Satan)이 더 원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사탄을 가리키는 여러 이름들도 있다. 디아볼로스(벧전3:6), 바알세불(왕하1:2) 등은 모두 다 같은 존재의 다른 이름들이다. 이 밖에도 마귀(마4:1), 뱀(창3:1), 이 세상의 임금(요12:31),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2:2) 등도 모두 사탄을 가리키는 이름들이다. 또한 성경에서 구체적인 시기는 없지만 사탄은‘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타락한 천사들(유 6절)의 머리라고 했다. 히브리인들은 이 존재를‘루시파스’(Lucifer)라 했고, 회교의 코란은‘사이탄’(Shaitan)이라고 했다. 2. 마귀(魔鬼) : 사탄의 또 다른 명칭으로서 헬라어로는 ‘사타노스’(διαβολοs)인데 한자어로는 이를 ‘마귀 마(魔)와 귀신 귀(鬼)’로 번역했다. 한자와 성경 내용의 관련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마귀 魔를 파자(破字)하면 ‘집 엄(广), 수풀 림(林), 귀신 귀(鬼)가 된다. 이는 하늘의 집에서 쫓겨나서 수풀 나무에서 인간을 타락시킨 귀신이 곧 마귀다’라고 주장하지만 그저 참고할 뿐이다. 마귀의 뜻은 중상모략 하는 자, 비방하는 자, 거짓으로 고소하는 자이다. 또한 히브리인들은 이 존재를‘루시파스’(Lucifer)와 함께하다가 추방된 천사들의 무리를 마귀라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마귀와 사탄은 동일한 존재로 보고 있고, 신약에서는 사탄보다 더 많은 횟수로 사용되고 있다. 3. 귀신(鬼神): 헬라어로 다이몬(δαιμων)인데, 여기서 영어의 ‘demon’(악령)이 나왔다. 또한 성경은 ‘사탄’과 ‘마귀’를 단수로 기록하고 있지만 ‘귀신’은 단수와 복수로 모두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마가복음 5:13절에서는 이천 마리의 돼지 떼에 들어간 귀신들을 기록함으로서 귀신이 다수인 것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도 직접 ‘마귀와 그 사자들’(마25:41)이라고 하신 것을 비롯해서 여러 본문을 참고해서 보면 ‘귀신’은 ‘사탄’ 혹은 ‘마귀’가 부리는 낮은 등급의 악한 다수의 영들이라고 할 수 있다. III. 결 어(結語) 항상 사용하는 너무나 익숙한 용어들이지만,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잘못 알고 있는 경우들이 많다. 사탄과 마귀와 귀신 등은 조직신학에서도 논하는 중요한 주제인데도 이상과 같이 혼란이 올 때도 많다. 영적인 존재들이고 가장 경계해야 할 대적자들이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알아서 모든 영적 전투에서 승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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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목사] 기독교 용어 고찰 48 : 사탄, 마귀, 귀신 등의 용어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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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한 목사] 새 언약으로 하나 되었다(2).
- 우리는 새 언약으로 하나가 되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을 통해 우리에게 새 언약을 주셨다. 바른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새 언약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이다. 새 언약은 예수님의 피로 맺은 놀라운 사랑의 언약(Blood Covenant)이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셨다는 것은 예수님과 하나 되었다는 의미이다. 새 언약을 통해 우리에게 일방적인 사랑으로 주신, 하나 됨의 정체성(oneness-identification)은 중요한 정체성이다. 제자들만 하나 된 것이 아니고 모든 믿는 자들이 예수님과 하나 되었다. 주님은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해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요17:20)라고 기도하셨다. 주님의 기도는 응답되는 기도다. 그래서 우리에게 응답된 것이다. 그 날 밤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그날 밤 우리는 결혼을 했다. 결혼 서약인 새 언약은 최고의 언약이요, 놀라운 비밀이다. 주님이 우리의 신랑이 되었다. 사랑하는 신랑은 언제나 우리와 모든 것을 함께 나누며 함께 한다. 우리가 신랑과 하나 됨으로 신랑이 우리의 죄로 심판받으실 때 우리도 심판을 받았다. 신랑이 부활하실 때 우리도 부활 한 것이다. 신랑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은 나와 하나가 되어 하신 일이다. 예수님과 하나 됨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셨다. 또 우리는 신랑과 함께 일으켜 졌다. 나아가 우리는 신랑과 함께 하늘에까지 함께 앉혔다(엡2:6). 놀라운 일 아닌가! 하나 됨이라는 것은 이제 신랑 되신 예수님이 계신 곳에 우리가 있게 된 놀라운 비밀이다. 얼마나 놀랍고 놀라운 일인가! 이것이 하나 됨의 비밀이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비밀이다. 우리는 “내가 있는 곳에 예수님 함께 해 주세요”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그 이상의 복이 이미 주어졌다는 것을 알겠는가?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내가 있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기에 떨어 질 수 없게 해 주셨다. 그분이 찾아 오셨기에 예수님이 계신 곳에 내가 있다. 예수님이 하늘 우편에 앉아 계시므로 나도 하늘 우편에 앉아 있다. 성경은 이 정도로 우리의 정체성의 회복을 완벽함으로 말한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음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는 이제 완벽한 하나가 되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하시지 않는가!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것은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여기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있다. 우리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는 것에 만족하시지 않으시고 ‘함께’를 넘어 하나 되기를 원하셨다. 그저 단순하게 ‘함께’를 뛰어 넘어 새 언약을 맺으셔서 임마누엘로 우리와 하나가 되셨다. 우리에게 임마누엘의 엄청난 복이 임한 것이다. 새 언약으로 우리는 하나 되었다는 것을 실재로 알고 믿게 된다면 너무 너무 감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보여 지고, 우리에게 다가 올 때 죄에서 벗어난 확신을 갖게 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요한일서 3장9절의 거듭난 사람은 죄에 있지 않는다는 말씀이 이해가 되고 믿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는 말씀 앞에 우리는 담대히 “아멘!” 할 수 있다. 나는 온전한 복음의 이해가 없을 때는 이 성경구절이 많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죄인인데, 죄를 짓고 있는데, 죄를 짓지 않는다”고 성경이 말하니 어려웠다. 육으로 생각하니 어려웠던 것이다. 로마서 6장만 잘 읽어 봐도 우리는 죄에서 분리 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완전히 청산하셨다.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도 청산하셨다. 만약 미래는 “네가 잘 살아서 해결하라”고 하셨다면 우리는 가망이 없는 사람이다. 누가 가능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는 도를 닦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도를 깨달아 이미 이루어 졌음을 수용하고, 주님과 하나 됨이다. 기독교는 임마누엘이다.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기독교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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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한 목사] 새 언약으로 하나 되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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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총장] 우리의 궁극적 관심과 소망
-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롬1:21-15) 성경은 우리의 신앙의 문제, 다시 말하면 우리가 누구를 섬기고 예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조금의 타협도 허용하지 않는다. 인간의 필연적 본성인 신앙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선택권만 있을 뿐이다. 우리의 궁극적 관심사는 창조주 하나님, 곧 그분의 유일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해 주신 참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거나 아니면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피조물을 섬김과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 우상 숭배적 행위뿐이다. 바울이 나열한 우상을 금수와 새, 파충류 등 버러지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바울이 살았던 시대의 우상은 오늘 우리가 섬기는 우상과는 달랐지만 오늘 우리가 섬기는 우상도 바울 시대와 마찬가지로 살아 있고 건장하다. ‘예배’라는 단어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서도 우리는 잘 알아야 한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속적인 사회 문화의 분위기에서 우상 숭배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마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자신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필연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이 믿음은 곧 예배의 행위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바울이 로마서 12장 1-2절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예배는 우리의 온 존재가 관여하는 행위다. 그것은 참된 신이신 하나님이나 아니면 온갖 종류의 거짓된 신을 섬기는 예배 행위에 의해서 형성되는 우리 삶의 모습이다. 우리가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과 예배의 대상으로 참되신 하나님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성경 말씀이 약속 하는 바 그대로 이 땅의 삶에서도 형통하고 충만한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과 예배의 대상을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피조물 중에서 선택한다면, 우리는 결국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뿐만 아니라 영적인 죽음이며, 하나님의 모든 축복에서 끊어지고 영원한 사망에 이르는 길이 있을 뿐이다(신30:16-19). 성경은 우리의 유일하고 참된 경배의 대상이며 소망이 되시는 참 되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이 신성의 충만함이라고 가르치고 있다(고전1:19).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요14:6).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나사렛에서 자라나고,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역사적 예수는 성령을 통해 오늘도 살아 계시고 활동하시고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우리 그리스도 모두의 궁극적 관심이요 소망이다. 우리가 공유하고 그 안에서 내주하고 있는 우리는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적 사실이 된다. 우리가 그분께 우리 자신을 내어드릴 때, 우리가 탐구하고 있는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독특한 해답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 때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와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심을 것을 알게 된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1:1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또한 인간을 포함한 만물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소외되었음을 알게 된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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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총장] 우리의 궁극적 관심과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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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헌 목사]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27) (민12:3, 마5:5, 11:29)
-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27) (민12:3, 마5:5, 11:29) 자기 입에 있는 자신의 혀도 씹을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으니 의견도 다양하고 의견이 다양한 만큼 주장도 다를 수 있습니다. 주장이 다르고 의견이 충돌하다 보면 분쟁도 생기고 간혹 언성도 높아집니다. 이럴 때는 너무 상대를 몰아붙이지 마십시다. 나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십시다.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더 좋은 방안을 찾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하십시다. 그리고 뜻이 모아지도록 노력하고, 뜻이 모아지면 함께 하십시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우리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능력이 나타나고 있는데 딴짓을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이 눈 앞에서 펼쳐지는데도 자기 기준, 자기 생각, 자기의 입장을 따라 원망 불평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하나님의 집을 짓는 일입니다. 크게 짓고 싶은 사람, 작게 짓고 싶은 사람, 높게 짓고 싶은 사람, 낮게 짓고 싶은 사람, 동그랗게 짓고 싶은 사람, 네모로 짓고 싶은 사람, 수많은 방법은 있습니다. 그것 하나 하나가 다 교회를 위하는 일이고, 소중한 생각들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를 건축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방법들 때문에 교회 건축이 중단되고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면서 이런 결과를 도출해서 안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기적 같은 능력을 확신하며 온 성도가 마음과 뜻을 모아 기도하고 헌신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있는데 교회 건축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를 긁어 원망의 입을 모은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용납하실 수 없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일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토론하고, 논쟁하고, 의논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결정에 따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와 능력이 분명하게 나타날 때는 그 앞에서 다른 생각, 다른 마음, 다른 말조차도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반역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도, 다른 마음, 다른 말을 하다가도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면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종해야 합니다. 코로나19를 지나고, 교회를 건축하는 동안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와 사랑, 능력이 우리 고신교회와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 어린아이들조차 코로나19 가운데서도 예배드릴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감사 제목이 줄을 이었습니다. 교회를 이전하고 건축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코로나19 가운데서도 예배드렸던 우리들을 향하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기적이라고, 모든 성도들이 고백하고 감사했습니다. 코로나19 가운데서 예배드렸던 일, 일사천리로 교회를 매각 이전 건축한 모든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요, 기적이라는 사실을 우리 고신교회 성도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우리 교회의 소식을 들은 다른 교회, 다른 성도들이 더 놀라고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강력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는데, 10가지 기적 같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한쪽 구석에서 이스라엘이 나아가는 출애굽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로, 자기 자신의 생각과 기분과 감정에 따라 원망과 불평의 소리를 낸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냥 넘어가 주실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 잘 몰라도, 사람들이 들을 때는 타당성이 있어 보여 미혹에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말을, 그 원망과 불평의 말을” 분명히 들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이 나타나고 온 회중이 그 역사를 체험하고 찬송하는데 한쪽 귀퉁이에서 출애굽과 전혀 상관없는 문제로 원망의 싹을 내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문둥이로 만들어, 진영으로부터 격리시켜버리실 정도로 하나님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무서운 죄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예배드렸던 일에 원망한 성도가 있으면 회개하십시오. 기적과 같은 은혜로 교회를 건축하는 중에 원망한 성도가 있으면 회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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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헌 목사]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27) (민12:3, 마5: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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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 경남지역장로회, 제27회 정기총회 개회
- 예장(고신) 총회 산하 경남지역 8개 노회의 장로회가 연합하는 경남지역장로회연합회(회장 김시갑 장로, 이하 경남지역장로회)가 지난 11월 5일(화) 오전 11시, 경남 김해시 모든민족교회(박원일 목사)에서 ‘제27회 정기총회’를 개회 했다. ‘다시 복음으로’(롬1:15-17)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정기총회의 회무에 앞서 드린 1부 개회예배는 경남지역장로회 수석부회장 송재철 장로(모든민족교회)의 인도로 시작해 직전회장 구양서 장로(창녕제일교회)가 대표로 기도하고 김해노회 장로회장 손광호 장로(김해중앙교회)가 성경봉독(창5:21-24)한 후 모든민족교회 박원일 목사가 ‘공동묘지에 핀 한송이 꽃’이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박원일 목사는 창세기서 5장에 아담부터 죽기 시작해 에녹을 제외한 그 자손들이 죽어간 것을 공동묘지에 비유했다. 박 목사는 “900세를 살아도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그 죽음 뒤에 장례는 어떻게 치르는지, 죽음 뒤에는 어떻게 되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 시대가 아니었겠는가”라며 “그런 공동묘지와 같은 창세기 5장 속의 절망 속에 갑갑한 배경에 너무나도 아름답고 멋진 꽃이 피어났다. 모두가 죽는 가운데 안죽은 사람 에녹이 나왔고 죽음 뒤에 어디로 가는지 몰랐는데 하나님께로 가는 희망을 보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에녹은 죽지 않고 하나님께로 갈 수 있었는가?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다. 그것이 유일한 복음이었다.”고 전했다. 박 목사는 “창세기 노아도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구원을 얻었다. 죽음의 심판과 절망 앞에서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희망이 됐다.”라며 “지금이 창세기 5장과 같은 시대이다. 이 때 에녹이 필요하다. 희망이 되고 복음이 되는 사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설교 후 경남지역장로회 회계 하삼수 장로(모든민족교회)가 헌금기도하고 박원일 목사가 축도함으로 예배를 마쳤다. 이어진 2부 개회식에서는 경남지역장로회 총무 구영근 장로(예곡교회)의 사회로 회장 김시갑 장로(평성교회)가 전임 회장 및 내외빈을 소개하고 개회사를 전했다. 이어, 경남김해노회장 조근희 목사(꿈이있는교회)가 환영사를 전하고 고신 총회 장로부총회장 김승렬 장로(울산한빛교회)가 축사를 전했다. 또 전국장로회 회장 장상환 장로(잠실중앙교회)가 격려사를 전했다. 3부 회무에서는 회장 김시갑 장로가 개회선언 후 각 보고 후 임원 개선을 통해 신임 회장으로 송재철 장로를 추대했다. 다음은 신임 임원 명단이다. ▲회장 : 송재철(모든민족) ▲수석부회장 : 이수환(진주중부) ▲총무 : 오동환(진해제일) ▲부총무 : 박명준(거제섬김의), 박신학(예림중앙), 박정환(마산성막), 조분수(마산제일), 김경희(자여), 홍사용(진교), 권충호(개평), 정찬기(지구촌) ▲서기 : 권충호(가평) ▲부서기 : 김원철(진영중앙) ▲회록서기 : 김재상(충무제삼) ▲부회록서기 : 김재희(강동) ▲회계 : 이혜영(삼문) ▲부회계 : 오동목(진주삼일) ▲감사 : 구영근(예곡), 하삼수(모든민족), 김만배(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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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 경남지역장로회, 제27회 정기총회 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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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감, 제36회 총회 개회
- 기독교대한감리회(감독회장 이철 목사, 이하 기감)가 지난 10월 30일(수) 오후 1시, 서울 압구정동 광림교회(김정석 목사)에서 1박 2일의 일정으로 제36회 총회를 개회했다. 기감은 입법의회와 행정총회를 격년마다 개최하고 있으며, 올해는 총회 각 국과 기관, 자치단체 보고를 받는 행정총회로 진행된다. ‘희망, 도약, 동행. 새로운 감리교회, 하나 된 감리교회’를 주제로 삼은 제36회 기감 총회의 개회예배는 이철 감독회장의 집례로 서울남연회 채성기 감독이 용서의 말씀, 중부연회 김찬호 감독이 교독문을 낭독하고 남선교회 전국연합회장 오수철 장로가 대표로 기도, 여선교회 전국연합회장 이정숙 장로가 성경봉독(마28:18-20)한 후 이철 감독회장이 ‘세상 끝날까지’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이철 감독회장은 말씀을 통해 “시대마다 복음 전파의 문이 넓을 때도 좁을 때도 있으나, 우리는 그것에 연연하지 말고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 감리교회는 더 뜨거운 가슴으로 ‘보내는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자”고 전했다. 이 감독회장은 “주님 말씀대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말씀대로 지켜 산다면, 한국교회에 부흥이 올 것이다. 조직이 아닌 삶으로 세상의 빛으로 다시 승리할 것”이라고 전했다. 개회예배와 성찬식 후 이어진 회무에서는 지난달 26일 국내 11개 연회와 미주자치연회 등 12개 연회에서 실시한 감독회장 선거에서 득표율 57%로 당선된 신임 감독회장 및 전국연회 감독들의 인사와 함께 본부, 자치단체, 기관, 감사, 회계 등 각종 보고가 이어졌으며, 분과위원회를 소집해 조직, 정책, 사업토의 등을 논의했다. 특별히 이번 총회에서는 ‘퀴어신학’을 이단으로 결의했다. 기감 이단대책위원회(이하 이대위)는 퀴어신학에 대해 지난 4년간 논의를 시작한 이후 과정을 설명하고 결론적으로 퀴어신학이 △감리교 교리와 장정에 위배되고 △존 웨슬리의 신학에 반하며 △반기독교적 이단 사상이고 △사회 문제를 야기하며 △타 교단들도 이를 이단으로 규정했다며 총대들의 판단을 물었다. 찬반 의견을 확인한 이철 감독회장은 총대들에 찬반을 확인 했으며 총대들의 압도적인 박수로 퀴어신학을 이단으로 결의했다. 다음은 신임 감독회장 및 감독 명단이다. ▲감독회장 김정석 감독 ▲서울연회 : 김성복 감독 ▲서울남연회 : 유병용 감독 ▲중부연회 : 황규진 감독 ▲경기연회 : 서인석 감독 ▲중앙연회 : 김종필 감독 ▲동부연회 : 우광성 감독 ▲충북연회 : 백종준 감독 ▲남부연회 : 이웅천 감독 ▲충청연회 : 박인호 감독 ▲삼남연회 : 박준선 감독 ▲호남특별연회 : 안효군 감독 ▲미주자치연회 : 권덕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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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감, 제36회 총회 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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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학교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 부산사랑노인복지센터와 가족기업 협약 체결
- 고신대학교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센터장 김경미)는 부산사랑노인복지센터와 '가족기업 협약식'을 진행, 이번 협약을 통해 간호학과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대학의 재학생 현장실습, 직무체험, 현장이음 등 현장 연계 진로취업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현장 전문성을 갖춘 인재양성과 양 기관의 상호 발전을 위해 협력하기로 하였다. 부산사랑노인복지센터는 노인을 위한 다양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기관으로 지역사회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노인의 건강과 복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방문간호, 방문요양, 방문 목욕 등과 같은 서비스를 통해 노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가족기업은 대학과 기업 간의 맞춤형 교육 및 연구 협력을 통해 인적·물적 자원을 상호 공유하는 제도로 이를 통해 대학은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강화하고, 기업은 특화된 인재를 확보하며 기술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고신대학교 기업 네트워크 제도이다. 고신대학교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는 가족기업의 지속적인 확대를 통해 학생들에게 일경험과 취업 연계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를 지원하기 위해 현장 밀착형 진로취업지원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고신대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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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학교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 부산사랑노인복지센터와 가족기업 협약 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