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연월일 2026-04-2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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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활절 메시지] 창원기총 이병권 목사
    ‘욜로(YOLO)’의 시대를 넘어, 부활의 참된 소망으로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욜로(YOLO)’라는 말이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이 말은 “인생은 한 번뿐이니 하고 싶은 대로 즐기며 살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 땅의 삶이 전부인 양, 오늘을 마음껏 소비하고 즐기라고 부추깁니다. 하지만 길어진 100세 시대라 할지라도 지나고 보면 인생은 옛 어른들의 말씀처럼 날아가는 화살과 같이 쏜살같이 흘러갑니다. 만약 이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이 땅의 삶이 우리 인생의 전부라면 그 짧은 여정의 끝에 남는 것은 결국 지독한 허무와 공허 그리고 죽음 앞의 우울함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핵심인 ‘부활’은 이 허무한 인생의 마침표를 영원한 생명의 쉼표로 바꾸어 놓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겨울이 되어 얼어붙었던 가지에 봄이 되면 다시 잎새가 싹트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도 부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이 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 너머에 영원한 삶이 예비되어 있다는 위대한 선언입니다. 부활의 신앙은 단지 죽음 이후의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현재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는 강력한 원동력입니다. 슬픔을 사명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꿉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설립자 릴런드 스탠퍼드는 수재였던 외아들을 갑자기 잃고 극도의 슬픔 속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꿈속에서 “저는 부활하신 예수님 곁에 있으니 저 대신 세상의 청년들을 도와주세요”라는 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그의 인생관은 완전히 바뀝니다. 아들이 천국에 살아있다는 부활의 소망을 품게 된 그는 당시 2천만 달러라는 거액을 헌납해 오늘날의 명문 스탠퍼드 대학을 세웠습니다. 부활의 믿음이 개인의 절망을 넘어 수많은 젊은이를 살리는 위대한 헌신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어느 호스피스 병동에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젊은 어머니가 어린 딸에게 남긴 편지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가, 엄마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향해 가는 문이란다. 기나긴 겨울을 이기고 봄에 피어나는 저 꽃들처럼 우리도 눈물 없는 그곳에서 반드시 다시 만날 거야." 이처럼 부활의 소망은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위대한 사랑과 용기를 현재의 삶 속에 불어넣습니다. 성경은 부활한 우리가 누릴 미래에 대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계 21:4)”라고 약속합니다. 부활은 눈물도 사망도 애통함도 없는 완벽하고 행복한 삶이 열리는 기적입니다. 이 땅의 쾌락만을 좇는 ‘욜로’의 허무함을 넘어 영원을 바라보며 오늘을 가치 있게 살아가는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2026년 부활절을 맞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주는 참된 기쁨과 미래에 대한 찬란한 소망이 상처받고 지친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가득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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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8
  • [부활절 메시지] 합천기연 정순철 목사
    부활절을 맞이하는 믿음의 독자들에게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오셔서 세번의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ㅡ.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신 후 처음의 사람에게 1.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창1;28 하나님이 아닌 존재인 뱀이 처음의 사람에게 찾아와 그들의 욕구를 채우도록하고 뱀의 사상을 따르게 한 후..세상은 어둡게 변해 버렸던 사실을 알려줍니다. 2.정녕 죽으리라..ㅡ창2;17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 갈찌니라,ㅡ창3;19 이마에 땀을 흘려야 겨우 먹고 살고, 밭은 소출을 내지 않고 행복했던 가정에 행복은 간 곳 없고, 형이 동생을 해하고 장례를 치르고 부부는 갈등을 겪고,,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한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 세상에, 지금도 전쟁으로 고통을 당하고, 영생의 나라를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 3.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ㅡ 요11;25-26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시고, 죽은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려주시고 ㅡ무덤에서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고 하십니다.ㅡ요528. 죽음으로 가는 모든 이들에게 소망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ㅡ 요3;16 여기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죄의 댓가를 치르고서야 우리 믿는 자들이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ㅡ그가 찔리고 그가 상하고 그가 징계를 받고, 그가 체찍에 맞음은 우리 허물과 죄와 불안과 걱정과 공포, 병 때문인 것을 성경은 알려주고 있습니다.ㅡ사53;5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라고 하셨고. 사53;6. 예수님을 믿으면 사람들의 저주가 그를 믿음으로 물러가는 복된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갈3;13-14 이 말씀이 부활절을 맞이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힘이 되고 복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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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5
  • [부활절 메시지] 하동기연 권동진 목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베드로전서 1:3) 할렐루야!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영원한 생명의 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온 마음 다해 찬양합니다. 2026년의 봄 만물이 생동하는 이 계절에 경남 지역의 모든 교회와 성도님들, 그리고 사랑하는 이웃들의 삶 위에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평강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죽음의 권세도 이길 수 있다는 강력한 선언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는 것처럼 온 세상 가운데 전쟁으로 인한 공포와 경제적인 어려움들로 인하여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음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빈 무덤의 승리를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과 회복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거룩한 백성된 우리는 생명의 부활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하나 되어 이번 부활절을 시작으로 경남 지역 구석구석에 산 소망을 전하는 통로로 소외된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무너진 마음들을 일으켜 세우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사랑하는 경남 지역의 모든 교회와 성도 여러분! 부활의 아침은 어둠이 지나고 반드시 빛이 온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자 확증입니다. 비록 현실의 고난이 여전히 우리 곁에 있을지라도, 부활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심을 신뢰하고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을 갈등이 있는 곳에 화해를 심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갑시다. 다시 한번 우리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며 이 기쁜 소식이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그리고 우리들이 섬기는 교회 위에 충만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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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5
  • [부활절 메시지] 통영기연 곽만섭 목사
    사랑하는 경남신문 독자들과 경남 성도들께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쁨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충만히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부활의 아침에 선 교회와 성도들이 이 놀라운 생명의 복음을 다시 붙들며, 믿음 가운데 새 힘을 얻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시대를 지나고 있는 이때에,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나는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세상의 상황은 여전히 우리를 흔들지만, 주님께서 살아계신 한 교회는 무너지지 않으며 우리의 믿음 또한 헛되지 않습니다. 부활의 신앙이 우리를 다시 일으키는 능력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교회와 성도님들 위에 부활의 은혜가 충만히 임하여, 각 가정과 삶의 자리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강이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일상 속에서 부활의 기쁨이 실제가 되어, 지친 마음을 회복시키고 서로를 위로하는 은혜로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의 증인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지역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흘려보내며, 말과 삶으로 복음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작은 섬김과 나눔이 모여 이웃에게는 위로가 되고, 사회에는 선한 영향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어둠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주님의 은혜로 날마다 새 힘을 얻고, 기쁨으로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부활절을 맞이한 여러분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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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5
  • [부활절 메시지] 창녕기연 안덕수 목사
    부활에 아침에 고백할 승리의 고백 매해 맞이하는 부활절인데 올해는 더욱더 그 의미가 깊이 다가온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의 한말씀, 다이루었다(요19:30)는 말씀이 마음속에서 계속 울린다. 모든것을 하나님께맡기시고, 다 이루심의 완성을 이루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다.그분의 마지막은 승리와 완성의 선언이셨다. “다 이루었다.”이 한마디에는 완전한 지불의 선언이다. 예수는 단순히 죽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값을 하나하나 치르셨다. 낮은 땅에 오심, 모욕과 조롱, 가시 면류관, 십자가의 고통까지 치르시면서 그 모든 과정은 죄의 대가를 대신 지불하는 길이었다. 이때 휘장이 갈라지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무너졌다.죄로 인해 닫혀 있던 길이 열렸고, 하나님은 더 이상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다가오시는 분이 되셨다.어쩌면 우리는 이 장면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휘장이 찢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두 팔을 벌리사 안아주신 사건이다. “이제 누구든지 내게로 오라.” 십자가는 단지 고난의 상징에서 용서와 초대의 상징이 된것이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 고백은 죽음을 앞둔 체념이 아니다.사명을 완수한 자의 평안이며, 전적인 신뢰의 표현이다. 우리는 흔히 ‘안식’을 쉼으로 이해한다.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안식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인간은 여섯 날 동안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안식일은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날이라는 것이다.이 통찰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우리는 끊임없이 계획하고, 통제하려 하며, 결과를 붙잡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불안과 두려움이 커진다.그러나 예수의 마지막 고백은 우리에게 다른 길을 보여준다. “맡겨라.”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괴로움과 눈물의 시간이 찾아올 때, 심지어 과거의 상처와 실패까지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안식을 경험한다. 부활절을 맞이하면 우리는 승리의 선언을 한다. 십자가는 겉으로 보면 패배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는 죄와 죽음을 이긴 승리가 담겨 있다. 예수는 십자가를 통해 말한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따라서 믿음의 삶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삶.붙잡으려 하기보다 의탁하는 삶.그리고 그 고백은 매주 예배 속에서, 또 우리의 일상 속에서 반복되어야 한다. 내 삶을 주께 맡김을 통해 신앙은 완성되어 간다. 참된 안식과 승리를 경험하게 되기실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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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5
  • [부활절 메시지] 진해기연 정용기 목사
    사랑하는 진해와 경남 지역 모든 교회와 성도 여러분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쁨과 소망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며 우리의 믿음의 핵심으로서, 절망 가운데 있는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소망입니다. 부활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현재의 능력이며, 미래를 향한 확실한 약속입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운 것처럼, 고난과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의 부활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결코 사라지지 않는 희망을 선포합니다. 특별히 오늘의 시대는 세계 각국의 이기주의와 전쟁의 소식, 경제적 어려움과 이념의 대립, 빈부와 세대 간의 갈등, 그리고 각자의 삶에 놓인 무거운 짐들로 인해 많은 이들이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두려움 속에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활의 평강이 우리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지역사회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부활 신앙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우리를 세상으로 파송합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생명을 받은 우리는 절망의 자리에 희망을, 상처의 자리에 치유를, 분열의 자리에 화해를 이루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진해와 경남 지역의 모든 교회가 한마음으로 부활의 기쁨을 나누며 이 땅 가운데 생명의 복음을 더욱 힘있게 전하는 증인 공동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6년 부활절 진해기독교연합회 회장 정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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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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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활절 메시지] 장유기연 이경로 목사
    사랑하는 경남의 성도 여러분, 주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2천 년 전, 막달라 마리아가 빈 무덤 앞에서 들었던 그 한 마디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는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살아있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죽으셨고, 실제로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신비이며, 우리가 이 땅에서 교회로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지금 쉽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교회는 안팎의 도전 앞에 서 있고, 사회는 분열과 혼란 속에 흔들립니다. 그러나 부활의 복음은 이 모든 현실보다 크고 깊습니다. 주님이 살아계신 한, 교회는 살아있고, 복음은 멈추지 않으며, 소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 혹시 마음이 춥고 힘든 분이 계신가요? 부활하신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이 여러분의 지친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 장유 지역과 경남의 모든 교회가 먼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이웃에게 웃음을 전하는 따뜻한 봄날의 햇살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유 땅과 경남 땅의 모든 교회가 이 부활의 능력으로 하나 되어, 우리 지역 사회에 생명의 빛을 비추는 부활절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주님이 살아나셨습니다! 2026년 부활절에 장유기독교연합회 회장 이경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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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5
  • [부활절 메시지] 양산기연 손용락 목사
    부활의 생명으로 피어난 양산 복음화 120년, 미래를 향한 소망이 되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한복음 11:25) 할렐루야!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와 평강이 경남 땅과 36만 양산 시민, 그리고 모든 교회 위에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꽃들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봄날, 우리는 다시금 생명의 승리를 선포하는 부활절을 맞이했습니다. 부활은 2천 년 전의 사건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 절망 속에 있는 이들에게 소망을, 갈등 속에 있는 이들에게 화해를 주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능력입니다. 특히 올해 부활절은 우리 양산에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137년 전 호주 선교사들의 뜨거운 사랑으로 시작된 경남 선교의 역사가 이 땅에 흐르고 있으며, 올해로 양산 복음화 120년을 맞이하는 영광스러운 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양산은 120년 전 복음의 씨앗이 심긴 이래 기도로 일궈온 '영적 생명의 땅'입니다. 호주에서 온 손안로(Andrew Adamson) 선교사가 복음의 초석을 놓았고,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기수였던 주기철 목사님께서 첫 사역의 열정을 불태우며 순교 신앙의 뿌리를 내린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이제 우리는 선교사들의 헌신과 순교자들의 절개가 흐르는 이 땅에서, 그 소중한 신앙을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계승해야 할 사명 앞에 서 있습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 자녀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선조들의 신앙을 이어받고, 이 시대를 이끌어갈 진정한 영적 리더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부활의 빛으로 양산의 가정을 회복시키고, 우리 아이들이 꿈꾸는 학교와 일터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가득하게 합시다. 양산 복음화 120년의 역사가 과거의 기록을 넘어 다음 세대의 가슴 속에 뜨거운 불꽃으로 타오를 때, 양산은 진정한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이번 부활절을 기점으로 양산의 모든 교회가 세대를 초월하여 복음 안에서 하나 되고, 시민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희망의 등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부활하셨습니다! 양산에 생명의 꽃이 피어납니다! 2026년 부활절에 양산시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손용락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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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5
  • [부활절 메시지] 사천기연 하태경 목사
    희망의 배달부로 임명받은 사람들 인류에게 가장 큰 해악을 끼친 사람은 누구일까요? 어떤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대략 7천만 명에서 8천 5백만 명을 죽게 한 히틀러나 캄보디아 인구 4분의 1일 죽인 킬링필드의 장본인 크메르루주 정권의 폴 포트라고 말합니다. 개인의 인생에도 가장 큰 해악을 끼친 인물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짓밟고 빼앗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어디서든지 이런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생각하면 이 세상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희망을 주는 분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희망을 주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희망을 말하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됩니다. 예수님만이 세상의 죄와 어둠을 몰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세상을 밝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능력의 증거가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악과 죄와 죽음을 죽인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참된 희망을 되찾아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세상에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너무도 소중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1절)고 했습니다. 철저한 실패자인 제자들을 다시 찾아오신 것은 주님의 은혜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깨어진 세상을 치유할 ‘사명’을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부활이 죄와 사망을 이긴 절대 희망임을 세상에 전하는 ‘희망의 배달부’로 우리를 임명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세상에 희망의 배달부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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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5
  • [부활절 메시지] 밀양기연 최희석 목사
    할렐루야!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임마누엘! 모든 언약과 예언의 성취로 시온의 딸,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왕으로 임하셔서 그들에게 공의로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한 왕, 평화의 왕으로 대속의 길을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낮아지심도 그분의 높아지심도 모두 나를 위한 그분의 사랑임을 깨달으며 십자가 아래, 부활의 빈 무덤에서 소리쳐 부릅니다. 주 예수 나의 산 소망!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고난에서 영광으로 이어질 왕의 길을 함께 믿음으로 걸어갈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임마누엘의 은혜가 늘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예수 다시 사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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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5
  • [부활절 메시지] 남해기연 김종정 목사
    할렐루야!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우리는 매년 부활절을 맞이하지만, 정작 우리 삶은 여전히 무덤 속에 갇혀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선포가 내 삶의 고통과는 상관없는 종교적 구호로만 들린다면, 우리 안의 부활 신앙은 잠들어 있는 것입니다. 부활의 사건이 2천 년 전의 사건이 아닌 ‘오늘 나의 사건’으로 다가오는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부활은 단순히 죽음 이후의 소망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를 짓누르는 '절망의 돌무덤'을 뚫고 나오는 생명력입니다. 제자들은 두려움 때문에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무덤이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셨을 때 그들의 두려움은 사명으로, 절망은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상황이 변해서가 아니라, 부활의 생명이 그들 안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 앞에 놓인 ‘경제적인 어려움’, ‘관계의 단절’, 혹은 ‘영적 침체’라는 큰 돌덩이 때문에 낙심하고 계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이 하나님의 역전승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 여러분께 ‘무덤의 돌을 굴려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둠 속에 머물지 말고 빛으로 걸어 나오십시오. 성도 여러분, 이제 삶의 현장에서 부활을 증명하며 사십시오. ‘안 된다’, ‘끝이다’, ‘죽겠다’는 사망의 언어를 버리고, ‘주님이 살리신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부활의 언어를 선포하십시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한 번 더 품고, 절망 속에서도 감사를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삶에서 부활 신앙이 회복되는 시작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입니다. 이 부활의 기쁨과 능력이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위에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 다시 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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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5
  • [부활절 메시지] 김해기연 이동영 목사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경남 땅에 부활의 산 소망을 선포합니다! 할렐루야!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찬양합니다. 꽃들이 생명의 기지개를 켜는 이 복된 봄날, 경남 기독신문 독자 여러분과 350만 경남 도민, 그리고 김해의 모든 성도님 위에 부활하신 주님의 평강과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첫째, 부활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사건입니다. 여전히 우리 삶에는 경제적 어려움과 영적 침체라는 겨울 같은 그늘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무덤의 돌문을 옮기신 예수님의 능력은 오늘 우리의 닫힌 마음과 막힌 환경도 뚫어내실 줄 믿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으십시오. 둘째, 경남의 복음화와 화합을 위해 기도합시다. 가야 기독교의 유서 깊은 숨결이 살아있는 우리 김해와 경남 땅은 기도의 토양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제 우리 성도들이 부활의 증인이 되어, 갈등과 분열이 있는 곳에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지역사회를 섬기고 이웃의 아픔을 돌보는 것이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셋째, 연합의 힘으로 거룩한 도시를 만듭시다. 김해시 기독교 연합회는 늘 깨어 기도하며, 경남의 모든 교회와 함께 손잡고 복음의 가치를 지켜나가겠습니다. 부활의 기쁨이 교회 문턱을 넘어 거리마다, 가정마다 흘러넘치길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당당히 선포하며, 부활의 증인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시길 축복합니다. 2026년 4월 5일 부활절 김해시 기독교 연합회장 이동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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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5
  • [부활절메시지] 고성기연 배동수 목사
    할렐루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며, 2026년 부활절을 맞이 하는 모든 성도님들 과 가정들과 교회들 위에 주님의 은혜가 넘치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상식’이라는 기준이 있습니다. 상식은 어떤 판단이나 결정이 매우 자연스럽고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의미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틀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이러한 상식과 이성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증거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이 땅에 생로병사의 고통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성경은 분명히 죄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십자가의 형벌을 대신 감당하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참된 생명의 주 되심을 온 세상에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입었으며, 영원한 천국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상식과 이성을 넘어서는 일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적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여전히 살아 역사하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그 부활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각자의 삶 속에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민이 있을지라도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권능이 우리의 삶 속에서도 역사할 때, 절망은 소망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2026년 부활절을 맞이 하는 모든 성도님들께 부활의 기쁨과 천국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승리를 이루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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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5
  • [부활절메시지] 거창기연 이현용 목사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교회와 성도,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이웃 위에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부활절은 단순히 교회력 속에 반복되는 연례적 기념일이 아니라, 교회와 성도가 그리스도의 생명과 소망을 다시 확인하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과 교회와 사회 속에서 여전히 살아 역사하는 생명의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은 교회 안에 머무는 축제가 아니라, 성도와 교회, 그리고 이웃이 함께 나누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우리는 부활의 아침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와 목회자에게 맡겨 주신 은혜와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 또한 정직하게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140여 년 동안 한국교회가 사회 속에서 감당해 온 귀한 섬김과 선한 영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으로 인해 세상 앞에서 신뢰를 잃어버린 부분이 있다면 깊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진실한 회개와 겸손한 성찰이 있을 때, 교회는 다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새롭게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부활의 생명은 사랑과 용서의 공동체로 나타납니다. 성도와 목회자,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용서할 때 교회는 더욱 건강한 공동체로 세워질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실천 속에서 부활의 능력은 오늘의 현실 속에서도 살아 역사할 것입니다. 이번 부활절을 맞아 우리 모두가 다시 부활의 신앙 위에 굳게 서서, 겸손과 회개, 사랑과 화해의 삶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다시 이웃과 사회 속에서 희망을 전하며, 생명의 복음을 증언하는 공동체로 굳게 서기를 기도합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 위에 생명과 평강의 은혜를 더욱 풍성히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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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5
  • [최성은 목사] 양심을 따라 섬기는 사명자 (행 23:1-11)
    사도행전 23장은 바울의 인생 가운데 가장 긴박한 순간 중 하나를 보여준다. 3차 전도여행을 마친 바울은 성령의 경고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결국 그는 체포되어 공회 앞에서 심문을 받게 된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바울이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오늘 본문의 핵심이다. 목사와 장로의 자리는 세상이 주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명의 자리이다. 연약한 사람이 그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의 선한 양심에 있다. 바울은 공회 앞에서 “나는 범사의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고백한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음을 의미한다. 양심이란 하나님이 아시는 것처럼 자신을 아는 것이다. 곧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인식이다. 바울은 평생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워 두고 살아왔다. 그러므로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선한 양심을 따라 사는 사역자는 사람의 평가나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과 판단을 기준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선한 양심은 곧 거짓 없는 믿음이며, 사역의 출발점이다. 영적 침체에 빠진 디모데에게 바울이 권면한 것도 바로 이 청결한 양심의 회복이었다. 세상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이 곧 회복이고 부흥이다. 그러나 양심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인간의 양심은 죄와 세상의 영향으로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대제사장을 향해 강하게 말한 후, 그가 대제사장인 것을 알고 즉시 태도를 바꾼 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 때문이었다. 출애굽기의 말씀처럼 지도자를 비방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태도를 바로잡은 것이다. 이 사건은 중요한 원리를 보여준다. 양심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위에 있다는 사실이다. 선한 양심은 말씀에 의해 점검되고 바로 세워져야 한다. 양심을 빌미로 자신의 확신이나 경험, 고집을 따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세상과 타협하여 무뎌진 양심도 문제이지만, 자기 확신으로 굳어진 양심 역시 위험하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개혁주의 신앙의 핵심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복음의 본질을 붙드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죽은 자의 부활로 인해 심문을 받고 있다고 증언한다. 그는 공회 앞에서뿐 아니라 총독과 왕 앞에서도 동일하게 부활을 증거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바울의 사명이었고 그의 존재의 본질이었다. 고린도전서 15장의 고백처럼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복음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다. 바울은 위기의 순간에도 이 복음에 더욱 충실했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지키시고 사명을 이어가게 하셨다. 오늘의 사역 현장 속에서도 동일한 질문이 던져진다. 우리는 복음의 본질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성공이라는 이름 아래 십자가와 부활을 뒤로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사역의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어야 한다. 바울의 삶에는 깊은 밤이 찾아왔다. 육체적 피로와 두려움, 사역의 결과에 대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염려가 겹친 시간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밤에 주님이 찾아오셨다. 주께서는 바울 곁에 서서 담대하라고 말씀하시며, 예루살렘에서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하게 될 것이라는 더 큰 사명을 주셨다. 인생의 가장 어두운 밤에 주님의 위로와 약속이 임했다. 바울이 품고 있던 로마 선교의 비전은 바로 그 밤에 다시 확증되었다. 하나님은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 위로와 격려, 그리고 새로운 비전을 주신다. 오늘 이 기도회 역시 그러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선한 양심을 회복하고, 말씀으로 자신을 점검하며,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를 세우시고,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힘을 주실 것이다. 세상의 인기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 경험이나 고집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가는 삶, 세상적 방법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붙드는 삶이야말로 사명자의 길이다.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인생의 깊은 밤에도 찾아오시는 주님의 위로를 경험하며,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게 될 것이다. ※ 위 설교문은 2026년 4월 2일 고신총회 특별기도회 설교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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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3
  • [연속기고1] 손봉호 교수, 한국교회를 극우로 모는 좌파 본산인가?
    2025년 3월 15일, 서울 영동교회(조상우 목사 시무)에서 열린 전국기독교수연합회 정기총회 및 로고스포럼에서 손봉호 교수가 “AI와 혼란의 대한민국, 기독 교수의 소명”이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했다. 기독일보 3월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손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북 문제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문제이기 때문에, 해결의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문제를 외면할 수 없으며,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최근 한국 정세를 보면 대통령 탄핵 논란 등으로 인해 나라가 극도로 분열된 상태다. 이런 가운데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우려를 표명하며 입장을 발표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한국의 문제를 넘어 더욱 심각한 국제적 난제가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트럼피즘’의 확산이다. 트럼피즘은 미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으며,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 또한 트럼피스트로 분류되기도 한다. 미국에서 발생하는 변화가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우리는 이 현상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독일보, 2025.3.17.) 그러나 필자는 단순한 언론 보도만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당일 현장에서 녹음된 52분 18초 분량의 강연 전체 녹취를 입수해 직접 청취·분석한 결과, 손 교수의 발언은 과거 우리가 알던 ‘옳은 소리, 바른 소리’의 손봉호가 아니었다. 겉으로는 미국의 역할에 감사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남북문제, 윤 대통령 탄핵, 트럼피즘에 대한 평가에서 뚜렷한 좌파적 편향과 반복음주의적 윤리관을 드러냈다. 그의 강연은 단순한 교회·정치·사회 평론이 아니라, 한국교회와 복음주의 신앙의 근간을 흔드는 사상적 선언에 가까웠다. 손봉호 교수는 오랫동안 기독교 철학자요 윤리학자로 존경을 받아왔다. 필자가 SFC 학생 시절, 그는 마치 선비처럼 고고한 학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큰 산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다르다. 옳고 그름이 분명히 드러나는 정치·사회적 격변 속에서, 그의 후학들과 제자들을 통해 이미 사상적 방향이 드러났고, 이번 강연을 통해 그 정체가 더욱 명확히 드러났다. 그는 여전히 원로의 어조로 한국교회와 사회를 비판했지만, 그의 윤리적 평가는 성경적 윤리가 아니라 좌파적 세계관을 대변하는데 더 가까웠다. 특히 민주당 정권의 불의와 비윤리성에는 침묵하면서도, 교회와 나라를 위해 목소리를 낸 애국 시민과 교회를 “극우”로 몰았다. 그날 강연의 주요 발언만 보아도, 손 교수가 한국교회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좌파적 본산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1. 남북문제에 대한 교묘한 왜곡 손 교수는 “남북문제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문제”라고 했다. 언뜻 중립적이고 윤리적인 평가처럼 들리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표현이다. 남북문제의 본질은 추상적 갈등이 아니라, 스탈린과 김일성의 적화야욕과 6·25 남침이라는 명백한 침략 범죄에서 비롯되었다. 그럼에도 손 교수는 ‘사람’을 지목하면서도 김일성, 스탈린, 공산주의 세력을 언급하지 않는다. 이처럼 이미 역사적으로 규명된 ‘주체’와 ‘책임’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손 교수의 발언은 이를 특정하지 않은 채 ‘사람’이라는 추상적 표현으로 처리한다. 이러한 방식은 결과적으로 책임의 주체를 흐리고,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특히 그의 강연 전반을 보면, 남북문제를 설명하면서도 공산주의 체제의 폭력성과 김일성 정권의 침략 책임에 대한 명시적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한국 사회 내부의 갈등과 분열에 대해서는 비교적 강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이 균형의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남북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침략’이라는 역사적 사실보다 ‘인간이 만든 갈등’이라는 일반론이 앞설 때, 청중은 자연스럽게 책임의 방향을 흐릿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그가 말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왜 그 이름은 끝내 말해지지 않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야말로, 그의 역사 인식과 사상적 방향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이라고 본다. 2. 윤 대통령 탄핵 논란에 대한 왜곡 손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논란을 두고 “나라가 극도로 분열된 상태인데, 교회 지도자들이 우려를 표명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이는 극단적 분열의 책임을 윤 대통령과 지지층에 돌리고, 탄핵 찬성 시국선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발언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집권 이래 자유민주체제, 시장경제, 한미동맹을 일관되게 강조해 온 지도자다. 그를 지지하며 탄핵을 반대한 국민과 교회를 “분열 조장 세력”으로 몰아붙인 것은, 곧 광화문 집회와 세이브코리아 운동을 비방하고, 손현보 목사 징계를 청원한 목사·장로들을 옹호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손 교수가 말한 “우려를 표명한 지도자들”은 다름 아닌 기윤실의 정0오 장로, 권0경, 오0택, 이0령, 김0태, 김0홍 목사 등으로 보인다. 결국 그는 자신의 후학들이 주도한 반 광화문, 반 세이브 코리아, 반 애국신앙 운동을 두둔하며 한국교회를 무력화하는 데 힘을 실었다. 더구나 그의 발언에는 민주당의 의회 독재, 부정선거 의혹, 헌법재판소의 편향성에 대한 비판은 전혀 없었다. 오직 애국 국민과 교회만을 겨냥한 공격이었다. 이것이야말로 골수 좌파적 시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도대체 손 교수는 어느 나라 교수인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정체성을 지지하는 국민을 공격하고, 오히려 북한과 종북 세력의 논리를 대변하는 듯한 그의 발언은 북한의 대변자, 공산주의 선동가의 언어와 다르지 않다. 3. 트럼피즘에 대한 악의적 매도 손 교수는 트럼피즘의 확산을 “국제적 난제”라 규정하며 윤 대통령을 트럼피스트로 몰고, 이를 지지하는 애국 교회와 단체들을 싸잡아 비난했다. 그러나 트럼피즘은 다음과 같은 기독교적 가치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1) 차별금지법 반대– 성경적 성윤리를 지키며 동성애와 젠더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운동 2) 생명과 가정 수호– 낙태와 동성결혼 합법화를 거부하며 창조 질서를 붙드는 신앙 실천 3)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옹호– 사회주의와 전체주의에 맞서 자유를 지키는 신앙의 투쟁 4) 반공산주의 정신– 북한 주체사상과 국제 사회주의 흐름에 저항하는 자유 진영의 깃발 5) 애국심과 공동체 회복– 국가 정체성과 가정을 지키려는 기독교적 헌신 이러한 트럼피즘은 성경적 가치의 회복을 목표로 하며, 미국 복음주의 교회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그럼에도 손 교수는 촘스키의 “트럼프는 히틀러보다 더 악하다”는 말을 인용하며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자유세계의 도덕적 기반을 훼손하는 심각한 발언이다. 또한 그는 미국 민주당의 다양성·평등·포용(DEI) 정책을 “기독교적 가치와 일치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사실상 차별금지법과 젠더 이데올로기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발언이다. 손 교수의 발언은 죄와 구원의 복음을 도덕적 평등 담론으로 희석시키는 심각한 신학적 오류다. 4. 사회복음주의로 흐른 ‘이상한 윤리학’ 손 교수는 강연 후반부에서 “환경보호가 진정한 이웃 사랑이며, 지식인들만이 진보가 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겉보기에 선하고 지성적인 듯 보이지만,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복음의 본질과 우선순위를 왜곡하는 인본주의적 윤리로의 변질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성경이 가르치는 가장 근본적인 이웃 사랑은, 죄로 인해 영원한 사망에 처할 수밖에 없는 이웃에게 복음, 곧 구원을 전하는 것이다. 환경보호와 창조 질서 보전은 그리스도인의 청지기적 사명이며 이웃 사랑의 중요한 실천이지만, 이를 복음의 핵심인 죄와 구원의 문제보다 우선하거나 ‘진정한 사랑의 전부’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웃 사랑을 영적 차원에서 물질적·사회적 차원으로 축소시키는 사회복음주의적 오류다. 예수님이 진정한 이웃이라고 칭찬했던 사건은 강도만난 이웃의 생명을 살려 준 선한 사마리아인이었지 환경을 돌보고 살려준 환경보호론자들이 아니었다. 따라서 손 교수의 주장은 복음의 중심을 벗어나, 인간의 도덕적 선행을 구원의 본질로 오해하게 만드는 위험한 윤리학이다. 또한 “지식인들만이 진보가 된다”는 발언은 하나님 나라의 진보와 구원의 보편성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성경은 세상의 지혜보다 하나님의 지혜와 믿음을 중시하며(고린도전서 1장), 진정한 기독교적 진보는 지적 엘리트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한 모든 사람의 거듭남과 변화로 이루어진다. 손 교수의 강연은 하나님 중심의 복음 윤리에서 인간 중심 도덕 철학으로 초점이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맺는 말 손봉호 교수의 강연은 짧았지만, 그의 사상적 본질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그의 발언에는 네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1) 남북문제 왜곡– 김일성 책임을 흐리고 이승만·미군 책임론을 암시 2) 탄핵 논란 왜곡– 자유민주 대통령과 지지 국민을 분열 세력으로 매도 3) 트럼피즘 매도– 기독교적 가치를 극우로 낙인찍고 DEI를 신학적으로 미화 4) 사회복음주의 윤리– 복음의 본질을 인간 중심 도덕철학으로 변질시킨 사상 이 네 가지 사실만으로도 손 교수는 좌파 성향 목사들의 사상적 원조이자 배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한국교회를 극우로 몰아가는 좌파 본산임에 틀림없다. 그의 윤리는 결코 성경적 윤리가 아닌 인본주의적 선택 윤리다. 오늘 교회가 따라야 할 길은 손봉호식 좌파적 정치관과 선택적 윤리학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며 불의한 권세를 향해 진리를 외친 손현보 목사와 같은 선지자적이 사명을 다하는 자들이다. 나는 감히 손봉호 교수님에게 묻는다. “트럼프는 그렇게 비난하면서 시진핑과 김정은은 얼마나 비판했는가? 문재인과 이재명은 또 얼마나 꾸짖었는가?” 현 정권의 수많은 불의와 불법들에 대해서 얼마나 꾸짖고 책망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그는 더 이상 기독교 윤리학자가 아니라 한국교회를 극우로 몰아가는 좌파 본산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고신 교회의 뿌리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불의한 권력 앞에 결연히 맞섰던 저항정신이 살아 있다. 고애연은 이 고신의 저항정신을 계승하여, 교회를 무력화시키려는 좌파적 거짓 담론을 분별하고 철저히 배격해 갈 것이다. 주석: 본 기사는 기독일보 2025년 3월 17일자 「전국기독교수연합회 정기총회」 보도와 당일 현장 손봉호 교수 강연 녹음파일(52분 18초) 전편을 직접 분석한 내용을 근거로 작성되었음을 밝힌다. ※ 독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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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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