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연월일 2026-04-2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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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신 경남마산노회, 제88회 정기노회 개회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경남마산노회(노회장 전성진 목사)가 지난 4월 14일(화) 오전 9시 30분,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위치한 마산성산교회에서 제88회 정기노회를 열고 개회예배와 회무를 진행한 가운데 총회 총대 선출까지 일정을 이어갔다. 회무에 앞서 드린 개회예배는 경남마산노회 노회장 전성진 목사(산호교회)의 인도로 시작됐으며, 장로부노회장 안남호 장로(산호교회)가 대표기도를 드렸다. 이어 서기 황인찬 목사(서부교회)가 사도행전 6장 1-7절을 봉독한 후, 노회장 전성진 목사가 “문제를 성숙과 기회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전성진 목사는 설교에서 “위기는 단순한 어려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성숙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며, 교회와 총회가 직면한 현실을 신앙적으로 해석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특히 “교회의 위기를 다른 사람의 문제로 돌릴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성숙이 시작된다”고 말하며, 원망과 비판이 아닌 자기 성찰을 촉구했다. 또한 “오늘날 교회와 총회가 윤리 문제와 목회자 수급 문제 등 여러 위기를 겪고 있지만, 이러한 상황이 오히려 본질로 돌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도행전 6장을 언급하며 “초대교회는 위기 속에서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세움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며, 오늘의 교회 역시 동일한 원리로 회복되어야 함을 밝혔다. 설교 후 이어진 성찬식은 노회장 전성진 목사가 집례 했으며, 목사부노회장 김성국 목사(군북교회)가 축도함으로 예배를 마쳤다. 예배 후 전 노회장 김종인 목사(성암교회)가 기도하고 진행된 회무에서는 각종 보고와 안건 처리가 이어졌으며, 이날 노회는 총회 총대 선출을 진행하고, 강도사 인허증 전달식과 목사 임직식을 가졌다. 이번 정기노회는 교회와 총회가 직면한 위기를 신앙적으로 성찰하며, 본질 회복과 공동체적 책임을 강조하는 가운데 진행됐다. 특히 설교를 통해 제시된 ‘위기를 성숙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노회 구성원들에게 깊은 도전과 방향성을 제시했다. 다음은 총회 총대 명단이다.(직함 생략, 득표 순) ▲목사총대 : 강영구, 전성진, 오승균, 김종인, 정상률, 이병권, 황인찬, 이상선 ▲장로총대 : 진종신, 김도근, 서진교, 안남호, 박영태, 구영봉, 김필규, 김시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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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단 및 연합회
    2026-04-15
  • 고신총회, 목회자 및 교역자 윤리 강령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총회(총회장 최성은 목사)가 ‘고신총회 목회자 및 교역자 윤리강령’을 선포하며 교회의 신뢰 회복과 목회자의 도덕적 책임 강화를 강조했다. 이번 윤리강령은 4월 2일 천안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열린 제23회 고신총회 특별기도회에서 총회 임원회 명의로 발표됐다. 고신 전국장로회연합회(회장 윤창현 장로)와 함께한 이날 기도회에서 참석한 목회자와 교역자들이 자리에서 일어선 가운데 총회 서기 김종민 목사가 윤리강령을 낭독했다. 앞서 윤리강령 제정을 위한 TF팀 위원장 권오헌 목사는 “총회에서 일어난 상황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윤리강령 제정이 필요한 시점이라 판단해 TF팀을 구성했다”며 “이번에는 총회 임원회 명의로 발표하고, 향후 총회 절차를 통해 보완·구체화하여 채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총회는 윤리강령 전문을 통해 “오늘날 교회는 세속화와 물질주의, 윤리적 타락으로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린 위기에 직면했다”며 “특히 목회자와 교역자의 영적·도덕적 해이함과 부주의한 언행이 교회의 품위와 신뢰를 훼손하고 복음의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거룩한 삶과 바른 목회를 실천하고자 윤리강령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이번 윤리강령은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기초로 개혁주의 신앙 위에 서서 교회의 거룩성과 공교회성을 지키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목회자의 정체성을 하나님의 종이자 그리스도의 대사로 규정하며, 교회를 거룩한 공동체로 세우는 사명을 강조했다. 세부적으로는 목회자의 소명과 정체성을 비롯해 개인 윤리와 성 윤리, 혼인과 가정 윤리, 목회 사역 윤리, 교회 정치와 치리, 교회 재정 및 재산에 관한 기준을 제시했다. 특히 설교와 목회에서의 표절과 왜곡을 금지하고, 교회의 권위를 개인의 권력이나 소유로 삼지 않도록 명시했으며, 재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조했다. 또한 동역자 및 타 교회와의 관계에서 경쟁이 아닌 협력과 연합을 지향하도록 했으며, 사회와 국가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고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교회의 역할도 포함했다. 더불어 창조 세계에 대한 청지기적 책임을 명시해 환경 보존과 다음 세대를 위한 책임까지 범위를 확장했다. 윤리강령은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천과 치리 조항을 통해 이를 위반할 경우 교단 헌법에 따른 권면과 징계를 수용하도록 명시함으로써 실효성을 강조했다. 고신총회는 이번 윤리강령을 통해 개혁주의 신앙에 입각한 목회 윤리를 재정립하고, 교회의 거룩성과 공공성을 회복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다음은 윤리 강령 전문이다. <고신총회 목회자 및 교역자 윤리 강령> I. 전문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적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맡은 목회자와 교역자로 부르심을 믿는다. 우리는 오직 성경이 신앙과 삶의 유일한 규범임을 고백하며, 개혁주의 신앙 위에 서서 교회의 거룩성과 공교회성을 지키는 사명을 받았다. 오늘날 교회는 세속화와 물질주의, 윤리적 타락으로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린 위기에 직면했다. 특히 목회자와 교역자의 영적·도덕적 해이함과 이에 따른 부주의한 언행은 교회의 품위와 신뢰를 훼손하고 복음의 능력을 약화시킨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거룩한 삶과 바른 목회를 실천하고자 다음과 같이 고신총회 목회자 및 교역자 윤리강령을 선포한다. II. 기본신앙과 원칙 1. 우리는 성경의 절대적 권위와 무오를 믿으며 이에 따른 삶을 살고 사역에 임한다. 2. 우리는 목회자가 하나님의 종이며 그리스도의 대사임을 자각한다. 3.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거룩한 공동체로 세우도록 성심껏 섬긴다. 4. 우리는 교회의 질서와 치리를 존중하며 교단 헌법 및 개혁주의 교회 정치 원리를 따른다. III. 윤리 강령 1. 소명과 정체성 우리는 목회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교회의 인준을 받아 말씀과 기도와 돌봄의 직무를 맡은 자임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속적 성공이나 물질적 이익을 목회의 목표로 삼지 않고 개혁주의 신학의 관점에서 주의 몸 된 교회를 견실하게 세우는 일에 힘쓴다. 2. 개인 윤리 우리는 설교자의 삶은 그 자체로서 교회와 세상을 향한 메시지임을 알고 온유하고 겸손하기를 힘쓰며, 말씀과 기도, 그리고 성령의 조명 가운데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추구한다. 설교와 목회에서 표절과 왜곡을 금하며 말을 포함한 일체의 폭력과 비윤리적 행위를 멀리하며 스스로를 엄격히 다스린다. 3. 성 윤리 우리는 성적 순결을 유지하며 목회자에게 주어진 공동체적 책임을 바탕으로 성적 유혹과 위험 상황을 경계하며 성적인 영역에서 자신을 지킨다. 또한 목회적 권위를 이용한 어떠한 성적 착취도 단호히 배격한다. 4. 혼인과 가정 윤리 우리는 결혼의 신성함을 지키고 가정을 하나님의 언약공동체로 이해하고 언약에 기초하여 가정을 든든히 세운다. 목회와 가정의 균형을 이루며 배우자와 자녀를 사랑과 책임으로 돌보아 신앙의 본이 된다. 5. 목회 사역 윤리 우리는 성도를 하나님이 맡기신 양으로 여기고 사랑과 진리로 양육한다. 어떤 경우에도 성도를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대한다. 우리는 모든 직무를 말씀과 교단 헌법, 개혁주의 신앙고백 문서에 따라 성실하게 수행하며, 결코 교회와 목회자의 권위를 개인의 소유나 권력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 6. 교회 정치와 치리 윤리 우리는 당회, 노회, 총회의 질서와 결정을 존중하여 성실히 따르며, 당회, 제직회, 공동의회 등 교회의 모든 회의를 성경과 헌법을 따라 공정하게 인도한다. 또한 불법적 청빙이나 금권 선거 등 교회 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단호히 배격한다. 7. 교회 재정 및 재산 윤리 우리는 교회의 재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관리하며 부당한 헌금이나 기부를 요구하지 않고 정당한 과정을 거쳐 지출한다. 우리는 교회 재정을 사사로이 사용하지 않으며, 교회의 재산을 목회자나 가족의 소유로 삼지 않고 검소하고 절제된 삶으로 성도들의 본이 된다. 8. 동역자 및 타 교회와의 관계 우리는 동료 목회자를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존중하고 협력하며, 이웃 교회와 경쟁하기보다는 연합을 추구한다. 우리는 이단이 아닌 교회와는 진리 안에서 사랑으로 협력하고 말씀 안에서 연합한다. 9. 사회와 국가에 대한 책임 우리는 사회와 국가에 대한 교회의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따라 책임을 감당한다. 모든 구조적 악에 대해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며 교회가 생명과 정의, 평화의 공동체가 되도록 힘쓴다. 또한 이념, 지역, 세대 등의 갈등과 분열이 있는 사회와 국가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헌신하며 한반도의 평화로운 통일을 위해 힘쓴다. 10. 창조 세계 및 환경에 대한 책임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돌보고 가꾸는 청지기임을 자각하며 환경 파괴와 생태계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 책임 있게 행동한다. 자연환경을 다음 세대에게 잘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임을 인정하고 생태계 보호와 회복에 최선을 다한다. IV. 실천과 치리 우리는 본 윤리강령을 하나님 앞에서 서약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교단 헌법과 치리 절차에 따라 주어지는 권면과 징계를 겸허히 수용한다. 우리는 본 윤리강령을 성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서로 권면하고 돌보며, 교회의 거룩성과 공공성을 회복하는 일에 함께 헌신한다. 주후 2026년 4월 2일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제75회기 총회 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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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3
  • 고신총회, 특별기도회 … “주여,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총회(총회장 최성은 목사)와 고신 전국장로회연합회(회장 윤창현 장로)가 공동으로 주최·주관한 ‘제23회 고신총회 특별기도회’가 4월 2일 오후 1시 천안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열렸다. ‘주여,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기도회는 전국에서 모인 목회자와 장로,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한국교회와 고신총회의 영적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예배,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1부 예배는 장상환 장로의 기도로 시작됐으며, 사도행전 23장 1-11절 말씀을 본문으로 최성은 목사가 설교를 전했다. 최성은 목사는 “목사와 장로의 자리는 세상이 주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신 사명의 자리”라며 “사명을 감당하는 힘은 하나님 앞에서의 선한 양심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양심이란 하나님이 나를 아시는 것처럼 나 자신을 아는 것”이라며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참된 사역자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의 양심조차도 왜곡될 수 있기에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점검되어야 한다”며 “오직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 개혁주의 신앙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윤리강령 선포… “교회의 거룩성 회복” 이날 예배 중에는 고신총회 임원회 명의로 ‘고신총회 목회자 및 교역자 윤리강령’이 선포됐다. 윤리강령은 교회의 세속화와 윤리적 위기 속에서 목회자의 거룩성과 책임을 회복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으며, 성경 중심의 신앙 원칙 위에서 개인 윤리와 성윤리, 교회 재정과 정치 질서, 사회적 책임 등을 포괄적으로 담았다. 총회는 이를 통해 교회의 신뢰 회복과 공교회적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특별기도회… 회개와 회복 위한 간구 이어져 이어진 특별기도회는 구빈건 목사의 인도로 진행됐으며, 참석자들은 한 마음으로 통성 기도에 나섰다. 이날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 △한국교회의 회개와 각성 △교회의 회복과 부흥 △다음세대 신앙 계승 △선교와 북한 복음화 △나라와 민족 △고신총회와 교회 △가정 회복 등을 주제로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교회의 첫사랑 회복과 말씀 중심의 신앙 회복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으며, 한국교회가 다시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동체로 서기를 간구했다. 이번 특별기도회는 단순한 행사에 그치지 않고, 회개와 갱신을 통한 교회의 본질 회복을 촉구하는 자리로서 고신총회의 영적 방향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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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3

오피니언 검색결과

  • [연속기고6] 이만열의 친일 프레임과 역사적 살인: 건국 주역들을 향한 사상적 테러
    서론:손봉호의 윤리가 씨앗이라면, 이만열의 사관은 그 독초의 토양이다 앞선 기고(1~5번)를 통해 필자는 손봉호 교수가 기독교 윤리라는 가면을 쓰고 한국 교회를 좌경화의 늪으로 어떻게 인도했는지 파헤쳤다. 그러나 손 교수의 윤리 담론이 고신과 SFC 내부에서 독버섯처럼 번질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에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치욕의 역사로 규정한 이만열 교수의 왜곡된 역사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만열은 친일 청산이라는 도덕적 결벽증을 무기 삼아 건국의 정통성을 난도질했으며, 고신 정신의 본질인 순교 신앙을 좌파적 민족주의 투쟁으로 변질시킨 장본인이다. 1. 국가 상징과 호국 영웅을 향한 인격적 살인 이만열 교수가 주도한 『친일인명사전』은 객관적 사료에 근거한 학술적 결과물이 아니라 특정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사상적 숙청이자 정치적 낙인찍기의 산물이다. 그는 역사의 입체성을 무시하고 오직 '친일'이라는 단일한 잣대만을 휘둘러 대한민국 건국의 기틀을 닦은 거목들을 사상적으로 매장하는 데 몰두하였다. 이만열의 주장 ①:“백선엽은 간도특설대 출신으로 독립군을 때려잡은 반민족 행위자다. 그의 공로를 기리는 것은 민족 정기를 훼손하는 일이다.” (출처: 이만열, 「백선엽의 친일 행적과 국립묘지 안장 문제」, 2020년 언론 기고 및 강연 요약) 이만열의 주장 ②: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는 친일파다. 친일 잔재인 애국가를 국가로 부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출처: 이만열, 『한국 기독교와 민족 의식』, 지식산업사, 1991) [비평]:이는 일제강점기라는 처절한 역사의 맥락을 무시한 처사이다. 6.25 전쟁에서 나라를 구한 백선엽 장군을 간도특설대 경력만으로 단죄하는 것은 국군의 정통성을 파괴하려는 시도이다. 당시 간도특설대의 주요 토벌 대상은 독립군이 아닌 중공군과 팔로군이었으며, 1930년대 중반 이후 만주의 독립군 세력은 이미 궤멸되거나 소련으로 이동한 상태였다는 역사적 사실은 철저히 묵살되었다. 또한 애국가를 공격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상징 자체를 부정하려는 고도의 사상적 테러이자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역사 부정주의이다. 2. 근대화의 선구자들을 향한 주홍글씨와 '선택적 단죄'의 이중성 이만열은 교육, 언론, 문학 등 각 분야에서 대한민국 근대화의 초석을 놓은 거인들을 모조리 친일 부역자로 매도하며 그들의 사회적 성취를 부정하였다. 그는 시대적 한계 속에서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려 했던 선구자들의 고뇌는 외면한 채 결과론적인 비판만을 쏟아냈다. 이만열의 주장 ①: “김성수, 김활란 등은 일제에 협력한 반민족 인사들이다. 그들이 세운 교육·언론 기관은 친일의 토대 위에 서 있다.” (출처: 이만열,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역사적 의의」, 민족문제연구소 강연, 2009) 이만열의 주장 ②: “민족 지성이라 불리는 최남선과 이광수 역시 결국 변절한 부역자들에 불과하다.” (출처: 이만열, 『우리 역사 5000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바다출판사, 2000) [비평]:이들이 닦아놓은 근대 문명의 토대가 없었다면 오늘날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이만열의 '선택적 단죄'이다. 대한민국 건국 세력의 행적은 현미경으로 파헤치면서도, 정작 북한 정권 핵심부에 포진했던 수많은 친일 인사들(김일성의 동생 김영주, 부주석 김차승 등)에 대해서는 기이할 정도로 침묵한다. 민족정기를 말하면서 북한의 노골적인 친일파 등용은 눈감아주는 그의 역사학은 공정한 학문이 아니라 특정 진영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역사를 흉기로 사용한 정치 선동일 뿐이다. 3. 순교 신앙을 민족 해방 투쟁으로 격하시킨 영적 범죄 이만열 교수의 가장 큰 해악은 고신의 자랑인 신사참배 반대 운동의 신앙적 성격을 왜곡하여 세속적 민족주의의 틀 안으로 가두어버린 데 있다. 그는 선배 목회자들이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당했던 고난을 단순한 항일 운동의 일종으로 해석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의 초월적 가치를 훼손하였다. 이만열의 주장 ①: “신사참배 반대 운동은 민족 정기를 지키기 위한 민족주의적 항일 투쟁의 연장선에 있다.” (출처: 이만열, 『한국 기독교와 민족 의식』, 지식산업사, 1991) 이만열의 주장 ②: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사명은 민족의 고난과 함께하며 사회를 변혁하는 데 있다.” (출처: 이만열, 「기독교 역사관의 재정립」, 기독교역사연구소 세미나 강연, 2010) [비평]:고신 선배들의 저항은 민족주의 차원의 항일 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제1계명을 지키기 위해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말씀을 수호하려 했던 거룩한 '신앙 수호 운동'이었다. 그러나 이만열은 이를 세속적인 민족 해방 투쟁으로 격하시켜 신앙의 본질을 변질시켰다. 이러한 영적 왜곡은 SFC 간사들과 신학생들이 성경적 개혁주의 신학보다 좌파적 민중사관에 더 열광하게 만드는 사상적 통로가 되었다. 신앙의 선배들이 피로 지킨 제단 위에 이만열은 좌파 이데올로기의 향로를 피워 올린 것이다. 결론:고신의 심장을 겨눈 이만열의 칼을 꺾어야 한다 이만열 교수는 기독교 역사학자라는 학문적 권위를 누리며 정작 고신의 뿌리인 자유민주주의와 성경적 보수 신학의 기틀을 허무는 데 앞장서 왔다. 그의 사상은 성경이 말하는 절대 진리가 아니라 특정 정치 세력의 논리를 대변하는 변증법적 역사론에 불과하다. 손봉호의 윤리가 한국 교회의 손발을 묶었다면 이만열의 사관은 한국 교회의 머리와 심장을 좌경화로 세뇌시켰다. 이제 고신 총회와 깨어있는 성도들은 직시해야 한다. 이만열 식의 자학적 역사관을 단호히 배격하고 하나님께서 이승만 대통령을 통해 허락하신 자유 대한민국과 고신 교회의 정통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 거짓된 사슬을 끊어낼 때 비로소 고신의 순교 정신이 다시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 독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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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4
  • [연속기고5] 손봉호의 신학적 이탈, 그 뿌리는 ‘칸트적 합리주의’인가?
    서론: 뿌리가 다르면 열매도 다르다 지난 호에서 필자는 손봉호 교수의 신학적 정체성이 정통 개혁주의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왜 그는 그토록 ‘윤리’를 신앙의 본질보다 앞세우며 복음을 도덕적 차원으로 격하시키는가? 그 해답은 그의 학문적 모태인 ‘칸트(Immanuel Kant) 철학’에 있다. 손 교수는 화란 자유대학교에서 칸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철학자이며, 그의 사고 체계 전반은 칸트의 윤리학과 의무론적 사고방식, 합리주의적 도덕 철학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문제는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는 칸트의 철학이 하나님의 절대 계시를 다루는 기독교 신학과 만날 때, 신앙의 초월성이 파괴되는 비극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1. 칸트의 ‘이성의 한계’가 성경의 ‘초월성’을 가로막다 칸트는 인간의 인식 영역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세계인 '현상계'와, 신이나 영혼처럼 인간의 감각을 초월한 영역인 ‘본체계(Noumena)’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결코 이 ‘본체계’를 들여다보거나 깨달을 수 없다는 ‘인식의 장벽’을 높이 세웠다. 즉, "하나님은 인간이 온전히 알 수 없는 분이니, 골치 아픈 신앙의 신비나 절대 진리는 제쳐두고 오직 인간의 머리로 이해 가능한 ‘도덕적 실천’에만 집중하자"는 논리다. 손봉호 교수는 이러한 칸트적 사고에 갇혀, 하나님의 초월적인 계시인 성경 말씀보다 우리 눈에 보이고 이성으로 납득되는 ‘시대적 대세’와 ‘사회적 합리성’을 신앙의 주인으로 모시는 위험한 우를 범하고 있다. 손봉호 ①: “동성애 반대 운동이 성경적이라 할지라도, 이미 세계적인 대세가 되어버린 흐름을 거스르기는 어렵다. 교회가 시대적 조류를 읽지 못하면 고립될 뿐이다.” (출처: 손봉호 교수 강연 및 언론 인터뷰 취지 요약) 손봉호 ②: “기독교가 아무리 신비한 체험을 강조해도, 그것이 보편적인 도덕적 합리성을 갖추지 못하면 세상을 설득할 수 없다.” (출처: 손봉호, 『기독교 윤리』 강연 중) [비평]:이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성경의 초월성을 ‘시대적 대세’라는 세속적 잣대 아래 굴복시키는 신앙적 변절이다. 성경은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손봉호는 ‘대세’를 운운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시대적 유행과 타협시키려 한다. 진리는 다수결이나 대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러한 손 교수의 사고방식은 시대정신을 계시보다 앞세우는 ‘자유주의(Liberalism)’의 전형이며, 성경의 절대적 가치를 상대화시키는 ‘세속적 합리주의’의 발로다. 그는 칸트의 안경으로 세상을 보느라 하나님의 불붙는 진노와 거룩한 법도를 보지 못하고 있다. 2. ‘정언명령’이 ‘복음의 은혜’를 대체하는 율법주의적 독소 칸트의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란 어떤 조건이나 보상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이 세운 도덕 법칙이기에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무조건적 의무'를 뜻한다. 문제는 이 명령의 주체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이라는 점이다. 손봉호 교수는 이 칸트적 의무론을 기독교에 이식하여, 성도의 삶을 기쁨의 열매가 아닌 엄격한 도덕적 의무 수행으로 변질시켰다. 손봉호 ①: “그리스도인이라면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해야 한다. 그것이 기독교의 존재 이유다.” (출처: 손봉호 교수 다수 칼럼) 손봉호 ②: “윤리적 실천이 없는 신앙은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세상의 지탄을 받는 교회는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 (출처: 방송 인터뷰 및 대담) [비평]:그리스도인의 정직과 윤리는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즐거이 맺는 성령의 열매이지, 이성적 법칙에 따른 의무적 고행이 아니다. 손 교수는 칸트의 정언명령을 성경의 은혜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복음을 무거운 도덕적 멍에로 바꾸어버렸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은혜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치게 하는 잘못된 가르침이다. 따라서 손봉호의 윤리지상주의는 5세기 교회가 배격했던 펠라기우스(Pelagianism)의 행위 구원론적 망령을 소환하는 것이며, 윤리를 구원의 판단 기준으로 제시함으로써 고신이 수호해 온 이신칭의 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신율법주의(Neonomianism)’와 맥을 같이 한다. 3. 도덕적 주체자가 된 인간, 하나님을 조연으로 만들다 칸트 철학에서 인간은 스스로 도덕 법칙을 세우는 자율적 주체다. 손봉호 교수의 기독교 윤리 역시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구원의 역동성보다, ‘윤리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의 노력’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손봉호 ①: “한국 교회의 문제는 신학의 부재가 아니라 윤리의 부재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바로 서야 교회가 산다.” (출처: 『현대 사회와 기독교 윤리』) 손봉호 ②: “하나님은 우리가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 때 비로소 우리와 함께하신다.” (출처: 기윤실 행사 강연) [비평]:교회의 문제는 윤리의 부재가 아니라 ‘복음의 실종’이다. 복음이 사라졌기에 윤리적 열매가 없는 것인데, 손봉호는 선후 관계를 뒤바꿔 인간의 도덕적 개혁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 이는 하나님을 인간의 도덕적 행위에 따라 움직이는 조연으로 격하시키는 오만방자한 발상이다. 인간의 자율성을 극대화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자연주의적 인본주의’이며, 기독교를 단지 사회적 유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세속주의 교회론의 결과물이다. 결론: 철학의 하녀가 된 인본주의 신학을 거부하라 손봉호 교수의 윤리 운동 이면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칸트의 이성을, 그리스도의 은혜보다 인간의 도덕적 의무를 앞세우는 위험한 철학적 기반이 자리 잡고 있다. 신학이 철학의 하녀가 될 때, 복음은 생명력을 잃고 도덕 교과서로 전락한다. 손 교수가 말하는 하나님은 칸트의 ‘이성의 한계’ 속에 박제된 무력한 신에 불과하다. 고신 총회와 한국 교회는 이제 손 교수의 율법 선생질 하는 ‘철학적 미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의 이성이나 상식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 앞에 무릎 꿇고, 행위가 아닌 오직 은혜로 얻는 구원의 감격을 회복해야 한다. 사람이 구원 받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고 성화되어 가는 것은 손봉호식 윤리적 실천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과 부활의 능력, 거듭나게 하시고 충만케 하시는 성령님과 말씀의 능력 때문임을 다시 한번 천명한다. ※ 독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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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7
  • [연속기고4] 손봉호는 ‘윤리 선생’인가, 복음을 해체하는 ‘이단’인가?
    필자가 최근 손봉호 교수의 윤리적·정치적 좌경화에 관한 비판 글을 기고하자, 침례교 김요한 목사가 소논문 <손봉호 이단 정체>라는 글을 보내왔다. 이 논문은 손 교수를 ‘이단’으로 단호하게 규정하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을 손봉호 교수를 이단으로까지 성급하게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의 주장 속에 숨어있는 ‘이단적 요소’들이 우리 성도들의 신앙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지 경계하고자 이 글을 쓴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손 교수의 편향된 정치 행보나 선택적 윤리에 대해서만 비판했을 뿐, 그의 신학적 뿌리까지는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러나 열매는 그 뿌리에서 결정되듯, 손봉호의 위험한 행보 역시 결국 그의 신학적 토양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다. 필자는 손 교수가 전면에 내세운 ‘윤리’가 어떻게 성경적 복음을 훼손하고 있는지, 김 목사의 분석을 빌려 그 실체를 손 교수의 워딩을 따라 밝히고자 한다. 1. 계시론: 성경의 권위를 윤리라는 잣대 아래 굴복시키다 정통 개혁주의 신학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자기계시이며 모든 판단의 최종 규범이다. 그러나 손봉호는 성경의 권위를 인간의 윤리적 판단 아래 종속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결코 신의 영역(본체계)을 깨달을 수 없다는 ‘칸트적 합리주의’의 전형이다. 손봉호 ①: “성경에 기록된 문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지향하는 윤리적 정신이다. 문자적인 순종보다는 그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참된 신앙이다.” (출처: 손봉호 저, 『현대 사회와 기독교 윤리』, CUUP, 2010년판) 손봉호 ②: “성경 말씀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현대 사회의 보편적 상식과 윤리에 부합할 때 비로소 현대인들에게 그 권위가 살아나고 설득력을 얻게 된다.” (출처: 2012년 기윤실 주최 강연 ‘기독교 윤리 실천의 시대적 과제’ 중 발췌) [비평]:이는 성경의 무오성과 절대 권위를 흔드는 행위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상식을 심판하는 ‘기준’이지, 세상 상식에 의해 검증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만약 성경이 인간의 상식에 맞을 때만 권위를 갖는다면, 죽은 자가 살아나고 동정녀가 출산하는 성경의 신비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결국 손 교수는 성경을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만족을 위해 적당히 골라 읽는 ‘도덕 지침서’로 격하시키고 있다. 이는 계시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한낱 수양 종교로 변질시키는 위험한 시도이며, 성경을 인간의 이성이라는 작은 상자 안에 가두려는 인본주의적 발상이다. 2. 구원론: 복음의 유일성을 윤리적 행위로 대체하는 위험 기독교 구원의 핵심은 오직 은혜, 오직 믿음(Sola Fide)이다. 그러나 손봉호의 신학 체계 안에서는 믿음보다 ‘윤리적 실천’이 구원의 징표나 조건처럼 강조된다. 이는 기독교 윤리의 본질인 '말씀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을 인간의 '도덕적 윤리'로 치환함으로써, 오직 은혜로 얻는 구원의 도리를 인본주의적 행위론으로 변질시키는 신학적 오류가 되고 만다. 손봉호 ①: “예수 믿는다는 입술의 고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직하게 세금을 내고 교통법규를 지키는 것과 같은 아주 기초적인 윤리적 삶이다. 이것이 없는 신앙은 허구다.” (출처: 2014년 CBS 강연 및 기윤실 정기 포럼 메시지 요약) 손봉호 ②: “윤리적으로 실패한 기독교는 그 자체로 가짜이며, 도덕적 열매가 없는 신앙은 구원의 증거가 될 수 없다. 삶이 뒷받침되지 않는 구원 확신은 자기기만이다.” (출처: 손봉호 저, 『기독교 윤리』 및 관련 논문 ‘한국 교회의 윤리적 부패와 대안’ 중) [비평]:윤리적 삶은 구원받은 성도의 마땅한 결과이지, 구원의 본질을 규정하는 열쇠가 아니다. 성경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말씀한다. "도덕적 삶이 신앙고백보다 중요하다"는 논리는 은혜의 복음을 인간의 의지로 대체하려는 현대판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다. 만약 도덕적 완벽함이 구원의 증거라면, 십자가 옆의 한 편 강도는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다. 손 교수는 성도들에게 복음의 감격보다는 ‘윤리적 채찍’을 가함으로써, 기독교를 세상이 박수 치는 도덕적 넓은 길로 변질시키고 있다. 이는 복음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행위라는 가시나무를 심는 것과 다름없다. 3. 교회론: 교회를 사회 변혁의 도구로 전락시키다 손봉호가 이끄는 기윤실적 교회론은 교회의 영적 사명보다 사회적 공공성을 절대화한다. 그는 교회의 ‘영적 통치권’을 세상의 ‘시민 윤리’ 아래 종속시키려 한다. 손봉호 ①: “교회는 세상의 신뢰를 얻기 위해 세상이 요구하는 윤리적 기준을 뛰어넘어야 한다. 도덕적 권위를 잃은 교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출처: 손봉호 저, 『기독교 윤리 실천의 과제』, 홍성사) 손봉호 ②: “교회의 공공성이 상실되고 사회에 해를 끼칠 때 교회는 그 존재 가치를 상실한다. 교회는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만 교회다울 수 있다.” (출처: 2015년 기윤실 사회적 책임 포럼 기조 강연 중) [비평]:교회의 본질은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있다.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만 맞추는 교회는 더 이상 세상의 빛이 아니라 세상의 하녀일 뿐이다. 교회가 사회적 유익을 줄 때만 가치가 있다는 논리는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주권을 부정하고 대중의 인기를 주권으로 삼는 인본주의다. 교회는 세상에 아부하는 곳이 아니라,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하늘의 소리를 내는 곳이어야 한다. 손 교수는 교회의 거룩함을 세상의 도덕적 평가 아래 둠으로써, 영적 구원의 방주를 한낱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시민단체로 전락시키고 있다. 결론: 윤리라는 이름의 이단적 미혹을 경계하라 필자는 손 교수를 이단으로 단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외치는 ‘윤리’가 성경의 권위를 누르고, 복음의 핵심인 ‘은혜’를 ‘행위’로 대체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를 단호히 경계해야 한다. 김요한 목사가 그를 ‘이단’이라 부르며 경종을 울린 것은, 그가 주장하는 윤리가 성경적 진리를 교묘하게 비트는 ‘트로이 목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를 여전히 ‘도덕적 사부’로 여기는 40-50대 장년층과 젊은 목회자들은 환상에서 깨어나길 바란다. 윤리가 복음보다 앞설 때, 그것은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다. 우리는 ‘윤리 선생’ 손봉호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최종 권위가 되는 개혁주의 신앙의 기품과 본질을 잃지 말아야 한다. ※ 독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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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7
  • [연속기고3] 손봉호 교수의 민낯, 최철호와의 ‘위험한 동행’
    그동안 필자는 두 차례에 걸쳐 ① ‘손봉호 교수는 한국 교회를 극우로 모는 좌파 본산인가’ ② ‘로잔 이후 한국 복음주의의 변질, 존 스토트에서 손봉호·SFC·기윤실까지’라는 글을 기고했다. 이번에는 세 번째로 ③ ‘손봉호 교수의 민낯, 최철호와의 위험한 동행, 단순 연대를 넘어선 사상적 융합의 실체’를 다루고자 한다. 서론: ‘도덕적 스승’의 가면 뒤에 가려진 인적 연계의 실체 손봉호 교수는 오랫동안 한국 교회 내에서 '윤리와 도덕'의 상징으로 추앙받아 왔다. 그러나 그가 구축한 도덕적 권위가 과연 성경적 보수주의를 지키기 위함이었는지, 아니면 특정 이념을 교회 내부로 이식하기 위한 ‘트로이 목마’였는지 이제는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그 의문의 핵심에는 ‘종북 주사파’ 논란의 중심에 선 최철호 목사(아름다운마을공동체 대표)와의 끈끈한 인적·사상적 연계가 자리 잡고 있다. 필자는 이번 연재를 통해 손 교수가 어떻게 종북적 색채를 가진 활동가들에게 ‘도덕적 세탁기’ 역할을 했는지 폭로하고자 한다. 1. 성서한국, ‘종북 논란’ 최철호와 ‘교계 원로’ 손봉호의 위험한 공생 독자들이 먼저 주목해야 할 인물이 있다. 바로 ‘아름다운마을공동체’를 이끄는 최철호 목사다. 그는 2005년 8월, 성서한국 영역별 준비위원 자격으로 금강산을 방문했을 당시 ‘21세기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라는 현수막 아래서 기념사진을 찍어 교계 안팎에 큰 파문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또한, 그가 운영하는 공동체 내부에서 김일성 찬가를 부르거나 교시를 인용했다는 구체적인 증언이 잇따르며 종북 주사파 논란의 중심에 섰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인물이 한국 복음주의 사회 선교의 총본산이라 불리는 ‘성서한국’의 핵심 이사로 오랫동안 활동했다는 점이다. 성서한국은 2002년 창립 초기 복음주의적 사회 참여를 기치로 내걸었으나, 점차 좌편향적 활동가들이 장악하며 교계를 좌경화하는 전략적 교두보가 되었다. 바로 이 단체의 얼굴이자 정신적 지주인 공동대표와 자문위원장 자리에 손봉호 교수가 10년 가까이 군림해 왔다. 손 교수는 최 목사의 이러한 이념적 편향성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를 ‘시대의 양심’으로 포장하며 교회 내부로 침투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손봉호의 발언 ①: 손 교수는 2011년 성서한국 전국대회 축사 등을 통해 “성서한국은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가장 순수한 복음주의 운동이며, 여기에 참여하는 활동가들은 시대의 양심이다”라고 공언했다. 손봉호의 발언 ②: 더 나아가 그는 최철호 목사의 공동체 운동을 두고 “자본주의의 탐욕을 극복하는 성경적 대안이며, 우리 시대가 본받아야 할 모델”이라며 극찬했다(2013년 아름다운마을공동체 관련 대담 등). [비평]:결국 손봉호라는 거대한 ‘도덕적 브랜드’가 최철호의 종북적 색채를 탈색해 주는 ‘세탁기’ 역할을 한 셈이다. 복음주의라는 이름의 양의 옷을 입고 들어온 이리에게 손 교수가 직접 목자의 지팡이를 쥐여준 격이며, 이는 한국 교회를 향한 치명적인 영적 배신행위다. 2. S.F.C.의 좌경화와 폐지론 사태: 고신의 심장에 박힌 독화살 손봉호 교수가 '복음주의적 멘토'로 군림하는 동안, 그와 동행한 최철호의 독소는 고신의 미래인 S.F.C.(학생신앙운동)의 뿌리까지 침투했다. 최철호는 2010년대를 전후하여 S.F.C. 간사들을 자신의 '마을공동체'로 불러들여 공동체 훈련이라는 명목하에 사회주의적 해방 담론과 반미 의식을 주입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사태의 심각성은 2016년 5월 18일, 당시 총회 SFC지도위원장이었던 안병만 목사가 코람데오닷컴에 기고한 충격적인 폭로를 통해 백일하에 드러났다. 안 목사는 해당 기고문에서 “북한 노동당 청년 적위대들이 부르는 노래인 ‘청춘’을 아무런 제지나 여과 없이 기독 청년들이 부르고 있는 공동체가 있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했다”고 일갈했다. 문제의 노래 가사 끝부분은 “어머니 당(노동당)을 위해 조국을 위해”로 끝난다. 고신의 청년들이 ‘하나님 나라’가 아닌 ‘어머니 당’을 노래하게 만든 이 영적 오염의 배후에 바로 최철호가 있었고, 그 최철호를 ‘우리 시대의 모델’이라며 고신 교회에 소개한 장본인이 바로 손봉호 교수다. 이로 인해 개혁주의 신앙으로 무장되어야 할 간사들이 제주 강정 해군기지 반대 시위(2012년) 등 정치 투쟁의 선봉에 서게 되었고, 급기야 2022년 고신 총회에서 SFC 폐지론이 제기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고신의 심장에 독화살을 쏜 자는 최철호지만, 그 활을 쥐여주고 사로(射路)를 열어준 자는 바로 손봉호다. 3. ‘평화’라는 이름의 굴종, 안보 해체의 선봉에 서다 손 교수의 좌편향성은 국가 안보 문제에서 그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는 최철호가 이끄는 생명평화연대 등과 손잡고 2014년 ‘키리졸브 중단’ 요구나 대북 제재 해제를 촉구하는 성명에 이름을 올리며 북한 정권에 유리한 여론을 형성해 왔다. 북한의 핵 위협에는 침묵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려는 훈련을 비난하는 것이 과연 그가 주장하는 ‘기독교 윤리’인가? 손봉호의 발언 ①: “한미 합동 군사훈련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도발이며, 기독교인은 무조건적인 비폭력과 평화를 외쳐야 한다.” (대북 관련 시국 성명서 취지) 손봉호의 발언 ②: “한국 기독교가 북한 체제를 비판하기에 앞서 남한의 자본주의적 죄악과 안보 지상주의를 먼저 회개해야 한다.” (시국 강연 중) [비평]:적이 칼을 들고 위협하는데 방어 훈련을 하지 말라는 것이 어떻게 윤리가 될 수 있는가? 손 교수는 "남한의 죄악을 먼저 회개하라"는 논리로 북한의 악행에 대한 면죄부를 주었으며, 최 목사가 친북적 행보를 보일 때마다 그 곁에서 ‘기만적 평화주의(Pseudo-Pacifism)’라는 도덕적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결론: 이제는 ‘도덕적 방관’을 끝내고 고신 정신을 회복해야 할 때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고 성경적 진리를 사수하는 것이 고신의 정신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곁의 ‘원로’는 특정 이념에 경도된 인사들과 손잡고 한국 교회를 좌경화의 늪으로 몰아넣고 있다. 손봉호 교수는 본인의 행보가 ‘인도주의’라고 강변하지만, 최철호라는 인물이 가진 종북적 색채를 알고도 그와 함께 강단에 서서 ‘공의’를 논했다면 이는 무지를 넘어선 사상적 공모다. 손 교수는 더 이상 '기윤실'과 '복음주의'라는 이름 뒤에 숨지 마라. 이제 우리 고신인들은 도덕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그의 실체를 직시하고, SFC와 고신과 한국 교회를 건강하게 지키기 위한 교단적인 대책과 수습방안을 강력히 촉구 한다. ※ 독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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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6
  • [연속기고2] 로잔 이후 한국 복음주의의 변질
    1. 로잔대회, 세계 복음주의의 분기점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세계 복음화 대회는 150개국 2,700여 명의 지도자들이 모여 세계 복음주의 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결정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대회의 결과로 발표된 로잔 언약은 성경의 권위와 복음 전도의 긴급성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강하게 부각시켰다. 특히 로잔 언약 제5항은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을 명시하며 교회가 인간 사회 속에서 정의와 화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이 조항은 이후 복음주의 진영에서 사회 정의와 정치 참여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근거로 널리 인용되었다. 이때 영국 복음주의 지도자 존 스토트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원래 빌리 그래함은 영혼 구원의 우선성을 강조한 초안을 준비했지만, 스토트는 이를 수정하여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표현을 로잔 언약에 반영시켰다. 이 순간부터 복음주의 진영 안에는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었다. 영혼 구원 중심의 복음주의 운동이 사회 변혁과 인권 문제를 동시에 강조하는 사회 참여적 복음주의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변화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낳았다. 한편으로는 사회 문제에 무관심했던 보수 교회의 약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 참여가 복음보다 앞서는 현상이 나타나는 단초가 되었다. 2. 존 스토트의 신학적 변화와 복음의 초점 이동 존 스토트는 20세기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설교자이자 신학자로 존경을 받았지만 동시에 두 가지 논쟁적인 문제를 남겼다. 첫째, 사회적 책임 강조로 인해 복음의 중심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는 교회의 사명이 전도와 사회봉사 모두에 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복음주의 운동의 흐름 속에서는 전도보다 사회개혁적 의제가 점점 더 강조되기 시작했다. 빈곤, 환경, 정의, 평화와 같은 사회 문제들이 교회의 주요 의제로 등장하면서 교회는 점차 NGO적 역할에 가까운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WCC와 NCCK와 같은 에큐메니칼 진영이 복음을 사회운동으로 환원시키는 방향과 일정 부분 닮아 있다. 둘째, 그는 영혼멸절설을 수용하였다. 존 스토트는 불신자가 지옥에서 영원히 형벌을 받는다는 전통 교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히며 결국 불신자의 영혼은 영원히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소멸된다는 입장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교회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논쟁적이었던 사상이었으며 복음의 긴급성과 회개의 필요성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3. 손봉호, SFC, 기윤실 – 로잔 신학의 한국적 수용 로잔 운동의 이러한 흐름은 한국에도 빠르게 수용되었고 그 대표적 인물이 손봉호 교수였다. 그는 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담론을 한국 교회와 대학가에 적극적으로 소개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대표적인 조직이 SFC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다. SFC는 원래 캠퍼스 복음화와 제자훈련을 핵심 사명으로 출발한 학생 신앙운동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사회 변혁 담론의 확산 속에서 SFC 내부에서도 복음 중심 노선과 사회 참여 중심 노선 사이의 긴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부 간사와 학생들은 성경공부와 캠퍼스 전도보다 사회 문제와 정치 운동에 더 깊이 관여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에 SFC 간사들이 참여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SFC 내부에서도 복음 운동이 사회운동으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제기되었고 일부 간사들은 조직을 떠나기도 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역시 같은 흐름 속에서 등장하였다. 1987년 손봉호 교수가 초대 이사장으로 참여하여 출범한 이 단체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공공 윤리 회복을 핵심 목표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로잔 언약이 강조한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흐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윤실의 활동은 특정 정치적 이슈에 편향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의, 인권, 평화와 같은 의제에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도 다른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선택적으로 침묵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특히 손현보 목사의 예언자적 외침을 극우로 규정하며 압수수색과 구속을 정당화하고 고신총회에 징계를 촉구하는 신문 광고와 기자회견을 주도한 사건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손봉호–SFC–기윤실로 이어지는 흐름은 한국 복음주의가 사회 참여 중심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4. 고신과 한국교회에 주는 교훈 고신 교회는 일제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세워진 교회다. 교회는 언제나 불의한 권세 앞에서 진리를 외쳐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교단 안에서도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이름 아래 손봉호식 신학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권, 정의, 환경, 평화를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복음의 중심을 대체할 수는 없다. 더 큰 문제는 선택적 윤리다. 손봉호와 기윤실은 문재인 정권의 귀순 어부 강제 북송 사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울산시장 선거공작 같은 중대한 국가적 불의 앞에서는 침묵했다. 이재명의 대장동 비리, 법인카드 유용,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같은 사건들에 대해서도 교회의 양심을 대표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북한의 인권 유린, 시진핑 정권의 교회 탄압, 김정은 독재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문제 제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트럼프와 트럼피즘에 대해서는 극우라는 이름을 붙이며 강하게 비판한다. 이것이 과연 성경적 정의인가. 아니면 정치적 선택에 따른 이중적 기준인가. 결론 1974년 로잔대회 이후 복음주의는 사회 참여적 복음주의라는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였다. 그 영향은 한국에서도 손봉호, SFC, 기윤실을 통해 나타났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은 사회 개혁이 아니라 영혼 구원이다. 그리고 사회와 국가에 대한 나침반 역할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복음이 다시 강단에서 울려 퍼질 때 고신과 한국교회는 다시 힘을 회복할 것이다. ※ 독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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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6
  • [연속기고1] 손봉호 교수, 한국교회를 극우로 모는 좌파 본산인가?
    2025년 3월 15일, 서울 영동교회(조상우 목사 시무)에서 열린 전국기독교수연합회 정기총회 및 로고스포럼에서 손봉호 교수가 “AI와 혼란의 대한민국, 기독 교수의 소명”이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했다. 기독일보 3월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손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북 문제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문제이기 때문에, 해결의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문제를 외면할 수 없으며,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최근 한국 정세를 보면 대통령 탄핵 논란 등으로 인해 나라가 극도로 분열된 상태다. 이런 가운데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우려를 표명하며 입장을 발표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한국의 문제를 넘어 더욱 심각한 국제적 난제가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트럼피즘’의 확산이다. 트럼피즘은 미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으며,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 또한 트럼피스트로 분류되기도 한다. 미국에서 발생하는 변화가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우리는 이 현상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독일보, 2025.3.17.) 그러나 필자는 단순한 언론 보도만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당일 현장에서 녹음된 52분 18초 분량의 강연 전체 녹취를 입수해 직접 청취·분석한 결과, 손 교수의 발언은 과거 우리가 알던 ‘옳은 소리, 바른 소리’의 손봉호가 아니었다. 겉으로는 미국의 역할에 감사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남북문제, 윤 대통령 탄핵, 트럼피즘에 대한 평가에서 뚜렷한 좌파적 편향과 반복음주의적 윤리관을 드러냈다. 그의 강연은 단순한 교회·정치·사회 평론이 아니라, 한국교회와 복음주의 신앙의 근간을 흔드는 사상적 선언에 가까웠다. 손봉호 교수는 오랫동안 기독교 철학자요 윤리학자로 존경을 받아왔다. 필자가 SFC 학생 시절, 그는 마치 선비처럼 고고한 학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큰 산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다르다. 옳고 그름이 분명히 드러나는 정치·사회적 격변 속에서, 그의 후학들과 제자들을 통해 이미 사상적 방향이 드러났고, 이번 강연을 통해 그 정체가 더욱 명확히 드러났다. 그는 여전히 원로의 어조로 한국교회와 사회를 비판했지만, 그의 윤리적 평가는 성경적 윤리가 아니라 좌파적 세계관을 대변하는데 더 가까웠다. 특히 민주당 정권의 불의와 비윤리성에는 침묵하면서도, 교회와 나라를 위해 목소리를 낸 애국 시민과 교회를 “극우”로 몰았다. 그날 강연의 주요 발언만 보아도, 손 교수가 한국교회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좌파적 본산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1. 남북문제에 대한 교묘한 왜곡 손 교수는 “남북문제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문제”라고 했다. 언뜻 중립적이고 윤리적인 평가처럼 들리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표현이다. 남북문제의 본질은 추상적 갈등이 아니라, 스탈린과 김일성의 적화야욕과 6·25 남침이라는 명백한 침략 범죄에서 비롯되었다. 그럼에도 손 교수는 ‘사람’을 지목하면서도 김일성, 스탈린, 공산주의 세력을 언급하지 않는다. 이처럼 이미 역사적으로 규명된 ‘주체’와 ‘책임’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손 교수의 발언은 이를 특정하지 않은 채 ‘사람’이라는 추상적 표현으로 처리한다. 이러한 방식은 결과적으로 책임의 주체를 흐리고,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특히 그의 강연 전반을 보면, 남북문제를 설명하면서도 공산주의 체제의 폭력성과 김일성 정권의 침략 책임에 대한 명시적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한국 사회 내부의 갈등과 분열에 대해서는 비교적 강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이 균형의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남북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침략’이라는 역사적 사실보다 ‘인간이 만든 갈등’이라는 일반론이 앞설 때, 청중은 자연스럽게 책임의 방향을 흐릿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그가 말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왜 그 이름은 끝내 말해지지 않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야말로, 그의 역사 인식과 사상적 방향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이라고 본다. 2. 윤 대통령 탄핵 논란에 대한 왜곡 손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논란을 두고 “나라가 극도로 분열된 상태인데, 교회 지도자들이 우려를 표명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이는 극단적 분열의 책임을 윤 대통령과 지지층에 돌리고, 탄핵 찬성 시국선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발언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집권 이래 자유민주체제, 시장경제, 한미동맹을 일관되게 강조해 온 지도자다. 그를 지지하며 탄핵을 반대한 국민과 교회를 “분열 조장 세력”으로 몰아붙인 것은, 곧 광화문 집회와 세이브코리아 운동을 비방하고, 손현보 목사 징계를 청원한 목사·장로들을 옹호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손 교수가 말한 “우려를 표명한 지도자들”은 다름 아닌 기윤실의 정0오 장로, 권0경, 오0택, 이0령, 김0태, 김0홍 목사 등으로 보인다. 결국 그는 자신의 후학들이 주도한 반 광화문, 반 세이브 코리아, 반 애국신앙 운동을 두둔하며 한국교회를 무력화하는 데 힘을 실었다. 더구나 그의 발언에는 민주당의 의회 독재, 부정선거 의혹, 헌법재판소의 편향성에 대한 비판은 전혀 없었다. 오직 애국 국민과 교회만을 겨냥한 공격이었다. 이것이야말로 골수 좌파적 시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도대체 손 교수는 어느 나라 교수인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정체성을 지지하는 국민을 공격하고, 오히려 북한과 종북 세력의 논리를 대변하는 듯한 그의 발언은 북한의 대변자, 공산주의 선동가의 언어와 다르지 않다. 3. 트럼피즘에 대한 악의적 매도 손 교수는 트럼피즘의 확산을 “국제적 난제”라 규정하며 윤 대통령을 트럼피스트로 몰고, 이를 지지하는 애국 교회와 단체들을 싸잡아 비난했다. 그러나 트럼피즘은 다음과 같은 기독교적 가치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1) 차별금지법 반대– 성경적 성윤리를 지키며 동성애와 젠더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운동 2) 생명과 가정 수호– 낙태와 동성결혼 합법화를 거부하며 창조 질서를 붙드는 신앙 실천 3)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옹호– 사회주의와 전체주의에 맞서 자유를 지키는 신앙의 투쟁 4) 반공산주의 정신– 북한 주체사상과 국제 사회주의 흐름에 저항하는 자유 진영의 깃발 5) 애국심과 공동체 회복– 국가 정체성과 가정을 지키려는 기독교적 헌신 이러한 트럼피즘은 성경적 가치의 회복을 목표로 하며, 미국 복음주의 교회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그럼에도 손 교수는 촘스키의 “트럼프는 히틀러보다 더 악하다”는 말을 인용하며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자유세계의 도덕적 기반을 훼손하는 심각한 발언이다. 또한 그는 미국 민주당의 다양성·평등·포용(DEI) 정책을 “기독교적 가치와 일치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사실상 차별금지법과 젠더 이데올로기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발언이다. 손 교수의 발언은 죄와 구원의 복음을 도덕적 평등 담론으로 희석시키는 심각한 신학적 오류다. 4. 사회복음주의로 흐른 ‘이상한 윤리학’ 손 교수는 강연 후반부에서 “환경보호가 진정한 이웃 사랑이며, 지식인들만이 진보가 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겉보기에 선하고 지성적인 듯 보이지만,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복음의 본질과 우선순위를 왜곡하는 인본주의적 윤리로의 변질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성경이 가르치는 가장 근본적인 이웃 사랑은, 죄로 인해 영원한 사망에 처할 수밖에 없는 이웃에게 복음, 곧 구원을 전하는 것이다. 환경보호와 창조 질서 보전은 그리스도인의 청지기적 사명이며 이웃 사랑의 중요한 실천이지만, 이를 복음의 핵심인 죄와 구원의 문제보다 우선하거나 ‘진정한 사랑의 전부’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웃 사랑을 영적 차원에서 물질적·사회적 차원으로 축소시키는 사회복음주의적 오류다. 예수님이 진정한 이웃이라고 칭찬했던 사건은 강도만난 이웃의 생명을 살려 준 선한 사마리아인이었지 환경을 돌보고 살려준 환경보호론자들이 아니었다. 따라서 손 교수의 주장은 복음의 중심을 벗어나, 인간의 도덕적 선행을 구원의 본질로 오해하게 만드는 위험한 윤리학이다. 또한 “지식인들만이 진보가 된다”는 발언은 하나님 나라의 진보와 구원의 보편성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성경은 세상의 지혜보다 하나님의 지혜와 믿음을 중시하며(고린도전서 1장), 진정한 기독교적 진보는 지적 엘리트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한 모든 사람의 거듭남과 변화로 이루어진다. 손 교수의 강연은 하나님 중심의 복음 윤리에서 인간 중심 도덕 철학으로 초점이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맺는 말 손봉호 교수의 강연은 짧았지만, 그의 사상적 본질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그의 발언에는 네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1) 남북문제 왜곡– 김일성 책임을 흐리고 이승만·미군 책임론을 암시 2) 탄핵 논란 왜곡– 자유민주 대통령과 지지 국민을 분열 세력으로 매도 3) 트럼피즘 매도– 기독교적 가치를 극우로 낙인찍고 DEI를 신학적으로 미화 4) 사회복음주의 윤리– 복음의 본질을 인간 중심 도덕철학으로 변질시킨 사상 이 네 가지 사실만으로도 손 교수는 좌파 성향 목사들의 사상적 원조이자 배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한국교회를 극우로 몰아가는 좌파 본산임에 틀림없다. 그의 윤리는 결코 성경적 윤리가 아닌 인본주의적 선택 윤리다. 오늘 교회가 따라야 할 길은 손봉호식 좌파적 정치관과 선택적 윤리학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며 불의한 권세를 향해 진리를 외친 손현보 목사와 같은 선지자적이 사명을 다하는 자들이다. 나는 감히 손봉호 교수님에게 묻는다. “트럼프는 그렇게 비난하면서 시진핑과 김정은은 얼마나 비판했는가? 문재인과 이재명은 또 얼마나 꾸짖었는가?” 현 정권의 수많은 불의와 불법들에 대해서 얼마나 꾸짖고 책망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그는 더 이상 기독교 윤리학자가 아니라 한국교회를 극우로 몰아가는 좌파 본산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고신 교회의 뿌리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불의한 권력 앞에 결연히 맞섰던 저항정신이 살아 있다. 고애연은 이 고신의 저항정신을 계승하여, 교회를 무력화시키려는 좌파적 거짓 담론을 분별하고 철저히 배격해 갈 것이다. 주석: 본 기사는 기독일보 2025년 3월 17일자 「전국기독교수연합회 정기총회」 보도와 당일 현장 손봉호 교수 강연 녹음파일(52분 18초) 전편을 직접 분석한 내용을 근거로 작성되었음을 밝힌다. ※ 독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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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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